[기획] 어렵고 죽는 것이 전부? '로그라이크'의 핵심을 찾아서

기획기사 | 정필권 기자 | 댓글: 16개 |



죽고, 죽고, 또 죽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다시 게임을 시작한다. 몇 년 전부터 많은 게임이 로그라이크의 특징을 살려 제작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다양한 파생작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던전을 탐험하는 전통적인 스타일을 넘어서 다양한 장르에 융합되었고, 시뮬레이션과 횡스크롤 액션, FPS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게임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현재, '로그라이크' 또는 '로그라이트'라는 태그를 달고 하루에도 많은 게임이 출시되고 있다. 1980년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로그(Rogue)'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처럼 보인다. 적은 리소스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는 인디 게임들은 로그라이크라는 장르의 문법을 자신들의 게임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수많은 파생작. 그리고 진입 장벽을 덜어낸 '로그라이트'라는 세부 장르까지. 게임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로그라이크의 흔적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로그라이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로그라이크를 활용한 게임이 있다면,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Rogue와 Nethack에서 현재까지
장르의 시작 그리고 발전사

'로그라이크'는 1980년 등장한 Rogue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게임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Rogue-Type'게임으로 불렸으며, 아스키코드를 이용하여 플레이어와 적 그리고 물체 등을 나타내는 게임들을 뜻했다. 이러한 게임들에 있어서 텍스트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다.

초기에는 명확한 정의가 없어 주로 싱글 플레이. 판타지 롤플레잉, 던전, 간단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사용한 게임들을 일컬었다. 장르의 대표격이 된 로그(Rogue), 핵과 넷핵(Hack, Nethack), Angband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 많은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줬던 게임 '넷핵(Nethack)'

이후 하드웨어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그라이크 장르는 더 다양한 형태와 비주얼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전 로그라이크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문법을 이용하면서, 판타지를 넘어선 새로운 테마를 게임으로 구현했다. 원작 그대로의 모습은 조금 사라졌지만, 장르적인 정체성은 지켜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비스컵(Thomas Biskup)이 제작한 ADoM(Ancient Domains of Mystery), 크롤(Crawl), ToME(Troubles of Middle Earth, 1998년) 등 전통적인 로그라이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게임들이 제작됐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정통 로그라이크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더 간략화된 형태의 게임들이 꾸준히 출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깊이 있는 시스템이 일반적인 대중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시스템을 간략화하고 중요한 점만을 살린 게임들이 등장한다. 본격적으로 로그라이크 파생작들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으며, 장르가 대중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 로그는 정말로 많은 게임에 영향을 미쳤다.

로그라이크의 일부 요소를 차용하는 형태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에 영향을 미쳤다. 디아블로는 하드코어 모드를 통해 영원한 죽음이라는 특징을 담아 플레이에 긴장감을 더했다. 환경이 바뀌는 무작위성과 세이브가 없다는 특징은 횡스크롤 액션인 '스펠렁키(Spelunky)'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아이작의 번제, 다키스트 던전,히어로 시즈 등 다양한 게임들이 로그라이크 장르의 요소를 자신들의 게임에 도입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을 정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 현세대에 이르러, 로그라이크의 진입 장벽은 낮아진 셈이다.


무엇을 로그라이크라고 부를 수 있는가?
무작위성, 죽음에 대한 리스크, 어려움?

그렇다면 로그라이크라는 태그를 달고 많은 게임이 출시되는 요즘. '로그라이크'는 단순히 '어렵고, 반복 플레이를 가정한 게임'이면 충분할까? 아니면 무작위로 구성되는 환경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확실한 것은 단순히 어렵다는 것만이 로그라이크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작위로 구성되는 환경, 성장요소 등을 모두 고려해야만 로그라이크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즉, 그저 어렵기만 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구조만을 가지고 로그라이크를 논하는 것은 어렵다. 난이도와 무작위성에만 초점을 맞추면, 레벨 디자인은 망가지기 십상이다.

오히려 무작위로 말미암은 결과들이 한없이 중요해지는 게임이기에, 더더욱 레벨 디자인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난이도나 무작위 요소만이 아니라, 플레이 과정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주고, 반복적인 플레이로 유도할 수 있는가다.



▲ 그저 '어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2017년, 로그라이크 기념행사(Roguelike Celebration)에서 발표된 내용에 기반을 둔 로그라이크 장르의 핵심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영구적인 결과 (Permanent Consequences)

= 세이브 파일을 다시 불러오더라도 그간 진행된 결과를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캐릭터의 사망도 마찬가지다.

2. 캐릭터 중심적 (Character-centric)

= 플레이어는 한 번에 하나의 캐릭터만 게임에서 조작할 수 있다. 퍼즐과 같이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지 못하는 게임이 있을 수 있고, 최근에는 여러 개의 유닛을 만들고 이를 제어하는 신 스타일(god Style)게임도 존재한다.

3. 절차적인 콘텐츠 (Procedural content)

= 새로이 게임 플레이를 시작할 때, 게임의 거의 모든 부분은 게임 내에서 무작위로 구축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플레이어가 다시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한다.

4. 턴제 기반 (Turn Based)

= 로그라이크의 게임 플레이는 보드게임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해야 할 것들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한정된 자원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고민해야만 한다.

해당 특징들은 이전에 존재하던 클래식 로그라이크의 정의를 현재에 맞게 해석한 것들이다. 최근 몇 년간 로그라이크의 요소를 차용한 게임들이 출시되면서, 로그라이크의 특징을 다시금 정리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요소들이 모두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한다는 설명은, 장르의 본질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먼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중한 플레이와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게 한다.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발전할 수 있는 쾌감을 제공한다. 캐릭터 중심적인 플레이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며, 영구적인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다. 여기에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콘텐츠들은 영구적인 결과로 플레이어가 좌절하지 않게 한다. 사망에 이르는 실패를 겪더라도 매번 게임의 환경은 달라지므로, 다시금 도전할 기회를 준다.

마지막으로 턴제로 진행되는 것은 플레이어가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과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도 큰 장르에서, 반사신경 또는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한정된 자원과 시나리오 내에서 적절한 행동을 최대한 하도록 장려한다.

즉,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중심에 두고 이를 보완 또는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로그라이크 장르의 매력이자 특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몰입하여 게임을 반복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단순히 높은 난이도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며, 반복 플레이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도전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셈이다.



▲ 플레이어를 괴롭히지 않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선에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캐주얼하게, '로그라이트'의 등장
스트레스를 줄이고, 재미는 살리고

전통적인 의미의 로그라이크는 반복적인 플레이가 강점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매우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리스크는 너무나 컸으며, 자주 사용하지 않는 명령들이 많거나, 관리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정 단계를 넘어가면 깊게 빠져들 수 있는 장르이기는 했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번거로우며 어려운 게임임은 부정할 수 없다.

로그라이크(Roguelike)와 가볍다는 의미, 라이트(Lite)의 합성어인 '로그라이트(Rogue-Lite)'는 기존 로그라이크에서 진입 장벽이자 활용도가 떨어지는 부분들을 제거하여, 말 그대로 게임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든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활용도가 떨어지던 조작을 제거하고, 개발하는 게임에 맞게 시스템을 수정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로그라이크보다는 죽음에 대한 리스크가 적고, 보다 가볍게 게임을 설계한다.

동시에 던전 탐험 형태에서 더 나아가, 횡스크롤, 슈팅, ARPG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되며 발전하기 시작한다. 100% 고전적인 '로그라이크' 형태는 아니지만, 로그라이크의 절차적인 생성, 영구적인 결과 등이 반영된 결과물들이다. 로그라이크의 일부 특징들을 자신들의 게임에 맞게 수정하고, 발전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장르의 가치와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한 타협점을 '로그라이트'라고 볼 수도 있다. 한 번 빠지면 강렬한 재미를 보장하지만, 진입 장벽이 있었던 '로그라이크'에서,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성을 신경 썼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로그라이트는 개발사들의 지향점인 로그라이크와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이를 하나의 장르로 녹여낸 결과물들이다.



▲ '로그레거시'처럼, '로그라이크'와 대중성을 모두 확보하고자 한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로그라이크든 로그라이트든 간에 분명한 것은 해당 장르에서 지켜야 하는 핵심적인 가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장르의 시작을 알렸던 '로그'에서부터 다양한 장르가 섞이는 지금까지도 변하지 말아야 하는 요소들이다.

'로그라이크의 강점을 잘 살렸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Faster Than Light'(이하 FTL)를 돌이켜보자. 게임의 배경이 우주로 바뀌고, 시뮬레이션적인 요소를 주춧돌 삼았더라도, 무작위로 생성되는 절차적 콘텐츠 면에서는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FTL의 레벨 디자인은 크게 본다면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무작위', '체계적' 그리고 '도전'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게임 전반에 걸쳐서 긴밀하게 연결된다. 무작위라는 점은 FTL이 근본적으로 반복하는 게임임을 의미한다. 시작은 같으나, 무작위 생성으로 게임플레이에 이르는 과정은 매번 달라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것으로 작동한다. 1GB도 되지 못하는 게임임에도 아직 플레이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쉴 새 없이 죽어가면서도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구조는 FTL의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실패하면서도 다음을 위한 긍정적인 요소를 남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다. 시뮬레이션이 게임의 기반이 되었더라도, 로그라이크 장르의 특징들이 맞물리면서 단순한 게임은 장시간 반복 플레이를 하더라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됐다.



▲ 정통파는 아니었지만 더 절차적인 무작위 생성을 보여준 FTL.


당연히, 어렵고 죽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 좋은 로그라이크 또는 로그라이트를 이야기할 때, 난이도는 부수적인 문제가 된다. 영원한 죽음과 절차적인 환경 생성이 개별적으로 나와서는 소용이 없다. 로그라이크라 부를 수 있는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야만, 그리고 이에 걸맞은 디자인이 구축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죽음에서 모든 것을 잃는 구조와 악독함에 가까운 난이도는 로그라이크의 본질이 아니다. 장르의 시작부터 중점을 뒀던 가치는 '반복플레이를 위한 시스템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재미'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가진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것도 항상 새로움을 느끼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주기 위함이다.

시간은 흘러 시대는 로그라이크라는 장르를 재조명했다. 한정된 리소스를 가지고 매 번 달라지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기교는, 이제 인디 게임의 핵심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다른 장르들과 접목을 이루며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 '핸드 오브 페이트'는 카드게임에 TRPG, 로그라이크 요소를 모두 섞는 독특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미 '로그라이크'는 장르의 하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일부 요소를 차용한 파생작들, 지금까지 최신 버전이 출시되는 정통파 로그라이크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아스키코드로 표현하던 초기의 모습과는 달라진 셈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계속해서 발전했단 평가를 할만하다.

앞으로 '로그라이크'라는 장르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원한 죽음에 기반을 둔 독특한 시스템, 상호 보완적인 메커니즘은 미래에도 지금과 같이 꾸준한 사랑을 받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 그리고 이에 도전하는 게이머들의 열정은 계속될 테니까.



▲ 그리고 앞으로도 '로그라이크'는 계속해서 개발되고, 발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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