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e스포츠 선수들의 스트레스 3요소

게임뉴스 | 정재훈 기자 | 댓글: 4개 |


  • 주제: e스포츠 선수, 그리고 '번아웃'
  • 강연자 : 게임과학연구원 안효연 책임연구원
  • 발표분야 : e스포츠, 심리학, 스포츠과학
  • 강연시간 : 2024.4.11(목) 14:30 ~ 14:50
  • 강연 요약: e스포츠 선수들의 스트레스 및 번아웃 실태 보고

  • 4월 11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게임 과학 심포지엄 은 '포스트 디지털 시대의 e스포츠'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는 국내외 e스포츠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행되었으며, 시대 전환에 따른 e스포츠 산업의 전망 예측 외에도 e스포츠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함께 이뤄졌다.

    이중, 게임과학연구원 책임 연구원인 안효연 박사의 발표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e스포츠를 조명했다. 본격적인 e스포츠 산업이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우리에게 'e스포츠 선수'의 인식은 '게임을 너무 잘 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인재'정도에 가깝다. 그들이 지닌 게임적 퍼포먼스는 인정할지언정, '스포츠 선수'로서 겪는 경험에 대해서는 다소 관심이 덜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타 스포츠 선수를 대할 때, 우리는 그들이 보여주는 성과와 육체 능력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정진하는 자세와 꾸준한 노력에도 박수를 보낸다. e스포츠 선수들의 노력 대부분은 실제 신체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기보단, 컴퓨터 앞에서 의자에 앉아 이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의 노력과 스트레스가 과연 다를까? 안효연 연구원은 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 제도권에 들어온 e스포츠, 시선부터 달라져야

    안효연 연구원은 먼저 e스포츠를 대하는 주요 사회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상기했다. e스포츠는 이미 2번의 아시안게임에서 시범종목을 거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병역 면제 특혜까지 주어졌다. 또한, 스포츠 종목 지정에서 극도로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는 올림픽 위원회(IOC)도 도쿄 올림픽까지는 '버추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후인 싱가포르 올림픽은 사전 행사로 '올림픽 e스포츠 위크'를 진행하며 'e스포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e스포츠를 스포츠로 분류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먼 과거부터 존재해왔고, 비교적 최근까지 갑론을박이 벌어진 소재였지만, 이제 제도권에서도 e스포츠를 수용하기 위한 준비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다.



    ▲ IOC도 e스포츠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흥행하는 e스포츠 리그인 'LCK(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도 연간 두 번의 정규 리그가 글로벌 일정에 맞춰 진행되며, 대기업들의 스폰을 받은 게임단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오랜 전통을 지닌 타 종목과 같은 레벨이라 말하기는 부족하지만, 시스템과 구성 요소를 갖춘 엄연한 스포츠 종목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안효연 연구원은 이 LCK에서, 5년 간 멘탈 코치로 일하며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본인이 분석한 선수들의 스트레스 데이터를 공개했다.



    ▲ e스포츠 선수들의 스트레스와 번아웃도 살펴볼 때가 되었다.



    ■ e스포츠 선수들의 스트레스 3요소

    단적으로 말해 e스포츠 선수들의 스트레스 지표는 타 스포츠에 비해 전혀 모자라지 않는다. 맥그래스의 스트레스 순환 모델에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도 자주 보이는데,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다.

    5명의 선수 중 한 명(선수 A)이 상대적으로 기량이 부족한 경우, 선수 A는 그 자체만으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승리 시엔 다소 완화되지만 패배 시 스트레스의 레벨이 더 커진다. 이로 인한 퍼포먼스 저하가 따라오며, 퍼포먼스 저하에 따라 승률이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 맥그래스의 스트레스 순환 모델

    더군다나 약간의 변화로도 기량 차이가 현저하게 발생하는 e스포츠씬에서 영원한 강자와 약자는 드물다. 기량이 좋은 선수도 꾸준히 퍼포먼스로 인한 지적을 받기 마련이고, 기량이 부족하다 여겨지는 선수도 가끔은 놀랍도록 활약할 때가 있다. 자신의 상황을 잠정 수용하기엔 변화가 극심하다 보니 이와 같은 스트레스는 대부분의 e스포츠 선수들이 겪는 일이며, 흔히 '번아웃'을 측정할때 활용되는 '마슬라흐의 번아웃 기준'으로도 번아웃에 해당하는 상황의 선수들이 드물지 않다.

    안효연 연구원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와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심층 인터뷰는 최소 5년 이상의 경력을 지녔고, 월드 챔피언십 참가나 우승 경력이 있는 7명의 베테랑 선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했고, 설문 조사는 조건을 완화하는 대신 81명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 주제는, 무엇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인지였다.

    선수들은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말했다. 그 세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다.

    - 퍼포먼스
    - 과훈련
    - 대인관계

    그 외에도 신체적, 심리적 고갈 상태나 커리어에 대한 고민, 타 선수와의 연봉 차에 대한 스트레스, 척추 혹은 손목 통증과 같은 질환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도 e스포츠 선수들이 흔히 경험하는 스트레스 요인으로 조사됐다.



    ▲ 스트레스의 이유는 다양하다.



    ■ 승패, 훈련, 대인관계에 대한 과노출

    '퍼포먼스' 이슈는 타 스포츠 종목에 비해 e스포츠 선수들이 훨씬 심하게 느끼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이유인즉, e스포츠는 기록형 스포츠(역도나 체조, 육상 등)가 아니며, 객관적 경기 지표가 개발된 바 또한 없기에 모든 지표와 역량이 경기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경기에 '승패'가 존재한다. e스포츠 선수들의 주된 훈련 수단은 타 팀과의 비공개 스크림이기 때문이다.



    ▲ 가장 많이 꼽힌 세 가지 스트레스 요인

    LCK를 기준으로, 많게는 하루 여섯 번의 스크림을 치르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정규 리그에서만 최대 158번의 경기를 치르고, 거기에 월드 챔피언십과 같은 부가 경기가 더해진다. 1년에만 연습과 실전을 포함해 수백 번 이상 승패를 가리게 되는데, 이 모든 상황이 선수들에게는 시험대처럼 다가온다. 어떤 스포츠도 이만큼 승패에 노출되지 않는다. 잦은 패배로 인한 슬럼프 혹은 자존감 저하에 빠지기 훨씬 쉬운 환경이라는 뜻이다.

    또한, 육체적 피로가 덜하다는 인식으로 인한 과훈련도 상시 일어난다. 육체 활용 빈도가 높은 스포츠의 경우 스포츠 과학의 측면에서 컨디션 유지와 근육 피로 경감을 위해서라도 회복 과정이 훈련에 포함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과하게 근력을 사용하는 스포츠는 하루에도 두세 번의 낮잠을 통해 근육 피로를 조절할 정도다.



    ▲ 반쯤 관행화 되어버린 과훈련 또한 많은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부분

    하지만, e스포츠 선수들은 대개 오후 1시부터 연습을 시작해 새벽 늦게까지 쉬지 않고 훈련을 진행하며, 팀에 따라서는 강제적 개인 연습 시간을 설정하거나, 휴식 및 휴일을 제한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이는 쉽게 정신적, 육체적 고갈을 불러온다.

    더불어 e스포츠 선수들의 대부분은 팀워크의 함양을 이유로 숙소에서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타인과의 잦은 접촉' 또한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침해받지 않는 개인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기에 공동 생활 자체부터 문제가 되며, 타 팀원, 혹은 코칭스태프들과 갈등이 발생할 경우 더 심화된다.



    ▲ 피드백 회의에서의 '남 탓'또한 큰 스트레스가 된다



    ■ 특별히 심각하게 여기지 않더라도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그 밖에도, e스포츠 선수들, 나아가 코칭 스태프들까지 포함하는 선수단의 과한 스트레스 및 번아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 선수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이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코칭스태프들의 스트레스도 결코 적지 않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선수가 많은 만큼 사회적으로 덜 성숙한 인원들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으며, 이들 또한 승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안효연 연구원은 인지를 말했다. 이들의 스트레스와 번아웃이 타 스포츠 종목 선수들에 비해 특별히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이전의 인식대로 'e스포츠가 힘든 게 뭐가 있나?'라는 다소 무정한 인식을 벗어나, 이들 또한 굉장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면서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어엿한 스포츠 선수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 e스포츠와 타 스포츠의 차이점을 이해하면서도 같은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타 스포츠 종목이 오랜 기간 스포츠로서 기능하면서, 초기엔 선수 혹사나 과도한 일정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산업이 성숙함에 따라 스포츠 과학 측면에서의 연구가 시작되었고, 효율적인 피지컬 및 멘탈 케어가 가능해졌다. e스포츠 또한 초기를 지나 과도기에 들어서고 있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상기했듯, 특별하게 여기며 TF를 세우고, 아득바득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것까진 없다. 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여느 스포츠와 다를 바 없이 e스포츠 또한 그들이 쌓은 승패의 그림자에 진득한 스트레스와 타고 남은 재들이 뿌려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