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임은 지역 특산물이 아니다

게임뉴스 | 윤홍만 기자 | 댓글: 14개 |



현 정권 들어 게임에 대한 시선이 유화적으로 바뀌었다. WHO 질병 등재 논란에 있어 부처 간 엇박자도 있었지만 정부지원사업도 활발하고 게임산업 육성에 편성된 예산도 적지 않다.

변화는 예산 편성뿐만이 아니다. 작년에는 게임업계의 숙원이랄 수 있는 '셧다운제 폐지 법안'이 발의됐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사절단과 중국을 방문할 때 게임사 대표를 사절단에 포함했을 정도다. 콘텐츠 수출 산업의 1등 공신 대우를 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게임산업 육성 정책들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다. 나아지고 있지만 지금도 업계에서 바라는 정책과는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어떤 정책이기에 이러한 불만이 나오고 있는 걸까. 그리고 업계와 정부의 온도 차의 이유는 뭘지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지역별로 각기 다른 게임산업을 지원한다고?
게임산업은 기존 산업과는 다르다




지난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KOCCA)은 서울, 광주, 부산 등지에서 2018년도 콘텐츠 지원사업 설명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설명회에서는 다방면에서 콘텐츠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소개됐다. 이중 게임의 경우 단순한 제작지원부터 기능성 게임, 첨단융복합 게임, e스포츠 활성화 지원 정책 등을 소개하며 콘텐츠 지원사업의 핵심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무려, KOCCA의 2018년도 지원사업 총액인 873억 6700만 원 중 게임산업에만 538억 73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을 정도다.

이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부에서도 이제는 게임산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소개한 정책 중에는 현업과의 온도 차가 느껴지는 것들도 여전히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지역 기반 게임산업 육성안'이다. 육성안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사업개요를 보면 지역별 특성화된 게임산업육성 지원을 통해 게임산업의 지역 균형 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얼핏 나쁠 것 없어 보인다. 아니, 꽤 좋은 내용이다.

현재 게임산업이 집중된 지역이라고 하면 판교와 대구, 부산 정도다. 다른 곳에서도 게임을 만들 순 있지만, 기업의 지원부터 정부지원 등 대부분이 이곳에 집중된다. 지원 규모가 다른 만큼,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 위해선 경기도나 대구, 부산에 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정부에서 타 지역에 게임산업을 육성해 지역별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다.



▲ 권역별 특성화 사업은 지역별로 각기 다른 게임산업을 육성하는 걸 골자로 하고 있다

지역 기반 게임산업 육성안 가운데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있었으니, 바로 권역별 특성화 사업 추진안이다. 이는 단순히 타 지역 게임산업 육성을 지원하겠다는 게 아니다. 지역별로 각기 다른 게임산업을 지원해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지역 게임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걸 골자로 한다. 지원내용에 따르면 대구 경북권에는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글로벌 게임산업 육성을, 경기권에는 VR, AR 등 차세대 게임 창조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혀 지역별로 게임산업 육성의 차별화를 두겠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권역별 특성화 사업 추진안은 크게 2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는 개발사의 개발 노선을 강제한다는 데 있다. 게임이란 게 뭔가. 순수 인적자원을 통해 만들어지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게임들은 억압이 아닌 자유로움 속에서 탄생했다. 개발 노선을 강제해서야 개발사가 원하는, 재미있는 게임이 나올 리가 없단 얘기다.

VR, AR, 체감형 게임 등 차세대 성장 동력을 키우려는 나머지 너무 외견에만 신경 쓰는 모습인 것도 문제다. VR, AR은 여전히 발전 단계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대형 개발사도 선뜻 도전하지 않고 있는 게 바로 VR, AR이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VR, AR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도는 좋았으나 여러 난제가 산적해 있어 이에 도전하려는 개발사는 적다.



▲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VR은 여러 난제가 산적한 산업이다

결과적으로 말해 이러한 권역별 특성화 사업은 정비 지원 사업을 하려는 개발사에게 있어선 장애물밖에 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정부 지원 사업을 받으려고 사업 기획서를 프레젠테이션하니 "다 좋은데 액션 RPG를 만들 생각은 없느냐?"고 묻던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로도 인디개발사 아이봉크리에이티브의 정봉재 대표는 이러한 정책에 대해 "지역별로 게임산업을 지원하는 기관과 예산이 늘어난 건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하는 한편 "게임산업은 기술의 진보와 트렌드에 민감하기에 특성화 사업이 해당 지역 개발사들만의 고립된 생태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등 조심스러운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예산 분배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각 지역별 균등분배 원칙. 단,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지역 기반 게임산업 육성 정책을 수행하는 글로벌게임허브센터는 총 130억 원의 사업비를 대구 경북권, 부산 경남권, 전북권, 광주 전남권, 대전 충청권, 경기권 6개 권역별로 균등하게 분배한다고 밝혔다. 게임산업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이니 이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이러한 균등 분배에 대해서 현업에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다수의 개발사가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의 균등 분배는 많은 노력을 해도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반된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평등과 공평, 비슷한 말 같지만 큰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현업에서도 "지역별 게임산업의 현황과 개발사들의 분포를 고려해 예산을 측정하거나 균등분배하더라도 해당 지역 외 개발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을 개방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밝히며 예산의 균등분배를 찬성하는 한편, 일장일단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함을 분명히 했다.


게임산업에 있어서 지역 균형 발전에 의미는?
게임은 지역 특산품이 아니다

게임산업 지역 균형 발전 정책 자체는 찬성하는 바이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지금까지 게임산업은 불균등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원 정책이라고 하면 판교를 위시한 수도권에 집중됐다시피 했으니 지방 출신이라면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타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 정책은 어찌 보면 예비 개발자, 혹은 지방 개발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책이랄 수도 있다.

하지만 권역별 특성화 사업 추진안은 업계와의 온도 차가 느껴질 수밖에 없는 정책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은 순수 인적자원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사람이 중요하지 어떤 지역에서 만드는지는 의미가 없다. 특산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 정부의 시선은 유화적으로 바뀌었지만, 업계와의 온도 차는 여전하다

정부에서는 지역 기반 게임산업과 VR, AR 등의 신사업 동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토끼 한 마리를 잡아도 전력을 다해야지 두 마리를 다 잡으려고 하다간 둘 다 놓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선 지역 기반 게임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게임산업의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그다음 목표로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도 정부 지원을 바라고 도전하는 개발사는 많다. 개중에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명작을 만드는 개발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개발사에 문턱을 낮춰서 지원 정책을 맞춰야 하지 개발사가 억지로 지원 정책에 맞추게 해선 안 된다. 정말 뛰어난 아이디어인데 지원 정책에 맞지 않아서 지원해줄 수 없다면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육성안이 본말전도가 되지 않겠는가.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차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정부 지원 사업이다. 규제로 일관하던 지난 정부와는 달리 진흥책을 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부터 의의가 있다. 다만 아직도 부족한 건 사실이다. 특히, 권역별 특성화 사업은 여러 반발을 불러일으킬 요소도 산재해 있다.

어찌 됐건, 시작한 정부 지원 사업을 뒤로 물릴 순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보완하는 것뿐이다. 문제점은 명확하고 현업에서 목소리를 내줄 곳도 많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한다면 업계와의 온도 차가 느껴진다는 얘기도 점차 사그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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