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교수 "게임 질병코드, 국가가 잘못 이용할까 우려"

게임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23개 |



게임인과 의사,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가 모여 게임장애이용 질병화 등록 문제를 논하는 토론회가 국회에서 금일(14일) 진행됐다. 이 자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 결정이 게임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신동근‧이동섭 의원, 보건복지위원회 윤일규‧김세연 의원, 교육위원회 조승래 의원이 공동주최, 쿠키뉴스 주관,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경민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교수의 '비디오 게임에 관한 과잉 의료화의 한계와 위험' 주제발표에 이어 ▲이상규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교수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김윤경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 정책국장 ▲콘텐츠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나동현 ▲박승범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근호 과장 등이 토론을 벌였다. 토론 좌장은 이경민 교수가 맡았다.

행사에 앞서 오늘 토론회 자리를 마련한 신동근 의원은 "게임이용장애를 두고 찬반양론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다"며 "게이머에 중독자라는 낙인을 찍어 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이란 입장과 과도한 게임 이용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에게 의료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 대립한다"고 현 상황을 짚었다. 그는 "이 사안을 객관적이고도 균형감 있게 바라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함께 준비한 이동섭 의원은 "과학적 증거나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된다면,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도 환자로 분류될까 걱정된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또한, 대표적 여가문화로 자리 잡은 게임을 질병의 관점에서 본다면 낚시, 쇼핑, 영화 감상 등도 질병코드 논란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도 참석했다. 윤일규 의원은 "게임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놀이문화이며, 게임 이용은 정보화 사회 구축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게임중독의 문제점 또한 발생하고 있다"고 양면성을 언급했다. 이어 윤일규 의원은 "게임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현재 게임 중독과 관련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보다 더욱 적극적인 치료와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 이경민 교수

오늘 토론회의 좌장과 발제를 맡은 이경민 교수는 비디오 게임에 대한 과잉 의료화의 한계와 위험성을 발표했다. 이경민 교수는 "과거에 아이가 열이 나면, 부모가 집에서 약을 먹이고 푹 재우는 등의 조치를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바로 응급실부터 찾는 부모가 부쩍 늘었다"라고 예시를 들었다. 특정 현상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일반인이 개입할 여지는 없어지고 오로지 의사만이 관여할 수 있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이경민 교수는 이런 의료 전문화가 이어진다면, △과잉치료 △병원에 감으로써 병이 되는 의인성 질환 △경제적 낭비와 자원 배분의 왜곡 △건강불안과 병팔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개인의 합리적인 인식과 더 효과적일 수 있는 해결을 방해하고, 문제 당사자가 자신의 능력을 경시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조장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WHO가 추진하고 있는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록에도 적용할 수 있다. 먼저 게임에 대한 과도한 소비는 중독의 원인으로 꼽히게 된다. 아이의 문제가 또래와 경쟁 압박이 원인일 수 있는데, 이러한 원인은 경시되고 모든 원인이 게임으로 바뀔 수 있다. 아울러 아이 개인과 가정, 학교, 사회에서 찾아 고쳐야 하는데 병원에서 의사가 진단하고 약물치료로 변환될 수도 있다.

발제 끝에 이경민 교수는 "질병코드는 WHO가 나라마다 대처 방안을 마련하라는 압박이 아닌, 의사끼리 소통을 위한 정리"라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질병코드를 국가가 잘못 사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게임 과용은 질병 관점이 아닌, 자기 통제력 발달의 과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이상규 교수

본 토론회는 한림대학교 이상규 교수가 시작했다. 이상규 교수는 "중독 문제는 1과 0, 있다 없다로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라 운을 떼며 "정도의 문제로써 어떻게 접근할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이상규 교수는 자신의 실제 치료 경험을 근거로 들며 "게임 과잉 대상자 97%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3%는 치료가 필요한 수준, 이 3%를 어떻게 관리하고 치료할 것인지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상규 교수는 실재 진료 현장에서 많은 의사가 게임이용장애를 진단하고 치료한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12년 WHO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과도한 게임사용과 관련한 문제'를 치료한 경험률은 한국 정신의학과 의사의 경우 80% 이상이다. 청소년 위주 치료에서는 90% 이상이다. 독일과 스위스 등에서도 2008년에 비해 2015년 게임사용장애 관련 치료 서비스는 4배 이상 증가했다. 홍콩에서도 2016년 과도한 게임이용 문제 치료는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이상규 교수는 이 수치를 근거로 게임이용장애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은 음주를 즐길 때에 장애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정리했다. 재밌게 게임을 하는 것과 과도한 이용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건 다른 문제란 설명이다. 이상규 교수는 "건강한 게임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실재하는 문제는 분명히 인식하고, 적절한 치료적 개입과 노력은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 ICD-11 등재된 게임이용장애 부분을 비판하는 이장주 소장(오른쪽 끝)

이어서 이장주 소장이 "게임이용장애 질병화는 도박중독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기 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장에서 ICD에 올라온 도박중독 부분과 게임이용장애 부분을 비교해가며 "갬블링에서 글자 몇 개 바꾼 게 게임이용장애"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장주 소장은 "지난 20년 동안 게임중독이란 이름으로 연구된 결과를 종합해보니, △금단현상 △내성 △갈망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세 요소는 의학계에서 밝힌 중독의 핵심 증상이다. 그리고 이 세 특성은 ICD-11 게임이용장애 부분에서도 빠져있다.

WHO가 말하는 게임과 현재의 게임산업이 다소 차이나는 부분도 이장주 소장은 지적했다. 최근 게임은 거의 모든 영역에 확산된 기술이 됐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밴더스내치'와 곧 출시될 'BTS월드'는 게임과 문화 활동의 경계를 허문다. 이장주 소장은 "게임 전문가도 어디까지가 게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데, 정신과 의사가 구분해 진단하고 치료하겠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장주 소장은 "닌자(NINJA)라는 프로게이머이자 스트리머는 타임지가 선정한 2019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선정됐다"며 "제2의 닌자를 꿈꾸는 수많은 청년은 과연 용기를 복돋아 주어야할 대상일까, 아니면 치료의 대상일까?"라 반문했다.



▲ 문화체육관광부 박승범 게임콘텐츠산업과장

문화체육관광부 박승범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의료계를 모르듯, 의사도 게임을 잘 모르는 거 같다"고 답답함을 전했다. 게임은 이야기, 음악, 기술이 종합된 굉장히 복잡한 산업이어서 WHO의 획일적인 질병화 추진에 우려다. 박승범 과장은 "게임이용장애 질병화 논의는 게임의 여러 면 중에서 하나만 보고 추진하는 것이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소주중독, 맥주중독이라 말하지 않고 알코올중독이라 하는 것처럼 게임도 인터넷 중독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박승범 과장은 게임이 인터넷으로 구현된 많은 콘텐츠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알코올중독 논리로 게임중독을 본다면, 오히려 인터넷 중독을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상황에서 게임중독이 언급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고 어떤 산업인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박승범 과장은 분석했다.

박승범 과장은 "ICD-11에 등재된 게임이용장애 이유도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DSM-5에 게임이용장애를 넣으려다가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보류된 상태이다. 하지만 ICD-11은 근거가 부족하단 소리를 들으면서도 검증논문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WHO에 의견서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박승범 과장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게임 관련 정책을 논하는 많은 사람이 갤러그나 테트리스까지만 아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이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 반도체 경제 이야기를 할 때 이 정도로 무지함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10대의 92%, 국민 67%가 즐기는 것이 게임이다"며 "10년 뒤에 오늘 토론회를 추억할 때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근호 과장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근호 과장은 "게임인이던 의사던 게임의 문제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며 "3%의 적은 수치라도,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있다면 치료 방법은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록은 게임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부작용을 예방하자는 취지"라 설명하며 "이로 인해 부작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문제가 있음에도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많은 국민의 건강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조근호 과장은 우려했다. 또한, ICD-11은 게임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을 위해 필요한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 김윤경 정책국장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시민연대 김윤경 정책국장은 '강서 PC방 사건'과 같이 언론에서 게임이 원인으로 지적됐던 것을 언급하며 "이런 것을 보면 게임중독은 병이라고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김윤경 정책국장은 뇌 과학을 통한 검증이나 논의 없이 곧바로 질병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윤경 정책국장은 아이가 게임에 빠지는 이유를 득템, 렙업, 파티로 구분했다. 원하는 아이템을 얻고 레벨을 올리기 위해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면 마음대로 나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죽였다고 현실의 상대방을 찾아가 죽이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자체 분석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매출이라는 경제 논리에 눈이 가려져, 우리 자녀가 건강한 미디어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는 소홀했다"고 전한 김윤경 정책국장은 게임사와 정부에 책임을 강조했다. 당장 게임중독으로 인한 게임사의 손실보다 아이의 정신건강이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다는 판단에서다.



▲ '대도서관' 나동현 크리에이터

토론회 마지막은 '대도서관' 나동현 크리에이터가 맡았다. 그는 "하루종일 게임을 해서 혼난 아이가 여기에 있다"며 "스스로 겪어본 입장에서 게임중독은 말이 안 되는 거 같다"고 전했다. 사회로 나가자 자연스레 게임을 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경험을 전한 대도서관은 "결국 게임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먼저 살펴보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말했다.

"기성세대가 게임을 잘 모르고 아이를 과소평가하는 게 아닐까"라 추측한 대도서관은 오해를 바로잡았다. 게임에 중독돼서 오래 빠지는 게 아니라 더 잘하고 싶기 때문에 한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은 하루종일 바둑만 둔다. 그렇다고 이세돌 9단이 바둑에 중독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이세돌 9단이 바둑을 더 잘하고 싶기에 계속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는 게임을 한다.

대도서관은 아이가 게임을 잘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세대이자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에게 왜 게임을 하는지 설명하기란 복잡하다. 기성세대의 부모는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아이로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기성세대는 아이가 자신들의 걱정을 이해해주기 바라지만, 아이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대도서관은 자신이 본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똑똑하다고 전했다. 기성세대는 아이가 FPS를 해 실제 생활에서 총난사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아이는 이게 게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즐길 뿐이란 얘기다. 게임에서 총싸움을 해 적이 죽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최근 중국 모바일 배틀로얄 게임인 '화평정영(和平精英)'처럼 총에 맞은 적이 인사하며 아이템을 내놓고 떠나는 모습이다. 대도서관은 현상을 왜곡해 보여준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했다.

아울러 대도서관은 "나는 의학을 모르기 때문에 뭐라 하지 않는다"며 "비게임인도 게임을 모른 채 무어라 말하지 말고, 조금 더 알아봐 주길 원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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