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2018] 당신에게 '게임 개발'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게임뉴스 | 허재민 기자 |


▲유유자적 라이프 김윤정 대표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유유자적라이프의 김윤정 대표는 12년 경력의 베테랑 그래픽디자이너로, 지금은 자유로운 인디개발자로서 많은 개발자들을 도트의 세계로 입문시키고 있다. 무박 3일 게임개발축제, '게임잼'에서 자주 만날수 있는 김윤정 대표는 인디게임 'Afro Run', 'I Must Survive', 'SunShine'을 디자인했다.

당신의 유토피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게임 그래픽디자이너로서 12년의 경력을 쌓은 유유자적 라이프의 김윤정 대표는 오늘(17일) 진행된 IGC2018 2일 차 강연에서 ‘유토피아’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게임잼에서 유토피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개발한 ‘SunShine’을 통해 그녀가 얻은 값진 경험과, 이를 통해 다시 한번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과정에 대하여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것 자체가 꿈이었던 시작점부터, 그것이 힘든 일이 되어버린 순간과 인디개발자로서 자유롭게 게임 개발에 임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늘 강연에서 김윤정 대표는 독일의 인디게임축제 Amaze Festival 참가기를 통해 게임 개발자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 게임잼에서 베를린을 방문하기까지, '유토피아'에 대하여 생각해보다




김윤정 대표는 그녀가 2017년 겨울 우연히 참가하게 된 게임잼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게임잼은 48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즉흥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인디게임 개발 축제로, 개발자들은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무박 사흘 동안 함께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

그녀가 참가한 ‘게임잼: 예술, 정치, 디지털 게임’은 다른 게임잼과는 조금 다르게 게임개발자만을 위한 행사가 아닌 예술가들과 게임 개발자들이 함께하는 행사로 구성됐다. 게임잼에서 마주한 주제도 ‘유토피아’. 철학적인 주제였던 만큼 행사에서는 윤리, 정치, 성에 대하여 윤리적 판단을 이분벅적으로 경계 짓지 말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감이 안 잡히는 주제였어요. 그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고요.”

유토피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김윤정 대표의 팀이 만들어낸 게임은 ‘SunShine’. 태양을 비춰 행성을 만들어나가는 게임으로 구성됐다. 햇빛이 비치는 곳은 생명이 태어나고 건물이 세워지는 등 발달하지만, 반대로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은 점차 죽어가게 된다. 인구수가 목표치에 도달하게 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SunShine’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혼재되어있어요. 그만큼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시행착오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담고자 했습니다.”

게임잼은 일반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게 되면 마무리되지만, 해당 게임잼은 전 세계 8개 국가가 함께하는 큰 프로젝트였다. 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해 서울, 보스턴 등 각 지역에서 수상된 10개 팀이 베를린 게임쇼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한국에서는 김윤정 대표 팀의 ‘SunShine’과 ‘2984 Little Brothers’가 선정됐다.






▲‘2984 Little Brothers’는 투표를 통해서 유토피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주제를 담았으며, 게임에서는 시민들이 9개 채널에서 투표로 사회를 만들어가게 된다.



■ 김윤정 대표에게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의 의미 - 베를린 투어

이어 김윤정 대표는 그녀가 베를린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나이, 성별, 국적이 모두 다른 개발자들이 함께 모이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편하게 독일 구경을 하러 가자는 마음이었는데, 계획표를 보니… 역시 공짜는 없다 싶더라고요(웃음)”




김윤정 대표가 방문한 시점에 베를린은 게임스위크(Game’s Week) 기간으로, 베를린 곳곳에서 다양한 게임 행사가 열리는 주간이었다. 게임잼 수상팀은 이때 개최된 행사 중 인디게임개발축제인 Amaze Festival에 참가하게 됐다.

김윤정 대표는 무엇보다 행사장의 분위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게임을 시연하는 전시장의 모습은 다른 게임쇼와 비슷했지만, PC, 모바일, 콘솔 게임뿐만 아니라 사람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게임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녁에는 따로 마련된 뒤풀이 장소가 아니라 게임 행사장 앞마당에서 파티가 이루어졌다. 게임 컨퍼런스 홀과 뒤풀이 장이 분리되지 않았으며, 개발자들은 편안하게 맥주를 들고 게임을 시연하기도 했다.




“독일은 술보다 물이 비싼 나라예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처럼 맥주를 들고 다니더라고요.”

게임잼 수상팀은 행사기간 동안 각 팀의 게임 시연장을 운영하고, 동시에 게임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PT는 주어진 몇 가지 질문들을 가지고 5분 동안 자신의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김윤정 대표는 무엇보다도 질문지가 게임을 개발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묻고 있었다는 점에 놀랐다고 설명했다.




게임의 목표는 무엇인지, 게임의 무엇이 승자를 만들고 패자를 만드는지, 정치와 게임은 어디에서 만나고 충돌하며, 도전하고 서로 보완되는지. 지금까지 게임 기획 단계에서 ‘재미있겠다’ 혹은 ‘이렇게 하면 예쁘겠다’ 정도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베를린에서 그들이 마주한 질문들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울의 게임잼에서 유토피아라는 다소 난해한 주제가 제시됐던 것처럼, 다른 7개국 수상작들도 심오한 주제를 담은 게임으로 구성됐다. 러시아의 ‘Choo-Choose’는 멈출 수 없는 기차의 선로를 정해주는 게임으로, 선택한 선로에 놓인 대상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고양이를 죽일 것인가, 강아지를 죽일것인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포기한 대상을 마주하게 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브라질의 ‘Chain Reaction’은 쇠사슬로 엮여있는 4인의 죄수가 탈출하기 위해 협력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미국의 ‘Struggling Dreams’는 ‘SunShine’과 같이 빛으로 누굴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김윤정 대표는 이어 ‘아날로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이어갔다. 행사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게임 중에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디지털 게임뿐만이 아니었다. 김윤정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임으로 의자 뺏기 게임을 기본으로 한 게임을 꼽았다. 각각 털방석부터 진짜 생선까지 다양한 오브젝트들이 놓여있는 의자를 얻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게임으로, 경쟁을 다루는 동시에 계층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아날로그'는 각국의 개발자들이 베를린에 초청된 이유기도 했다. 해당 게임쇼 프로젝트는 글로벌 가상 네트워크를 아날로그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실제로 개발자들이 만나서 연결하도록 구성됐다.

게임잼을 통해 만나게 된 개발자들인 만큼, 모두가 함께하는 게임잼이 시작됐다. 장비가 필요 없도록 지하철역 사거리에서 아날로그로 이루어졌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4개의 나라로 나누어진 팀들은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가상의 국가를 만들었으며, 그 주제에 맞게 인구는 어떻게 늘려나갈지, 어떤 규칙을 갖게 될지를 정하게 됐다.




김윤정 대표가 속했던 팀은 환경문제를 다룬 국가로, ’깨끗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쓰레기를 주워오면 나라의 상징인 꽃을 주고 시민으로 포섭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깨끗한 도로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드물지만, 더러운 도로에는 아무나 쉽게 쓰레기를 버리게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게임잼이 끝난 이후에도 해당 사거리의 노숙자들이 자발적으로 도로의 쓰레기를 줍도록 사회적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사거리 게임잼을 진행하면서 게임으로 민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어요.”

게임잼 이후에는 독일의 게임 개발사를 방문하는 일정이 이루어졌다. 독특하지 않은, 판교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회사였지만, 각국의 개발자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자카르타 출신의 인디개발자는 자국에서는 팀 단위로 게임 개발이 이루어지며 회사로 구성된 경우는 거의 없다며 놀라워했다. 한국의 김윤정 대표는 20개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보면 이것 또한 유토피아의 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능력만 된다면 함께 게임을 만들자고 하는 열려있는 분위기가 놀라웠습니다.”

귀국을 하는 날에는 또 다른 생각해볼 거리가 생겨났다. 선물로 받은 단체사진 뒤의 문구 때문이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세요”

“그저 게임을 만들고 독일에 방문했을 뿐인데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이었어요. 그만큼 기뻤고요.”

김윤정 대표는 베를린 투어를 마무리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나에게 게임 제작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김윤정 대표는 중고등학교 때는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꿈이었고, 게임 회사에 취직했을 때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그때부터 게임 개발은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김윤정 대표가 게임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게임 개발은 제게 있어 ‘내 생각을 표현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를린 투어는 게임 속에 내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어요.”



■ 게임잼에서 유토피아를 찾다

베를린 투어가 끝난 이후에 김윤정 대표는 또다시 게임잼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마주하게 됐다. BIC에 앞서 진행된 Make Play JAM(메이플잼)으로, 주제부터 게임의 서사적 조화/ 부조화라는 난해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국적 팀으로 개발을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영어가 불가능한 한국인 두 명과 영어만이 가능한 외국인 한 명으로 이루어진 팀. 그림과 번역기를 돌려가며 그들은 ‘해피 코기’라는 게임을 만들어냈다. 김윤정 대표는 이전까지는 의사소통이 안 되는 외국인들과 게임을 개발하기는 불가능하고, 피해왔던 태도에서 벗어나 게임을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개발한 '해피 코기'

“처음에는 불가능할 줄 알았던 도전을 해내면서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나에게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게임 개발자가 된다면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시작해,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점, 그리고 게임사를 떠나면 그곳에 유토피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때까지.

현재, 김윤정 대표의 유토피아는 게임잼이다. 함께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자신의 유토피아라고 이야기한 김윤정 대표는 현재 21번째 게임잼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안으로 25번째 게임잼을 참가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아쉬움을 표한 김윤정 대표. 그녀는 자신만의 답을 찾으며 인디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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