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여성 게임인들의 달고 쓴 이야기, '우먼 인 게이밍' 네트워킹 행사

게임뉴스 | 허재민 기자 | 댓글: 57개 |



12일 저녁 7시부터 유니티 코리아가 주최하는 IT 및 게임업계 여성들의 네트워킹 이벤트, '우먼 인 게이밍'이 강남에 있는 유니티 본사에서 열렸다. 김인숙 유니티 코리아 대표가 진행을 맡았으며, 김유라 한빛소프트 대표, 조인숙 디지털스카이(한국 법인명 '하티스트') 부사장, 그리고 황은애 캣랩 대표가 패널로 참석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사는 김인숙 대표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김인숙 대표는 "게임업계에 여성이 별로 없다. 유니티가 그 수를 늘릴 수는 없지만, 그 안에 계신 분들과 소통의 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취지로 시작됐다"며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우먼 인 게이밍'은 해외에서는 전부터 해왔던 행사지만, 한국에서는 이번에 처음 열렸다. 김인숙 대표는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자고 모인 것이 아니며, 이 안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커리어를 계속 해나가시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취지다"라고 밝혔다. 또한, "유니티의 목표는 게임 개발자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우먼 인 게이밍' 행사도 우리의 목표에 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김인숙 대표의 환영사에 이어 각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는 패널토크, 그리고 QnA 섹션으로 진행되었다. 패널들의 업계에서 여성으로서 일해왔던 이야기를 듣고, QnA에서는 굳이 여성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 패널 토크 - 경력 개발, 커리어에 대한 그녀들의 이야기




▲조인숙 디지털스카이(한국 법인명 '하티스트') 부사장

여기서는 가장 커리어가 오래된 사람이 아닐까 싶다(웃음).젊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게임 업계에서 일해야 하고 수익화 하는 것까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10년 정도 전에는 오히려 여성 대표분들이 많았다. 그 시대에는 여자로서 좋은 직장을 얻기 힘들었고 능력 있는 여성분들은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창업할 당시 나는 30살이었다. 부족한 것도 많았는데 생각보다 큰 조직을 맡게 되었고, 하나하나 해결할 게 많았다. 동료와 그때 약속했던 것이 있다. 공부를 계속 하자는 거였다. 석사과정을 밟고, 공부하는 것 자체가 하나씩 경력을 연결해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줬다. 가고 싶은 방향이 확고하다면 속도와 상관없이 하나씩 징검다리를 밟아가면 된다. 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어 남들이 경험하는 경력단절의 어려움을 겪거나 극복하진 않았다.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경력에 징검다리를 두라'는 것이다.




▲황은애 캣랩 대표

개인적으로 할머니 개발자가 되는 게 목표다. 그만큼 오래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싶다. 여성분들과 이렇게 자리한 적이 없었는데 패널이 아니라 참가자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프로그래머였기 때문에 다른 건 없고 계속 공부를 해왔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때도, 유니티 엔진이 새로 나올 때도, 공부했다. 내게 경력 개발이라는 건 공부다. 다만 이야기를 해준다면, 내 경력에서 초석의 순간은 첫 회사를 들어갔을 때였다. 경험도 많이 했고 배운 것도 많고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땐 크런치 모드라는 말도 없었는데 이미 팀이 개발하는 게임이 6개월 정도 지연된 상황이었다. 매일 야근과 주말출근이었다. 그때가 20대 때 초반이었는데, 어느 날 출근 전에 머리를 감다가 보니 원형탈모가 있더라. 아이를 낳으면 우울증 때문에 원형탈모가 잘 온다던데 게임 출시가 출산의 고통이구나, 싶었다. 신입 시절에 고생을 많이 했더니 그 이후에는 어떤 고생을 해도 아, 그래도 원형탈모가 생기진 않으니 그때보단 안 힘들구나, 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 남편이 스타트업을 차리게 되어 이직하게 되었다. 규모가 있었던 큰 회사와는 모든 게 달랐다. 크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프로그래밍만 하면 되었던 환경에서 스타트업으로 오니 야생의 느낌이었다. 개발에서 마켓팅, 출시까지 모두 관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유라 한빛소프트 대표

게임업계에서 일한 지 18년이 되었다. 욕하는 건 아니고(웃음). 파란만장 김 대리에서 김 대표까지 왔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제가 업계에서 경험한 달달한, 그리고 쓴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한다.

시작은 99년 봉천동 반지하에서였다. 다섯 명이어서 시작한 회사는 해외의 PC 패키지 게임들을 들여오는 식의 일을 했다. 한국의 전도유망한 유통업자다 하고 거짓말도 좀 했다(웃음).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개발비를 조달해서 게임을 개발했다. 당시 자금이 바닥나서 베트남에서 여러 가지를 팔기도 했다. 내가 키도 큰 편이어서 그런지 다들 신문물의 보따리장수인 줄 알더라.

당시 친오빠와 함께 창업한 건데 만약 게임이 실패하면 미생에 나온 것처럼 베트남에 무역상설을 차리자고 하면서 일했다. 그리고 6년, 7년 만에 히트작이 나왔다. 당시 여러분이 지금 잘 아시는 우리나라의 큰 회사들, 엔씨소프트, 웹젠, 네오위즈 등등 제가 세일즈를 안 간 곳이 없다. 다들 독특하다고는 하시는데 어떻게 돈을 벌겠냐고 하시더라.

퇴짜맞고 중국의 리듬게임 경험이 있는 작은 회사와 수출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돈을 받은 게 800만 원이었다. 그땐 정말 모두 아날로그식이었다. 유저가 3만 원 국민은행에 입금하면 내가 이메일에서 아이디 확인해서 3만 원어치 게임 머니 보내는 식이었다. 기억나는 게 한 유저분이 7만 원을 보내시고 괄호메시지에 '피자나 사 먹어라'하고 보내주셨더라. 그때 우리 700원짜리 한솥도시락으로 연명하던 때였다. 800만원 월매출을 보면서 짜릿했다. 유저분들이 모아주신 돈을 보며 우리가 좀 더 열심히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회사 대표가 내 친오빠라는 건 비밀이었다. 그만큼 애인 사이냐는 소문도 돌았었고. 나는 당시 밖에선 팀장, 내부에선 이사였는데, 어떤 대표님이 오빠한테 "여자가 뭔 비즈니스를 하겠나."하고 말했다더라. 당시엔 너무 서글퍼서 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이게 내 모습이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네가 뭘 하겠어, 무능력하고.', 이거였다. 그래서 그 대표님을 보며 당신이 오래 남나 내가 오래 남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악물고 일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그 사람은 내 기억 속에 없더라.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그 사람은 내게 도움이 되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 말을 했을 뿐이고, 그사람 한마디에 내가 무너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전환점은 이렇게 처참한 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성장한 것 같다. 도움이 되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소화를 잘한 것 같다.




▲김인숙 유니티 지사장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땐 다 남자여서 여러 가지에 대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대표님도 내게 유능하다고는 말씀하시는데 꼭 커피심부름은 나만 시키더라. 그때 생각한 게 왜 날 인정을 안 해주지? 였다. 1등을 원하진 않아도 나는 내 역할을 잘하고 있는데 왜 항상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회사를 찾게 되었고 한게임에서 사원모집을 하더라. 내가 게임을 좋아하고 스타크래프트도 엄청했던 만큼 게임 업계에 눈이 갔다. 2000년도의 이야기니까 굉장히 초기다. 세상이 온라인으로 가고 있었고, 나도 신세계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면접을 봤을 땐 면접관들도 뭘 질문할지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회사에서도 날 면접을 본거지만 나도 회사를 면접을 본 거였다. 그리고 그분들이 질문하거나 답변한 것을 듣고 여기선 여자라는 걸 떠나서 내가 인정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게임 업계에 몸담고 있다. 유니티는 게임개발사는 아니지만, 게임 산업에 함께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 패널에게 묻다, QnA 섹션



▲종이에 질문을 적어서 물어보는 참가자들

Q. 대표, 임원으로서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이 있다면 어떤 사람인가.

김유라 대표 : 일단 합이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 캐미라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멤버도 달라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내 경우엔 일을 벌이는걸 좋아하고 이야기를 하는걸 좋아하는 만큼 흘리는 게 많다. 그래서 난 꼼꼼하고 정돈해주는 분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성품이 좋은 사람을 싫어하는 대표는 없다. 또한,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보다는 그건 기본이고 자신이 더 할수 있는 걸 적극 찾아 나서는 사람이 좋다.

조인숙 부사장 : 결국 남는 건 태도가 좋은 사람이다. 바른 생활을 하라는 게 아니라, 삶을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은 풍기는 분위기부터 다른 것 같다.

황은애 대표 : 나는 우리 팀에 잘 어울려야 한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물론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품이냐, 실력이냐를 따지자면 성품 쪽이다. 이미 팀에는 10년 넘게 일해온 베테랑 개발자들이 있다. 일은 배우면 되는 것이고 팀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좋다. 신입을 뽑게 된다면 배울 수 있는 태도가 되어있는 친구가 좋겠다.

김인숙 지사장 : 공통으로 나온 요소가 태도인 것 같다. 나도 잘한다기보다는 일에 대한 열성, 잘하고자 하는 마인드가 뚜렷한 사람이 좋다. 헝그리한 사람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는데, 진짜로 배고파서 먹을 거 찾아다니는 사람도 좋다(웃음). 회사에 먹을 건 많다. 욕심이 많아서 백퍼센트를 채워도 더 하려고 하고 공부하려는 사람이 좋다.





Q. 어떤 목표와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했는지, 한결같이 변함없는 점과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 점이 궁금하다.

황은애 대표 : 게임업계에서 일하면서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자는 마인드다. 그래서 함께 일하기 좋은 팀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 할머니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점? 이미 아줌마 개발자는 되었고 흰머리도 간간이 나는게, 20년 후쯤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웃음).

조인숙 부사장 : 어려운 질문이다. 직무마다 다르지만 내가 하는 일은 조직관리자, 사람 만나는 일이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점이다. 나는 남들보다 특별히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호기심과 자존감이 나로 하여금 사업개발자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 같다.

김유라 대표 :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유머감각(웃음)?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학교 3학년 땐 개그맨 시험도 봤었다. 1차는 합격했는데 사실 1차는 서류심사다.

하나를 꼽자면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안 해보면 결과도 없다. 항상 용기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매우 많은 실패도 했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다. 영화 '라스트 워드'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Fail Spectacularly. 보란 듯이 나자빠져라,라는 뜻이다. 나는 I make mistake가 아니라 Mistake makes me라고 생각한다. 할까 말까, 하는 순간 시간은 지나간다. 특히 여러분은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게임이라는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즐겁지 않은데 누구를 즐겁게 할수 있을까? 실패하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하면 된다. 어차피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다. 부끄러워도 어차피 순간이다.






Q. 여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메리트부분은 어떤 것이 있었나.

김유라 대표 : 여성으로서의 메리트, 디메리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먼저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이 남자였고, 여자가 별로 없었다. 그만큼 비즈니스 미팅을 하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계속 남자들만 보다가 여자가 있으니 나를 잘 기억해주더라.

중요한것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상대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예쁘고 못났고를 떠나서 나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쉽게 잊히지 않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황은애 대표 : 여자로서 지금까지 메리트는 없었던 것 같다. 근데, 남자도 똑같다. 여자도 남자도 메리트는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런 건 있었다. 내가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 회사에서 여성 프로그래머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내가 잘못하면 모든 여성 프로그래머들이 욕을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야근도 하고 미팅할 때마다 공부도 정말 더 많이 해갔다. 그런 독함이 여성프로그래머들을 욕 먹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나왔던 것 같다.


Q. 조인숙 부사장에게 묻고 싶다. 10년 전에는 여성 대표들이 많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왜 적은지, 그분들은 다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조인숙 부사장 : 10년도 더 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여성들이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거나 중간관리자로 성장하기가 어려웠다. 나 같은 경우도 경영학전공에 공채로 들어갔지만 처음 소속된 곳은 비서실이었다. 물론 대기업 비서실은 핵심부서라 나름대로 업무를 제대로 배울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성들이 기업에 들어가서 일반 업무를 할 수 없던 시절이다. 유니폼 입고 다니던 시절이니까. 그래서 역량 있는 여성들은 창업을 많이 했다. 김유라 대표도 그렇고, 컴투스의 박지영 전 대표, 조이시티 김양신 대표, 소프트맥스의 정영원 대표 등이 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여성들도 중간관리자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임원진으로도 성장할 수 있고. 그만큼 창업주는 적어진 것 같다. 물론 임신,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아직도 문제다. 추가로 가장 좋은 복지는 다른 것보다도 회사 내 유아원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Q. 결혼, 육아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는지 궁금하다.

황은애 대표 :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어서 육아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결혼은 당신의 일을 응원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옆자리에서 야근하던 친구랑 결혼한 거라서 서로 업무에 대해 이해를 잘해줬다. 게임업계가 송두리째 바뀌지 않는 한 업무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김인숙 지사장 : 내 신랑은 내 일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한다. 게임 업계에서 일할 땐 너무 힘들게 일했다. 일에 매달리는데 신랑이 이해를 해주는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런 부분을 이해해달라고 하기도 어렵고. 다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인정은 해준다. 결국 내 갈 길을 가야 한다.

애가 생기고 나니 정말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우리 집은 쌍둥이다. 애가 처음 생겼다는 것을 알고 나선 고민을 많이 했다. 애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건강한 아이는 낳을 수 있을까? 그때 조언받은 게 부모가 똑바른 마음가짐으로 바른길을 걷고 있으면 아이들은 잘 따라간다는 말이었다. 그냥 내 갈 길을 가되 아이가 보고 따라올 내 뒷모습만을 생각하라더라. 그래서 아이에게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냈던 것 같다.

하지만 물론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신랑, 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면 주변에서는 잘 도와준다. 육아는 힘들고 쌍둥이는 정말 힘들다.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아이를 가지는 것과 결혼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과 병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기보다는 결혼, 일, 아이, 전부 다 내 거다! 하는 마음으로 가라.




■ 먹을 것도 있고 수다도 떨고, '우먼 인 게이밍' 풍경기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여유로워 보인다



▲저녁 시간인만큼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엇다



▲향기로웠던 맥주



▲맥주는 두 번 찍어줄 가치가 있다



▲맥주부터 들고 음식을 사냥해볼까?



▲이것저것 담았다. 옆에 꽃 향기도 좋았다.



▲게임업계에서 여성의 강점이 있다면?



▲게임업계에서 여성으로서의 어려운 부분들






▲재치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패널들



▲QnA섹션에서는 다들 종이에 적어 질문했다






▲랜덤 추첨으로 상품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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