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 영상 외길, 윤성우 대표와 '발렌타인드림'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3개 |
'외길'을 걷는 이들을 보며, 우리는 두 상반된 개념을 떠올린다.

장인과 외골수, 놀라운 실력과 부족한 융통성. 놀라운 실력만큼이나 가끔은 답답하지만, 소위 '곤조'라 말하는 고집을 지닌 이들이 결과적으로 세상을 크게 바꾼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계속된 탐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힘이 되고, 그것이 곧 변화의 시작이 되니 말이다.

'발렌타인드림'은 게임 소비자들에게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이지만, 게임업계에서는 나름 잔뼈가 굵은 회사다. 총 직원은 60명 남짓. 게임을 직접 개발하진 않지만, 게임과 관련된 모든 '영상'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수장인 윤성우 대표는 앞서 말한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20년 넘도록 '게임 영상 제작'을 걸어온 사람. 직접 만나보았다.



▲ 발렌타인드림 윤성우 대표


Q.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 먼저, 짧게 인사부터 나누고 시작해볼까 한다.

= 내 소개부터 하면 되나? 오랜 기간 게임 영상 제작에 종사해왔고, 지금은 영상 제작사 '발렌타인드림'의 대표를 맡고 있는 윤성우라고 한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


Q. 일단 대표님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에 회사 이야기로 넘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게임 영상 제작' 외길을 걸었다 했는데, 과거엔 게임 영상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어떻게 게임 영상 제작을 시작하게 된 건가?

= 원래 대학에서 영상 디자인을 전공하긴 했지만, 졸업할 때만 해도 '게임'이라는 특정 분야의 영상을 만들게 될 거란 생각은 없었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긴 하겠지만, 게임 영상을 전문으로 제작하게 된 건 내가 일을 시작하던 시점부터 말해야 설명이 될 것 같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 졸업이 꽤 늦은 편이었다. 29살이 되어서야 졸업장을 받고 사회에 나왔는데, 그 당시만 해도 29살이면 신규 채용으로 입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내부 질서가 꼬이는 문제도 있었고, 더 젊은 재원들도 많았으니까. 오죽하면, 내가 기술을 가르쳐 준 내 후배가 붙은 면접에서 내가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서른 곳이 넘는 회사에 면접을 보고 떨어지는 와중 할 게 게임밖에 없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테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취미는 무료 서비스 게임 정도가 다다.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기도 했고.

동시에 구직에 대한 스트레스도 느끼다 보니 마냥 노는 것도 안될 일이다 싶어 내가 하는 게임을 바탕으로 영상을 제작해 그걸로 포트폴리오를 하나씩 채웠다. 그렇게 만든 포트폴리오로 '컴투스'에 입사하게 되었고, 그게 내 커리어의 시작이 되었다.


Q. 당시 컴투스면 모바일 게임 초기 시장에서 꽤 잘 나가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럼 이후엔 계속 게임 업계에서 일한 건가?

= 그 당시 게임 산업은 한참 성장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게, 내가 컴투스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내 팀'이라는게 없었다. 사수도 없었고 그냥 나 혼자였다.

이후 잠깐 일을 쉬기도 하면서 여러 게임사에 입사했지만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NHN에도 있었고, 넷마블에서도 일했는데 한 번도 '사수'라는게 존재했던 적이 없다. 항상 혼자서 시작해 팀을 만들어가는 입장에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기도 했고, 도전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도 많았다. 2D 영상밖에 다루지 못하던 상황에서 시네마틱 영상을 만들기 위해 3D를 배우기도 하고, 30~40명 규모의 영상 팀을 꾸려 보기도 하고. 단 두 명이서 시네마틱 영상을 만드는가 하면 시간 제한이 걸린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했다.

그러다 2013년에 퇴사해 내 스스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고,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 지금의 발렌타인드림 사무실


Q. 여러 회사 소속으로 일하며 굉장히 많은 경험을 했음이 느껴지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사례들이 있나?

= 당연히 기억에 남는 사례야 많다. 정확히 회사명과 프로젝트 명을 기재할 수는 없지만, 앞서 말한 단 두 명이 만든 시네마틱 영상이 1천만 뷰를 돌파한 걸 보았을 때나, CJ ENM 사옥의 길쭉한 광고 스크린에 걸린 최초의 영상을 만들었을 때, 국내 최초로 인스톨레이션 영상(세계관 설명 영상)을 만들었을 때도 기억난다.

좀 자랑 같긴 하지만, 지금 말하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국내 최초로 뭔가 한 게 꽤 많은 느낌이다. 왜 여태 이걸 생각을 안 하고 있었지? 앞으로 사람들 만나면 자랑도 좀 하고 그래야겠다.


Q. 영상 제작엔 기술적인 소양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예술적 영감도 필요할 것 같다. 어렵지 않나?

= 둘 모두를 챙겨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기술만 가지고는 주문한 대로 찍어내는 형태밖에 안 될 테니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해외에서 만든 영상물이나, 영화의 인트로 시퀀스 등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대부분의 영화 도입부는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대부분이 압축되어 짧은 시간 안에 노출된다. 그걸 몇 번 씩 보면서 모션 그래픽의 이론적 디자인도 체크하고, 장면에 담긴 의미도 찾아내곤 한다.

가끔은 '영상을 좀 더 추상적으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욕심도 생기곤 한다. 동시에 그렇게 만들었을 때 클라이언트와 게이머가 이를 납득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다 보면 대부분은 접게 되지만 말이다.



▲ 영화의 오프닝 씬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에 좋은 영감이 된다. 스크린샷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오프닝


Q. 이를테면, '선구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뜻인데, 굳이 독립해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 회사 소속으로 계속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그 시기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결혼과 독립을 준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당시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월급만 가지고는 필요한 돈을 모으기가 영 쉽지 않았다. 고민이 많이 되긴 했지만, 1~2년 바짝 일해서 2억 정도만 벌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집도 마련하고, 결혼도 하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할 테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좀 우습기도 하다. 내가 살면서 세 가지는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세 가지가 부동산, 사업, 주식인데 생각해보니 벌써 그 중 두 개는 하고 있다(웃음).


Q.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발렌타인드림'의 창업까지 이르게 된 건가?

=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게 2013년이었다. 당시 창업할 돈도 따로 없어 법인은 낼 생각도 못하고 단돈 500만 원으로 컴퓨터 한 대를 사서 친구 사무실 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클라이언트가 점점 늘어나고, 너무 바빠져 사람들을 하나둘 모으게 되고, 그 과정이 반복하다 회사를 차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 와중 입사 권유를 준 회사도 많았고, 그 중엔 정말 아깝다 생각하는 기회들도 있었지만 이미 열차가 선로에 올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같이 일 하던 사람들과 함께 창업을 하기로 했고, 함께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 같이 꿈을 향해 달려보자 다짐하며 '발렌타인드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Q. 혹시 그 때 마시던 술이...?

= 맞다. 발렌타인 12년 산을 마시고 있었다.


Q. 확실히 창업 전이라 아끼던 상황이었나 보다.

= 지금은 30년 산 먹는다(웃음).



▲ 상황이 더 어려웠다면 캪틴큐드림이 되었을수도...


Q. 그럼 이제 '발렌타인드림'이라는 회사에 대해 말해보자. 직접 소개해줄 수 있나?

= 말한 대로 2018년에 설립된 이후, 올해 7년 차를 맞이했다. 게임과 관련된 영상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만드는 영상 제작사로 지금은 출장 간 인원들까지 포함해 65명 정도가 함께 일하고 있다.


Q. '게임 영상'하면 보통 시네마틱 영상이나 광고 영상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건가?

= 그 모든 걸 포함한다. 시네마틱 영상을 만들 때도 있고, 인 게임 소스를 활용해 영상을 편집할 때도 있고, 녹화로 진행되는 간담회나 쇼케이스 등의 영상 편집을 진행할 때도 있다. 좀 더 쉽게 생각하면, 게임과 관련되어 영상으로 제작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작업 영역이라 할 수 있다.


Q. 창업 이후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 좀 어려운 일이다. 일단 이 분야는 보안이 매우 중요한 데다 일반적으로 영상을 제작해도 영상 제작사는 따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룰이다. 때문에 우리가 작업한 내용이라도 레퍼런스로 활용하려면 따로 허락을 구해야 한다. 허락한다 해도 1~2년은 지난 후에 공개 가능한 게 보통이다.

단순히 보안과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제작물이 워낙 많다 보니 딱 이거다 하고 보여줄 작업물을 정하기가 어렵다. 또한, 내가 대표긴 하지만, 우리 회사의 작업물을 세진 않는다. 아니, 셀 수가 없다. 어느 순간부터 세는 게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많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사 홈페이지에 작업물 중 공개 가능한 것들을 올려두긴 했다.



▲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한 발렌타인드림의 작업물 중 일부


Q. 내가 알기로 영상 제작은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작업인데, 그 정도로 많은 영상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영상 하나 제작에 어느 정도 인력과 시간이 걸리는가?

= 케이스마다 다르긴 한데 빠르게 만드는 건 한 사람이 혼자 하루 만에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건 수없이 반복하면서 파이프라인이 만들어진 극히 일부이며, 어떤 영상은 3일, 또 어떤 건 2주가 걸릴 때도 있으며, 장기 프로젝트의 경우 1년 이상 제작하는 영상도 있다. 그만큼 상황이 전부 다르다.

대략적으로 평균을 내자면, 2~3명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칠 때 1~2개월 정도에 하나씩 만들어진다.


Q. 극히 일부라 해도 하루에 하나? 그 정도면 공장 수준 아닌가?

= 스스로는 공장보다 병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공장은 늘 정해진 규격으로 같은 물건을 만들어내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추면서도 해당 게임이 더 좋아 보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한다. 가끔은 새벽에 연락이 와서 퇴근하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때도 있고, 응급처치처럼 단기간에 필요한 영상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다른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만드는 대부분의 게임 영상은 출시 전에 공개된다. 말 그대로 그 게임을 처음 알리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거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에 해당한다는 건데, 얼굴을 공장에서 찍어낼 수는 없지 않나.



▲ 영상은 게임보다 먼저 공개되기 마련이기에 마냥 찍어낼 수 없다


Q. '게임 영상'이 다른 분야의 영상 제작과 다른 점이 있나? 더 신경 써야 할 점이라던가?

= 기술적인 면에서 영상을 편집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시장이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내긴 한다. 대부분의 다른 산업은 '새로운 브랜드'보다 기존 브랜드의 새로운 점을 부각하는 상황이 더 많다. 이렇게 이미 브랜딩이 끝난 상표들은 촘촘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영상 제작에서도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게임은 계속해서 새로운 상표가 나오고, 새로운 제목이 달리며, 새로운 느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산업에서 새로운 주자는 무조건 강하게 나서 깊은 인상을 새겨야 한다. 게임은 그런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해야 할까? 신중하기보다 모험에 가까운 영상을 비교적 많이 만들게 된다.


Q. 최근 게임 서비스 운영 기업 '큐로드' 산하로 합류했다. 어떻게 이뤄진 건가?

= 원래부터 큐로드의 길호웅 대표님과는 익히 알던 사이였고, 몇 차례 협력을 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큐로드가 원래 중점적으로 서비스하던 영역인 게임 운영과 QA쪽 외에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디자인이나 영상, 번역,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개발을 제외한 모든 영역을 개척하는 시기가 왔고, 이에 대해 큐로드 측과 논의하다 한솥밥을 먹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서로 다른 두 회사가 만나는 자리다 보니 처음부터 블록 끼우듯 딱 맞아 떨어지진 않았지만, 지속적인 협력과 소통을 통해 지금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걷고 있는 상태에 이른 것 같다.

동시에,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도 있다. '게임 영상 제작'은 '마케팅'이라는 영역과 따로 뗄 수 없는 분야인데, 워낙 유행의 흐름이 빠른 시장이다 보니 마케팅 업계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해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 중이다.



▲ 서비스 운영 전문 기업 큐로드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Q. 그러고 보니 엔터테인먼트 쪽도 사업을 확장할 거란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떻게 된 건가?

= 광의적 개념에서 엔터테인먼트와 게임은 공통점이 많다. '즐기기 위한 미디어'라는 점도 그렇고 소비 계층이 많이 겹치기도 하며 시장 내적으로도 엔터테인먼트와 게임을 엮으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게임 외적 영역으로 나아간다면 가장 어울리는 게 엔터테인먼트라 생각했으며, 일단 캐릭터 사업 쪽에 방점을 두고 있다.


Q.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다. 최근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영상 편집과 제작 또한 AI의 영역으로 넘어갈 거란 의견도 하나 둘 나오고 있다. 영상 제작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요즘 굉장히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나 또한 AI 솔루션을 여럿 써 봤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 까지는 크게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미 특이점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넘어야 할 고비가 아직도 상당히 많다. 저작권 이슈에 대한 문제도 있고, AI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또 프롬프터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 점도 있다. 또한, 영상 편집이라는 작업 자체로도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기에 결국 검수할 사람이 필요하다. 먼 미래엔 모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 해야 할까?

그 밖에도, 내가 AI를 경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의 결여다.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더 나은 선택은 뭘까? 더 좋은 색은 뭘까? 어떤 연출이 더 효과적일까?를 물어보고 때로는 인터넷에서 찾거나 다른 이에게 물으며 가장 정답에 가까운 걸 찾아나간다.

하지만 AI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감성적 영역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호기심이 필요한데, AI는 그 호기심이 없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AI는 경우에 따라 쓸 수 있는 좋은 '툴'정도의 느낌이다.



▲ 최근 이슈가 되었던 오픈AI 영상 모델 '소라(SORA)'로 제작된 영상


Q.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고 인터뷰를 끝내고자 한다. 개인의 이야기부터 발렌타인드림의 창업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긴 대화를 나눴는데, 마지막으로 '발렌타인드림'이라는 회사가 게임 업계에서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지 말해줄 수 있나?

=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신뢰'다. 그리고,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는 외주사의 입장에서 만들어줄 수 있는 신뢰는 두 가지라 생각한다. 하나는 맡긴 일을 기대 이상으로 해내는 실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작업자가 스스로 해당 프로젝트의 일원이라 생각하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책임감이다.

편집이나 작업 실력은 이미 갖추고 있다. 스스로 내세우는 것 같아 좀 민망하긴 하지만 과거엔 강의도 여러 차례 진행했고, 영상 편집 관련 책들도 많이 출판해 지금도 학원에서 주로 쓰이는 교재로 활용되고 있으니 검증은 충분히 이뤄졌다 생각한다. 중요한 건, 주인의식이다.

'어떤 프로젝트의 외주 작업'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 프로젝트의 일원이라 생각하는 것. 언제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채널을 유지하고, 피드백에 항상 대응하며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함께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제작사의 소양이다. 정 어려우면 클라이언트사의 주식이라도 몇 주 사면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발렌타인드림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믿고 맡기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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