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완벽하게만 나와줘... 얼마든지 기다릴게! '사이버펑크 2077'

게임소개 | 박태학 기자 | 댓글: 60개 |




전 게임을 볼 때 개발자의 마음가짐이 어땠는지 생각해봅니다. 열심히 만들었나 안 만들었나 보는 게 아니에요. 게임도 상품이잖아요. 최대한 많은 유저가 사게 하려면, 열심히 만드는 건 당연한 거죠. 개발자가 진심 즐기면서 만들었는지 보는 거예요. 즐거우면 행복하고, 행복하면 동기부여가 됩니다. 위에서 시키는 작업 그냥 받아서 할 때와는 달라요. 결과물을 보면 알죠.

물론, 그 개발자 실력이 괴물이면 어떤 상황에서든 잘 만들겠지만... 그 괴물들이 의욕적으로 으쌰 으쌰 만든 게임이라면 더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GOTY 행 열차 우등석 탑승이죠.

제가 '사이버펑크 2077(이하 사이버펑크)'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개발자가 즐기면서 만들었다는 티가 났어요. 처음 공개된 티저 영상 봤을 때도 그랬고요. E3 2018 현장에서 개발자들과 얘기할 때, 그들이 시연하는 거 볼 때도 똑같이 느꼈어요. 실제로 개발자들은 인터뷰 내내 '사이버펑크 2020'를 언급했습니다. '사이버펑크'에 모티브를 준 TRPG예요. CDPR 직원들이 게임 만들다 머리 식힐 때 자주 즐겼던 게임이라고.

지금부터 '사이버펑크'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볼 겁니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 E3에서 시연 버전을 직접 본 후 느낀 감상도 적을게요. 그들이 즐기면서 만들었다는 흔적이자, 그들이 괴물 같은 개발력을 지녔다는 증거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CDPR 본사에 운석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이상, '사이버펑크'는 실패할 수가 없어요. 이건 그만큼 대단해요.


당신에게 꼭 맞는 이야기
플레이어만을 위한 맞춤형 캐릭터와 세계관

'사이버펑크'는 2013년부터 이미 개발이 확정된 작품이에요. '위쳐3'가 2015년에 나왔으니까, 그보다도 한참 전이죠. 당시 CDPR은 '사이버펑크 2020'을 만든 '마이크 폰드스미스(Mike Pondsmith)'를 만나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이크는 '이전에도 내 IP를 소재로 비디오 게임이 몇 개 나왔지만, 하나같이 구렸다'며 제작 승인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당시 CDPR이 제안한 기획서가 어땠는지 저는 몰라요. 다만, 원작의 핵심인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내용이 있었을 거라 예상해봅니다. 여러 외신에서 밝히듯, 마이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었어요. '사이버펑크 2020'만의 축축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얼마나 잘 살리는지가 중요했죠.

어쨌든, 원작자의 승인 덕분에 '사이버펑크 2020'의 여러 가지 요소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나이트 시티'가 대표적이고, 도시를 통제하는 초거대 기업들, 온몸 구석구석 개조된 인간, 폼나는 무기, 심지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서 정할 수 있는 특성까지.

참고로 '사이버펑크'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은 프리셋 설정 기반입니다. '검은사막'이나 '심즈'처럼 점토 만지듯 주물럭 주물럭 만들 순 없지만, 그래도 게임을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죠. 다른 게임에도 다 있는 건데 그게 왜 특징이냐고요? 그냥 '룩'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한번 볼까요.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있어요. 그리고 그 환경에 따라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그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며, 반대로 세상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주된 요소이기도 하죠. '사이버펑크'의 커스터마이징은 그런 '사람다운 면'을 강조했습니다.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평소 성격이 어떤지, 자라온 성장 환경이 어땠는지, 어떤 부분에 트라우마가 있는지 모두 설정할 수 있어요. 이걸 어떻게 설정했냐에 따라 미션 도중에 나오는 선택지에도 차이가 납니다. 즉,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 '오, 진짜 이쁘다'와 같은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좀 비싼 데서 산 맞춤 정장처럼 플레이어의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를 제공하고,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장치인 셈이죠.



▲ 그래요, 바로 당신만을 위해 준비된 이야기죠.

원작인 '사이버펑크 2020'의 설정이 워낙 탄탄한 덕분에, '사이버펑크' 역시 매력적인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일단 여기에 간단하게 적어볼게요.

2077년, 미국은 산산조각이 났다. 강력한 힘을 가진 초거대 기업들은 하늘까지 치솟은 마천루의 최상층에서 나이트 시티의 모든 삶을 통제한다. 거리는 마약 밀매단과 심드렁한 매춘부, 온라인 해커와 사기꾼들로 가득하다. 지금 나이트 시티는 타락, 섹스, 극심한 빈곤, 실현 불가능한 아메리칸드림이 뒤섞여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지키는 일이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신은 진보된 사이버 장비로 신체를 개조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한다. 당신은 오직 스스로 만든 규칙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당신은 '사이버펑크' 그 자체인 용병 'V'로 살아가게 된다.

오늘 당신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계약을 따냈다. 나이트 시티를 활보하는 거친 녀석들, 각종 더러운 기술에 정통한 넷러너들, 음지에서 활동하는 기업 해커들 사이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살아남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 향락과 퇴폐를 동시에 품은 도시, '나이트 시티'

배경 연도에만 차이가 날뿐, 원작 특유의 설정과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 게 보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원작자인 마이크는 'CDPR의 사이버펑크가 원작 2020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 기술적인 요소는 그다음이다'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어요. 뭐, 일단 시놉시스만 봐도 알 수 있죠. 마이크가 바라는 대로 온갖 불법이 판치는 축축한 도시가 무대라는 사실을.

'사이버펑크'는 게임의 명칭이면서 동시에 SF 장르를 대표하는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정확히는 80년대부터 유행한 SF 장르의 한 갈래죠. 인공지능 로봇, 테크노 음악, 고도로 발달한 무기들, 일상 깊숙이 파고든 신체 개조 문화, 끝이 보이지 않는 마천루, 그리고 이를 소유한 거대 기업들의 횡포 등... 우주를 넘나들며 외계인들과 싸우는 스페이스 오페라보다는 그나마 현실적인 SF 형태입니다.


역대급 오픈월드 정조준
볼륨과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사이버펑크'가 단순히 세계관만 매력적인 게임이었다면, 지금 제가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예요. E3 현장에서 데모 시연을 보고 든 확신이 하나 있습니다. CDPR은 '사이버펑크'를 클래식의 귀환으로 보고 있지 않아요. 그 자체로 클래식이라 불리길 바라고 있죠. 두 가지를 보고 느꼈어요. 볼륨과 디테일.

여기서 볼륨이란 그냥 맵 엄청 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디테일도 마찬가지예요. 아무 의미 없는 오브젝트만 가득 들어찬 게임을 보고 '디테일이 훌륭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동감이 피부로 느껴지는 거대한 도시, 그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철저히 세계관에 녹아들어야만 비로소 '디테일이 좋다'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사이버펑크'의 주 무대인 나이트 시티는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6개의 지역으로 구분됩니다. 플레이어는 수백 개의 건물, 수천 개의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죠. 좀 높은 건물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오픈월드 게임은 많았습니다. '엘더스크롤 스카이림', '위쳐3'만 해도 게임 내 대부분의 건물에 입장할 수 있었지만, 그 게임들은 빽빽한 고층 빌딩이 없었잖아요. 현실, 혹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에서 건물 하나하나 입장 가능한 게임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GTA5'도 안 됐어요. '사이버펑크'의 맵 크기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CDPR이 수평적인 면적뿐 아니라 수직적인 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입니다.



▲ 그러니까, 저기 보이는 건물들 대부분 들어가볼 수 있다는 말이죠.

'위쳐3'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알 거예요. 단순히 맵 크고 그래픽 좋다는 정도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중세 판타지 월드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디테일이 더해진 결과물이죠. 이건 '사이버펑크'도 마찬가지예요. 나이트 시티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각자의 생활 방식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며, 플레이어가 범죄라도 저지를 경우에는 소리를 지르거나 주춤주춤 물러서는 등 현실에서 볼법한 반응을 보입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단순히 '쟤가 나쁜 짓을 했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플레이어의 평소 행동이나 외형에 따라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요. 대표적인 게 플레이어의 패션입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거리의 평판이 바뀌며, 이는 게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칩니다. 개발팀의 설명에 따르면, 거리 평판이 낮을 경우 입장이 불가능한 장소도 있다고 합니다.

배경을 구성하는 오브젝트는 모두 세계관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특히 간판이 인상적이에요. 한자나 일본어를 비롯한 동양권 언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연상되는 부분으로, 80년대 사이버펑크 SF 특유의 테이스트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사이버펑크'는 '위쳐' 시리즈나 'GTA' 시리즈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낮 밤이 바뀝니다. 안개, 폭우와 같은 기상 효과도 만나볼 수 있고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 비 오는 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국수를 먹는 모습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볼륨과 디테일을 100% 즐기기 위해서는 완벽한 로컬라이징이 필수입니다. 따라서 '사이버펑크'가 음성 한국어화까지 확정되었다는 소식은, 오직 모국어만 사랑하는 저 같은 게이머를 설레이게 하는 데 충분했죠. 대화량이 워낙 많은 작품인데다, 길거리 지나가는 시민들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는 만큼, 한국어화가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사이버펑크 세계에선 역시 국수가 필수.



FPS 그 이상의 FPS
총은 긴박하게, 칼은 잔혹하게.

CDPR은 올해 E3 내내 '사이버펑크의 핵심은 내러티브, 그리고 나이트 시티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에 있다'라고 설명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구현한 전투 시스템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당시 함께 시연장에 참석한 외신 기자들 역시 전투가 펼쳐질 때 동공이 가장 커졌습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사이버펑크는 1인칭 시점입니다. 연출신 나올 때, 자동차 운전할 때 빼고는 모두 1인칭이에요. 이 시점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세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데 효과적이고, 보다 직관적으로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캐릭터가 화면에 나오지 않기에 다양한 연출 면에서 한계를 보인다는 단점도 있죠. 이런 이유로 2000년대 하반기부터는 캐릭터 어깨너머로 카메라가 바짝 따라붙는 숄더 뷰 시점의 게임들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CDPR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나이트 시티를 보다 완벽하게 체험하기 위해서는 1인칭 시점 외 다른 대안이 없다고 깅조했습니다. 대신, 1인칭임에도 3인칭 액션 게임이나 숄더 뷰 못지않은 연출을 가미해 단점을 메우기로 결정했죠. 그리고 그 결과물은 FPS의 미래라 봐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볼게요.

일반적인 1인칭 슈팅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총과 배경, 적이 전부입니다.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자잘한 연출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크게 부각되는 요소는 아니었죠. '사이버펑크'는 바로 이점에서 강점을 보입니다. 단순히 총만 보이는 시점을 넘어, 다양한 무기와 동작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어요. 팔뚝에 장착된 맨티스 블레이드를 이용해 벽을 찍어가며 이동하는 모습, 손바닥에 장착된 칩을 이용해 전투 도중 습득한 무기를 바로 개조해 사용하는 모습 등, 실시간 연출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 이렇게 무기를 쓰거나,



▲ 무기보다 더한 걸 쓸 수도 있습니다.

CDPR이 구체적인 무기 리스트를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총기와 근접 무기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각 무기마다 특색 있는 파츠 개조를 진행할 수 있기에, 실제 체감되는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개발팀은 "사이버펑크'는 RPG가 가미된 1인칭 슈터가 아니다. 슈팅 요소가 가미된 RPG에 가깝다"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면 '위쳐3'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무기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E3 시연 버전에서 보았던 튕기는 총알이라던가, 유도탄과 같이 개성있는 무기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게임 내 등장하는 벽과 기둥은 방탄이 아닙니다. 총탄 세례를 맞은 벽은 파손되며, 심하면 구멍까지 납니다. 기둥도 마찬가지예요. 이들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전투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줍니다. 구멍 난 벽이나 반쪽이 된 기둥은 더 이상 적의 총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지 못해요. 다른 데로 도망가거나 먼저 죽여야죠.

전투의 판도를 바꾸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약물'이 있습니다. E3 시연 버전에서는 반사 신경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약물을 마시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넷러너의 자체 방어력이 그리 높지 않아서일 수 있지만, 이 약물을 활용한 액션의 비중이 아주 높았습니다. 특히 보스를 제압할 때 유용했어요.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는 보스의 유일한 약점은 등 뒤에 있는 코어였는데, 이 약물과 슬라이딩을 이용해 재빠르게 뒤로 파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가진 약물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위쳐3'의 약물 제조 시스템이 떠올랐는데요. 워낙 성능이 좋기에 그보다는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클래스는 크게 '넷러너', '테키', '솔로' 이렇게 3종입니다. E3 시연 버전의 주인공은 넷러너였고, 그 이름답게 해킹과 스피디한 전투가 어우러진, 한 마디로 폼나는(시연하기 좋게 생긴) 캐릭터였죠. 맷집이나 공격력이 세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민첩한 운동능력도 그렇고 해킹을 이용해 건물의 보안망 일부를 마비시키는 등 '사이버펑크'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봐도 될 것 같았어요.

플레이어가 어떤 클래스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전투 양상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앞서 언급한 넷러너는 사이버 닌자에 가까워요. 한대 치고 빠지는 플레이가 중심이죠. 탱커에 가까운 '솔로'를 플레이할 때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전투가 전문입니다. 묵직하게 한발 한발 나아가는 직선적인 전투 말이죠. 테키는 각종 기계공학에 통달한 캐릭터라는 설정으로, 전투를 돕는 각종 장치를 만들어 싸우는 장면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총알들이 이 게임의 긴박함을 나타낸다면, 서슬 퍼런 날붙이로 구성된 근접 무기들은 '사이버펑크'의 잔혹함을 대표하는 요소입니다. 완전한 성인 게임을 표방한 작품답게, 근접 무기의 연출이 제법 묵직했어요. 맨티스 블레이드로 적을 죽이는 장면이 기억에 납니다. 쿡 쿡 벽을 찍어가며 조용히 이동하더니, 펄쩍 뛰어올라 적의 정수리를 찍어버렸어요. 굳이 설명이 필요하니 라며 '사이버펑크'의 수위를 직접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번 하고 끝? NO.
위쳐3 이상의 다회차 플레이 가능.

'사이버펑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입니다. 이걸 중심으로 게임을 디자인했고, 플레이어는 V의 눈을 통해 모든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죠. '위쳐3'와 마찬가지로 '사이버펑크'를 플레이하다 보면 다양한 선택지를 만나게 됩니다. 이 대화 선택지는 'V'의 평판이나 성격에 따라 달라지며, 대화를 어떻게 전개하냐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집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분위기 흐름 상 반드시 싸울 수밖에 없는 적이 눈앞에 있습니다. 총을 꺼내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 합의를 선택했어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대화였으나, 아무런 전투 없이 임무를 완수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깨는 임무도 나온다는 거죠.

이런 선택지는 단순히 대화에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나이트 시티의 인터넷 접속 터미널을 돌아다니다 보면, 수많은 방화벽과 보안 프로그램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 플레이어의 해킹 능력이 높다면, 이를 무력화하거나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요컨대 '위쳐3'와 마찬가지로 '사이버펑크'의 모든 시나리오를 즐기기 위해서는 다회차 플레이가 요구됩니다. E3 현장에서 만난 개발팀 역시 "여러 번 플레이해도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서부터 수많은 선택지로 나누어지기에, '위쳐3'보다도 더 많은 다회차 플레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모든 에피소드를 즐기고 싶다고요? 또 하면 됩니다.


갈수록 잘 만드는 게임사
CDPR의 개발력? 검증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개발사 CDPR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미 다 아시겠지만,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리마인드 의미로 한 번만.

CDPR의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그들의 데뷔작인 '위쳐1'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답게 스토리가 꽤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딱 거기까지였어요. 심호흡 한번 하고 숨 참으면서 잠수하는 심정으로 '난 이 게임에 몰입해야 돼!'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몰입감이 별로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구린 그래픽, 통나무를 보는 듯한 캐릭터 모션, 영혼없는 성우들의 연기, 도무지 적응 안 되는 인터페이스, 이상한 전투 시스템과 더불어 망나니 칼춤만 추는 게롤트... 저도 엔딩 보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안 됐어요. 중간에 포기.

그리고 '위쳐2'. 이건 꽤 잘 만들었어요. '위쳐1'과는 비교 대상이 아닐 만큼 좋아졌습니다. 당대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디테일하게 구현된 그래픽에 꽉 짜여진 연출과 스토리를 보여줬죠.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불편했지만, 참고 적응하면 할만한 수준까진 올라왔습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CDPR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시점이.

그리고 '위쳐3'. 이 게임은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거예요. 게임 좋아한다는 분들은 이미 다 해보셨을 테니까. 2015년 출시와 동시에 세간의 극찬을 받았고, 2018년 현재까지도 역대 GOTY 1위 중 수상 수와 비율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게임입니다. 중세 시대 사람을 해동시켜 개발자로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한 배경, 장편 판타지 드라마를 꽉꽉 눌러 담은 듯한 방대한 스토리가 확 좋아진 전투 시스템과 인터페이스를 만나면서 정점을 찍었어요. 지금껏 지적받았던 전작들의 단점을 지우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엘더스크롤' 시리즈와는 또 다른, 서양식 RPG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죠. '위쳐3'가 명작이라는 데는 아마 모두들 동의하실 거예요.



▲ 이걸 만든 회사입니다.

CDPR은 이미 '위쳐3'로 정점을 맛봤습니다. 솔직히 '사이버펑크'가 전작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들이 과거 자신들이 만든 작품과 비교해 퇴보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란 건 확실합니다. 물론, '사이버펑크'는 그들이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1인칭 슈터 시점의 게임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리스크는 있습니다만, 이는 CDPR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사이버펑크'의 개발진이 약 500여 명이라고 설명한 바 있어요. '위쳐3' 개발진이 250명 정도였으니까 그보다 2배 가까운 인력을 투입한 셈이죠.

자신들이 싱글플레이 게임 잘 만드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E3 2018 당시 CDPR의 스탠 작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는 "우리는 스토리텔링 게임을 만드는 데 특화된 조직이다. 1인칭으로 만들 경우, '사이버펑크'의 스토리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멋모르고 한 도전이 아닌, 자신들이 잘하는 걸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리스크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라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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