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영화로 다 느낄 수 없었던 배틀로얄의 진짜 맛을 보다, '배틀그라운드'

리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48개 |



난 조금만 긴장해도 손발이 땀에 푹 젖어버릴 정도로 심각한 겁쟁이다. 하지만, 영화를 고를 땐 다른 어떤 장르보다 먼저 호러를 선택하고, 공포영화 성수기인 여름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공포와 긴장감을 즐긴다. '영화는 그저 화면 속 가상의 이야기'라는 어떤 안도감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화면 속 가상의 이야기라며 가볍게 치부할 수 있지만, 비슷한 맥락의 게임에서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게임 속 공포 상황에선 오직 나를 죽이려는 일념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상대를 피해 숨어야 하고, 한순간의 선택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심하게 그어진다. 게임에 빠져 한창 몰두하고 있자면, 어느새 자신을 게임 속 캐릭터에 투영하게 되어, 영화에선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이 몰려온다.

서로 죽고 죽이는 버려진 섬, '배틀그라운드'의 아시아테스트에 참여하며 나는 근래 경험할 수 없었던 압도적인 긴장감을 느꼈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듣고 있자면 양손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코앞까지 닥쳐온 죽음의 순간 물밀듯 몰려오는 상실감은 자연스레 나를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명의 겁쟁이에게 배틀로얄의 진짜 맛을 일깨워준, '배틀그라운드' 아시아 테스트 당시의 기억이다.


■ 죽음의 섬, '배틀그라운드'에 첫발을 딛다




'아무래도 X됐다, 그것이 내가 섬에 착륙하며 내린 결론이다. 나는 X됐다.'

배틀그라운드행 비행기에서 몸을 던지며, 나는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을 계속 떠올렸다. 용감하게 싸워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사람이 없는 장소로 가서 안전하게 장비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좋은 무기와 장비를 쉽게 획득하기 위해 건물들이 밀집한 번화가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밀집 지역과는 약간 떨어진 허름한 민가를 기점으로 삼았다.

비행은 순조로웠고, 뛰어내리는 타이밍도 완벽했다. 왠지 최후의 1인이 될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득 품고 미리 정해둔 장소에 착륙하기 위해 낙하산을 펼친 그 순간, 무수히 펼쳐지는 국방색 낙하산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건 좋지 않다. 아니 최악이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유저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 같다. 각종 무기와 가방, 아이템이 가득한 번화가는 내버려 두고, 한때는 할머니 혼자 소를 키우며 지냈을 법한 작은 민가 근처로 수많은 경쟁자들이 몰려들었다. 내 뒤통수를 위협할 저들보다 먼저 땅을 밟아야 한다는 생각에 전후좌우로 낙하산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내 맘도 몰라주는 야속한 낙하산은 '무엇보다 안전제일'을 주장하듯 안락하게, 그리고 유유히 땅을 향해 나아갔다.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진 짧은 비행을 마치고 땅에 착륙하니, 저 앞에 버려진 창고를 향해 다가가는 맨몸의 남자가 보였다. 주변에 다른 건물은 없고, 무기를 얻으려면 나또한 창고로 향해야 했다.

나의 접근을 눈치챈 것일까. 맨몸의 남자는 돌연 창고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나또한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았다. 늦지 않았다. 차분하게 무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먼저 줍기만 하면 나에게도 승산이 있다.

창고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지만, 샷건이나 소총같은 무기는 커녕, 그 흔한 권총 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무엇이든 쓸만한 아이템을 챙겨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탄약을 장전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저 맨몸의 남자는 벌써 무기를 들었구나.

상황을 파악할 여유는 없었다. 무언가 주워보려던 미련은 빠르게 접고, 곧바로 밖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과연 살 수 있을까? 이후의 계획 같은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운지 오래다. 그저 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열심히 달렸지만, 귀를 때리는 거친 총성과 함께 화면은 붉게 물들었고, 팬티 바람의 남성이 쏜 M416 돌격소총의 굵은 탄환을 맨몸으로 받은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아쉬워할 여유도 없었던 첫 번째 죽음



■ 사람 조심, 폭격 조심, 파란 벽 조심!



▲ 출발 전 대기실의 모습. 90명의 유저가 모여있지만, 최후에 남는 것은 오직 한 명뿐이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무력감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최후의 1인을 꿈꾸며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의 죽음을 반복하며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과 폭격,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파란 벽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배틀로얄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죽음의 섬은 그저 숨어서 시간을 보내려는 겁쟁이들의 존재를 용납치 않는다는 듯, 다양한 제재 수단을 함께 마련해뒀다. 바로 '파란 벽'과 '폭격'의 존재다.

'배틀그라운드'의 파란 벽은 자기장 형태의 불투명한 막으로, 드넓은 섬을 점차 좁혀 경기 구역을 제한하는 일종의 서든데스 방식의 장치다. '배틀로얄' 소설에 등장하는 금지구역처럼 그 자리에 진입한 순간 폭발이 일어나 머리통이 날아가는 형태는 아니지만, 생존자의 피를 서서히 깎아내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도트 데미지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 방에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뒤늦게 빠져나오려 하다가는, 쥐구멍 속에 피어오른 연기를 피해 뛰쳐나오는 쥐들처럼 완전히 무방비한 상황에 노출되어 총알받이가 되기 십상이다.



▲ 항상 지도를 주시하며 '폭격 구역(빨간 원)'과 '경기 구역(파란 원 내부)'를 파악해야 한다



▲ 가끔 모든것을 삼켜버릴 듯 빠르게 다가오는 파란 벽이 적보다 더 두렵다

'폭격'은 지도상에 빨간 원으로 표시되는 지역을 뜻한다. 이는 어느 정도 규칙을 가지고 천천히 줄어드는 파란 벽과 다르게 랜덤하게 발생하며, 구역 내부에는 무작위 융단폭격이 가해진다. 자신이 빨간 원으로 표시된 지역에 남아있다면, 신속하게 해당 지역을 벗어나거나 주변에 건물이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운 좋게 건물에 진입했다면, 내부에서 모든 문을 닫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으로 폭격에 대응할 수 있다.



▲ 연료가 충분한 차량을 구했다면, 위험 지역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다



■ 항상 기억하자. "공수래 공수거 바람처럼 부질없는 것-"



▲ 장착물도 잔뜩 붙이고, 멋진 외투까지 빼입었건만…

'배틀그라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오직 끝까지 살아남는 것에 있다. 이것이 배틀로얄의 진정한 의미이자, 바뀌지 않는 불변의 진리다. 아무리 멋진 패딩 점퍼를 걸치고, 풀 커스터마이징을 마친 강력한 무기를 3종 이상 보유하더라도 불시에 날아온 총알 한 방을 잘못 맞으면 그대로 빈털터리 신세로 찬 바닥에 눕게 된다.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끝없이 탐색을 진행하는 것보다, 기초 장비가 갖춰지면 생존에 포커스를 옮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닫혀있는 문에 안심하고 무작정 수색을 진행하다가는 매복 중인 상대방에게 기습을 당하기 쉽고, 수집을 목적으로 정신을 팔다 보면 어느새 코앞까지 위험 구역이 다가와 있는 경우가 많다. 항상 안전 구역을 확인하며 다음 경기 구역으로 미리 이동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 '배틀그라운드'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지름길이다.



▲ 몇 명이 함께 행동하든, 매복한 상대의 샷건 한 방이면 일망타진이다



▲ 보급품에는 좋은 아이템이 가득하지만, 상자를 노리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 겁쟁이가 이뤄낸 값진 승리,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배틀로얄'의 진짜 맛을 담다



▲ 지하벙커부터 폐허가 된 학교까지, 다양한 환경이 준비된 섬에서 진짜 '배틀로얄'이 시작된다

'배틀그라운드'의 아시아 테스트에 참여한 3일간은, 블루홀이 담고자 한 원조 배틀로얄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승리를 맛본 이후에도 전장에 들어설 때는 손에 땀이 가득 찼고, 매판 완전히 새로운 조건에서 죽음의 경쟁을 벌여야 하는 긴장감은 여전했다.

오랜 시간 살아남아 우승을 바라보는 상황에 사각에서 날아온 탄환에 유명을 달리했을 때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언제든 매끄럽게 새로운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다. 매 경기에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매칭은 바로바로 잡혔고, 각 게임을 시작하기 위한 대기시간은 2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러한 '배틀그라운드'의 매칭 시스템은 아쉬운 죽음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어도, 유저들을 계속해서 새로운 전투로 이끄는 발판이 됐다.

이러한 다양한 장점을 바탕으로 '배틀그라운드'에 걸게 되는 기대감은 각별하다. 배틀로얄 모드의 창시자 브랜든 그린이 함께하는 '배틀그라운드'가 아시아 테스트를 마치고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과연 그들이 꿈꾸는 '배틀로얄 장르의 대중화'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거창한 목표는 차치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서바이벌의 긴장감과 총소리에도 지레 겁먹고 에임이 흔들리는 나 같은 겁쟁이도 승리할 수 있는 전장의 무작위성, 그리고 영화에선 쉽게 느낄 수 없었던 배틀로얄의 참 재미가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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