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뭣이? 왕비? 여왕이 될 줄 알았더니! '레인즈: 여왕 폐하'

리뷰 | 허재민 | 댓글: 6개 |

여왕 폐하, 만수무강하소서! 아마 몇 년 못 가시겠지만 말이죠.

Nerial에서 개발하고 디볼버 디지털에서 퍼블리싱한 '레인즈(Reigns)'의 후속작인 '레인즈: 여왕 폐하(Reigns: Her Majesty)'가 지난 12월 출시됐다. '레인즈'는 중세의 군주가 되어 종교, 백성, 군대, 국고의 게이지를 적절히 유지하며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나가는 게임이다. 국왕이 되어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리던 전작에서 이번에는 여왕이 되어 선택의 가시밭길을 걸어나가게 된다.

그 가시밭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시작과 동시에 다양하게 죽어나간 왕비들... 마가렛은 반항하는 여성의 상징으로서 죽었고, 카산드라는 군중에게 너무나도 사랑받아 짓밟혀 죽었으며, 아름다운 미모로 화제였던 로라는 영원히 비밀로 남을 괴기한 죽음을 맞이했다. 크흡, 하나같이 귀한 나의 딸들이었는데.

전작에서 죽어나간 나의 아들들, 왕들에 이어 내 딸들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 이유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인즈'는 시키는 것도 많고 결정해야 하는 것도 많은 '책임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점심시간이 뭐 먹을지조차 선택하기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게임, '레인즈'. 간단하게 카드를 미는 것뿐인데 왜 '레인즈' 시리즈는 재미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번 '레인즈: 여왕 폐하'에서 전작과 달라진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폐하, 답변은 오직 Yes or No로 하시옵소서
'레인즈'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유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레인즈'는 정말 간단한 게임이다. 신하들과 외국 인사들, 그 외 짐을 귀찮게하는 소중한 백성들이 와서 '폐하, 이거 어떻게 할까요!'하고 문젯거리를 가져오면 결정만 해주면 된다. 이 얼마나 쉬운 게임인가. 앉아서 '그래'와 '응아니야'만 알려주면 된다. 심지어 이 결정도 그냥 좌우로 카드만 기울여주면 된다. 그리고 잘못 선택하더라도 걱정 마시라, 죽어도 대체할 왕은 많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 또한 간단하다. 상단에는 종교, 백성, 군대, 국고의 게이지가 있는데, 이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하게'만 유지해주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다. 한쪽을 편애하지 마시라. 당신은 국왕, 또는 여왕이다. 모두를 자애롭게 구워 삶...아니, 통치하면 된다.

플레이부터 디자인까지는 간단, 그 속에 담긴 블랙 코미디

'레인즈'는 간단하기 때문에 재미있다. 복잡한 플레이 없이 카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답해준다. 플레이뿐만 아니라 게임 디자인 또한 간단하다. 메인에 보이는 카드와 몇 가지 아이템이 전부이며, 앞서 말했듯 상단 게이지를 참고하여 선택하면 된다. 선택지를 기울이면 영향을 받을 게이지와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또한 나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도 가능하다. 또한, 카드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선택지를 고른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든다.

게임자체가 간단한 만큼 모든 것은 그들이 하는 대사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댐을 건설할까요?'같은 질문에서부터 '왕은 동물로 치면 뭐라고 생각해?'까지 다양한 질문에 답해가며 죽음까지 이르는 짧은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꽤나 신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간마다 등장하는 악마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나 어떤 게이지 때문인가에 따른 다양한 죽음. 내 판단에 속된 말까지 쓰며 비판하는 모습이나 각기 진영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통쾌함도 든다.



▲너 이 자식, 수상해!

'레인즈'에서 '나'는 왕으로서 계속 살아간다. 한 왕으로서의 목숨은 소모품이며, '나'는 보다 큰 그림 속에서 바라보며 플레이하게 된다. 굳이 제시된 과제를 이 시대에서 해내지 못해도 상관없다. 다음 생이 기다리니까. '레인즈'의 매력은 특유의 블랙 코미디에 있다. 상황 자체도 그렇고, 거리낌 없는 대사도 그렇다. 광대가 된 듯한 '왕'과 웃음이 나오는 죽음, 그 속에 미묘한 씁쓸함까지.

Yes or No기에 가능한 것들

폐하는 단순한 사람이라서 Yes와 No밖에 모르는 사람이지만, 재미있게도 답변이 이렇게 정해져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 있다. 먼저 빠르게 선택을 해가며 생존하고 죽고의 반복을 보는 것 자체가 재미인 '레인즈'의 특성상 오래 생각을 하지 않고 진행을 신속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레인즈'의 중심은 한 왕의 삶이 아니다. 죽고 다시 살아나고,전체 왕들의 연대기 자체를 진행하는 것이 주요하다. 따라서 빠르게 선택을 하고 판단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또한, Yes or No는 단순하기 때문에 보다 그 결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 자체를 고심하기보다는 내가 판단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예시로,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교회가 화가 났다면, 어째서 그런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정치가 참 힘들다. 한쪽이 만족하면 한쪽은 불만을 품기 마련이니까. 자원은 한정되어있고 원하는 사람은 많다. 여기서 또 깨닫는다. 엔트로피가 이렇게나 무섭다.


나의 왕비가 된 기분이 어떠오?
'레인즈: 여왕 폐하', 전작과 달라진 부분은?

여왕 버전이라고 하여 성별만 바뀌는 것일까?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이거 여왕이 아니라 왕비잖아!"였다. 즉위식으로 시작하는 왕과 달리 '레인즈: 여왕 폐하'는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왕이 말을 건다. "내 왕비가 된 기분은 어떠오?"하고.



▲저기, 뉘신지...

직접 통치하는 여왕이 아니라 왕비로 시작한다는 것은 전작의 왕과는 역할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홀로선 통치자가 아니라 왕의 아내로서의 생존. 물론 국왕처럼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모두 조력자로서의 선택이다. 플레이 방식이 똑같은 만큼 자칫 전작과의 차별점이 없을 수 있는 문제를 Nerial은 간단히 여왕이 아니라 왕비로 포커스를 잡으면서 만들어낸다.

전작도 그랬지만 시작하면서 유저는 '난 왕비인데 이런 것까지 결정해줘도 되나?'싶은 문제부터 '아니, 내가 이거까지 알려줘야 하나?'싶은 문제까지 다양한 지문들을 만나보게 된다. 왕비는 명령을 바로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직접적인 통치권도 없다. 왕실의 안사람으로서 크고 작은 '관계'에 대한 결정이 많으며, 왕과 신하들, 외국인사들, 각각의 파벌들이 왕비에게 '이러시는 게 좋을걸요?'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이에 대해 왕비의 대답이 마냥 정숙했다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비의 대답은 전작과 같이 다소 삐딱하다."아, 그러니? 내 아름다움에 대한 투자라면 가치있지!"



▲"그러시든가"라니, 시니컬한 왕비마마 만세

또한, '레인즈: 여왕 폐하'에서는 아이템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이전까지는 패시브카드 정도가 있었다면, 이번 아이템은 특정 이에게 아이템을 제시하면 업그레이드 또한 가능하며, 이를 이용해 이벤트를 진행할 수도 있다. 향수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거나, 아이템들을 업그레이드해 엔딩을 볼 수 있다. 랜덤으로 카드가 등장하는 만큼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은 환영할 만했다. 그리고 왕도 될 수 있다.

"미키 여왕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팔레뜨 여왕은 국가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왕의 미모가 화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전대가 어떻게 죽었으며, 차기 여왕이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상황은 어땠는지 간략하게 알려주는 카드가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왕국의 역사와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다만, 이러한 상황이 전혀 플레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미모가 화제라길래 드디어 게임에서 나도 미모의 여성이 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나한테만 화제였나 보다.



▲죽음에서 인기를 누려볼 기회는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지만...


여왕 폐하,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남자와 여자의 가시밭길, 무엇이 달랐을까?

조금 예민한 문제일까, 싶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번 주인공은 여자라고.

'레인즈: 여왕 폐하'에서는 앞서 말한 조력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다루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금실로 짠 나의 드레스가 유행을 타는 것과 같은 단순한 사건부터, 회임했다는 이야기까지. 심지어 정숙하지 않다며 혼나기도 한다.



▲뭐...뭣이? 야!!!

또 한가지 포인트는 '마녀'. 왕이 결투했던 것과는 다르게 왕비는 '마법적이고 영적인 것'들과의 연관이 많이 된다. 게임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별자리, 이를 통해 만나는 '어머니', 그리고 마법과 독살... 작지만 전작에서는 없었던 요소들이 모여 중세 여성의 삶을 만들어낸다.

'레인즈' 시리즈의 묘미, 죽음에서도 이러한 요소가 드러난다. 여러 죽음을 만나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으므로 자세히 나열하지는 않겠지만, 왕비의 죽음은 왕과는 또 다르다. 놀랐던 죽음은 마녀재판이었다. 배경이 중세였다는 것을 일깨워준데다가, 중세의 마녀 사냥은 정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지거나, 보호라는 명분으로 탑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죽음 등 왕비의 운명은 굳이 피를 흘리지 않더라도 잔인하다.



▲그 시대에는 옳지 않았을 수 있으나, 영원토록 기억되리.

블랙코미디를 담은 '레인즈'인만큼 이러한 여성에 대한 시각도 불편하지 않았다. 여성이기에 듣는 말들과 비하하는 말들은 유쾌하게 그 시대상을 비꼬며, 이런 양상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리한 선택으로 살아남는 과정을 담는다. 그리고 게임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레인즈: 여왕 폐하' 속 우리의 왕비님은 완전히 억압받은 무력한 여성이 아니다. 엄연히 조력자로서의 권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선택에 따라 왕국의 번영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근데 왠지 보람은 없는 느낌이다.

어느 한 쪽이 무조건적으로 더 힘들지 않다. 어느 한 쪽이 덜 조롱받지도 않았으며, 어느 한 쪽이 더 살아남기 쉬운 것도 아니다. '레인즈: 여왕 폐하'의 신랄한 대사 속에서는 모두가 유쾌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레인즈', 만수무강하소서!
시리즈 전체와 '레인즈: 여왕 폐하'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별자리 달력을 채워나간 왕비들이여, 기억할게!

개인적으로 기대보다 '레인즈: 여왕 폐하'는 재미있었다. 디테일하게 왕비로서, 여성으로서의 이야기를 재치있게 담은 부분과 깨알 같은 아이템 업그레이드 시스템, 시간이 돌아가는 모습을 담은 별자리 지도까지. 전작과 거의 같은 모습을 가지면서도 구석구석에서 단순한 2편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레인즈' 시리즈 전체를 봤을 때의 아쉬움. 반복적인 플레이에 따른 지루함이다. 처음에야 모든 지문이 새로우니 찬찬히 보면서 진행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게이지만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전작에서도 느꼈던 요소인데, 후속작에서 이러한 부분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던 만큼 조금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선택이 게이지 외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선택에 따라 피해를 본 측이 쪼르르 달려와 "폐하, 이러셨다면서요? 저는 크게 실망했다고요?" 라며 고자질하지만, 그게 다다. 단순한 게임 플레이가 장점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 그리고 덧붙여 크게 연대기를 봤을 때는 전대가 무엇을 했던지 그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이 아쉽다. 예를 들어, 전 여왕이 죽은 뒤 차기 여왕은 특정 상황에서 선출된다. 공로를 인정받아 선출되었다든지, 왕권이 위기일 때 선출되었다든지. 이러한 요소가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카드의 등장이나 문장이 조금씩 달라지든지 하는 추가 디테일이 있었다면 크게 감동하였을 터. 전대의 영향은 새로운 카드가 추가되는가에만 영향을 준다.

이번 '레인즈: 여왕 폐하'는 아이템을 사용해서 새로운 플레이를 꾀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재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영향은 미미했다. 좀 더 다양하고 선택에 따라 중요한 분기점이 있었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았을까? 추가로 왕과 비교하면 성전과 같은 이벤트가 조금 적어진 것 같아 아이템의 역할이 컸는데, 그 정도로 임팩트가 있지는 않았다. 별자리가 추가된 만큼 이를 좀 더 이용했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하나 더 추가하자면 번역 문제. 공이 도대체 무엇인가 했다. 아무래도 무도회(Ball)의 오역인가 보다.

하지만 단순함 자체가 장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모바일로 플레이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스토리로 진행되니 흥미롭게 지켜볼 수도 있고. 전작의 단점을 해결해내지 못했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그만큼 장점 또한 여전했다. 역시 이리저리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퀘스트를 통해 이벤트를 진행하고 새로운 카드를 받는 재미도 그대로다.

Nerial은 프랑스의 한 컨설턴트 프랑수와 알리엇(Francois Alliot)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 게임 개발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인디 스튜디오다. 그가 만든 게임들은 모두 간단하다. 동그라미들로 구성된 '싱귤러(Singular)'나 '매직 샷(Magic Shot)' 등이 그 예. 하지만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어떻게 해서 그와 Nerial이 '레인즈' 시리즈를 만들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단순함과 그 속의 치밀한 계산. '레인즈'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다. 이번에는 어떻게 죽어볼까? 나의 여왕은 계속 죽지만 '레인즈'는 정말로 만수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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