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버지가 된 크레토스. 그리고 완벽한 변화의 후속작, '갓 오브 워'

리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61개 |



※ 리뷰 내에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노쇠한다. 시간의 흐름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신 또한 마찬가지다. 격렬한 분노, 고성과 패기를 보였던 크레토스는 이제 없다. 스파르타의 유령은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얼굴에는 세월을 아로새긴 주름이 자리를 잡았다. 불멸에 가까운 존재임에도,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늙어버린 크레토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갓 오브 워'라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2005년 PS2로 출시한 첫 작품에서 시작하여 2010년 '갓 오브 워 3'를 통해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 본편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로부터 8년. 호쾌한 액션, 거대한 적을 말 그대로 때려잡는 시리즈의 정체성은 이제는 과거에 유행했던 것들이 됐다.

본편 외에도 많은 작품이 출시되었으나, 본편만큼의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한때는 액션 시장을 호령하던 시리즈였지만, 이제는 매너리즘을 극복해야만 했고,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시기가 왔다. 그렇기에 이번 '갓 오브 워'는 반드시 변해야 하는 의무감을 짊어져야만 했다.



▲ 크레토스는 이제 나이가 들고, 지치고, 피를 흘린다.

의무를 지게 된 것은 게임의 주인공 '크레토스' 또한 마찬가지다. 오프닝 시점부터 아내는 사망한 상태이고, 아내의 유언을 달성하는 것은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의 지상 과제가 된다. 여기에 크레토스는 아들의 정신적·육체적 성장을 담당하는 의무, 신과 인간의 본성 사이에서 고통받는 아들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하는 의무를 진다. 아버지 제우스를 살해한 것,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과거 또한 아들에게 언젠가 밝혀야만 한다.

반면 아들 아트레우스는 이런 크레토스를 이해할 수 없다. 크레토스는 올바른 아버지가 되는 법을 모르는 존재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경주를 했고, 거북이가 이겼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캐릭터다.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감싸 안기보다는 윽박지르는 것이 더 익숙한 전사로서의 정체성이다. 그렇기에 아버지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부딪히게 된다.



▲ 둘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등한다

과거를 숨기려는 아버지,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아직 성장하지 못한 아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은 게임 내에서 자연스레 표현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을 보는 크레토스는 아들의 몸에 손을 대기까지 많은 고민을 거친다. 대사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손을 쥐었다 폈다 고민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전달한다.

두 사람의 감정선은 플레이어가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것은 크레토스이되, 전투를 도와주는 아트레우스가 플레이어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거나, 이동 중에 투덜거리는 등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꾸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부자의 감정선은 산 정상으로의 여정을 통해 변한다.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크레토스의 어조가 부드러워지고,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크레토스는 전사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배우며, 아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아버지의 과거를 받아들인다. 엔딩에 이르기까지의 플레이는 두 인물이 성장해나가는 긴 여정인 셈이며, 플레이어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장치다. 그리고 당연히, 직접 해 볼 때 더 감명 깊게 다가온다.



▲ 크레토스는 아들을 위로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존재다.



▲ 그 크레토스가 '아버지'의 얼굴을 하기도 한다.

시간은 크레토스라는 캐릭터를 뒤흔들었다. 그는 게임 전반에 거쳐 과거를 후회한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 변화해 나간다. 그럼에도 확고한 정체성은 있다. 과거 전쟁의 신이자, 전사이자, 스파르탄이었다는 것.

트레이드 마크인 혼돈의 사이클론 대신, 마법 도끼를 장착했지만, 예전 실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괴적이고 타격감 넘치는 전투는 시스템 전반을 바꾸면서도 고스란히 살렸다. 이전 시리즈 전통으로 사용해왔던 QTE는 이벤트 장면이나 몇몇 전투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는다. 무기나 맨손을 사용하는 전투, 다수와의 전투를 중심에 둔다. 시리즈 내내 사용해 식상해진 무기 대신, 새로운 전투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 새로운 적을 만났을 때는? 일단 '찢고' 본다.

아들 아트레우스 또한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R3로 처형모션을 발동시킬 수 있는 기절치는 아들의 공격으로 더 많이 쌓인다. 물리적인 전투는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크레토스가, 보조적인 역할은 아들 아트레우스가 담당하는 구조다. 시원시원한 맛은 조금 줄긴 했지만, 묵직하고 강렬한 처형모션의 손맛은 이미 전작의 시스템을 충분히 대체한 것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기술을 여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게임 중반부에 이미 모든 무기의 스킬은 다 선택할 수 있고, 다양한 액션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처형 모션도 무기별로 조금씩 달라진다. 이리저리 감상하면서 전투 전반을 즐길만한 재미를 부여한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크레토스의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고, 예전과 같은 강력한 힘은 없어졌다. 하지만 신으로서의 위엄은 살아있다. 이것 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고 전투적이다. 시리즈 전통의 시스템을 갈아엎었어도 우리가 "역시 갓 오브 워"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투가 강렬하고 긴장감 있고, 파괴적이니까.






▲ 찢고, 부순다. 이것이 갓 오브 워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북구신들의 이야기와 얽혀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일어나는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인식차이는 게임 내에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건 아마도 전작을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크레토스는 북구신화의 세계 미드가르드에서는 이방인이다. 긴 시간 동안 과거를 끊임없이 후회했으며, 다양한 장소를 방문한 인물이다. 반면 아들 아트레우스는 미드가르드를 살아가는 존재다.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로부터 북구 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방인과 주민, 성인과 아이. 두 캐릭터의 차이는 게임의 대사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 그리스에서 온 크레토스는 북구신화에서는 이방인이다.

룬 문자를 읽지 못해 "보이!"를 외치며 아들을 매번 불러야 하는 크레토스. 새로운 지역을 모험하고 싶은 아트레우스는 쉴 틈 없이 진행되는 메인 스토리 속에서 갈림길이 된다. 정말로 쉴 틈 없이 진행되는 메인 스토리 중간마다 아트레우스는 새로운 지역을 모험하자고 조르며, 크레토스는 끊임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고 대화를 한다.

이러한 대화는 주로 메인 퀘스트를 향한 여정 중에 이루어진다. 플레이어가 다른 방향으로 방황하고 있다면, 메인 퀘스트를 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반대로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트레우스가 새로운 길을 어린이다운 방법으로 제시한다. 별다른 UI, 퀘스트가 없더라도 탐험과 모험을 하게 만드는 세련된 방법이다. 메인 퀘스트라는 중심축이 딱 버티고 있고, 그 외부에서 플레이어가 모험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중간에 방황하더라도 목적을 잊지 않게 된다.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그리고 머리만 산 존재)가 대화하며 중심점을 잡아준다. 적어도 무엇을 할지 몰라 헤매거나, 너무 할 것이 많아 고민하는 상황이 잘 오지 않는다. 둘은 이야기를 하며 협상을 하고,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방향을 선택하면 되는 일이니까.



▲ 부자의 대화는 보트에서 이루어진다. 소소한 대화는 다 들어볼 것.

이야기의 주 무대인 미드가르드는 넓은 편은 아니지만, 맵에 배치한 건물과 오브젝트는 매우 밀도가 있다. 호수에 들어선 건물들은 위아래로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스토리 진행 중 발견할 수 있는 퍼즐들은 적당한 난이도로 구성되어 풀어내는 재미가 있다. 아트레우스와 협력해야 하는 퍼즐부터, 도끼와 새로운 화살을 이용해야 하는 퍼즐까지. 게임 초반부터 후반부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여기저기 분배해 놨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모험하고 찾아다니는 즐거움도 있다.

디자인 면에서도 모퉁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채도를 높여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뒀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만날 수 있는 모퉁이에 상자를 숨겨놓는 것은 물론, 유용한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바로 새로운 탐험 지역을 엿볼 수 있는 맵 구조다. 덕분에 무언가 하나를 발견했다면, 시야에 바로 새로운 탐험지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심지어 조작할 수 있는 오브젝트들은 채도가 매우 높아서 멀리서도 눈에 띈다.



▲ 퍼즐 디자인, 맵 디자인 모두 완벽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여정의 끝에서 크레토스는 아버지이자 전사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리고 아들 아트레우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서 부친의 과거와 자신의 진실을 모두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우리도 성장한다. 부자가 게임 속에서 겪었던 갈등과 해결은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시리즈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서 다시금 달릴 준비를 마쳤다. 크레토스는 나이가 들었지만, 아트레우스라는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어냈고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야기는 플레이어가 숨 쉴 틈도 없이, 군더더기 없는 진행으로 마감됐다. 변화를 주고자 했던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시도는 시리즈 역대급이자,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이 쯤되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보라"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단점을 찾기 어려운 이 게임에 더 이상의 찬사와 설명은 필요가 없다. 그러니 모든 스포일러를 피하고, 북구신화조차 머릿속에 잊은 상태에서 직접 플레이해 보라.

대사 하나하나를 직접 음미하고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에 몰입하는 순간. 우리가 PS4를 가지고 있음에, 그리고 엔딩이 너무 빨리 찾아오는 것에, 크레토스가 아버지가 되었음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 신화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피하고, 모두 직접 경험하라.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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