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마사지다

리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60개 |



"미디어는 마사지다 (The Medium is The Massage)"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선구자로 불리는 마샬 맥루한(신문 방송, 커뮤니케이션학 전공자라면 무조건 들어봤을)은 자신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Message)다"라고 정의한다. 이는 곧 모든 매체(미디어)는 인간이 지닌 감각의 물리적·심리적 확장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맥루한에게 있어서 책은 눈의 확장,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었고, 옷은 피부의 확장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맥루한은 '매체(미디어)'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으로 정의한다. 감각기관의 확장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각 매체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소위 말하는 인간의 확장론으로서의 시각이다. 동시에 이용자의 참여도가 낮은 매체를 '핫 미디어'로, 높은 매체를 '쿨 미디어'로 구분했다.

이후 맥루한은 매체가 가진 감각의 확장을 인간의 기능과 인식을 대체·확장할 수 있는 개념으로 봤다. TV와 같은 매체들은 메시지의 전달은 물론, 시각과 청각을 다방면으로 사용하며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맥루한은 이를 보여 미디어를 '마사지'에 비유한다. 미디어와의 접촉으로 인간의 감각이 복합적으로 자극되고 확장되는 것은 곧, 매체가 사용자를 '주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들은 인쇄매체에서 텔레비전 시대로 넘어가는, 활자에서 영상으로 주류 매체가 이동하던 1960년대 맥루한이 했던 것들이다. 그는 TV라는 새로운 매체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으며, 새로이 등장하는 매체들이 우리 삶의 인식과 구조를 바꿀 것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예견했다.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매체의 등장. 그리고 변화의 예상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이었다.

그의 시각에 기반을 두자면, 몇 년 전부터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인터렉티브 드라마'라는 장르도 우리에게 유사한 충격을 안긴다. 영화와 비슷하거나 때로는 더 나은 CG(또는 실사 영상), 플레이어의 조작보다는 선택을 통해 이끌어나가는 스토리텔링 등은 호불호는 크게 갈리는 요소긴 하다. 기술이 발전하며 새로운 형태의 게임임을 알렸고, 동시에 새로운 방식의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했다.



▲ 관련 장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던 '허 스토리'

그럼 이제 인터렉티브 드라마이자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연장선에서 퀀틱 드림의 최신작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바라보자. 이 게임도 만만치 않다. 길고 길었던 제작 기간, 그리고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는 스토리. 여기에 능동적인 조작보다 수동적인 감상에 비중을 두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조작 중심의 게임, 하는 게임'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비컴 휴먼에서 플레이어는 한정된 기회 속에서만 능동적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선택에 따른 결과를 지켜보는 수동적인 위치에 머무른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건 선택까지 이르는 과정이다. 이후 플레이어는 게임이 전하는 메시지를 수용하기만 하는 위치가 된다. '하는 것' 보다는 '보는 것'이 주가 되는 셈이다.

수용자의 참여가 높은, '쿨 미디어'의 정점인 게임이라는 매체임에도 영화와 같이 메시지를 수용만 하는 '핫 미디어'의 특징이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통해 '비컴 휴먼'은 우리에게 아래와 같은 물음을 남긴다.

"이건 '쿨'한 게임인가. 아니면 '핫'한 영화인가? 둘 다 속한다면 새로운 무언가로 정의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게임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 이 게임이 우리를 '주무르는' 방법

게임도 영화도 아닌.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는 '인터렉티브 드라마'라는 장르는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를 주무른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세 명의 안드로이드의 시각에서 게임을 풀어나간다. 상황을 주고, 선택을 위한 단서를 수집하며, 단서들로 최종적인 선택에 나서는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액션이나 전투보다는 게임 속에서 할 수 있는 선택에 무게가 실리고 선택에 따른 결과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개념이 조금씩 달라진다. 비컴 휴먼에서 우리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감독 또는 관객에 가깝기 때문이다.

'비컴 휴먼'에서 캐릭터의 조작은 한정된 기회로만 주어지며, 게임 플레이의 대부분을 컷신 감상에 소비한다. 영상을 감상하고 보는 수동적인 과정과 능동적인 관계가 혼재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플레이하는 게임과는 다른 비중을 보인다. 상반된 개념들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므로, 장르적으로는 미지근한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 이야기의 흐름을 지켜보는 입장으로 남는다.

결국, 영상이라는 요소를 게임과 접목하면서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하나다. 플레이라는 능동적인 요소와 영상이라는 수동적인 요소 사이의 '비중'이다.

영화적인 요소와 게임을 접목할 때, 게임 플레이와 영화 요소의 비중을 맞추는 것은 민감하고 어려운 일이다. 영상과 플레이 간의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실패의 쓴맛을 겪은 게임들은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 출시한 '디오더 1886'이다.

'디오더 1886'은 영상 혹은 영화라는 기준에 너무도 치중하여, 게임 측면의 비중은 한없이 낮아졌다. 뛰어난 그래픽과 연기, 모션캡쳐를 보여줬음에도 판정이 빡빡한 QTE로 점칠된 플레이는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한없이 떨어뜨렸다. 게임으로 보기에는 영화에 게임을 살짝 가미한 수준이었고, 영화라고 보기에는 스토리텔링 면에서 좋은 평가를 하기가 어려웠다. 비능동적인 매체와 능동적인 매체를 섞으려는 시도는 비중에서부터 실패하며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 술에 물 타듯이 영화에 게임을 타려다 실패한 케이스.

비컴 휴먼은 이 영상 매체와 게임 간의 비중이라는 문제를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로 해결한다. 플레이어가 능동적일 수 있는 구간에서 만들어낸 결과가 수동적인 구간의 선택지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도달하지 못했거나, 해결할 수 없었던 선택지들이 있음을 챕터가 종료될 때 보여줌으로써, 아직 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음을 강조한다.

때문에 게임을 진행하면서 여러 단서를 최대한 많이 모아둘 필요성이 있다. 게임 특성상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잡지나 TV 등을 통해서만 획득하는 세계관과 지식들. 그리고 이후 선택지와 결과물에 영향을 주는 단서들이 곳곳에 있다. 좁은 곳에서 다양하게 탐색하지 못하면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직접 조작이 가능한 파트는 짧고 제한되어 있음에도 능동적이고 밀도 있게 진행된다.



▲ 단순히 배경지식만 전하던 TV 방송은 때때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조작 파트에서 모은 단서들은 이후 이야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잠겨있던 선택지가 개방되며, 최후반부의 극적인 상황에서 돌파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모든 단서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는 셈이다. 등장인물이 사망해도 게임오버 없이 진행되므로, 때로는 인물들을 살리기 위해 조작 파트에 집중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기에 퀀틱 드림이 고집하고 있는 영상파트의 조작이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든다. 단순히 타이밍에 맞춰서 버튼입력을 마치면 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불호는 많이 갈리겠지만, 듀얼쇼크를 위로 들어 올리거나 옆으로 기울이는 조작들은 게임 외부에 있는 우리에게 몰입감을 제공한다.

물을 서빙하며 패드를 옆으로 기울이거나 책을 볼 때 터치와 슬라이드를 이용하는 것들이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캐릭터의 모션과 직관적으로 연결되기에 조금 더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단순히 게임 패드의 버튼과 아날로그 스틱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션까지 활용함으로써 조작하는 우리의 감각은 확장된다.



▲ 게임 속 등장인물의 행동과 비슷해서 몰입할 수 있는 조작들이다.

서로 다른 세 명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점도 우리를 주무르는 방법의 하나다. 비컴 휴먼 속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은 서로 다른 시각과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간다. 세 안드로이드가 얽혀가는 이야기와는 별개로 다양한 플레이 방법을 게임 속에 구현한다.

마커스 파트는 QTE가 등장하는 액션 파트의 비중이 높다. 그리고 코너 파트에서는 무언가를 탐색하고 추적하며, 추리하는 수사 파트가. 앨리스와 함께 행동하는 카라 파트에서는 잠입 또는 은신을 통한 플레이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마다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다르므로, 다양한 방법을 오가며 플레이하도록 구성해 뒀다.



▲ 취향에 따라서 좋아하는 캐릭터와 플레이 방식도 갈릴 듯 싶다.

등장인물이 사망하더라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행된다는 퀀틱 드림의 기조는 비컴 휴먼에서 보다 완성된 형태로 설계된다. 세 명의 등장인물이 각자 이야기를 그리게 되지만, 서로 갈등이 일어나는 시점이나 다시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마커스가 행동한(우리가 선택한) 결과들이 방송과 언론을 통해 노출되며, 이러한 결과물은 다시 코너와 카라가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캐릭터가 사망하더라도 나머지 주인공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은 다양하며, 때로는 사망 여부에 따라서 수많은 분기를 제공한다.

게임 오버를 경험해도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특징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계속해서 접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동적으로 보거나 듣는 때가 많더라도, 선택할 거리를 계속해서 던진다. 선택을 통해서 플레이어는 작든 크든 간에 게임 속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 플레이 자체는 능동적이지 않으나, 선택의 결과는 능동적이다.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가지는 메시지

비컴 휴먼이 갖는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은 전작의 발전형이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고, 다양한 분기와 시나리오를 준비했으며, 세 주인공을 앞세워 다양한 방식의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렇다면 카라, 코너, 마커스 세 명의 주인공이 맞물리는 이야기는 어떨까.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SF치고 허술한 설정과 고찰을 보인다. 소재인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갈등 등은 이미 영화와 만화 등에서 몇 번이고 보여줬던 것이기도 하다. HBO의 드라마 '웨스트월드'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같이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를 고민하고 고찰하는 장면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이는 개발사가 이미 안드로이드가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음을 전제로 게임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게임을 플레이해 본다면, 이미 클리셰로 사용되는 소재들은 당연히 되는 것으로 가정하고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게임의 초반부터 안드로이드는 과거 흑인들과 같이 노예제도로 억압받는 민중을 상징한다. 그리고 굉장히 노골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버스의 후방에 안드로이드 전용 칸이 있다던가, 가사와 육체노동 전반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해오던 거의 모든 일을 대체한다.



▲ 흑인 인권 운동 이전의 모습이 생각났다면? 정답.

'안드로이드가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다'를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라는 키워드보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특히, 갈등과 극단이 극적으로 치닫는 후반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부 장면은 치트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노골적일 정도로 개발사의 의도가 드러났고, 정답을 딱 정해놨다.

실업률이 37.4%에 이르고, 산업과 서비스 전반을 안드로이드가 대체한 디트로이트에서 인간들은 대부분 폭력적이고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지배는 하되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인간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소수에 그친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인간 측을 부정적으로 그리면서, 플레이어의 다각적인 생각보다는 주인공인 안드로이드의 시선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레일을 깔아뒀다.

즉, 개발사인 퀀틱 드림은 인간보다는 안드로이드, 억압받는 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선택과 결과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기계와 인간, 권력과 억압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다만, 최종 엔딩까지 오는 과정과 결과는 유저의 선택이 좌우한다는 점이 개발사의 노골적인 의도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카라가 가족애를, 코너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우정을, 마커스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갈등을 키워드로 삼지만, 유저의 선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공감하고 선택할 수 있다.

선택에 따라서 살기 위해 가족을 버리는 비정한 안드로이드가 될 수도 있고, 임무가 최우선인 안드로이드 수사관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혁명에 실패해 살해당하는 지도자로 시나리오를 마무리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 내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으며, 등장인물이 사망하더라도 나머지 인물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행된다. 챕터마다 등장하는 플로우 차트의 복잡함은 그만큼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다만, 1회차에는 플로우 차트를 통한 재시작을 막았을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들의 생사가 긴장감을 자아내는 요소인 만큼, 선택을 되돌릴 기회를 제한하여 무조건 1회차 엔딩을 보게 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선택을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은 게임 속 이야기의 긴장감을 희석하기 때문이다.



▲ 끝에 보여주는 것은 좋은데, 1회차 한정으로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먼 미래가 아닌, 20년 후 근미래를 배경으로 퀀틱 드림은 '억압과 해방'이라는 소재를 던진다.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자신들의 선택을 통해 어떻게 인식이 변화했는지를 묻는다. 게임 플레이 도중 메인 메뉴로 돌아가면 나오는 설문조사나, 게임 플레이 도중 선택에 따라 클로이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설문조사이기에 의도를 놓치고 지나갈 수 있다. 한편으로는 게임 평가와 같이 일부 방향성을 조사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설문조사까지 게임 플레이의 하나로 본다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플레이 도중 우리의 인식을 파악하고 더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의미가 있는 설문조사다.

그리고 게임의 엔딩을 본 직후, 플레이어에게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실제로 게임이 우리의 패턴과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말이다.

그렇기에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한의 말은 비컴 휴먼에서도 적용된다. 스토리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본질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변화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인터렉티브 드라마이자 어드벤처라는 장르에서 선택 그리고 결과라는 특징은 몰입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작과 몰입을 통해 스토리가 담아낸 것 이상으로 이를 지켜본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 그리고 최후의 최후에 클로이를 통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크다.



■ 우리는 무엇을 게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결국, '무엇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게임이 소설에 가까워져도, 영화에 한없이 가까워져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 게임 플레이를 이끌어나가는 근본적인 요소, 능동적인 선택에서 오는 결과다.

게임의 정의를 묻는 말에, 비컴 휴먼은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형태로 답을 내린다. 앞서 말한 게임 플레이의 비중을 조절할 때, 플레이어의 '선택'을 통해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게임 초반의 의미가 없는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후반부에서 맞물리는 과정은 선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세 명의 주인공들이 내린 선택이 대립하고 최종 챕터에서 완결되는 과정도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판단한 게임의 정체성은 '선택' 이었다.

능동적일 수 있는 부분은 밀도 있게, 수동적인 부분에서는 감각을 확장하는 형태는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의 특징으로 남긴다. 정보량이 적은 부분은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정보를 채운다. 찾아낸 정보들은 시각과 청각, QTE라는 조작을 통해서 빠르고 강렬하게 전달한다.

차갑게. 한편으로는 뜨겁게. 이는 곧 인터렉티브 드라마라는 뜨뜨 미지근한 매체적 특성이 극에 이르는 과정을 대표한다. 그리고 선택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비컴 휴먼은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담을 수 있는 메시지에 대한 새로운 시도라고 본다.



▲ 정적인 조작 파트는 QTE와 영상파트의 기반이 된다.

적어도 퀀틱 드림은 장르 자체의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게임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게임의 기본 틀에, 영화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민하게 하고자 했다. 그리고 다양한 조작 방법과 연출, 높은 몰입감으로 접촉하며 플레이어를 계속해서 주무른다.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가족, 동료, 대의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동시에 플레이어는 관객의 시선에서, 감독의 시선에서, 주인공의 시선에서 2038년의 디트로이트를 바라본다. 이어서 인간성과 제도에 대한 자신 나름의 결론을 내리며, 최종적으로 자기 생각을 물어보는 개발사의 질문에 답한다. 선택과 결과에 따라 게임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달라졌다. 동시에 엔딩까지 이야기를 함께한 플레이어의 시각도 변화한다.



▲ 플레이어의 변화를 고려하면, 2038년의 근 미래인 이유는 명확해진다.

게임이라는 매체적 성격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속에 담아낸 담론과 메시지는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비컴 휴먼은 우리가 알던 게임의 틀을 벗어났음에도 플레이할 가치가 있다.

미지근하면 어떻고, 주물러지면 어떠한가. 때로는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비컴 휴먼과 같은 시도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시도만으로도 게임이라는 매체의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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