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블 게임화의 성공적 신호탄, '스파이더맨'

리뷰 | 윤홍만 기자 | 댓글: 17개 |

처음 '스파이더맨'이 개발 중이란 소식을 들었을 땐 그저 시큰둥했다. 그렇잖은가. 지금까지 마블이나 DC 등 유명 히어로 IP를 사용해 만든 게임 대부분은 영화의 유명세를 이용하려고 만든 것들이었다. 시스템은 구식이었고 퀄리티 역시 조악했다. 그렇기에 대부분 변변찮은 성적을 낼 수밖에 없었고 이게 반복되자 히어로 IP를 이용한 게임은 재미없다는 선입견만 생기게 됐다.

물론 모든 히어로 게임들이 영화의 유명세에 편승한 건 아니다. 락스테디가 개발한 아캄시리즈의 경우 '다크 나이트'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음에도 독자 노선을 추구, 자신들만의 배트맨을 구축했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최고의 히어로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결국 게임의 핵심은 재미다. 아마, 인섬니악 게임즈도 '스파이더맨'을 개발하면서 이 점에 주목한 것 같다. 원작의 향취를 유지하되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살린 걸 말이다. 그 덕분일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스파이더맨'을 하면서 시종일관 미소가 지어졌다.

스파이더맨의 상징과도 같은 웹 스윙부터 아크로바틱 액션, 심지어는 촐싹거리는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곳이 없을 정도. '이 정도라면 히어로 IP로 더 많은 게임이 나와도 되겠는데?'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랐다. 아이언맨이 마블 영화의 시작을 알린 것처럼, '스파이더맨'이 마블 게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무엇이 '스파이더맨'을 정의하는가
팬들이 기대한 스파이더맨의 모든 걸 담았다




스파이더맨을 정의하는 요소는 뭘까. 거미줄 무늬의 슈트, 웹 슈터, 웹 스윙, 아크로바틱 액션, 그리고 시종일관 수다를 멈추지 않는 촐싹대는 모습 등을 들 수 있다. 코믹스로 여러 시리즈가 나왔고 영화로도 2번의 리부트를 거쳤음에도 이런 특징은 항상 유지됐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가 가진 고유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는 '스파이더맨'을 만들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면서도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요소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인섬니악 게임즈는 이런 고유의 특징을 훌륭하게 게임에 담아냈다. 우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웹 스윙의 경우 인섬니악 게임즈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사실 웹 스윙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동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웹 스윙을 폄하해선 곤란하다. 뉴욕을 누비며 시민들의 고충을 해결하고 온갖 범죄자들을 붙잡는 게 스파이더맨의 일 아닌가. 이동을 책임지기에 게임을 하면서 상당 시간은 웹 스윙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게임 시스템적으로도 스파이더맨 고유의 특징으로도 중요한 요소다.

물론 웹 스윙이란 게 스파이더맨의 상징과도 같은 요소다 보니 '이건 당연히 잘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고유한 특징을 살리지 못해 실패한 게임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런 면에서 빌딩 숲을 누비는 '스파이더맨'의 웹 스윙은 잘 만드는 걸 넘어섰다. 마천루를 누빌 때는 일종의 해방감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였다.



▲ 간단한 조작, 뛰어난 연출, 속도감 팬들이 원한 웹 스윙을 고스란히 구현했다

잘 살려낸 건 웹 스윙뿐만이 아니다. 전투를 비롯한 스파이더맨을 상징하는 아크로바틱 액션 역시 훌륭하게 살려냈다. '스파이더맨'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아캄시리즈에서 선보인 바 있는 프리플로우 액션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투를 연출할 뿐 아니라 실력만 좋다면 수십 명의 적을 상대로도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할 수 있다.

다만 웹 스윙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투에서의 선택지 폭이 넓다고 해야 할까. 공격과 회피 외에도 웹 슈터 발사, 거미줄을 이용한 전투, 주변 환경을 이용한 전투 등 다양한 전투를 선보이는데 조건들이 다양하다 보니 손이 꼬이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여기에 스킬이 해금될 때마다 커맨드가 추가되는 것 역시 문제다. 필연적으로 동시 입력 스킬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수십 명의 적을 상대로 정신없이 전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선 원하는 스킬을 쓴다는 건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여기에 적 타입별로 공략법이 다른 만큼, 이런 문제는 자칫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명확한 단점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손가락은 물론 눈도 즐거운 액션을 펼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스파이더맨'의 전투가 어렵다는 건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어디까지나 초반에 주어진 커맨드가 많기에 발생하는 문제로, 조금만 더 플레이하다 보면 그 어떤 히어로 부럽지 않은 액션을 보여준다. 특히, 웹 슈터를 이용해 지상과 공중을 넘나들며 펼치는 액션만큼은 어지간한 게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짜릿함을 안겨준다.

이러한 웹 스윙과 전투 외에도 시종일관 수다를 멈추지 않는 스파이더맨의 모습 역시 게임 속에 절묘하게 녹아들었다. 사이드 퀘스트 수행 중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동 중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이나 메인 빌런 중 하나인 쇼커와 대치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통해 '그래, 이게 바로 진짜 스파이더맨이지'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 아마 게임 내 대사의 50% 이상은 스파이더맨 차지 아닐까?


스파이더맨으로서의 나인가, 피터 파커로서의 나인가
23살, 8년 차 히어로의 고민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는 그가 인간적이기 때문임을 들 수 있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히어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경우 그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히어로로 표현된다. 얼핏 완벽해 보이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좋아하지만 반대로 완벽하기에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다르다. 시리즈별로 나이가 조금씩 달라질지언정 대부분 10대에서 20대의 청년으로 그려진다. 아직 인격적으로 완벽히 성장하지 않은 나이이기에 실수도 하고 고뇌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인간미 넘치는 히어로를 사랑한다.

'스파이더맨'에서도 이런 고뇌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3살에 8년 차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은 누구나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피터 파커로서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선망하던 옥타비우스 박사의 조수로 일하지만, 매달 월세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 뉴욕에서의 권력 구도는 집주인 > 스파이더맨 > 빌런인가보다

여기에 메인 빌런인 '미스터 네거티브' 마틴 리 역시 스파이더맨의 고뇌를 부채질하는 존재다. 마틴 리는 표면상으로는 뉴욕시 전역에 무료 봉사소를 열어 노숙자를 도와주는 사회 활동을 한다. 메이 숙모 역시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마틴 리의 정체가 스파이더맨이 쫓는 빌런 '미스터 네거티브'이니, 스파이더맨으로서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고뇌는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점차 심화된다. '킹핀' 윌슨 피스크가 체포 당시 "한 달도 안 돼 날 그리워할 거다!"라고 호언장담한 데로 새로운 빌런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면서 커져가는 범죄 활동에 스파이더맨은 히어로로서의 자신과 피터 파커로서의 자신을 저울질하게 된다.

다만 이런 피터 파커의 어려움, 스파이더맨으로서의 고뇌가 계속되진 않는다. 피터 파커로서의 삶은 팍팍하고 어려움이 느껴지지만,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나면 고뇌하는 한편 겉으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재치 넘치는 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의 완급 조절을 훌륭히 해냈다.

아울러 경찰과 공조한다는 점 역시 스파이더맨에게는 큰 힘이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리즈가 있었지만 스파이더맨은 대부분 경찰의 골칫덩어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에서는 다르다. 무려 8년 차 베테랑 히어로로 이미 수차례 경찰과의 면식을 가졌기에 함께 협력해 범죄자를 소탕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스파이더맨은 혼자이고 고뇌하는 히어로지만 고독하지는 않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고뇌하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게임 내적으로 스파이더맨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게이머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히어로로 만들어준다.



▲ 8년 차 히어로답게 이제는 경찰과도 공조하는 사이


풍부한 즐길 거리? '완벽'하진 않다
매력적인 메인 스토리, 미흡한 사이드 퀘스트

스파이더맨이라는 걸출한 히어로 IP에 원작의 향취를 유지하면서도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살린 '스파이더맨'이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뛰어난 액션과 연출, 진행할수록 점점 더 빠져드는 매력적인 메인 스토리가 돋보이기 때문일까. 장점이 명확한 만큼 단점 역시 명확한데 즐길 거리가 풍부한 데 반해 정작 즐길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할 게 많은 데 할만한 게 없다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맵을 밝히는 통신 안테나부터 시작해 배낭 수집, 랜드마크 촬영, 연구 시설 개방 등 할 건 많지만 정작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 미션 클리어 100%를 추구한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면 슈트를 만들거나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때 필요한 토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요소로 다가온다.

여기에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추가되는 콘텐츠 대다수가 단순 수집 요소에 가까운 점 역시 마이너스 요소다. 처음에 했던 수집 콘텐츠가 계속 이어진다는 건 예상 이상으로 플레이어에게 피로감을 가져다가 준다.



▲ 100%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수집 콘텐츠 외에도 단조로운 사이드 퀘스트 역시 '스파이더맨'의 장점을 반감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메인 스토리를 보여주는 만큼, 사이드 퀘스트까지 방대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걸 고려해서 대다수의 사이드 퀘스트가 단조로운 편이다.

기본적으로 시민에게 뭔가를 제보, 의뢰를 받아서 그걸 스파이더맨이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본편과는 전혀 엮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이드 퀘스트라고 할 수도 있으나 워낙에 많은 빌런이 존재하지 않나. 메인 스토리 외적으로 빌런들을 표현하기에 사이드 퀘스트만 한 게 없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를 살리지 못한 건 아쉽기 그지없다.



▲ 메인 스토리에 비해 사이드 퀘스트는 상당히 단조로운 편이다

결국, 이러한 점들이 맞물려 '스파이더맨'에서의 메인 스토리 외 콘텐츠들은 전반적으로 시간 때우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사이드 퀘스트나 수집 콘텐츠들이 애초에 그런 성격을 가진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게임들은 그럼에도 단순한 시간 때우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메인 스토리와는 별개의 또 다른 이야기를 그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친절한 이웃'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파이더맨인 만큼, 빌런들이 활개를 치는 메인 스토리 외적으로 시민들의 고충이나 단순 제보에 집중코자 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에 이은 마블의 게임 프랜차이즈 가능성이 보였다
'스파이더맨'에게는 작은 발걸음, 마블에게는 위대한 도약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말해서 '스파이더맨'이 상당히 잘 만든 게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스파이더맨 및 히어로 IP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 만하고 팬이라면 100% 만족할만한 게임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스파이더맨'은 큰 IP이기에 큰 기대치가 따랐다. 하지만 자신의 책무에서 등 돌리지 않았던 스파이더맨처럼, 그 기대치를 훌륭히 충족시켰다. 이러한 '스파이더맨'의 행보는 단순히 게임 하나의 성공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단순히 잘 만든 걸 넘어서 마블의 게임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게는 히어로 IP 게임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크게는 마블 IP 게임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값진 성과를 낸 '스파이더맨'이다. 과연 앞으로 '스파이더맨'은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 정식 출시한 지 이제 4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후속작이 기다려지는 게임은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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