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카드게임인데 디아블로같네?

리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9개 |

MMORPG와 만나 친숙해진 매직... 그런데 전략은 어딨어?


세계 최초의 TCG로 알려진 '매직 더 개더링(이하 매직)'은 오랜 역사를 기반으로 세계 규모의 두터운 팬층과 명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명성 탓인지 카드 게임을 즐겨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특유의 '진입 장벽'을 갖고 있다.

그간 매직은 '간소화 룰',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매직'을 중점으로 삼으며 모바일 기기 쪽으로 활로를 이어가려 했다. 다만 카드 게임 자체가 다수가 즐기는 메이저 장르가 아니다보니, 하나같이 쏠쏠한 성과로는 이어지지는 못한 모양새다. 국내 게임시장에도 매직의 유명세를 뒤에 업은 여러 파생작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미 눈에 익을 만큼 익숙해져 버린 기존 카드 게임 강자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하나둘 잊혀져갔다.

그런 매직이 이번엔 '액션 MMORPG'라는, 누구나 인정하는 메이저 장르와 결합했다. 아직 테스트 단계라고는 하지만, 첫 번째 아이디어 구상이 공개된 지난 2016년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대부분의 시스템 특징은 완성된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평소 카드 게임을 선호한다고 자부해온 한 명의 카드 게이머로서, 매직 IP에 MMORPG를 버무린 신작이 어떤 맛일지 직접 시식해봤다.



게임명 : 매직 레전드 (Magic: Legends)
장르명 : MMORPG
출시일 : 2021. 03. 23. (OBT)
개발사 : 크립틱 스튜디오 (Cryptic Studios)
서비스 : 아크게임즈
플랫폼 : PC, PS4, XBOX ONE



카드 게임을 '디아블로'처럼 한다고?


매직 레전드는 유저가 한 명의 플레인즈워커가 되어 덱빌딩의 재미와 속도감있는 전투를 맛볼 수 있는 액션 RPG다. 국산 MMORPG의 단골 콘텐츠인 세밀한 커스터마이징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클래스와 성별, 체형,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머리스타일까지 선택할 수 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매직 특유의 다섯 가지 색상 마나에 각각 대응하는 다섯 클래스로 나뉘었다. 대지와 용암의 힘을 활용하는 적색 마나의 '지오맨서', 초능력과 수둔계의 청색 마나 '마인드 메이지', 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부리는 녹색 마나의 '비스트콜러', 성직자 개념의 백색 마나의 '생트파이어', 그리고 흑색 마나의 '네크로맨서'까지 다섯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카드' 형태로 꾸며진 스킬 시스템이다. 전투를 거듭하며 새롭게 습득하는 모든 스킬들이 '카드' 형태로 이루어져있고, TCG 속 그것처럼 각각의 카드는 저마다의 독특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미션 보상도 카드로 제공되는데, 매번 카드 팩을 까는 것 같은 재미를 담아보려한 개발자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다.



▲ 미션 보상 화면, 새로운 카드팩을 열어보는 기분이다

매직 레전드가 독특한 점은 스킬을 카드 형태로 꾸민 것이 단순한 겉치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유하고 있는 스킬 카드로 덱을 짜고, 덱에 짜둔 스킬들이 랜덤하게 '손패'로 들어오면, 가지고 있는 마나를 사용하여 '스킬' 카드를 꺼내 스킬을 발동한다. 스킬 버튼을 눌러 적용 범위를 정하고, 버튼을 놓아 사용하는 일련의 행위조차도 '카드를 선택해 보드에 내려놓는 것' 같은 느낌에 대입되어 마치 카드 게임을 하는 듯한 손맛이 느껴진다.

캐릭터의 레벨이 올라가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도 더 많아지고, 덱의 최대 한도보다 보유 카드 수가 더 많아지게 되면 덱에 포함시킬 카드를 직접 선별하는 '덱 빌딩' 과정이 요구된다. 무조건 높은 코스트의 희귀 카드만 욱여넣는다고 강한 덱이 되는 것이 아니듯, 한정된 마나를 활용하여 효율적인 전투를 펼칠 수 있도록 코스트를 배분하여 덱을 구성해야 한다. 카드 게임인 '매직'을 MMORPG에 섞어 넣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 각각 코스트가 다른 손패의 스킬 카드를 하나씩 꺼내는 방식



▲ '라이브러리' 탭에서 보유한 카드를 보고, 덱을 구성할 수 있다

RPG 장르에 카드 덱 시스템을 차용하면서, 오히려 카드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의외의 매력도 생겼다. 바로 머리 아파지는 복잡한 카드 설명을 읽을 필요 없이,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직관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물 카드로 플레이하는 오프라인 카드 게임 정도는 아니더라도, 카드 게임 장르 특성상 카드의 성능 등 대부분의 정보가 담겨있는 '텍스트'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매직 레전드 속 스킬 카드에도 효과를 설명하는 빼곡한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설명들을 눈이 빠지게 읽지 않아도, 스킬을 활용하고 전투를 진행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카드 스킬을 한번 써보기만 해도 적을 밀어내는 카드인지, 골렘을 소환하는 카드인지, 큰 대미지를 가할 수 있는 카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카드에 써진 글자를 읽으며 고리타분하게 즐기는 게임'이라는 인식 때문에 카드 게임을 싫어하는 유저들도 아무런 부담 없이 편하게 매직을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매직'을 쫓다 놓쳐버린 전략의 재미




카드 설명을 세세하게 읽지 않아도 쉽게 룰을 배우고 즐길 수 있게 되어 '카드 게임에 익숙치 않은' 유저들까지 매직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분명히 장점이지만,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카드의 설명을 읽지 않아도 쉽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별다른 전략을 고민하거나 머리를 쓰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단순한 게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매직 레전드에는 총 175개 이상의 강력한 마나 기반 주문들이 등장한다. 카드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하면 그만큼 색다른 덱과 운용 전략을 떠올리는 재미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매직 레전드에서는 단순히 '이펙트가 화려한 공격 카드가 더 다양해지겠구나' 정도의 인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실제로 마인드 메이지 클래스의 플레인즈워커를 육성하면서 새롭게 얻는 스킬 카드들 역시 외형이 다른 소환수를 하나둘 더 소환하여, 전투에서 더 큰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정도에 그쳤다.



▲ 새 스킬 카드를 얻어도 대부분 "DPS가 조금 오르겠구나" 정도의 감흥에 그친다

앞서 언급했던 '코스트별 스킬 카드를 골라 사용하는 카드 게임 요소'도 결국은 전략적인 맛을 살렸다기보다, 기존의 동 장르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시스템' 정도에 그치게 됐다.

아무리 코스트를 계산하여 전략적으로 덱을 구성했다 하더라도, 빠르게 적을 제거하는 것이 제1 목표이다 보니, 실제 게임 플레이는 당장 손에 들린 스킬을 무작정 사용하는 식이 됐다. 멀티 플레이에서 다른 유저들과 함께 전투를 진행하더라도, 보유하고 있는 카드를 계속 쏟아내 밀려오는 적군들을 더 빨리 녹여내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길게는 10분 이상도 이어지는 멀티 미션 속에서 전략적인 스킬 카드와 마나 운용의 재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MMORPG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의 MMORPG 역시 '더 좋은 장비를 파밍하여 그 누구보다도 더 강해지는 것'을 최종 목표로 두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매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에, 그리고 어떻게든 원작의 카드 게임 느낌을 살려보려 한 요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매직 레전드'에서 매력적인 부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OBT에 한정될 수 있지만, 과금 요소가 굉장히 가볍다는 점은 이 게임의 장점 중 하나다. 매직 레전드에서는 스테이지를 클리할 때마다 얻는 보상인 '에테르'로 유료 재화인 '젠'을 구매할 수 있다. 게임 내 유료 재화는 '젠'뿐이며, 젠을 모으면 추가 결제 없이도 배틀 패스나 캐릭터 세트 등, 게임 내에 존재하는 유료 아이템을 모두 구매할 수 있다.

또 스타터 클래스 중 하나인 '지오맨서'와 '비스트콜러'의 호쾌한 근접 타격과 스킬 연출은 액션 RPG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니, 디아블로 스타일의 무료 온라인 액션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매직 레전드의 무료 OBT를 경험해보길 바란다.

다만 비장의 수로 감춰두었던 함정 카드나 마법 카드 하나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전략을 활용한 '일발 역전의 재미'는 이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매직 레전드는 액션 기반의 'MMORPG'니까 말이다. 카드 게임으로서의 '매직'에 입문해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매직: 더 개더링 아레나 모바일' 같은 여러 대안이 있으니, 이쪽을 눈여겨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치 카드 게임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독특한 스킬 시스템도 활용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단 네 개의 키로 수십 종에 달하는 강력한 스킬들을 고루 활용해볼 수 있으니, 버튼 할당이 키보드에 비해 자유롭지 않은 콘솔 플레이에서 더욱 진가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장 아쉬운 부분은 당장 한국어화 예정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 게임사에서 개발한 매직 IP 기반 모바일 게임도 부진 끝에 서비스 종료를 결정하고 있는 마당에, 매직 레전드의 한국어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RPG에서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여의치 않으면 그만큼 애정도 생기지 않으니, 이점은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 된다.

다만, 과거 '패스 오브 엑자일'이 보여주었던 선례처럼, 압도적인 게임성으로 충분한 유저풀을 마련한다면 한국어화도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오는 2021년 하반기에 정식 출시될 예정인 매직 레전드가 국내 유저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앞으로를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 TCG+MMORPG 기반의 독특한 스킬들
  • 클래스 별 차이가 분명해 눈이 즐겁다
  • 유료 재화를 퍼주는 BM
  • '매직' 특유의 전략적 재미 결여
  • 다소 아쉬운 최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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