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컬쳐] 뻔하지만 확실한 마블 흥행 공식, 女히어로 '캡틴 마블'서도 빛났다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25개 |



* 리뷰에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20편 이상을 제작하며 영화 안에 자신들만의 세계를 확고히 갖춰나간 마블. 마블이 어벤져스 마지막 장을 앞두고 개봉하는 21번째 슈퍼 히어로 영화에 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누군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최초의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로 남성 중심의 마블 히어로물이 되길 기대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코믹스 속 능력이 거듭 약화된 히어로들 사이에서 원작의 강력함을 고스란히 가져온 새로운 히어로가 타노스를 막지 못한 어벤져스를 구원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는 팬들의 기대처럼 마블 영화 속 세계의 '게임 체인저(일의 결과나 흐름을 뒤바꿔 놓을 만한 인물이나 사건)'가 될 수 있을까?

타노스가 튕긴 손가락 한 번에 생명체 절반이 재가 되어 사라진 우주. 재가 되기 전 닉 퓨리(새무얼 L. 잭슨)가 어머니를 불러 외치며 호출한 히어로이자 어벤져스의 희망이라 불리는 최강의 히어로 '캡틴 마블'이 3월 6일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 효자 퓨리가 찾던 그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은 전작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나 '앤트맨과 와스프'의 미래가 아닌 1995년을 배경으로 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빙하 속에 잠들어있고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의 슈트조차 생각하지 않던 때. 이야기는 이 시기 외계 종족 크리의 전사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가 전쟁 중이던 스크럴족에게 잡혀 무의식 속 기억의 파편을 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그간 마블의 슈퍼 히어로 데뷔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비틀기를 시도한다. 히어로 무비라면 으레 거쳐야 할 탄생과 그 이유를 과감히 뺐다. 국가를 향한 애정으로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참여한 캡틴 아메리카나 큰 사고를 겪고 떨리는 손을 고치기 위해 카마르 타지를 찾는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성장의 과정이 없이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틀기는 원작의 재해석이라는 관점에서도 꽤 흥미롭다. 마블 코믹스의 캐럴은 크리의 슈퍼히어로 마-벨이 욘록과 펼치던 전투 중 발생한 폭발에 휘말려 마-벨의 유전자를 덮어쓰고 영웅 미즈 마블로 재탄생한다. 첫 등장 시에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미즈 마블을 거쳐 캡틴 마블이 되기까지의 시간도 오래 걸렸음을 떠올린다면 불완전한 강력함을 처음부터 지닌 캐럴의 재해석은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지구에 불시착한 캐럴이 쉴드의 요원인 닉 퓨리를 만나 잃어버린 기억을 되짚어나가며 잠시나마 시도했던 뒤틀기는 힘을 잃는다. 방식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진짜 적을 깨닫고 캡틴 마블의 진정한 힘을 얻는 과정은 그간 마블 영화가 그려냈던 성장일기 그대로다.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해 상관에게 핀잔받는 크리 전사 비어스가 인간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가며 기억을 찾는 과정은 단순히 사건의 나열로 이뤄지지 않는다. 감독은 그의 과거를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와 회상 장면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하나하나 반응하고 조금씩 변화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주인공에 몰입하게 했다.

이러한 감정선의 이동은 동료 마리아 램보(러샤니 린치)와의 인연을 그려낸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영화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마리아의 딸이 기억하는 캐럴의 이야기, 그리고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추억을 되돌려보도록 했다. 그리고 세세한 표정 변화와 교차하는 과거의 기억으로 관객이 캐럴에 대해 함께 알아가도록 했다. 기억을 잃은 캐럴과 서로 똑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인지하며 관객은 그에게 이입된다. 마블 영화가 캐릭터를 풀어내는 방법이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 것이다.

이러한 감정 이입은 캐럴에 대한 억압과 캡틴 마블의 각성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캐럴의 기억에는 그가 여자라는 이유로 레이싱 카트를 못 타게 하는 아버지나 '여자는 비행기 조종사가 될 수 없다'라는 동료 훈련생들의 비아냥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이러한 차별과 무시는 그가 자신의 자아를 찾고 각성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만, 그는 여성으로서 겪은 아픔과 함께 크리의 이방인 차별도 동시에 떠올린다. 즉, 캡틴 마블의 각성은 여성으로서 받아온 차별만이 아니라 부당하게 받아온 억압까지 함께 깨부수는 행위로 그려진다.




"난, 너한테 증명할 게 없어"라는 그의 대사는 결국 감독은 캐럴 댄버스가 슈퍼 히어로로 각성하는 특별한 여성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그러한 점에 기대기만 하지 않는, 진취적인 모두의 히어로로 만들어낸 셈이다.

사실 MCU와 궤를 같이하는 넷플릭스의 마블 드라마 '제시카 존스(크리스틴 리터)'나 '에이전트 오브 쉴드'의 메이(밍나 웬)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상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그간 마블 영화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쉬이 찾아보기 어려웠던 만큼 영화로만 마블을 즐기는 관객이 영웅으로 여길 수 있는 여성 히어로가 제대로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국장이 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능청스럽고 유쾌한 모습의 닉 퓨리와 겹겹이 쌓아 올린 분장과 CG에도 유머와 감동을 함께 전한 스크럴 탈로스(벤 멘델슨) 등 조연들의 연기도 눈여겨볼 내용이다. 신 스틸러인 고양이 구스의 정체와 닉 퓨리와의 캐미도 긴장감을 끌어올린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영화 감상을 돕는다. 가끔 나와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마블식 유머도 여전하고.




아쉬운 점은 '캡틴 마블'이 그간 마블이 보여준 단점마저도 고스란히 따른다는 점이다.

캡틴 마블의 반대편에 선 메인 빌런(악역)은 뻔한 반전으로 힘을 잃는다. 또한, 블랙 팬서의 킬 몽거나 시빌워의 제모 남작이 가지고 있던 확고한 의지나 행동을 뒷받침할만한 연출 없이 적이기에 싸운다는 부실한 동기만을 보여준다. 세세한 감정 연기가 발군인 주드 로를 캐스팅했음에도 이를 싱겁게 소모하는 점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를 연상케 한다.

영화가 자랑하는 화려한 액션을 즐기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점도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스토리 연출 역시 캐럴의 기억마냥 산만해 잠시 한눈 팔면 이 지루함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캐럴이 진짜 힘을 각성한 후에는 화려함은 더해지지만 적의 공격은 물론 적들의 함선까지 제압하며 다소 싱겁게 끝난다는 감상도 지우기 어렵다.




'캡틴 마블'은 주연 브리 라슨의 공식 석상 발언, 한층 멋을 부린 사진과 함께 올린 故 스탠 리 추모글로 개봉 전부터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일각에서는 영화 불매 운동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리 라슨의 발언 중 일부는 틀리지 않았음을 영화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주인공이 되어 앞에 나선 캡틴 마블은 젊은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충분한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지며 우상이 될 새로운 슈퍼 히어로의 등장을 선포한 영화기도 하다.

영화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가는 마지막 작품의 역할도 충실히 했다.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집요하리만치 다른 작품과의 연계점을 집어넣었던 마블식 이스터에그는 많지 않다. 대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등장한 수신기의 존재나 닉 퓨리가 한쪽 눈을 잃은 깜짝 놀랄 이유 등 그간 나왔던 요소들, 이른바 '떡밥'을 착실히 회수했다.




끝을 맺기 전에 서두에 던진 질문을 떠올려보자. '캡틴 마블'은 정말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영화는 '블랙 팬서'처럼 한 세대와 문화에 화두를 던질 만큼 역동적인 주제 의식을 드러내진 않았다. 되려 개봉 전 강조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요소에 화려하고 풍성한 눈요깃거리를 절묘하게 가미했다. 그러면서도 후속작과 전작의 골을 메우는 장치들을 하나하나 밀어 넣으며 10년을 이어온 어벤져스 시리즈를 잇는 가교 구실에도 충실했다.

결국 영화는 판세를 뒤흔들 거대한 무언가가 되지도 않았고 되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마블 영화의 흥행 공식이 여성 히어로 영화라는 도전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목적을 이뤄냈음을 의미한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오는 4월 개봉할 어벤져스의 마지막 장뿐이다.





 ◼︎ 영화 보러 극장 갈 사람이라면 이건 꼭 보고 가길


• '캡틴 마블'의 공중액션만큼은 마블 역대 최강이다. 액션을 충실하게 느끼고 싶다면 IMAX로 예매하자.

• 영화 시작과 함께 MCU 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마블 로고는 모두 故 스탠 리로 꾸며진다. 영화 시작부터 집중하자.

• 다른 시리즈와 이어지는 요소는 적지만 분명하게 그려진다. 마블 영화 초보라도 집중해서 보면 하나둘 보일테니 다른 관객들이 웃을 때 더 집중해보자.

• 쿠키 영상은 2개. 특히 스태프 롤에 앞서 등장하는 영상은 '어벤져스: 엔드게임'과도 이어지니 절대 놓치지 말자. 뒤에건 스토리보다도 귀여워서 본다.

• 젊은 시절의 닉 퓨리와 콜슨(클라크 그레그)이 등장한다면 콜슨은 집중해서 보자. 닉 퓨리는 영화 내내 함께하지만, 분장과 CG로 회춘한 멋진 콜슨은 이 영화 아니면 앞으로도 드라마로밖에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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