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급 연출과 그래픽, 그래서 아쉬운 '에픽세븐'

리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104개 |

지난 30일 출시한 '에픽세븐'은 슈퍼크리에이티브가 개발하고 스마일게이트에서 서비스하는 모바일 턴제 RPG입니다. 흔히 '수집형 RPG'라고 부르는 구성에 고전 턴제 RPG의 요소를 결합하고 애니메이션풍 캐릭터와 연출을 더한 것이 특징이죠. 처음 티저가 공개됐을 당시,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2D 그래픽과 연출로 국내 유저, 특히나 서브컬쳐 유저들의 기대를 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수집형 모바일 RPG는 사실 국내에서는 2014년부터 시작해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반이 다져진 장르입니다. 그만큼 많은 게임이 출시됐으며, 꾸준히 수익을 올리는 스테디셀러도 존재하죠. 또한 유저에게 어필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장르이기도 합니다.

그간 화려한 그래픽, 혹은 수려한 캐릭터 일러스트로 유저들의 눈을 일시적으로 사로잡은 게임들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부는 유저들의 시선을 끝까지 사로잡지 못하고 끝내 도태되어버리는 일도 있었죠. 그 3년 동안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에픽세븐'의 연출을 다듬고, 게임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간 출시된 게임보다 더 높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 작화와 연출, 캐릭터, 그리고 '모험'이라는 것을 유저가 직접 즐기는 것 같은 구성으로 '에픽세븐'만의 차별화를 유저에게 어필하겠다고 한 것이죠.

출시 전 몇 달부터 꾸준히 공개한 캐릭터 소개 영상이나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오프닝 등을 통해서 유저들은 그 결과물을 일부 미리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퀄리티 높은 작화와 윤하의 보컬이 어우러진 오프닝, 성우들의 풀 보이스 녹음 등은 유저들로 하여금 완성된 게임의 퀄리티를 기대하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습니다. 비록 오픈 첫날 서버 오류로 인한 긴급 점검과 연장 점검은 일부 유저들을 불안하게 만들긴 했지만요.

3년 만에 비로소 유저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에픽세븐', 과연 어떤 게임인지 직접 해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화려한 연출
화려한 연출의 이면에 뒤따르는, 완만한 게임 페이즈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

2D 수집형 RPG에서 일반적으로 지향하는 연출이자, 광고 프레이즈로 많이 쓰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연출이 애니메이션처럼 눈길을 끌 정도로 잘 갖춰져 있거나, 화려하다는 것을 애니메이션에 빗대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아울러 2D 수집형 RPG를 즐기는 유저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연출 방향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에픽세븐'을 보자면, 사실 흠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2D 스프라이트 기법을 극대화해서 깔끔하게 고전적인 2D 그래픽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인게임 그래픽은 인상 깊었습니다. 캐릭터의 스킬 연출도 수준급이었고, 특히나 애니메이션 컷씬과 인게임 연출을 교차시킨 궁극기의 연출은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고 화려했습니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쇼케이스에서 개발진이 호언장담한 것이 결코 헛된 말은 아니었구나, 싶었죠.

전투 속의 연출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드러나는 게임 내 컷씬 애니메이션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전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구도나 화면의 배치, 음악, 성우의 연기 등을 통해서 그 이상의 박진감과 몰입감을 끌어냈거든요. 여기에 화려한 데다가 안정적인 애니메이션 작화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간 2D 모바일 수집형 RPG에서 애니메이션 씬을 이렇게 퀄리티 있게 갖추면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는 드물었던 데다가, 우리나라 성우가 인게임 애니메이션씬이나 스토리까지 음성을 풀로 녹음한 것은 더더욱 희귀했습니다. 우리나라 서브컬쳐 유저들에게 있어서 숙원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작하고, 우리나라 성우가 음성을 녹음한 애니메이션이 적극 활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에픽세븐'은 그 두 가지가 충족됐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그냥 구색갖추기 식이 아니라 퀄리티 있게 갖춰졌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흡족했습니다.

다만 게임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러한 화려한 연출은 양날의 검 같은 존재입니다. 연출이 화려한 만큼, 그 화려한 연출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간을 따로 배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이 부분은 수집형 RPG에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부분입니다. 수집형 RPG는 RPG뿐만 아니라 시뮬레이션의 요소도 가미된 게임이기 때문이죠.

수집형 RPG는 화려한 연출을 즐기거나 스토리를 즐기는 것 외에도 캐릭터를 수집하고, 효율적으로 육성하는 것에도 의의를 둔 장르입니다. 즉 캐릭터들의 화려한 스킬이나 스토리를 즐기는 유저도 존재하지만, 캐릭터를 최대한 빨리 모으고 빠르게 육성해서 자신만의 덱을 꾸려나가는 것에 재미를 두는 유저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런 유저들을 위해서 일반적으로 수집형 RPG에서는 전투 2배속 기능 등을 지원하지만, '에픽세븐'은 이러한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은 다른 수집형 RPG를 해온 유저들에겐 낯선 부분이고, 일견 갑갑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구성이기도 했습니다. 더 자연스러운 연출과 움직임을 위해서 중간중간 삽입되는 애니메이션도 많은데, 이 재생시간까지 다 고려하면 전투 페이즈가 아무래도 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런 부분은 빠른 육성을 즐기고자 하는 유저들에게는 마이너스로 다가올 수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 2배속 모드는 따로 지원하지 않습니다


수동 전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미완의 시스템들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은 신수 강화, 초반에 효과를 느끼기 어려운 소울 번 시스템


수집형 RPG에서 한창 이슈가 된 자동전투는 게임에 있어서 양날의 검 같은 존재입니다. 유저가 반복적으로 던전을 돌거나 하는 번거로움을 줄여주기 때문에 캐릭터를 더 쉽게 육성할 수 있게 해주는 점은 분명 이점이죠. 하지만 유저가 게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유저로 하여금 게임의 본질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과연 내가 직접 플레이하지 않는 것도,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말이죠.

수집형 RPG는 유저가 하나의 캐릭터를 조종하는 일반 RPG와 달리, 다양한 캐릭터를 육성하고 조합해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관리하고 키워나간다는 점에서 시뮬레이션이나 매니지먼트 게임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자동전투에 대해서 유저들이 비교적 관대한 편이기도 하죠. 마치 매니지먼트 게임에서 선수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일일이 경기를 하나하나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 경기를 내보낸 뒤 결과만 받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이 부분이 너무 과하게 되면 롤플레이라는 요소가 희미해지게 됩니다. 직접 플레이하지 않으면 유저가 그 캐릭터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혹은 다양한 역할군의 스킬을 유기적으로 활용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RPG 특유의 게임성을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이런 부분 때문에 최근 모바일 RPG에서는 최근 자동으로 플레이 자체는 가능하지만, 자동으로 끝까지 클리어하기 어렵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는 합니다. 수동으로 피하지 않으면 전투력이 한참 높아야만 클리어가 가능할 정도로 보스 패턴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혹은 일부 스킬을 캐릭터들이 자동으로 두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 예죠.

'에픽세븐'에서는 그 중 후자에 가깝습니다. 전투 시스템은 일반적인 모바일 턴롤플레잉 게임과 가깝지만, 여기에 '소울'과 소울 번 시스템을 도입했죠. 캐릭터가 스킬을 사용하게 되면 스킬에 따라 일정량의 소울 게이지가 차게 되고, 특정 수치 이상 차게 되면 소울 게이지를 사용해 일부 캐릭터의 스킬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는 신수를 활용해서 적 전체에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시스템은 아직까지는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신수를 활용한 전체 공격은 일부 수집형 RPG에서 채택한 유저 스킬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가, 신수 자체를 육성하는 방법이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 캐릭터가 육성되면 신수를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메리트가 없어지게 됩니다. 체력이 꽉 찼을 때, 힐러가 스킬을 쓰는 것보다는 적 체력을 깎아 놓는 게 효율적이라 채택하는 정도가 되어버리죠.

'에픽세븐' 캐릭터들의 스킬 구성은 일반 공격, 일반 스킬, 궁극기 세 가지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소울 번 시스템은 하나만 강화가 가능하죠. 물론 스킬이 하나만 강화되는 상황에서도 전략적으로 활용될 여지는 충분합니다. 소울 번 시스템을 활용하면 추가 피해나 디버프, 버프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턴을 한 번 더 돌려서 추가 공격을 할 수 있기도 하거든요. 이를 활용해서 변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강화 효과가 미미한 경우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서 알렉사의 소울 번 스킬은 중독 저항을 무시하고 중독 효과를 주는 것인데, 흔히 말하는 '빗나감'이 뜨면서 중독 효과가 발생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렇듯 효과가 적용되는 정도가 각 캐릭터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 효과의 편차나 밸런스 문제가 있는 편이죠.



▲ 소울 게이지가 차면 번 버튼이 뜹니다



▲ 누르면 해당 스킬에 추가로 효과가 붙습니다

PVP는 상대방이 미리 지정한 방어덱을 상대하게 되는데, 자동 전투뿐만 아니라 수동으로도 전투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 보면 소울 번 시스템을 활용해서 전략적인 전투가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 전투가 이어지는 시간은 스테이지 클리어 시간에 소요되는 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스테이지의 잡몹들은 체력이 높은 대신 공격력이 비교적 약하지만, 만나게 되는 플레이어들은 대체로 체력이 낮은 대신 공격력이 높아서 이른바 '죽창'의 대결이 펼쳐지는 양상이었기 때문이죠. 소울이 충전되기 전에 대체로 게임이 끝나거나, 사용하지 않아도 기세가 확 기울었기 때문에 굳이 소울 번 시스템을 사용할 필요성이 적었죠.


물론 다른 게임과 전략적 차별화를 뒀다는 점에서 이 시도는 높이 살만 합니다. 또한 지금은 게임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더 많이 사용될 여지가 있는 시스템들이기도 하죠. 다만 현 단계에서 수동 전투의 효율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내놓은 이 시스템들은 완성됐다고 평가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모험'이라는 요소를 살리고자 한 맵과 스테이지 구성
갈림길과 오브젝트로 입체적으로 만든 스테이지, 차별화된 스테이지 완전 클리어 조건




흔히 RPG하면 '모험'과 '스토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RPG의 사전적 의미는 역할 수행 게임이고, 플레이어가 그 역할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전통적으로 어떤 세계관과 스토리가 주어져 왔습니다. 이는 테이블 RPG 때부터 이어져 왔던 전통이었고, 이후 유저들은 RPG하면 자연히 모험과 스토리를 떠올리게 됐죠. 물론 모험과 스토리를 빠른 육성의 불순물이라고 여기면서 스킵하는 유저가 많긴 하지만, 이를 RPG의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유저들도 많은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수집형 RPG에서 채택한 스테이지 방식은 선형적으로 차근차근히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방식입니다. 여러 스토리를 한 곳에 모아서 차곡차곡 정리하기 좋은 방식이지만, 반면에 유저가 직접 그 세계에서 모험을 즐긴다는 느낌은 비교적 부족합니다. 이동의 동선이 강제로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을 벗어날 일말의 여지도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스테이지는 한 번 지나쳐오면 육성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시 찾아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나마도 육성을 할 때는 자동으로 반복 사냥을 하니 스테이지에 대해서 음미하거나 할 가능성도 적죠.

지난 쇼케이스에서 에픽세븐 개발진들은 '모험'이라는 요소를 살리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현된 것이 갈림길과 맵 안에 랜덤으로 등장하는 오브젝트입니다. 에픽세븐의 스테이지는 일반 수집형 RPG와 다르게, 일부 맵에서는 분기점에 해당하는 갈림길들이 존재합니다. 그곳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몹이 달라지고, 스테이지에서 별을 받을 수 있냐 없느냐가 갈라지기도 하죠. 자동으로 전투를 진행해도 스테이지 분기점에서는 이동을 멈추기 때문에, 선택은 유저가 직접 해야 합니다.



▲ 자동 진행 중에도 갈림길에선 유저가 직접 선택을 해야 합니다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다보면 소울 게이지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샘, 혹은 보물상자들이 중간중간 등장합니다. 자동으로 두면 이 부분은 그냥 지나치기 때문에, 오히려 전투 시스템보다는 이러한 부분에서 수동 조작의 이점이 드러나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일부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중간중간 지나치는 인물들을 유저가 직접 터치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숨겨진 스토리, 혹은 스테이지로 갈 수 없게 했죠. 그렇게 직접 유저가 터치하고, 관여하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스토리를 스킵하지 않고 지나갈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이런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콘텐츠가 '미궁'과 우호지역, 히든 스테이지입니다. 각 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미궁'은 단순히 일직선적인 스테이지가 아니라, 맵을 하나하나 탐험하면서 특정 인물과 대화하거나, 오브젝트를 발동시켜야만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자동전투로 진행해도 되지만,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유저가 캐릭터를 조작해 탐사할 필요가 있죠.


여기에 사기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특징입니다. 아군의 사기는 최초 50에서 시작하게 되고, 이동과 전투가 반복되면 사기가 떨어지게 되죠. 마이너스로 떨어지게 되면 아군의 전투력이 최대 50%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마구잡이로 가기보다는 신중하게 길을 선택하고, 캠핑을 통해서 관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캠핑에서는 캐릭터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 캐릭터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죠.

우호지역도 비슷하게 사기 시스템이 갖춰져있고, 갈림길이나 오브젝트 그리고 별도의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처음에 우호지역인데 왜 스테이지로 구분했을까 의아함이 드는 구성이긴 하지만요. 우호지역 퀘스트를 진행하다보면 특정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고, 그때 전투가 일어나게 되죠. 이를 클리어해야 비로소 별 3개 클리어가 되거나, 혹은 히든 스테이지로 가는 문이 열리고는 합니다. 그 특정 이벤트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유저가 직접 캐릭터의 이동 방향을 정해줘야 하죠.



▲ 히든 스테이지로 가려면 때론 맵 주변에 숨은 장치들을 찾아야 합니다

히든 스테이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히든 스테이지는 '카오스 게이트'라는, 별도의 스테이지로 이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지 않으면 성역을 강화할 수 있는 오를리스의 조각을 구할 수 없고, 스테이지 별 3개 클리어도 불가능하죠.

여기에 스테이지 별 세 개 클리어 조건에도 차별화를 주었습니다. 일반적인 수집형 RPG에서는 별 3개 클리어 조건을 클리어 시간과 영웅의 사망 여부로 정해왔습니다. 이 부분은 유저로 하여금 빠른 클리어 방법에 대해 궁리하게 하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빠르고 안정적인 클리어에만 신경을 쓰게 하는 역기능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에픽세븐'은 각 스테이지마다 이 조건을 달리한 데다가, 별 세 개 클리어 조건에서 시간이나 영웅의 사망여부를 제외해버리는 등 차별화를 두었죠. 물론 빠른 클리어를 위해서 스테이지별로 효율적인 영웅 구성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안 갖춰져도 잘 큰 친구를 동원해 어떻게든 버티면서 별 셋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사실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또 '빠른 육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여기에 스토리가 흔히 국산 RPG에서 보이는 클리셰가 많다는 것도 조금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이드 스토리와, 사이드 스토리로 진입하기 위한 입체적인 스테이지 구성으로 어느 정도 전통적인 RPG가 갖춘 '모험'의 느낌을 살려냈다는 점은 높이 살만 했습니다.


아쉬운 UI와 편의성
불편함의 미학은 단순히 불편하기만 한 게 아니다

최근 국내 모바일 게임의 트렌드 중 하나는 '편리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게임이 아닌 동영상이라고까지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유저가 최대한 빠르고 간략하게 게임 내에 필요한 행동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있죠. 또한 옵션도 그런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맞춰져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유저에게 편의성을 제공할 수 있는 UI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에픽세븐'의 화면을 보면 잘 꾸며진 배경과 캐릭터는 유저의 눈을 사로잡기엔 충분했습니다. 다만 UI의 측면에서 볼 때는 아쉬운 부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메인 화면을 보더라도 아이콘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최하단과 주변부를 빙 둘러서 산만하게 배치되어 있는 데다가 아이콘에 투명도까지 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중앙에 있는 배경과 캐릭터를 감상한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아이콘들이 배경이나 캐릭터와 충돌하지 않고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UI의 기본은 해당 기능과 메뉴를 유저에게 명확히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에픽세븐의 UI는 조금 미흡했습니다. 아이콘을 찾기 위해서 유저의 시선이 이동하는 정도가 크고, 배경에서 튀지 않도록 흰색 계열에 투명도를 입힌 아이콘이라서 시야에 명확히 들어오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었죠. 더군다나 알림이 자주 뜨는 메뉴인 성역과 회복이 서로 분산이 되어있기 때문에 산만하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자주 쓰는 메뉴 중에 하나인 캐릭터 판매, 즉 영웅 전송 메뉴는 메인 화면에만 있는 영웅 메뉴를 누른 뒤에 맨 위에 있는 등, 일부 기능들이 찾기 어려운 위치에 배치되어있는 것도 좀 아쉬웠죠.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최상단에 가방 아이콘과 캐릭터 정보 아이콘 외에도 여타 다양한 메뉴 아이콘을 모아둔 인터페이스창이 있었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문제는 메인 메뉴의 아이콘뿐만 아니라, 일부 창의 아이콘들도 동일하게 적용되고는 했죠.

검은색 바탕의 인터페이스창에 회색, 거기다가 투명도까지 더하고 크기도 작게 만든 휴지통 아이콘 등이 그 예죠. 해당 아이콘은 '아이템 일괄 판매' 기능인데, 잡템을 판매하는 일이 많은 수집형 RPG의 특성상 유저들이 많이 찾게 되는 아이콘이면서 게임플레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파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앞서 말한 것처럼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부 유저들이 "아이템 일괄 판매 기능 없네"라고 섣불리 카페에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잘 찾아보지 않으면 일괄 판매 기능은 스쳐지나가기 쉽습니다

물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불편한 UI라고 하더라도 몇 번 플레이를 하게 되면 금방 익숙해지게 됩니다. 때로는 그 불편한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내기도 하죠. 하지만 모든 유저들이 그렇게 플레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편한 UI 때문에 은연중에 불쾌감을 느끼고, 자신이 지금 플레이하는 게임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마무리가 잘 안됐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에픽세븐'은 분명 연출에서의 디테일한 부분은 수준급으로 살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게임플레이에서 디테일한 부분, 즉 UI나 편의성이 뒷따르지 못한 부분이 크게 아쉬웠습니다. 특히나 연출 때문에 플레이타임이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이런 것에 불편함을 느낄 유저들의 불쾌감을 UI에서 어느 정도 덜어줄 필요가 있었죠. 그렇지만 그 부분이 미처 뒷받침되지 못해서 체감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2)"
비교적 오래 걸리는 육성 과정, 여기에 악명 높은 가챠 모델을 개악까지 하다

앞서 '에픽세븐'의 캐릭터 육성이 오래 걸리는 것에 대해서 짧게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전투에서 나오는 연출이 긴 편이고, 배속 기능이 없는 데다가 레벨 디자인적으로도 적이 체력이 꽤 높아서 전투 시간이 타 게임에 비해서 길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그뿐만 아니라 '에픽세븐'의 육성 과정에는 사실 여러 관문이 존재합니다.

일단 '에픽세븐'은 타 국산 모바일 RPG보다 활동력이 상당히 부족한 편입니다. 우선 활동력이 사용되는 곳이 다른 수집형 모바일 RPG보다 많죠. 제작 재료 던전이나 강화 재료 던전 같은 경우 다른 게임에서는 티켓을 사용하지만, '에픽세븐'의 토벌이나 정령의 제단은 활동력을 사용하죠. 거기다가 일반 수집형 RPG처럼 던전 등을 돌아서 꾸준히 얻는 재화로 활동력을 구매하는 시스템이 '에픽세븐'엔 없습니다. 아레나에서 얻는 증표나, 고대주화, 우정주화로 교환하거나 혹은 하늘석으로 구매를 해야 하죠.






▲ 활동력은 이곳저곳에 쓰이지만






▲ 수급처는 제한되어있습니다

5장까지는 어느 정도 무난히 흘러가기 때문에 활동력이 부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5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문제가 점차 체감이 되기 시작합니다. 5장부터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지기 때문에, 캐릭터가 어느 정도 육성이 되고 조합이 갖춰지지 않으면 클리어할 수 없거든요. 그나마 오픈 초에는 서버 문제로 인해서 보상으로 준 '여물'로 활동력을 교환해 던전을 계속 도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활동력 수급 방법이 기본적으로 제한이 되어있다는 한계는 존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활동력 대비 던전 입장에 소모되는 활동력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레벨 25기준으로 기본 활동력이 84인데, 일반 던전 입장에 1회당 대체로 8에서 9 이상 소모하기 때문에 별도로 수급할 방법이 없으면 금방 다 써버리게 되죠.

고전적으로 수집형 RPG에서는 경험치를 빠르게 수급하고 승급을 빨리 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과금이죠. 과금은 원하는 영웅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통은 원하는 영웅이 나오는 동안에 3성들이 무수하게 나오게 됩니다. 이 영웅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영웅에게 경험치로 먹여버리고, 빠르게 육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금러들의 패턴이죠.

처음에 '에픽세븐'의 가챠를 봤을 때, 개인적으로는 '페이트/그랜드 오더'의 가챠가 떠올랐습니다. '페이트/그랜드 오더'의 가챠는 서번트와 개념예장, 즉 다른 게임식으로 말하자면 장비와 캐릭터 뽑기가 구분이 안 되어있는데, 이런 부분이 '에픽세븐'도 동일했기 때문이죠. 페이트/그랜드 오더와 달리 장비와 아티팩트는 따로 구분이 되어있긴 하지만, 캐릭터와 다른 무언가가 뒤섞여 나온다는 것은 어쨌든 동일했습니다.



▲ 영웅이 나올 확률이 아티팩트가 나올 확률보다 기본적으로 더 적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천장'이나 마일리지 시스템이 희박하다는 것도 비슷했습니다. 대다수의 수집형 RPG는 일정 금액 이상 결제하고 뽑게 되면 일정 등급 이상의 캐릭터를 무작위 혹은 확정으로 주지만, '에픽세븐'은 4성에서 5성 사이의 캐릭터를 전송하면 얻는 금빛 전승석으로 4-5등급 영웅 소환권을 살 수 있는 게 전부죠.




여기에 한 가지 '에픽세븐'은 흔히 10연차라고 하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른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심지어 '페이트/그랜드 오더'에서도 채택한 보정이라는 개념도 없죠. 이런 점은 그간 유저들이 접해온 수집형 RPG와는 크게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페그오식의 확률형 아이템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부터 많은 유저들이 비판을 가한 바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캐릭터와 그 외 다른 것이 뒤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뽑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에픽세븐'은 10연차 보정도 없기 때문에 '최소한 이런 건 나오겠지'라는 심리적인 보험조차도 없습니다.



▲ 엄밀히 말하면 10연차 전용 상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특정 등급 이상의 보장은 없습니다

물론 '에픽세븐'에서 영웅을 얻는 방법이 유료 재화를 활용한 확률형 아이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연 미션을 클리어하면 무료 영웅을 받을 수 있죠. 또 스테이지를 처음 클리어할 때마다 별 갯수당 5개씩 꾸준히 주고, 오르비스의 심장에서 일정 시간마다 하늘석을 주기 때문에 꾸준히 모아서 가챠를 돌릴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수집형 RPG를 플레이하는 목적 중 하나가 원하는 캐릭터, 혹은 강한 캐릭터를 뽑아서 육성하고 파티를 완성해나가는 것에 있다고 봤을 때, '에픽세븐'은 다른 게임과 비교될 구석이 많아서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미 그런 확률형 아이템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게임을 예로 들어버렸는데, '에픽세븐' 역시도 그러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화려하지만 반 발짝 부족한 '에픽세븐'
화려한 연출은 합격, 미흡한 시스템과 편의성 그리고 BM은 아킬레스 건

오랜 개발 끝에 나온 '에픽세븐'의 구성은 정통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리셰를 충실히 따라가는 스토리와 전형적인 캐릭터, 그리고 이전까지의 수집형 RPG에서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이전부터 유저들이 접해왔던 뿌리 깊은 구성이었죠.

다만 스토리에서는 애니메이션 컷씬의 화려한 연출로 몰입감을 살려냈고, 좀 더 입체적으로 스테이지를 구성해 유저가 직접 모험을 한다는 느낌을 주도록 차별화를 했습니다. 여기에 스테이지 완전 클리어 조건도 세분화하면서 다양한 캐릭터를 키우고, 조합을 짜도록 유도하기도 했죠. 일각에서 캐릭터 밸런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앞으로 패치를 통해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만큼 좀 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 한 번 할 수 있는 '선별소환'에서 좋은 캐릭터를 얻고 시작하기 위해 리세마라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이와 같은 구성을 집어넣으면서 게임의 페이즈는 다른 수집형 RPG보다 느려지긴 했습니다. 이 부분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고, 특히나 빠른 육성을 목표로 하는 유저들에게는 그리 좋지 못한 구성이긴 합니다. 다만 2D RPG의 감성을 살린 그래픽과, 유저가 직접 맵을 돌아다니면서 숨어있는 오브젝트 혹은 등장인물과 만난다는 모험의 기본을 살린 점은 높이 살만했습니다. 정통파 2D RPG처럼 직접 맵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탐험하는 느낌을 완전히 살리진 못했더라도,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에픽세븐'은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큰 그림은 나쁘지 않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이 미처 완성되지 않은 채 나왔기 때문이죠. 신수 시스템이나 소울을 통한 스킬 강화 시스템으로 자동 전투와 수동 조작의 전략성 차이를 둔 것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신수 강화는 업데이트 준비 중이고, 소울 번 시스템은 캐릭터가 어느 정도 육성이 되지 않으면 다양하게 활용하는 데 제약이 있었으니까요. 사소하게 불편한 UI도, 게임의 완성도를 낮추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 외에도 확률형 아이템 모델을 굳이 왜 그런 모델을 선택했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습니다. 수집형 RPG의 확률형 아이템 BM 중 유저들에게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모델과 너무도 닮아있거든요. 사실 수익 모델을 회사가 그렇게 결정한 것에 대해서 외부인이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최대 이윤의 창출이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방법을 채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유저들이 이전부터 그런 모델에 가진 반감이나 비판 때문에 유저들에게 '에픽세븐'의 장점이 묻혀버리고 단점만 부각되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3년 만에 유저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에픽세븐'은, 국산 수집형 RPG가 점차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 미흡한 부분은 분명 빠르게 보강할 필요는 있습니다. 게임은 화려한 연출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죠. 지금은 반 발짝 정도 디딘 '에픽세븐'이 앞으로 개선을 통해 완벽한 한 발을 내딛고, 유저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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