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회생활 참 힘들다… '메신저 신드롬'

리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21개 |
'저희 회사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와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매일 출석하다시피 들르고 있는 카페 한구석에 앉아 면접 탈락을 알리는 문자를 읽고 있자니, 즐겁게 웃으며 커피를 주문하고 있는 한 무리 직장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어디를 가든 똑같이 힘들고 괴로운 것이 직장생활이라던데, 내 눈에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그저 한없이 즐거워만 보인다.

4년제 대학 졸업 후, '무조건 대기업 입사'라는 허황한 꿈을 버리고 한껏 눈을 낮춰 닥치는 대로 자소서를 뿌리고 다닌 지 어느덧 2년이나 됐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워왔던 것들이 아쉽지만,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해주는 회사가 있다면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한동안 떠들썩하던 직장인 무리가 커피를 받아 떠나고, 카페는 본래의 정적을 되찾았다. 나는 다시 노트북 모니터로 시선을 옮겨 온라인 구인구직 페이지를 열고, 다음에는 꼭 붙을 거라는 희망을 담아 이미 수백 번도 고치고 또 고친 자소서를 다시 수정하기 시작했다.

구직 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다 보면 누구나 어디든 좋으니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학창시절에 '조금만 노력하면 인서울이 뭐야, SKY도 충분히 갈 수 있지 않겠어?'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계속되는 모의고사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직장에 대한 최소 기준치는 한없이 낮아져만 간다.

결국 합격 가능성이 그나마 있는 계약직과 인턴직 쪽으로 눈길을 주게 되는데, 이것도 참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인디 게임 개발사 feemodev는 신작 모바일 게임 '메신저 신드롬'을 통해 인턴이 회사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일들을 조명했다. 그들이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이야기 전달을 위해 선택한 매개체는 바로 '메신저'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폰 메신저를 업무에 이용하는 회사가 급증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점심시간에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때는 물론이고,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이후에도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알리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자연스레 높아진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느샌가 이를 지칭하는 '메신저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떠들기 위해 사용하던 그 메신저가 갑자기 마치 시한폭탄처럼 두렵게 느껴진다면? 당신도 아마 메신저 증후군에 걸려있을 지도 모른다.



▲ 이게 정말 직장생활이라고?

메신저를 통해 배우는 직장생활

'귀하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치열한 스펙싸움, 취업전쟁 속에 드디어 인턴이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한 달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즐겨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서 조언을 구해보니 다들 '인턴은 그냥 쓰이다 버려지는 소모품 취급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회사에서도 분명 내 가치를 알아줄 거야"

애써 밝은 생각을 해보지만, 앞으로 마주할 환경이 마냥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렵고 초조해졌다.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회사에서 정직원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구름처럼 커져만 갔고, 야속하게도 첫 출근 날의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왔다.

신입 직원이 회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대부분 '기다리기'다. 보통 여기에는 현장의 상황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대략적인 분위기와 흐름에 익숙해지라는 훌륭한 명분이 딸려있다.

하지만 신입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가시 방석일 수 밖에 없다.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하거나 인턴 생활을 겪어본 적이 있다면 '이렇게 멍하니 있어도 되나? 뭐든 시켜줬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며 초조해했던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모니터만 노려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초조함은 배가된다. 하지만 의욕에 가득 차서 뭐든지 척척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출근했더라도,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러한 신입의 무력감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메신저 신드롬'에서 유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내 단체 채팅방에 올라오는 채팅을 읽고, 상황에 맞는 답변을 하는 것이 전부다. 물론, 수습기간을 채우고 끝내 '정직원'이 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눈치 있는 답변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

"메신저를 주제로 한 이유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적인 스트레스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내 메신저는 어느 회사에든 존재하고, 누구나 두렵고 떨리는 신입 시절의 기억이 있기 마련이죠. " - feemodev



▲ 다들 정말 바쁘게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나만 빼고

"어때요, 일은 좀 적응됐나요?"

사수인 임 대리님이 개인 메시지로 안부를 물어주셨다. 관심을 보여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질문에는 선뜻 답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한 것이라곤 일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자잘한 심부름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박 부장님이 할 일이 없어 보이는 내 모습을 발견했는지, 대뜸 경제를 공부하고 있는 자기 아들의 숙제를 대신 해줄 수 있냐고 개인 메시지로 부탁해왔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문득 '이런 일을 하려고 회사에 온 것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있지도 않은 업무 핑계를 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 그래, 일이 있었어? 미안 미안, 잊어버려요. 업무 시간엔 일을 해야지. 숙제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 의미가 있는거지. 맞아'라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그 이후로도 왠지 계속 뒤통수가 따갑다. 오늘은 눈치껏 늦게까지 야근하고 가야겠구나…

메신저 신드롬 속 상사들은 매일같이 인턴을 위기로 몰아넣는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해온다. 단어 선택, 혹은 뉘앙스 하나만 어긋나도 하루아침에 백수 신세가 될 수 있는 외줄타기 같은 질문들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대부분은 배달 업체를 통해 점심식사를 주문하거나, 쌓여있는 서류를 정리하고, 업무 외의 개인적인 부탁에 대응하는 등 직장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일들이 태반이다.

'이런 게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가장 말단에 위치한 인턴의 마음가짐으로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바로 게임오버 화면을 마주하게 되든 선택지들이 다수 존재한다.

"게임은 계속 선택을 강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답이란 것을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불합리한 사회를 느끼게 하죠. 정직원이 되기 위해서, 유저는 사회가 강요하는 답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 feemodev



▲ 참고 또 참아야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수습기간 동안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셨던 임 대리님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부장님은 한창 바쁠 때 갑자기 그만두면 어찌하느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러면 인턴 씨는 정직원 확정이구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퇴직 전 인수인계를 진행하던 임 대리님은 이 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떠나는 거라며, 나에게도 하루빨리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위에 공석이 생겼으니 정말 정직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들뜬 마음이 들면서도, 인수인계 과정에서 임 대리님이 해주신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사수도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버린 회사에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유저는 게임 속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선택지들을 앞두고 계속해서 '정직원'을 목표로 하거나, 혹은 사직을 감수하고 과감한 일탈을 꿈꿔볼 수도 있다.

선택지에는 가끔 현실이라면 절대로 선택할 수 없을 '사이다' 발언들이 함께 등장한다. 물론 '배드 엔딩'으로 이어질 것이 뻔히 예상되지만, 이러한 선택지를 선택하여 불합리함에 맞서다 보면,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며 응어리졌던 가슴 속 답답한 감정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통쾌한 선택에는 그에 맞는 별도의 엔딩과 도전과제 업적이 존재하므로, 이를 전부 수집해보는 것도 '메신저 신드롬'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을 통해 유저들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어떠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들에게 있어서 작은 가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feemodev



▲ 실제로는 하지 못할 속 시원한 선택지들을 골라보자


인턴의 설움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메신저 신드롬'

"귀하의 합격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박 부장 그놈은 임 대리 대신 나의 정직원 승진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껏 바람을 불어넣더니, 결국 한 달간의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합격 소식을 보내왔다.

'이런 더러운 회사, 어차피 정직원 시켜줄 테니 제발 일해달라고 싹싹 빌어도 시원하게 욕이라도 쏴붙여 주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잘됐네'라고 생각해보지만, 다시 자소서를 수정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며 취업활동을 해야 할 것을 떠올리니 괜스레 눈물이 흘러나왔다.

"정말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다 이런 걸까?"

서럽고 억울한 마음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사무치게 들었지만, 이번 달 카드값이며 생활비를 생각하면 언제까지고 멍하니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볼까지 흘러내린 눈물을 애써 훔쳐내고, 나는 다시 노트북 모니터의 온라인 구인구직 페이지로 시선을 옮겼다.

직접 플레이했을 때의 재미로 남겨놓기 위해 기사에는 따로 표기하지 않았으나, '메신저 신드롬'에서는 유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총 37개의 서로 다른 엔딩을 만나볼 수 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개발된 만큼 게임의 볼륨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사소한 메시지 하나하나가 초래하는 다양한 종류의 엔딩은 유저를 다회차 플레이로 이끄는 좋은 원동력이 됐다.

플레이타임도 그리 길지 않으니, 자신이 사회 초년생이거나 인턴 과정을 앞두고 있다면 한 번쯤 '메신저 신드롬'에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이미 오래전에 신입 딱지를 뗐더라도 충분히 웃으며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고증을 다진 사회생활의 면면들이 게임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과연 나라면?'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한 달간 살아남아 보자. 나는 과연 한 번의 게임오버도 없이 엔딩을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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