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롤러코스터타이쿤 팬들이 '파키텍트'에 주목하는 이유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10개 |



'롤러코스터타이쿤' 시리즈(이하 RCT)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게임이고, 국내에서도 큰 히트를 한 게임입니다. 익숙해지는 건 어렵지 않지만, 진짜 고수가 되려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게임인데다 시간분쇄기에 가까운 게임 디자인 덕에 수많은 폐인을 양산한 게임이죠. 'RCT2'의 경우, 지금도 꾸준히 즐기는 유저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RCT 시리즈도 많이 낡았습니다. 시리즈 3편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도트 그래픽에서 벗어나 3D 게임으로 전환을 시도했고, 다른 의미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마저도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앞에 말 그대로 '구려'졌습니다. 추억이 게임을 즐기게 하는 좋은 동기는 될 수 있지만, 게임 자체를 바꿀 수는 없죠.

3편 이후, RCT 시리즈는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모바일과 콘솔에서 줄줄이 흑역사만 써내려갔고, 그나마 'RCT 클래식'이 조금 괜찮다는 말을 들었죠. 모일 곳이 없으니 팬층은 구름처럼 떠돌았습니다. 2016년에 이르러 아타리가 시리즈 최신작인 'RCT 월드'를 출시했지만, 시리즈 최대 흑역사만 갱신하면서 대차게 망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RCT 시리즈의 유전자는 동년 말에 출시된 '플래닛 코스터'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 RCT 시리즈의 정신적 후속작으로 인정받은 '플래닛 코스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래닛 코스터'는 굉장히 잘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팬층으로부터도 인정받았고, 시대에 걸맞은 멋들어진 비주얼과 엄청난 자유도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모든 팬층을 커버하지는 못했습니다. '플래닛 코스터'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디테일한 게임이고, 시뮬레이션 고수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한 게임입니다. RCT2 위주로 플레이해 사각형 격자가 익숙하고, 롤러코스터 트랙 정도를 직접 만드는 게이머들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도전이죠.

오늘 살펴볼 '파키텍트'는 공원을 잘 만들고는 싶지만, 플래닛 코스터처럼 잘 만드는 사람들의 공원을 보고 기죽기는 싫은, 더 편하면서도 보람은 느끼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3D 공간에서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는 코스터를 만드는 것보다 RCT2 시절의 도트와 사각 격자를 더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게임이죠. 물론, 세월이 지난 만큼 파키텍트 또한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게임입니다. 어떤 점에서 다른지는 지금부터 좀 써보려고 합니다.



전통의 그 맛 그대로 새 접시에


놀고 즐기려고 있는 게임에 어려운 개념을 섞는건 무의미하니 쉽게 봅시다. 파키텍트는 RCT 시리즈의 팬층 중에도 2편의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게임입니다.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게임이지만, 게임의 유전자는 쿼터뷰 시점의 격자 맵을 활용하는 2편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3편을 따라간 플래닛 코스터와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할 수 있죠.

기본적으로 장르가 같고, 테마도 같으니만큼 유사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두 게임이 추구하는 바는 조금 다릅니다. '플래닛 코스터'는 RCT 시리즈의 뒤를 잇는 '차세대 테마파크 시뮬레이터'의 성향을 보입니다. RCT 시리즈를 하나의 가문으로 본다면, 'RCT 월드'는 가문 최악의 아웃풋이자 못나기 그지없는 장자일 겁니다. '플래닛 코스터'는 가문의 맏아들 역을 자처하고 들어온 강력한 양아들이죠. 이와중 파키텍트는 장자 자리엔 관심이 없고 저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눈에 잘 안 띄는 셋째 아들 정도의 포지션입니다.



▲ '플래닛 코스터', 잘하면 너무 멋진데 잘하기가 쉽지 않아...

파키텍트를 처음 설치할때 게이머가 놀라게 되는 부분은 '용량'입니다. 스팀 다운로드 기준으로 1기가바이트가 채 안됩니다. 플래닛 코스터의 다운로드 용량이 약 23 기가바이트 가량이란걸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저용량 게임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면, RCT2와 너무나 유사한 게임 구도에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파키텍트'의 게임 디자인은 확실한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RCT 시리즈'가 아닌, 'RCT2'의 감성을 추구하는 것이죠. 게임을 시작하고 필드에 들어서면 누구나 RCT2를 생각하게 됩니다. 건물이나 장식물 배치, 코스터 설계 등의 UI도 RCT2를 해봤다면 쉽게 적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RCT2 특유의 배경 음악만 넣어두면 사실 리마스터라고 해도 속을 겁니다. 당연히 마음에 안드는 블랙 컨슈머를 물에 넣었다 뺐다 하며 괴롭힌다거나, 죽음의 코스터로 고객을 맵 밖으로 퇴거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 솔직히 다들 한 번쯤 해보잖아요.

하지만 '파키텍트'가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게임인 것은 아닙니다. 이게 다라면 RCT2의 복각판에 지나지 않을 테죠. 세월이 지난 만큼, 파키텍트도 RCT2와는 차별화된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RCT2와 다른 부분들이 게임의 본질적 재미를 해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지요.

'플래닛 코스터'는 시뮬레이션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도 빡빡함을 느낄 정도로 섬세한 편집을 지원하기 때문에, 이게 오히려 대다수 유저들에게 '뭘 어떻게 해야 좋은지 모르겠다'라는 진입 장벽으로 느껴집니다. 파키텍트는 그에 비해 간단하면서 클래식한 게임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원을 디테일하게 꾸미는 부분은 약하지만, 진입 장벽은 한없이 내려왔죠. '심플', '클래식', '캐주얼'이 파키텍트가 표방하는 방향이죠. 하지만 파키텍트는 마냥 단순한 게임으로 남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파키텍트'가 과연 캐주얼과 매니악의 중간점을 잘 잡아냈냐는 점입니다.



▲ 첫 인상은 RCT2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캐주얼과 디테일의 중간점을 잡아내다.


RCT2와 파키텍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파키텍트에 '현실적 디테일'이 꽤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직원 및 시설' 시스템을 예로 들면, 공원 손님들은 기본적으로 공원의 뒷편, 그러니까 쓰레기 처리 시설이나 직원 휴게소 등을 보는 것을 싫어합니다. 심지어 운반 직원이 상점에 물건을 넣는 것도 보고싶지 않아하기 떄문에 공원 설계시 직원 동선을 짜고, 울타리와 소품을 이용해 이런 요소들을 고객의 시선에서 가려주는게 필요합니다.



▲ 더럽거나, 고장나거나, 직원 시설이 드러나 있으면...

장식 소품의 경우 활용도와 중요성이 꽤 높아졌는데, 이를 통해 공원의 테마를 어떻게 잡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게 공원을 찍었는지에 따라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위에서 말한 공원 시설 또한 고객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지요. 때문에 공원의 기본 설계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RCT2의 경우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고, 잘 때려넣어주면 공장식 테마파크도 만들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첫 설계부터 맵을 넓게 보고 계획을 짜야 합니다.

매스컴과 랜덤 이벤트의 발동도 큰 변화입니다. RCT2에서는 없던 일종의 변수인데, 특정 놀이기구의 팬들이 버스를 타고 단체 관람을 온다거나, 상품 원자재 가격에 변동이 생겨 상점 매출이 변하는 등 다양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약간의 운이 추가된 정도인데, 운이 좋다면 이 기회를 잘 잡아 수익을 거둘수 있습니다.

각종 장식 도구의 폭이 넓어지면서 지붕의 개념이 생긴 것도 주목할만한 점입니다. RCT2에서는 실내, 실외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지하에 만들어진 놀이기구 정도는 비가 와도 정상 운행이 가능했지만, 파키텍트는 아예 장식 도구로 지붕을 만들어 비를 피할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는 비가 올 경우 우산이 없는 고객들이 모이기도 하지요. 이 오브젝트는 꽤 섬세하게 만질 수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울만도 하지만, 웬만한 어셋은 창작마당에 다 올라와 있기 때문에 초보라 해도 적용이 어렵지 않습니다.



▲ 만들기 귀찮으면 남이 만들어 둔 것으로

UI는 딱 2018년 게임에 맞춰져 있습니다. 버튼 하나로 고장난 시설을 찾아낼 수 있고, 바닥에 버린 쓰레기나 멀미 심한 코스터를 타고 난 손님들이 손수 만든 부침개도 손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RCT2에서 매의 눈으로 길을 스캔하며 폭풍 미화원 드랍을 했다면, 이젠 굳이 찾지 않아도 눈에 딱 보이게 만들 수 있지요.

종합하자면, 파키텍트는 그저 RCT2의 시스템을 따와 현대의 그래픽을 입힌 유사 리마스터가 아닙니다. RCT2의 유전자를 갖고 있되 멈추지 않고 진화를 거듭한 개선작이죠. 실제 플레이시 받는 느낌은 RCT2와 상당히 유사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을 써서 공원을 관리해야 한다는 적당한 압박감이 있습니다. 시뮬레이터로서의 디테일과 편의성의 중간점을 꽤나 잘 잡은 편이죠.



▲ 고객의 주머니 속까지 세심하게

여기서 파키텍트가 플래닛 코스터와 다른 점이 생깁니다. 파키텍트의 장점은 게임을 켜기까지 결심하는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뮬레이터라는 장르는 장르 자체로 양날의 검과 같은데, 디테일이 높을수록 보다 세세한 터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이를 하지 않을 경우 효율이 떨어져 이와 같은 행동이 강제되고, 이것이 게이머에게 피로를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을 간혹 즐기는 게이머라면 유사한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예로 들면 완성된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게임을 켜고는 싶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 신경써야 할 무수한 문제들을 생각하고는 다가올 귀찮음에 질려 결국 게임을 켜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파키텍트는 이와 같은 '게임 전 부담'을 꽤 크게 덜어낸 게임입니다. 오브젝트로 이것저것 만들면 좋지만, 만들지 않아도 상관 없고 누가 만들어둔것도 있으니 훨씬 편하게 게임 본궤도에 오를수 있거든요.


추억 탐방에도 좋지만 입문용으로도 훌륭한 타이틀


줄줄이 길게 쓴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파키텍트는 RCT2 시절의 감성은 느끼고 싶지만, 너무 디테일한 시뮬레이션 게임은 손대기 어려운 게이머들을 위한 최적의 게임입니다. 입구만 있는 공원에 길을 깔아주고, 회전목마 하나 짓고 시작하던 그때 그 감성이죠. 깨알같이 플래닛 코스터보다 가격이 싸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확실한 콘텐츠 볼륨도 지니고 있습니다. 파키텍트에는 총 26편의 캠페인이 마련되어 있으며, 캠페인을 완료할 경우 샌드박스 모드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나아가 다양한 오브젝트 파트를 통해 본인만의 테마를 만들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한 테마파크는 구획별로 테마를 만들어 둔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테마파크 건설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 캠페인은 총 26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한 디테일로 인한 피로 유발은 적은 편입니다. 시뮬레이터 팬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이런 게임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보다 완벽해지기 위한 욕망과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현실적 타협 사이에서 오는 고민입니다. 하지만 파키텍트의 디테일은 원하는 오브젝트를 그럴싸하게 만들 정도는 됨에도 너무 많은 어셋으로 인해 고민을 안겨주는 정도는 아닙니다. 게이머의 취향이지만, 아예 그 과정을 건너뛰고 싶다면 그냥 남들이 만들어 둔 어셋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 자신만의 디테일을 만드는것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본인이 RCT2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고, 그 시절 그 감성을 현시대에 맞춰 느껴 보고 싶다면, 파키텍트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테마파크 건설 시뮬레이터를 처음 손대는 분들에게도 파키텍트는 플래닛코스터에 입문하기 전, 입문작으로서 충분히 훌륭한 게임입니다. 본인이 건설 시뮬레이터의 장인이고, 어줍잖은 디테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분이라면 솔직히 플래닛 코스터를 더 추천드리지만, 인디라는 태그를 떼어놓고 보아도 파키텍트의 완성도는 꽤 높은 수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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