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굳이 VR로 3인칭을 택한 이유? E3에서 만난 일리언게임즈의 '프레타'

리뷰 | 석준규 기자 | 댓글: 9개 |




그럴싸한 모습의 VR 게임들이 유저들의 앞에 나타난지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아쉽게도 VR은 아직도 상업적으론 대중화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3년 전부터 대중화의 걸림돌로 예견되었던 가격과 어지러움, 콘텐츠 문제가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아 민망했던 감정도, 이제는 무뎌져가고 있다. 수많은 유저들은 이 신기한 기계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한 뒤 금방 다른 콘텐츠를 찾는다. 게임에서 ‘중독성’이 지속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면, 대부분 단발성에 그치고 있는 VR 게임들을 보는 마음이 참 아쉬울 것이다.

중독성에 대해 다른 장르로 넘어가서, 모바일의 수많은 핵앤슬래시 게임들은 유저들의 손에서 게임을 놓게 하지 않기 위한 갖가지 방법에 몰두한다. (처음에 봤을 때는 기겁을 했던) ‘자동 전투’ 등으로 게임 자체를 쉽게 만들기도 하고, 플레이 요소에 접근하기 좋도록 다양한 아이템을 선물하며 상당히 친절한 가이드를 첨부한다. 따라만 해도 강해지고, 버튼만 누르면 다 알아서 하는 게임들. 하나 둘 설치를 하고 플레이를 하다보니, 사람이 친절함에 익숙해지긴 참 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친절해서 귀찮지 않아 그냥 계속 하게 되는 게임. 이것도 중독성일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대답을 미룰 것이다.

그렇다면 VR 게임들이 아직도 잘 캐치하지 못한, 그리고 각종 핵앤슬래시 게임이 절실한 방법으로 선택한 ‘중독성’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다소 고전적이고 본능적인 예시로 ‘다크 소울’ 같은 시리즈가 있다. 잦은 버튼액션과 탄탄한 튜토리얼, 미려한 디자인의 최신 게임들의 패턴에서 벗어나, 유저들을 괴롭히는데 몰두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시리즈의 게임들. 하지만 오히려, 불친절했던 고전 게임들 이후로 느껴보기 힘들었던 극악의 난이도에서 오는 성취감 덕분에, 이러한 시리즈들은 승부욕 넘치는 유저들의 높은 중독성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지난 E3 현장에서 체험해 본, 개발사 ‘일리언게임즈’의 신규 게임인 ‘프레타’는 이런 어려운 타입의 중독성을 지향했다. 재미있던 점은, 무릇 VR이나 핵앤슬래시 게임이라면 어떻게든 첫 시도에 유저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하는 지금의 트렌드에서 그러한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VR로 즐기는 + 겁나게 어려운 + 핵앤슬래시 게임’. 짤막한 체험으로 느껴 본, 이 생소한 조합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 E3 2017 현장의 일리언게임즈 부스




"그나저나, 왜 굳이 3인칭 VR일까?"








많은 이들이 질문을 했을 것이다. 핵앤슬래시 장르에서, 그것도 등을 보고 플레이하는 3인칭 백뷰 시점에서 VR이 효과적일 것이냐고 말이다. VR이란 무릇 유저와 게임 주인공이 일체되어 그 어느 컨트롤러보다도 현장감있는 인터랙션을 체험하는 기기 아니었던가? 90% 이상의 VR 게임이 1인칭 시점을 택한 것은 게임으로 보나, 기술의 과시로 보나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프레타가 3인칭을 택한 것에는 분명히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일리언게임즈의 박범진 대표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그 때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만들고 있는 게 있었으니, 이걸 VR에 얹어보자. 엄청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었죠, 허허!" 사람 좋은 웃음에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조금은 맥이 빠졌다. 이유가 절실하지 않으면 어떠랴, 효과만 좋으면 된 것 아닌가. 박범진 대표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분명히 멀미가 덜 났어요. 개발 착수 당시의 VR모델의 성능이 좋지 않아 많은 게임들이 멀미를 유발하곤 했는데, 3인칭으로 보니 멀미가 나질 않았어요. 1인칭에 비해 시점 이동이 너무 크지 않고, 바라보는 목표가 분명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죠."




▲ 3인칭 VR이 가지는 장점은? 시연을 직접 해 보았다.


화면 하단 중앙,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의 주인공이 서 있다. 양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속이 빈) 손은 보이지 않는다. 별다른 인터페이스가 보이지 않고, 어둡고 광활한 배경에 주인공이 서 있을 뿐. 사실, 여기서부터 백뷰 VR의 특징이 느껴졌다. 굉장히 광활해진 시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 가만히 있는 주인공을 두고 앞, 뒤, 옆, 위의 모든 시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흔히 쿼터뷰 방식을 택하는 다른 핵앤슬래시 게임에 비해 굉장히 자유로워진 시점이다. 1인칭 VR보다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이 부담 없이 드러나고, 수많은 적들의 규모도 한 눈에 들어왔다. 더 광활한 배경의 시야가 들어오는 만큼, 월드와 환경 디자인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박범진 대표의 말처럼 어지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1인칭이 아닌 시점의 VR RPG를 체험해 본 결론은, 이 정도면 상당히 납득이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VR은 VR 게임. 장시간 하다보면 어차피 주로 보는 부분만 보게 되고, 무게나 땀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피로를 느끼기 일쑤이다. 프레타는 그것을 위해 다양한 시점을 제공한다. 일단 VR이 없이 모니터로만 플레이가 가능한데, 일반적으로 익숙한 온라인게임의 고정된 백뷰 화면이 모니터에 출력된다. 또한 VR 모드에서도 1인칭, 숄더뷰, 완전한 3인칭 시점의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테스트 유저들은 백뷰를 선호했다고.

직접 해보니 3인칭 VR의 선택은 납득이 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불친절함' 이었다.


"왜 이렇게 어려워요?"




▲ 멋있어 보이지만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불친절했다. 물론 일리언게임즈나 박범진 대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서문에서 언급한 친절한 가이드나 자동 전투, 적당히 멍청한 적이나 2초 뒤에 어디를 때릴 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보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3인 레이드에 도전하며, 그동안의 VR 게임을 생각하며 프레타의 난이도를 얕본 기자는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VR 기기를 얼굴에 쓰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바짝 긴장한 기자의 모습을 보며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도 없었다. 물론 입으로는 너무 어렵다고 했지만, 몸으로는 잔뜩 집중하며 살 떨리는 한 방 한 방에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은 이 불친절함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VR 게임들이 거의 다 단발성이더라구요. 플레이타임도 짧고. 계속 앉아서 장시간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쉬운 RPG보다는 도전적인 RPG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밸런스를 중점적으로 잡아 나가고 있습니다. 둘이서 협동으로 할 수 있는 되~게 어려운 모드도 만들 계획이 있어요. 돈을 투자해서 쉬워지는 게임보다는, 난이도가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스킬로 극복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정신없이 패드를 누르며 땀이 찬 손을 보니 박범진 대표의 목표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았다.

호쾌하게 적들을 쓸고 아이템을 수집하는 지금까지의 핵앤슬래시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이었다. 물론 단순히 강력한 공격력과 단단한 몸을 가진 적들이 예고도 없이 튀어나오는 것만이 불친절함의 전부는 아니었다. 별다른 설명이 없는 진행과 UI가 어쩌면 가장 큰 불친절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버튼을 눌러야 어떤 기술이 나오는지에 대한 설명도 굉장히 간략하며, 방향 화살표나 적들의 공격 패턴, 주인공의 스킬 설명을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 흔한 자동 전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 동안 자동 전투 없이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던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드는 부분이었다.

캐릭터 디자인도 마찬가지. 마법사 클래스의 조금 귀여운 주인공 외에는, 몬스터는 물론이고 NPC, 다른 클래스의 주인공까지 모두 과한 섹시함이나 발랄함은 찾아볼 수 없는 외형이었다. '스카이림' 시리즈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흔히 한국과 중국의 감성에 대비시키곤 하는 '북미 감성'이 넘치는 외형을 하나같이 가지고 있다. 꽤나 실용적인 모습의 갑옷을 입은 주인공들도 그렇고, 그다지 위대해보이지 않고 꾀죄죄한 NPC가 퀘스트를 주는 마을 역시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은 음침한 곳이었다. 최근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디자인 감성이었다. 평소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RPG 캐릭터들에 이물감을 느끼고 있던 기자에게는 꽤나 와닿는 외형이었고, 추후 다양화될 장비들을 착용했을 때의 모습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 그나마 귀여운 외형의 마법사 클래스와, 2차 창작을 기대하지 않은듯한 보스의 모습이다.


개발 중인 프레타, 성공할 수 있을까?








약 20여 분 간의 일반 스테이지 시연과, 낯선 두 명과의 보스 레이드 시연을 끝내고 부스에서 내려왔다. 3인칭 백뷰의 VR 핵앤슬래시, 그것도 가득한 어려움과 '다크'함을 갖고 북미 VR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프레타의 성공 가능성을 이르지만 내심 점쳐보았다. 하지만 그 전에, 어쩌면 서두에서 나왔어야 할, 일리언게임즈와 프레타의 역사에 대해 적어본다. 본 내용은 지난 3월,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발췌했다.

사실 '프레타'는 지난 2014년 넥슨이 발표한 모바일 3D 액션 RPG 였다고 한다.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던전 콘텐츠 및 실시간 집단 PvP 시스템을 구현한 타이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부 사정으로 개발이 중단되었다. 이후 프레타 개발팀은 별도로 독립해 '일리언 게임즈'를 설립, VR용 게임으로 플랫폼을 전환해 개발을 이어가게 되었다.

"본래 저는 넥슨 기획조정본부에 있었고 넥슨 모바일 개발 자회사 설립에도 관여했었죠. 그 자회사가 이후 본사에 흡수되었는데, 저는 해외사업부랑 모바일 마케팅 플랫폼 담당으로 빠졌고, 제 동료들은 계속해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희 모두가 '회사를 나와서 정말 우리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후 저와 제 동료는 회사를 나와서 2015년 12월에 '일리언(ILLION)'이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프레타'는 본래 넥슨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였어요. 약 3년 간 개발을 하다가 '히트'가 모바일 게임 시장을 강타했죠. 내부적으로 출시 시점을 미루자는 의견이 제기됐어요. 그래서 개발된 리소스는 많은데 출시는 하지 않은 상태였고요. 넥슨과는 별도로 이야기를 했고요. 저희가 해당 프로젝트를 들고 나오는 걸로 협의했습니다. 이 리소스를 토대로 현재 VR용 게임 '프레타'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진정 하고 싶던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지금의 프레타.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엔 개발 2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은 다소 이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3인칭 백뷰 VR의 이유를 테스트 유저들에게 성공적으로 납득시켰고, 이미 만들어진 리소스를 통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모델링의 난제들이 해결되었음은 아주 좋은 시작의 신호일 것이다. 하지만 VR 게임에서 진정한 중독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아직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려움과 재미 사이의 팽팽한 균형을 잡는 일, 심플하지만 도움이 될 갖가지 UI를 만드는 것, 그리고 RPG에서 필수적인 심도 있는 스토리가 구축되어야만 비로소 완전한 게임의 형태를 갖추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1111 + On'. 일리언(Illion)의 게임사명은 2015년 11월 11일, 박범진 대표와 동료들이 새롭게 출발한 날짜에서 비롯되었다.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열정에 전원을 올린 그들이, 앞으로도 'Off' 없이 나아가 새로운 VR RPG의 지평을 열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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