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우리가 꿈꿨던 연어들의 고향, '옥토패스 트래블러'

리뷰 | 원동현 기자 | 댓글: 22개 |


⊙개발사: 스퀘어 에닉스, Acquire ⊙장르: RPG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발매일: 2018년 7월 13일

게이머들은 종종 복귀 유저를 연어라고 부르곤 한다. 한때 멀리 떠났다가도 다시 기존에 플레이했던 게임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산란기의 연어와 같다는 뜻이다. 게이머들이 보여주는 이런 연어와 같은 모습은 비단 특정 게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게이머들은 새것을 찾다가도 옛것을 그리워한다. 예전의 그 감성, 그 두근거림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열망을 가진 탓이다.

스퀘어 에닉스의 신작 '옥토패스 트래블러(Octopath Traveler)'는 이런 연어들을 위한 안식처 같은 게임이다. 얼핏 '크로노 트리거'나 '파이널판타지'를 연상케 하는 도트 그래픽에 매력적이고 강렬한 캐릭터, 그리고 추억어린 턴제 전투까지 그대로 담아냈다. 어릴 적 졸린 눈을 비비며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회색빛 조이패드가 떠오르는 그런 모습이다.

현대의 기술로 고전의 도트 그래픽을 구현하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는 마사시 타카하시 프로듀서, 그 풍경은 연어들의 고향과 닮았을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고전미와 현대미의 절묘한 조화



▲ 도트에 스며드는 광원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첫 모습을 두 눈에 담았을 때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올드 JRPG 팬들의 추억을 자극할 아기자기한 도트 그래픽에 세련미 넘치는 광원이 절묘하게 스며든다. 또한, 전체적인 디자인이 아기자기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어 게이머에게 소위 '보는 맛'을 제대로 제공한다. 그저 필드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게임이다.

언리얼 엔진4 기반인 만큼,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게임 플레이 내내 도트와 3D 그래픽을 동시에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캐릭터와 배경 텍스처는 도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전투 내 이펙트나 몇몇 원거리 배경은 3D 이펙트를 십분 활용하여 현대미와 고전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냈다.



▲ 학자 사이러스의 스테이터스 화면

이 외에 UI, 캐릭터 디자인 역시 굉장히 세련되게 다듬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한 부분에서 모난 부분을 보여주지 않으며, 전체적인 디자인이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추구하는 고전 JRPG의 가치 역시 훌륭하게 담아냈다. '아트 디렉팅'이 아주 모범적으로 진행됐다는 증거다.

전체적으로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을 아트 스타일을 추구했고, 실제로 이루어냈다. 고전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같은 작품에 추억을 갖고 있던 유저는 반가움을 금치 못할 테고, 이를 모르는 유저 역시 독특한 매력에 마음이 이끌릴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아트 스타일은 매혹적이다.


그 시절의 손맛, 오늘날의 화려함
사운드랑 이펙트도 일품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전통적인 턴제 전투를 기반으로 한다. 최대 4인의 캐릭터가 동시 출전해 행동 순서에 맞추어 공격, 직업 스킬, 방어 등 다양한 전략적 행동을 구사할 수 있다.

적은 모두 몇 가지의 약점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맞추어 공격할 경우 방어 게이지가 타격수에 맞추어 줄어들게 된다. 방어 게이지가 0이 되면 ‘브레이크’라는 문구와 함께 보호막이 깨지는 듯한 연출이 나오고 일시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 이때 1턴마다 1개씩 쌓이는 부스트 게이지를 활용해 소위 ‘극딜’을 넣는 것이 전투의 핵심이다.



▲ 시원한 타격감을 자랑하는 '브레이크'

적군의 약점 속성은 특정 스킬 혹은 직접 타격하는 방식으로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자 캐릭터인 ‘사이러스’의 애널라이즈나 스터디 포(Study foe) 같은 스킬로 적의 약점을 손쉽게 파악하고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통해서도 하나하나 알아낼 수 있으나, 부스트 게이지 수급을 위해 브레이크 타이밍을 관리해야 할 때는 이러한 조작이 비효율적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전투의 템포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키 조작에 대한 피드백이 시원시원하게 돌아오며, 캐릭터 모션 역시 간결해 턴제 기반임에도 전투가 느리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울러 드라마틱한 카메라 연출과 화려한 스킬 이펙트 덕에 보는 맛까지 잡아냈으며, 부스트 모드를 활용한 일발쾌감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2차 직업(Secondary Job)을 통해 보다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상인’ 트레사의 경우 돈으로 랜덤 NPC를 고용하는 등 독특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전투 능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헌터’ 같은 2차 직업을 추가할 수 있으며, ‘약제사’ 같은 직업으로 보조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4명의 파티 구성으로 총 8개의 잡을 오롯이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

아울러 몇몇 직업의 패스 액션(Path Action)은 전투의 감초가 되기도 한다. 프림로제의 매혹(Allure)이나, 오필리아의 인도(Guide)는 마을이나 필드에서 NPC를 미리 섭외한 뒤 전투에 소환하는 게 가능하다. NPC의 능력과 특성은 천차만별일뿐더러 간혹 다른 캐릭터보다 월등한 전투 능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여덟길의 여행자, '옥토패스 트래블러'
8갈래의 길, 8명의 이야기




옥토패스 트래블러, 여덟길의 여행자, 이 이름에 걸맞게 게임 내에는 총 여덟 명의 주인공이 존재한다. 숨겨진 책을 찾고자 하는 학자 사이러스,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여행길에 오르는 무희 프림로제 등 모든 캐릭터는 저마다의 스토리와 개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를 잔잔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이 게임의 주된 골자다.

플레이어는 게임 시작과 동시에 한 명의 캐릭터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홀로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캐릭터로 게임을 먼저 시작할 뿐이며, 이내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른 캐릭터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캐릭터와 합류하게 될 때마다 그 캐릭터만의 프롤로그를 체험해볼 수 있기에 이해도에 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설령 캐릭터 프롤로그를 생략했다 할지라도 차후 저널(Journal) 기능 등으로 스토리를 다시 복기할 수 있으며, 특정 NPC를 통해 캐릭터 프롤로그를 직접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 지나간 스토리를 다시 보여주는 저널 기능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개 구조는 바닐라웨어의 97년도작 프린세스 크라운과 닮았다. 동 세계관, 동 시간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각 인물들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두 게임이 추구하는 바가 어느 정도 일치한다. 물론 '프린세스 크라운'은 '옥토패스 트래블러'에 비하면 일자진행에 가까웠지만, 소녀가 책을 골라 원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당시 굉장한 '센세이션'이었다.

특히 왕녀 그라드리엘과 기사 에드워드가 같은 사건을 서로 어떻게 해석하는지 게임을 통해 그 차이를 보여줄 때, 훗날 게임은 예술의 영역에 닿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 '프린세스 크라운'의 전개 방식이 떠오른다

옥토패스 트래블러 역시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캐릭터를 만나며 그 인물의 속사정을 엿볼 때 마다 차분히 게임 속으로 몰입되는 것이 느껴졌다. 거대한 파도와 같은 흐름은 없었지만, 잔잔하고 깊은 호수와 같았다.

하지만, 결국 발목을 잡는 것은 언어였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장르 특성상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모두 중요하다. 이번에 한국어화가 안 되는 만큼, 적어도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영어가 쉬웠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다소 어려운 편이다. 여타 게임에 비해 굉장히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각 캐릭터가 사용하는 말투나 표현법이 달라 그 매력을 십분 느끼기에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상인 트레사는 비교적 쉬운 영어를 구사하지만, 학자 사이러스의 경우 굉장히 고풍스러운 단어를 빈번하게 구사한다. 게임의 대략적인 큰 줄기를 따라가기엔 기초적인 영어실력으로도 큰 무리가 없겠지만, 캐릭터의 깊은 매력까지 이해하기엔 어느 정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꿈꿨던 연어들의 고향
OCTOPATH TRAVELER




사실 이번 데모를 플레이해보기 전까지 '옥토패스 트래블러'에 대해 몇몇 회의적인 부분이 남아있었다. 고전적인 플레이방식과 아트 스타일로 현대적인 입맛에 맞춰진 게이머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혹시나 올드 유저와 신규 유저 둘 다 만족시키지 못하진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이 앞섰었다.

하지만, 스퀘어 에닉스가 괜히 JRPG의 명가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금 깨달았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에는 지난 세월 동안 그들이 쌓아왔던 JRPG의 정체성이 진하게 녹아있었다. '크로노 트리거'의 감성과 '파이널 판타지'의 재미가 이곳에 있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JRPG 팬들에게 있어 더없는 연어의 고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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