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 재미없네, 어 아침이네" - 문명6 체험기

리뷰 | 이현수 기자 | 댓글: 67개 |



재미없었다. UI도 불편하고 AI도 멍청했다. 이번 문명은 평작이라 생각했다. 'DLC로 완성도를 갖추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새로 생긴 요소들을 몇 개 경험하고 나니 그저 그랬다. 그래서 게임을 끄고 자려고 보니 출근할 시간이었다.

한동안 생각나지 않다가 토요일 밤 동료들과 23시부터 스카이프를 연결해 문명 멀티를 했다. 여전히 다를 것 없는 문명이었지만, 수다 떨면서 하니까 조금은 덜 지루했다. 한참을 그냥저냥 하고 나니까 전화가 울렸다. 일요일 아침 라이딩의 기상령을 넘기 위한 알람이었다.

그렇다. 문명6은 눈 감고 있으면 생각나는,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그런 게임이 아니다. 막상 하면 그럭저럭 즐거운데, 그렇지 않으면 별 생각 안 나는 그런 게임이다. 워낙 기반 토대가 훌륭하니까 계속 하게 된다. 다만, 한 번하면 엄청난 시간을 하게 된다. '딱 한 턴만 더'를 외치면서.



■ 도대체 문명이 뭔데? - "유혈 사태 나고 그러는 게임은 아냐. 피 한 방울 안 나와"

'문명하셨습니다'로 대변되는 이 게임은 저 말이 나오기 전부터 탄탄한 지지층을 가진 게임이다. 지금은 게임유통업에서 손을 뗀 SKC(99년 게임 영업을 분사하여 위저드소프트를 만든다)나 쌍용소프트가 유통을 맡았었다. 그러다 문명5가 선풍적인 유명세를 치르면서 순식간에 메인스트림에까지 합류하게 된다.

그래서 비교적 젊은 세대는 문명을 '간디 짤방'으로만 접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의 템포 빠른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와 장기적인 흐름, 그리고 '턴제'이기에 진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나 같이 소위 4X라 불리는 턴제 시뮬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게임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루한 반쪽짜리 게임일 테니까.

문명은 말 그대로 '인류의 문명' 그 자체를 다루는 게임이다. 뗀석기 인류가 돌을 갈고, 주물을 만들고, 사회를 이루면서부터 화성에 식민지를 건립하는 것 까지의 변화상을 담았다. 도시를 건설하고 발전시키고 주변을 탐험하고를 무한히 반복한다. 자신의 터전에서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켜간다.

그래서 게임을 하다 보면 역사서에서 봤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예를 들어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전쟁과 포르노로 인해 촉발되고 다시 이를 위해 발전된다는 모습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아, 물론 게임에 포르노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외교적 마찰 역시 경험할 수 있으며 보좌관(튜토리얼)들의 말대로 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퍼펫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고. 뭐 암튼 그렇다.



▲ 나는 튜토리얼 보좌관 대신 시리를 선택했다.



■ 전작에서 뭐가 바뀌었나? - "새로운 시도들이 엿보이는 디자인"

'문명6'는 전작보다 문명에 특징을 주려고 했다. 전작의 경우 문명의 고유 특성, 고유 유닛, 추가 요소로 문명을 규정지었다면 신작은 지도자 특성과 고유 요소가 더 추가됐다. 이에 따라 초반 과학, 문화 발전이나 점령 방향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혈사태로 유명해진 간디의 인도는 '진리파악운동'으로 전쟁 중 상대에게 2배의 전쟁 피로도를 선사하며 종교보너스를 받는다. 타 문명에는 없는 계단식 우물을 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고유 유닛으로 '바루'를 가지게 되어 초반 전투에 강력한 이점을 지닌다. 바루가 업그레이드되는 탱크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므로 초반의 강력함을 유지하고 전투력에 구멍이 생기는 중반부를 문화, 과학으로 이끌면 된다. 특성을 활용하여 종교전쟁으로 컨셉을 잡아도 되고.

이처럼 문명에 특징을 부여해 개성을 강화하려고 한 모습이 보인다. 선택에 따라 승리를 위한 전략의 방향을 다르게 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유저들은 기획자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파이락시스는 또 간과한 것 같다.




'유레카'와 '영감'으로 변화를 주고 문화를 '제2의 과학'으로 만들어서 과학 의존도를 낮추려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정형화된 방향이 각 승리조건 별로 정착되어 버렸다. 이는 후술할 AI의 멍청함과 화학 작용을 일으켜 게임의 긴장감을 낮춰버렸다.

즉 문명의 선택은 초반의 우위 혹은 중반 타이밍의 찌르기 정도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전락했다. 역대 모든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유레카'와 '영감'으로 획일화를 탈피하고 유동적인 운영을 선사하려는 시도 자체는 훌륭했다. 유레카 발동을 주요 아젠다로 잡고 문명을 이끌어나가면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트리를 따라 빠르게 한 방향으로 가속할 수는 있다. 운만 따라준다면 서사시 기준으로 1800년대에 정보화 시대에도 들어갈 수도 있다. 의도와 다르게 다양성의 대척점에 서버린 거다. 아이러니하다.



▲ 유~레카!

문명 6은 '심시티' 요소가 굉장히 강해졌다 '특수 지구'라 불리는 도시 분할 시스템은 게임의 양상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지구는 특정 기능에 전문화된 시설이다. 기존에는 도시 하나에 즉 한 타일에 도서관, 병영, 성소, 은행 등을 모두 몰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도신 내부 '도심지'에 몇 개의 건물만 지을 수 있고 나머지는 도시 외부, 경계 내 타일에 짓게 변경됐다.

타일 하나하나의 중요도가 올라감으로써 이를 어떤 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혹은 짧은 기간 전략적으로 부스팅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관리'관점으로 변했다. 특수 지구 건물 역시 주변의 환경에서 보너스를 받거나 해당 범위를 가지기 때문에 건물 배치가 매우 중요해졌다. 이는 불가사의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생각 없이 건물을 지었다가는 나중에 피눈물 흘리게 된다.

또한, 특정 건물들은 일정 이내 범위 조건만 충족한다면 다른 도시에까지 효과를 제공한다. 특히 생산력을 올려주는 공장 같은 경우 지형 및 도시 조성을 잘한다면 하나의 공장으로 몇 개의 도시가 '망치 혁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 배치는 매우 중요해졌고, 고대시대부터 장기적인 안목에서 건물을 배치해야한다. 하고 싶다고 불도저식으로 마구잡이 개발하면…. 역사는 항상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던가?



▲ 난개발의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전작에서 사라져서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했던 종교 승리가 부활했다. 종교 점수는 특수 지구인 성지를 포함한 각종 조건에서 획득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종교를 창시, 전파할 수 있다. 사라졌던 피 튀기는 아니 번개 튀기는 종교 전쟁이 다시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라고 표현되는 이 종교 전쟁에는 선교사, 사도, 이단 심판관이 활약한다. 이들을 이용해 다른 문명의 도시에 자신의 종교를 믿게 만들면 종교 승리에 당도할 수 있다. 일본 AI의 경우 종교 승리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이 친구들이랑 싸우게 되면 정녕 총성 없는 전쟁을 마주하게 된다.

물질적인 문명 경계선과 다른 영적인 경계선을 따로 보면서 느끼는 희열은 꽤 괜찮은 경험이다. 온 우주가 도와주고 있으므로 혼이 담긴 또다른 지배 사업이랄까.

게임 디자인만 두고 봤을 때는 종교 승리는 이른 시일 안에 승리를 쟁취하게 만들 수 있다. 파이락시스의 안톤 스트렌거 디자이너 역시 이러한 뉘앙스의 멘트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무척 귀찮으며 그리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종교가 퍼져나간다는 느낌보다는 방어막을 뚫고 종교 유닛을 산화시키는 느낌이다. 물리적인 전쟁과 느낌상 전혀 차이가 없다.



▲ 또 다른 의미의 영토, 종교

문명6에서 문화는 굉장한 지위 상승을 경험했다. '제2의 과학'이라고 불려도 손색없다. UI 창만 봐도 문화의 지위가 상승한 것이 느껴질 정도다. 본작에서 문화는 테크트리를 제공한다. '정책'이라 불리는 이 테크트리들은 군사, 경제, 외교, 와일드카드로 구성되어있다. 문화를 융성시킬수록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많아진다. 정책을 바꿔도 '유산'이 남는다.

문화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영감'을 통해 개발속도를 당길 수 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의 행동이 기술과 문화 전체에 영향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끼친다. 그러나 실제로 플레이하다 보면 선택의 폭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과학과 문화의 최적화를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연계하는 상황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걸작 등을 통한 관광력도 약간은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고. 일단은 큰 틀을 잘 짜놨기 때문에 훗날 DLC 등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

도시의 성장에는 건물의 배치뿐만 아니라 '편의시설'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문명4의 '위생'과 비슷한 영향을 끼친다. 전작의 '행복' 같은 경우 문명 전체에 적용됐다. 문명의 경계선이 확장될수록 행복감이 줄어들어 성장의 둔화하는 시스템이었다.

반면 문명6의 편의시설은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올려줘야 할 요소다. 편의시설 요구량에 여유가 있으면 도시의 생산력이 오른다. 반대로 부족하면 생산력이 떨어진다. 편의 시설이 현저히 부족하면 급기야 반란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제한된 타일 내에서 도시 성장과 편의시설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상의 변화로 전작과 같은 슈퍼도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플레이어의 도시뿐만 아니라 '도시 국가'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작에서는 그냥 턴을 늦게 돌아오게 하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친구였다면 이제는 도시국가 보너스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됐다. 생산력이나, 과학력을 받을 수도 있으며 해당 국가의 도시 유닛들을 빌릴 수도 있다. 또 사절을 보내 종주국이 되면 각종 보너스를 받을 수 있어 운영하는데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전작보다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 관리 측면에서 도시 국가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위인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제 위인들은 실명으로 고유의 능력을 갖추고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의 경우 철갑선과 연결되어있거나 에스티로더는 향수와 연관이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전작과 달리 누구에게나 위인이 턴이 되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 위인 점수를 모아 뽑는 형식으로 변했다.

덕분에 위인을 두고 모든 플레이어들이 경쟁할 수 있게 했다. 내가 필요한 위인을 확보하는 전략은 물론이고 상대 승리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적 영입도 염두에 두게 했다. 할 수 있는 행동과 전략적 사고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변화다.



▲ 레비 스트로스는 청바지를 만든다.

그 외에 그래픽 풍의 변화나 전쟁페널티의 강화, 전투 모션 등의 강화도 신작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래픽은 약간의 카툰 지향의 그래픽으로 변화했다. 전쟁 페널티를 강하게 하고 이 페널티를 약하게 하는 선택지를 다수 제공한다. 전쟁 피로도 역시 눈여겨볼 요소 중에 하나다. 전투 모션의 경우 괄목할 정도로 디테일해졌다. 특히 적을 마무리 지을 때는 '페이탈리티'라고 불러도 어감이 이상하지 않은 특수한 마무리 모션이 나온다. 처음에만 '오~'하다 말 기능이지만. 어차피 나중에는 빠른 이동, 빠른 전투 키고 게임하니까.

전투 유닛의 경우 한 타일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쌓지는 못하지만, '군단', '군대'의 개념으로 합칠 수는 있게 했다. 진급 테크트리도 좀 더 명확해졌고. 노동자는 일회용(?)으로 변했다.

전략자원은 아직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작보다 그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개별 유닛당 자원이 아니라 문명에서 보유한 자원만 있으면 해당 유닛을 사용할 수 있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략자원 개체가 전작보다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스타팅 포인트에 대한 의존도를 좀 줄었다. 게임 초반 국가 성장과 운영 방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많이 사라졌다. 사치 자원과 전략자원이 주변에 풍족하다면 좋지만, 없어도 성장해나가는 데는 전작에 비해 크게 무리가 없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얼마나 이해했느냐에 따라 충분히 성장할 수 있게 변했다.



■ 멍청한 AI들아!! 절망적인 UX야! - "아이고... 우리 아버지가 날 볼 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전체적으로 문명6는 문명4와 문명5를 적당히 섞어서 약간의 변화를 시도한 '전체적인 틀은 괜찮은' 게임이라고 평하고 싶다. 괜찮은 게임에 굳이 조건부를 다는 이유는 'AI(인공지능)'와 'UI(사용자 인터페이스), UX(사용자 경험)' 때문이다.

문명6의 AI는 심각하다. 'DLC로 AI 업데이트를 내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멍청한 AI는 게임 초반부터 외교 부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나 로마의 경우 팽창하는 문명을 선호한다. 그런데 게임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한다. 그래서 외교에서 AI들은 시도 때도 없이 '삐진다'. 문명의 수호자이자 구도자이며 지도자가 아니라 질풍노도 시기의 청소년들 같다.

문명마다 정해 놓은 기준이 있고 해당 범위를 넘어가면 화를 내거나 외교적인 유감을 표하는데 수치화된 자료가 없어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럽다. 진짜 온갖 통수와 명분을 찾기 위한 끼워 맞추기가 판치는 외교의 느낌을 구현하고자 했다면 성공한 거다. 그러나 요즘 게임 디자인의 추세가 '수치'임을 상기하면 그리 훌륭한 디자인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이는 이해할 수 없이 치명적인 AI 로직과 맞물려 플레이어에게 허탈한 웃음 혹은 생뚱맞음을 선사한다.



▲ 이렇게 왜 화났는지 말이라도 해주면 양반.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유저라면 AI를 상대할 때 초반 일꾼을 건드려 상대가 발전을 못 하게 하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AI 일꾼을 치면 모든 적 일꾼이 우르르 몰려와 일렬횡대로 따라오는 행태를 보게 된다. 스타크래프트보다 근 20년 늦게 나온 문명의 AI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전쟁하지 않는 문명은 유닛을 업그레이드하지 않는다. 국고에 몇만 원이 있어도 전략자원을 보유하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최상위 난이도에서도. 자위를 위한 병력도 준비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수메르의 전차쇄도와 야만인을 겨우 떨쳐내고 기지개 좀 켜볼까 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전차를 타고 다니는 문명을 상대하면 김빠진 맥주를 먹는 것 같다. 4X에서 도전욕과 성취욕이 얼마나 대단한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파이락시스가 이런 실수를 했다. 차차 패치로 고쳐지리라 믿는다.



▲ "오빠는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UI와 UX는 절망에 가깝다. UX는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게임을 실행하고 게임을 하고, 바탕화면으로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UX로 표현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게임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원하는 정보를 표시하는 위치, 어떤 정보를 빠르게 볼 수 있을지, 원하는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하는지 등 모든 것이 UX 대상이다. 그리고 이 모든 UX를 가능케 해주는 각 시스템 요소가 UI다. 이 둘을 명확하게 나누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나 이 글에서는 앞선 문장으로 정의한다.

어떤 UX가 좋다고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시대상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문명6의 경우 시리즈에서 내려오던 UX를 별 고민 없이 그대로 적용했다는 점이 문제다. 덕분에 적응 자체에는 별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아주 사소한 불만이지만 문명6은 과학승리를 위한 중요 프로젝트들을 제외하면 별다른 알림이 없다. 시대를 넘어가도 바뀐 변화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시대를 넘어갈 때 짧은 효과음과 함께 화면 중앙에 'XXX 시대'라고만 잠깐 언급하는 정도다. 자연 확장 타일에 대한 정보도 부실하다.

타일에 관한 세부정보도 보기 불편하다. 매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대로 설명해주기 부족하다. 국립공원을 지어보려고 박물학자를 뽑아놓고도 헤매는 경험은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스팀 클라우드 미지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알림창이 시야를 가리는 것도 은근히 불편하다.

타일에 마우스를 올렸을 때 팝업되는 정보창이 바로 나오지 않거나 빠른 이동을 했을 때 중간에 유닛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은 매우 사소한 불편함이지만, 게임의 완성도를 떨어트린다. 실효성이나 직관성이 너무나 떨어진다. 처음에 게임을 접했을 때 '차라리 우리나라 모바일 UI 기획자들에게 배워가던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마감이 많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사실 게임에 있어 UX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 사용 편의성보다 아마 재미에 많이 집중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문명처럼 전 세계에 런칭되어 여러 가지 문화환경에서 재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UX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야 했다. 많은 이들의 만족감을 끌어내 '정말 편해졌어'라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했다고 본다.

UX 디자인은 게임 디자인을 포함한 모든 디자인 환경에서 사용자 경험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창조활동임을 상기하면 문명6의 디자인은 마감이 부족하다.



■ 그래서 리뷰가 왜 이렇게 늦게 나왔나 - "멀티 플레이하느라..."

문명6를 하면서 크게 마음에 든 부분은 멀티 플레이였다. 개인적으로 멀티 플레이를 피하는 성향인데도 말이다. 흔히 4X의 멀티를 생각하면 지루함이 먼저 몰려오기 마련이다. 내 턴하고 다른 사람 턴하고... 이를 무한히 하다 보면 쉽게 지치는 것이 당연지사다. 문명6의 멀티는 전작보다 템포가 좀 빠른 느낌이다. 멍청한 AI와 작별하고 사람들끼리 하는 게 훨씬 재미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너무나 흥미롭다. 문명에서 무슨 스토리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문명 멀티 플레이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오픈 월드의 비선형적 스토리나 '언차티드' 같은 게임의 선형적 스토리와 개념이 다른 스토리가 탄생한다.

테이블 RPG의 스토리와 비슷하다. 멀티 플레이어에 참여한 인원끼리 이야기를 만들어가니까 완전히 똑같은 게임은 없다. 사람은 원래 예측할 수 없는 동물 아닌가. 하물며 랜선 콘센트 반대편의 사람인데 예측과 상식이 통할 리가. 어쨌든 멀티 플레이는 한 번 하면 몇 시간을 잡아먹는 타임머신이었다.



▲ 멍청한 AI를 여럿 두고 멀티플레이에서 '까는' 재미도 있다.

요약하자면 '문명6'는 마감이 조금 실망스럽지만, 전체적인 틀 자체는 훌륭한 게임이다. 뼈대를 잘 잡아놨으니 패치 혹은 DLC로 완성될 일만 남은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과연 DLC로 게임을 완성하는 게 올바른 행동인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배제하고 향후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입이 떡 벌어지게 칭찬하고 추천하고 싶은 게임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작을 해봤다면 혹은 문명3나 문명4를 해봤다면 풀프라이스가 아깝지는 않을 것 같다. 워낙 기반이 탄탄한 게임이라 위에 써놓은 단점이 별 공감이 안 된다면 매우 훌륭한 게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중독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매우 조심스럽지만, 중독성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면 문명의 그것은 아직 건재하다. 한 번 플레이하면 몇 시간 동안 붙잡게 한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가끔 이런 글을 보곤 한다.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분들은 문명을 하시면 안 돼요'라고. 글쎄. 약간은 과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게임 시간조차 조절 못 하면서 무슨 중대한 기회를 맞는다고 그리 유난인가. 난 그냥 딱 한 턴만 더 하러 가련다. 딱 한 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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