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여자 친구와 다툰 어느 날 미래의 여친님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리뷰 | 이인규 기자 | 댓글: 10개 |




⊙개발사: Tales# ⊙장르: 비주얼 노벨
⊙플랫폼: 안드로이드/iOS ⊙출시: 2016년 6월 22일/24일


사랑도 싸우면서 성장하는 거라곤 하지만 여자 친구와 싸우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다. 특히 우리 사이에는 더 그렇다. 6년간 지내오면서 싸우는 일 없이 지내왔지만, 요새 들어 싸움의 횟수가 잦아진 기분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연애 세포가 죽어버린걸까?

비가 오는 저녁 심란한 마음으로 스토어를 뒤적이다 죽어버린 연애 세포를 깨워줄 게임을 발견했다. '미래의 여친님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라는 게임 타이틀에서부터 연애 세포를 마구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임 시작 후 타이틀 화면에서부터 들려온 누군가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순간 흠칫하며 이어폰을 집어 던졌다.

이게 비주얼 노벨인가? 감탄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오글거리는 것에 면역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큰 도전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나의 죽어버린 연애 세포를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판단 아래 타이틀 화면을 지나 위험한 세계로 들어섰다.


■ 게임을 잘못 고른 것 같다.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비주얼 노벨을 처음 접한 만큼 장르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이런 장르의 경험이 많은 동료 기자의 의견은 물론 인터넷의 힘을 빌려 정보를 얻기도 했다. 네이버 게임용어사전에서 알려주는 비주얼 노벨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비주얼 노벨’(Visual Novel)은 게임의 진행을 묘사함에 있어, 마치 소설처럼 텍스트(Text)의 비중이 극도로 높은 작품들을 총칭하는 장르명이다. 텍스트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소설이나 전자책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비주얼 노벨은 텍스트에 그림과 음악을 곁들이고, 사용자가 이야기의 진행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된다.

※ 출처 : 네이버 게임용어사전: 장르/제작/플레이용어, 2013. 12. 12.

예상한 대로 스토리는 남자 주인공 태인의 시점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곤 당연하게 태인이 되어 미래에서 온 여자친구와 꽁냥꽁냥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일만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남자 주인공은 연애 세포는커녕 그녀를 의심만 하고 있고, 반대로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고백을 받기 위해 안달 나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선택지는 남자 주인공이 고른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첫 만남에서부터다. 남자 주인공의 뒤를 따라온 여자 주인공이 미래에서 왔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다. 남자 주인공은 혼란스러워하며 이해하지 못할 독백을 내뱉고 있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대사에 나까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이 여자 상당히 도발적이다. 첫 만남부터 집에서 재워달란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의 행동이 더 가관이다. 싫단다. 가는 여자는 안 잡아도 오는 여자는 막지 말랬는데. 아무래도 연애 세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갈 곳 없는 미래 여자친구의 부탁에 무엇인가 홀린 듯 허락해 버리는 남자 주인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그래 연애 세포가 없으면 그냥 본능에 충실해!"

처음 계획했던 모든 것이 어긋났다. 남자 주인공의 절친 1처럼 둘 사이가 호전될 수 있도록 코치하는 처지에 놓여 버린 것이다. 연애 세포를 깨우러 들어온 게임에 내가 왠지 남자 주인공에게 연애를 가르쳐야 할 판이다. 달달해 보이는 게임 타이틀을 보고 무작정 게임을 설치해버린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 그래 내가 남자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코치라도 확실하게 해주자.

스토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부터 시작됐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태인의 질문으로 알 수 있었던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이름은 유린. 지금으로부터 5년 뒤의 미래에서 왔고 실제 나이는 20살. 그리고 연애 세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인의 미래 여자친구다. 뻔한 질문에 속으로 더 자세한 걸 물어보라고 소리쳤지만 선택지는 그게 다였다.

그래도 한 가지 수확은 있었다. 이 녀석 생각보다 내 유머 코드와 잘 맞는다. 짧은 멘트였지만 갑자기 태인에 대한 호감도가 급 상승했다.



▲ 유린이라... 확실히 내 어이를 유린하긴 했지.



▲ 거기다 집도 잘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선택지를 통해 둘 사이의 관계를 진전시킬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애초에 선택지 출현률이 낮기도 했지만. 그래도 흘러가는 흐름을 통해 두 사람의 성격과 스토리의 구성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 드라마에서 보면 절친 1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랑의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게임에는 두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선택지를 살펴보았을 때 두 사람의 관계를 진전시킬 중요한 선택지는 더이상 없을 것 같다. 고로 나는 절친 1이 아니라 그냥 엑스트라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선택지는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엑스트라 4나 5 정도는 아니다. 그냥 친구 엑스트라 1 정도?



▲ 그냥 친구 엑스트라 1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진 못했지만 스토리는 계속 진행됐다. 둘은 보통의 연인들처럼 길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사실 유린의 손에 이끌려 이리 저리 돌아다닌 것 뿐이지만, 태인도 썩 나쁘게 받아 들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둘 사이를 급격하게 가깝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여자 친구가 차려준 맛있는 '아침밥' 모든 남자 친구들이 원하는 궁극의 존재. 하지만 기대한 것과 다르게 유린의 손에 들려 나온건 의문의 물체 X였다. 모자이크 처리까지 되어있어 더욱 괴기스럽다. 목숨이 위험한 걸 직감한 걸까? 태인은 끝내 의문의 물체 X를 입에 대지 않았다. 정말 아쉽다. 의문의 물체 X를 먹었다면 둘의 관계가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발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선택지는 나오지 않았고 태인에게 의문의 물체 X를 먹일 수 없었다.



▲ 나를 먹어라.



▲ 조금 위험하겠지만 먹는게 좋은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먹어라.


시간이 흘러 사흘째가 되었을 때 유린이 마지막이란 말과 함께 처음 만났던 공원에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한데 벌써 끝인 모양이다. 머뭇거리던 유린은 이제 미래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한다. 두근거리는 표정을 짓는 유린에 비해 태인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그리곤 잘 가란다.

사흘간의 시간이 귀찮았다고는 하나 반응이 너무 차갑다. 그때 유린의 모습이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흐트러진 모습으로 변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태인이 걱정스럽게 유린은 불러보지만 벤치에 앉은 그녀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엔딩도 없었다.



▲ 그녀는 엔딩도 없이 떠나갔다.


게임이 종료된 후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복선이라 생각했던 부분에 대한 의문이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모든 걸 설명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부족했다. 원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처음 접한 비주얼 노벨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래도 해피 엔딩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게임을 실행시켰다.

그런데 좀 전과 다른 화면이 눈을 사로잡았다.

게임이 이어졌다.

떠났던 그녀도 돌아왔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 "뭐지? 뭐가 이렇게 허무해." 이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루프물을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Phase 1이 끝나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루프물의 첫 스토리는 전반적인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해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같은 스토리를 반복하며 중간중간 선택지에 따라 스토리가 변화하게 된다. 그리곤 몇 번의 플레이에 걸쳐 쌓인 선택지에 따라 엔딩이 달라진다.

Phase 2가 시작되고 누군지 모를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인물. 그게 누구인지는 모른다. 검은 화면에 하얀색 글씨로 써내려간 과거의 아픔. 그때 하나의 실마리가 보였다. 주어진 힌트가 작아지켜보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태인과 유린 둘 중 하나의 과거 회상이라는 것.

Phase 2는 Phase 1에서 보았던 내용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무엇인가 뒤틀려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있는데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태인과 유린의 행동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다. 가령 과거 의문의 물체 X를 태인이 맛을 본다든가. 사소한 행동들이 조금씩 움직여 전체적인 스토리를 바꾸어 나가려고 하고 있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유린의 대사에서 그녀만이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 기억들 때문일까? 유린의 행동이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물론 태인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지만 유린은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시 똑같은 사흘을 반복했다.

태인을 만나고 집에 머물고, 밥을 먹고 데이트를 하고 공원에서 헤어지기까지 자그마한 행동에서 생긴 변화로 일이 술술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결국 태인에게 고백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전보다 나아진 태인의 반응에 유린은 안심한다.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

그동안 뒤틀려있던 이상한 것에 대한 정체가 밝혀질 것 같다. 태인의 연애 코치를 그만두고 스토리에 집중하면서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Phase 1을 태인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유린의 시점에서 스토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 선택지는 태인이 선택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유린에 의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Phase 2가 지나가고 Phase 3가 시작된다. Phase 2의 첫 씬과 다르게 처음으로 미래 스토리가 플레이 되었다. 유린이 태인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장소. 굉장히 낯익다. Phase 2에서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던 과거 장면과 선이 이어졌다. 그리고 유린이 떠나갈 때마다 일어났던 기이한 현상도 얼추 맞아떨어졌다. 그녀의 아픔. 그의 아픔. 모든 것이 치유되는 장소. 그리고 또다시 톱니바퀴가 맞물려 사흘이란 시간이 시작된다.

유린의 행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전까지는 수줍음과 미안함 때문에 서툴렀던 행동에 자신감이 생겼다. 태인이 모든 것을 해주길 기다렸던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모든 걸 먼저 요구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대답. 조금 무례할 수 있는 행동들. 이런 유린의 사소할 수 있는 변화로 인해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태인의 독백에서 드러나듯이 태인의 머릿속은 복잡해만 진다.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졌다. 태인은 유린이 버릇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간 참아왔던 감정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지난 사흘 동안 유린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참아왔던 태인의 감정. 그리고 여러 번의 타임 리프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유린의 마음까지 서로의 감정들이 격앙된 가운데, 유린이 풀지 못했던 루프들이 태인의 대답을 통해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없겠지만 유린은 그 안에서 해답을 얻은 듯 다시 한 번 타임 리프를 시도한다.



▲ 마지막 타임리프이길...



■ 마지막 타임 리프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

왠지 이게 마지막 타임 리프일 것 같다. 그녀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동안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그녀의 마음이 어땠는지 전한다. 그 가운데는 그녀 혼자 타임 리프를 감행했을 때의 기억도 포함되어 있었다. 드디어 톱니가 어긋나있던 루프가 서서히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때론 부드럽고 달콤하게.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할 수 있도록. 그녀와 그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더욱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사실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스토리에서 유저가 선택한 태인의 행동에 따라 엔딩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마음이 짠해지는 엔딩을 만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다른 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스토리 위주의 장르인 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비주얼 노벨을 처음 접했지만 소위 말하는 장벽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벽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장벽은 유린의 목소리와 태인의 유머 코드였다. 태인의 독백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유머 코드는 유명 애니메이션과 제작사 Tales#의 게임 패러디가 대부분이었다. 유머 코드들이 뜻하는 바를 몰라 인터넷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나름대로 찾아보는 재미가 괜찮았다.

하지만 유린의 목소리는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도 생각지 못한 대사가 들려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부들거렸다. 실제로 잠깐의 휴식을 취한 적도 있었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유린의 감정을 성우가 잘 살려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게임 이야기만 하고 있는 이유는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하다 엔딩을 모두 본 후에야 처음에 던졌던 질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까지는 미래에서 온 여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이유로 내 죽어버린 연애 세포를 살리기 위해 손을 댄 거였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스토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답을 내리라고 한다면 '약간'이라고 하겠다. 현실과 너무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는게 가장 큰 이유였을까? 그래도 마음 한쪽이 따듯해졌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배워나가는 두 사람의 스토리는 죽어버린 연애 세포를 깨우기 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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