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어즈오브워4, BADASS는 어디 가고 BAD만 남았나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24개 |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2015년 E3, MS 미디어 브리핑의 끝자락에 발표된 '기어즈오브워4'를 보면서 든 생각은 '우와 정말 대단해!'가 아닌, '음…. 결국 왔구나'에 가까웠다. 예상했던 바다. 늠름한 대들보였던 헤일로 시리즈는 단물이 거의 다 빨렸고, 또 다른 기둥이던 페이블 시리즈는 관짝 문이 반쯤 닫힌 상태다. MS가 내세울 타이틀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다못해 '마인크래프트'를 내세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기어즈오브워4'의 등장을 예상하기 쉬웠다. 그 시점에 MS가 내세울 브랜드로서 이보다 더 적합한 게 있을 리가. 독점 타이틀이니 엑스박스의 가치도 띄워 줄 수 있는데다 무려 3편에 걸쳐 검증되온 게임이다. 흥행력 또한 만만치 않다. 엑스박스 360 시절, 얼마나 잘나가던 게임인가. 스스로 등도 긁기 힘들어 보이는 덩치들이 그보다 더 큰 덩치들과 불꽃과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도 재미있는데, 그걸 또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

물론 반가웠다. 언젠가 올 손님이라고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게이머로서, 동시에 '기어즈오브워'의 오랜 팬으로서 4편의 소식은 너무나 즐겁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마냥 신이 나지만도 않았다. 에픽의 손을 떠나 MS의 품에 안긴 브랜드. 거기다가 원작의 디자이너인 '클리프 블레진스키'마저 없다. 주인장 바뀐 순댓국밥집에 가는 기분이다. 그 맛이 변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주의! 본 리뷰는 강력한 스토리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 내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닌데.



'기어즈오브워3'의 끝에서, '로커스트'는 최후를 맞이했다. 카리스마 넘치던 로커스트 여왕은 '마커스 피닉스'가 손수 담가버렸고, 모든 로커스트는 한날 한시에 쓰러졌다. 그렇게 세라 행성은 E-데이 이후 처음으로 평화를 맞이... 한 줄 알았다.



▲ 그토록 열심히 굴렀건만...

'기어즈오브워4'의 시대적 배경은 3편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후의 미래다. 당연히 주인공도 바뀌었다. 50년이 더 정정하게 싸울 것 같던 마커스와 친구들이었지만, MS는 새로운 얼굴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마커스의 아들 'JD 피닉스'와 친구들이다. 세월이 지난 후, COG는 인류를 강압적으로 통치하고 있으며, JD는 친구 '델'과 함께 탈영, 자유민인 '아웃사이더'에 합류했다.

스토리 라인은 다소 뻔하다. 어차피 스포일러 주의 문구를 써 두었으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부측 로봇들과 싸우며 자유투사로 잠시 지내다 보니 '스웜'이라 불리는 버전업 로커스트가 등장해 케이트의 엄마를 납치하고, 이들에 맞서 아버지 마커스를 찾아가 함께 싸우다가 마커스도 납치를 당하고, 어찌저찌 이를 구해내 또 여차저차해 이들을 무찌르는 것이 전부다.

물론 뻔하디뻔한 스토리라 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1편의 줄거리는 더 뻔했다. 그때는 뭐 반전이나 숨겨진 비밀도 없이 그저 '마커스가 친구 도미닉과 함께 로커스트를 때려잡는 이야기#1'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문제는 스토리의 내용이 아니다. '기어즈오브워' 시리즈에 '캠페인'이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는 이유는 일차적 내러티브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줄 알았는데 잡혀간 히로인 포지션


정체성 - BADASS와 비장함, 그 중간 어딘가...를 놓쳤어!


기어즈오브워 1편의 캠페인은 '기어즈오브워'라는 게임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총알이 이마를 스쳐 지나가도 어깨 한번 툭 치며 위로하고, 그로기 상태에 빠져 빌빌거리는 아군을 부축하며 아직 싸울 적이 남아 있다고 소리친다. 화면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뛰어다니고, 그 육중한 덩치를 마치 욱여넣듯이 엄폐물 뒤로 숨긴다. 그러면서도 전달하는 정서는 적을 모조리 해치우는 쾌감이 아니다. '내가 지금 적을 죽이듯, 언젠가 적도 날 똑같이 죽일 것이다.'라는 죽음 앞의 초연함. 꿈도 희망도 없는 세라 행성의 모습과 시궁창을 방불케 하는 전장.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BADASS와 비장함의 중간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맞췄다. 마치 임금님 앞에서 공길이가 줄을 타듯이.



▲ 딱 이 정도 느낌이다. 사나이의 발악과 투쟁, 그리고 유대가 돋보이는

하지만 좋게 말하려 해도, 본작의 캠페인은 이와 같은 '기어즈오브워'의 정서를 담아내지 못했다. 사람을 살렸다고 감옥에 갇힌 군인도, 잃어버린 아내의 사진을 간직한 채 죽음으로 달려드는 동료도 없다. 청춘 코미디의 운동부 주장을 보는듯한 주인공 'JD'와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히로인 '케이트', 그리고 끊임없이 투덜대는 밉상 '델'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이라곤, 시종일관 잃어버린 엄마 아빠를 찾으러 중구난방 돌아다니는 것밖에 없다. 별로 재미도 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그렇다고 구성이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느냐 하면 그도 아니다. 두 개의 챕터 동안 'COG'의 기계 병사들과 싸우다 보면, 컷신 하나 만에 적이 '스웜'으로 바뀐다. 차라리 앞에 두 챕터를 간단히 뭉뚱그려 덜어내고, 스웜과의 전투에 초점을 맞췄으면 더 그럴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녀석들이 땅에서 기어오르는 마당에도 COG는 주인공 일행을 잡겠다고 으르렁대고, 주인공 일행 또한 주변에 위기를 알리고 대국적으로 사태를 관망할 생각 없이 자기들 할 일에만 바쁘다.



▲ 비장함은 어디 가고 넉살만 남았나

개발사인 '코얼리션'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캠페인 시작 전 튜토리얼 부분을 플레이할 때는 소름이 돋았다. 풋풋한 도미닉과 10년 만에 보는 김민형까지, '기어즈오브워'라는 게임 자체에 품고 있던 향수에는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힘이 빠진다. 3편 이후의 줄거리를 정해진 분량 안에 욱여넣고자 하는 욕심만 드러난다. COG의 독재 정권부터 '스웜'의 발호, 그리고 레이나의 구출까지 전부 다 넣고 싶었던 것이 너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은 흩어지고, 장면 전환은 순식간에 일어나며, 전기톱은 엉뚱한 적을 썰고 있다.


본질 -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노인의 거울 속 모습


간만에 홍콩 영화를 봤다. 적당히 얻어맞고, 또 때리면서 재치있게 싸우는 성룡 스타일의 영화. 젊은 주인공의 움직임은 민첩하면서도 약간 어설퍼 보이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이기는 게 딱 성룡의 그 모습 그대로다. 저런 액션을 소화할 배우는 아닌 것 같은데…. 영화를 다 본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그리고 주인공 대역 스턴트 역할에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성룡'

갑자기 무슨 홍콩 영화 이야긴가 싶겠지만, '기어즈오브워4'를 스무 시간 정도 플레이한 후 내가 느낀 감정이 딱 저랬다. 사실 기어즈오브워 시리즈는 시리즈 간의 변화가 굉장히 적은 작품이긴 하다. 1편, 2편, 3편에서 바뀐 것은 캠페인의 배경과 새로운 무기, 그리고 멀티 플레이의 모드 정도일 뿐, 게임 플레이나 비주얼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로디 런과 엄폐, 견제성 원거리 사격과 동시에 줄어드는 교전 거리. 그리고 어느 순간, 누가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꺼내 드는 산탄총.



▲ 쏘고 부수고 터뜨리는 한결같은 게임

앞서 세 편의 게임이 발매되는 동안, 기어즈오브워의 플레이는 늘 한결같았다. 이해할 수 있다. '기어즈오브워'의 플레이 방식은 개발사가 원하는 그대로 딱 알맞게 만들어졌고, 유저들 또한 그것을 즐겼다. '슈팅'게임임에도 최종 교전 거리가 채 3미터를 넘어가지 않는 초 근거리 액션 슈팅. 박진감과 재미를 모두 잡은 이 디자인은 사실상 완성형에 가까웠고, 정서가 아닌 플레이로서 기어즈오브워의 디자인은 그렇게 확립되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났다. 넘버링 작품인 3편 이후로도 5년. 외전인 '저지먼트'를 쳐도 3년 하고도 6개월이 넘게 흘렀다. 그럼에도 본작은 전작과 완벽하게 똑같은 플레이를 보여준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똑같다. 누가 기어즈오브워 아니랄까 봐 뭐라 할 것을 걱정하는 것처럼. 반가우면서 동시에 지겨운, 상반된 두 감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지금에 이르러 기어즈오브워를 다시 할 수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때와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을 보니 아쉽기도 하다. 어느 정도로 비슷하냐고? 10년 전의 애니메이션까지 그대로 따다 썼다.

캠페인을 먼저 보자. 10년 전부터, 기어즈오브워의 캠페인은 딱 세정도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대놓고 싸우라고 만든 넓은 공터(보스전 포함), 엄폐물이 놓인 조금씩 전진하는 통로, 안 싸우고 그냥 걸어가는 구간. 그리고 이 구도는 이번 작품에서도 완벽하게 똑같다. 걷다 보면, 공터에 누가 봐도 '나 엄폐물임'이라고 말하는 듯한 구조물들이 듬성듬성 놓인 곳에 진입하게 된다. 싸우고 나면 또 걸어서 이동하면 되고, 그러다 공터가 나오면 또 싸우면 된다. 간혹 이벤트성 전투나 연출이 가미된 구간이 있지만, 결국은 저게 다다.



▲ 이런 지형이 나오면 100% 싸움이 있다는 거다.

멀티라고 다를까? 아니, 멀티는 더 변한 게 없다. 멀티 플레이에서 변한 점이라면 무기들의 탄약 보유량이나 피해량 같은 자잘한 부분뿐이다. 여전히 괴물 같은 플레이어들은 월 바운스와 그내셔 샷건으로 전장을 장악하고, 멀리 숨어서 소극적으로 싸우는 플레이어들을 조각낸다. 전작이랑 비교 사진을 갖다두면 아마 구분을 못 하는 이들도 많을 거다. 여전히 재미있지만, 변화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를 두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혹은 발전이 없다?

코얼리션 입장에서도 고민은 했을 것이다. 그대로 가자니 뭔가 변한 게 없어 걱정되고, 바꿔 보자니 '내가 알던 그 기어즈가 아냐!'하고 화낼 유저들의 원성이 두려웠을 거다. 그리고 그 끝에서, 결국은 기존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로 했을 터였다. 기어즈오브워 못지않은 인기를 보유한 또 하나의 'GOW'인 '갓오브워'는 4편에 이르러 시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주인공도 같고, 게임이 추구하는 바도 같지만, 게임 자체는 완전히 바뀌었다.



▲ 그대로여서 좋은 건 랜서 라이플뿐.

이해는 가지만 동시에 안타깝다. 하다못해 애니메이션만 새로 바꿨어도. 혹은 UI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기만 했어도 지금과 같이 실망 섞인 어조로 글을 쓰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전통의 맛집 - 10년 전 그 맛은 이번까지다.


어쨌거나, 게임은 재미있다. 이번 작품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전작을 지나치게 답습하고, 자신만의 매력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거다. 반대로 말하면 전작을 지나치게 닮았기에 전작과 같은 재미를 준다. 그것만으로도 살 가치는 충분하다. 괜히 사람들이 기어즈 기어즈 하는 게 아니니까.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렇다. 비록 리뷰 내내 발전 없는 모습을 꼬집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어즈오브워' 특유의 유전 형질이 더 잘 드러난다.

굉장히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이 모습도 어쩌면 MS가 그린 큰 그림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나태한 마음으로 예전 그대로 만든 것이 아닌, 또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구작의 느낌을 살리는 쪽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내용상 중요한 스포일러가 되기에 정확히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본작의 엔딩에는 너무나 노골적인 후속작 예고가 마련되어 있다.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이미 '기어즈오브워5'의 등장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 다음에 또 보게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편하다. 새 플랫폼으로 나온 만큼, 신규 유저를 배려해야 하니 4편은 기존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쪽으로 하고, 진짜 새로운 시도는 5편부터 이뤄지는 것. 코얼리션이 몇 년 앞으로 내다보고 있을지 누가 알겠나. 물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 혼자 돌리는 행복회로에 불과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때문에 리뷰를 쓰면서 최초로 본편이 아닌,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담으며 글을 마무리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4편의 내용물은 좋게 쳐줘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앞서 우스갯소리로 순댓국밥에 비교하긴 했지만, 게임은 순댓국밥이 아니다. 삼십 년 전통의 순댓국밥집이 유명한 이유는 삼십 년간 맛이 변함없이 맛있어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음식 맛과 다르게 게임은 변화가 없으면 망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치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어떤 변화도 없이 옛날 작품을 답습한 모습에 화가 날 뿐이다.



▲ 솔직히 변한게 너무 없어서 적응은 빛의 속도

기왕 음식 이야길 꺼냈으니 한 번만 더 음식 이야기를 해보련다. 군 시절을 겪은 남자라면, 아마 겨울 야간 근무가 끝나고 나서 먹는 뽀글이 맛을 기억할 거다. 자는 시간까지 깎아 먹으면서 먹는 그 뽀글이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회로 나온 후, 우연히 먹어본 뽀글이에서는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려왕이 먹었던 도루묵이 그러할까? 햄 맛 빠진 삼양라면도 아닐진대 그때 그 맛이 아니다.

게임 가지고 자꾸 음식에 빗대니 이상하지만, 기어즈오브워4나 뽀글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맛이야 옛날하고 똑같다. 하지만 그때는 '언차티드'도 없었고, '매스 이펙트'도 없었으며, '바이오 쇼크'도 없던 시절 아닌가? 아무리 옛것이 좋다지만, 더 맛있는 것들이 널려 있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가져와 버리면 안 되는 거다.



▲ 솔직히 안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장면

평단의 비교적 높은 점수는 이해된다. 기어즈오브워니까. 팬들은 새로운 플랫폼과 최신 콘솔로 즐기는 '기어즈오브워'에 목말라 있었고, 적어도 이 기준에 4편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PC와 콘솔 모두로 즐길 수 있는 '기어즈오브워'니까. 하지만 이는 '기어즈오브워4'가 만든 점수라기보단 '기어즈오브워'라는 시리즈 자체가 만들어낸 점수다.

코얼리션도 생각이 있다면 4편만의 장점으로 '새로운 플랫폼 지원'이나 '새로운 스토리 라인'등을 내놓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그건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아니니 말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 팬심에 의한 '의리'의 평가는 4편이 마지막일 거다. 이번 작품까지는 "역시 기어즈오브워다!"가 통할지 몰라도 다음 작품은 아니다. 아마 진짜 시험의 잣대는 다음 작품에 드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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