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그것은 그들 아버지들의 이야기였다 - 콜 오브 듀티 : 월드 워 2 체험기

리뷰 | 김병호 기자 | 댓글: 21개 |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억지를 부려가며 최신작 월드 워 2의 체험기를 쓰겠다고 우긴 이유는 우연히 유튜브 광고를 통해 본 콜 오브 듀티 : 월드 워 2(이하 월드 워 2)의 트레일러 때문이었다.

즐겨보던 걸그룹 직캠을 보기 위해 유투브를 틀었고, 우연히 월드 워 2의 트레일러를 볼 수 있었다. 영상의 스토리는 생각했던 대로 뻔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작하는 병사들의 긴장된 모습, 이윽고 시작된 치열한 전투, 하늘을 덮는 비행기와 땅 위를 진격하는 탱크 등 당연히 나와야 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 내 눈을 사로잡은 장면 하나가 있었다. 바로, 병사 한 명이 나에게 임무가 우선이라고 말하며 윙크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 장면이 왜 그렇게 인상적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 이 게임은 기존의 2차 세계 대전을 기반으로 한 게임들과는 뭔가 다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인 듯하다.





트레일러에는 게임사가 생각하는 그 게임의 강점만을 모아놓은 결정체다. 만약 액티비전이 생각한 월드 워 2의 강점이 전쟁의 세부적인 묘사가 전부였다면, 트레일러에는 병사의 윙크나 전진하는 탱크 위에서 이야기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을 틈이 없었을 것이다.

병사의 윙크는 드라마를 상징한다. 그 눈짓은 나의 진격에 들러리로 죽어 나가는 AI가 나와 친분이 있음을 암시하며 함께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이는 전우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내 앞에서 탱크 위에 올라타 수다를 떨던 전우가 폭격에 맞아 죽는 장면은 내가 폭격에 맞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전쟁의 비극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HBO의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워낙 재미있게 봤었기에 이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기도 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와 작전들, 2차 대전 당시 물품을 그대로 사용한 뛰어난 고증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드라마에서 실제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의 영웅담으로 만들어줬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그저 영상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감동을 줬다. 하물며 그 전장으로 직접 들어가 내가 병사가 되어 전투를 치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할까? 월드 워 2는 2차 세계 대전을 표현한 가장 최신작이기에 그래픽 등을 포함한 모든 측면에서 기존의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모든 게임보다 뛰어날 것이 당연해 보였고 출시가 되면 무조건 해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억지를 부려 기어코 체험기를 내가 작성하게 됐다. 들뜬 기분을 안고 E3 현장으로 갔지만, 시연은 절대 쉽지 않았다. 월드 워 2의 인기가 워낙 많아 개장 시간보다 5분을 늦게 도착했더니 네 시간짜리 줄이 서 있었다. 액티비전 스태프는 내게 2시부터 3시 사이에 다시 대기자를 모집한다는 말로 나를 돌려보냈다.

더 일찍 가서 미리 대기해야겠다는 생각에 1시에 액티비전 부스 앞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웬걸? 네 시간짜리 줄이 그대로 인게 아닌가… 다소 다혈질 끼가 있는 나는 곧바로 아까 2시에 다시 오라던 그 스태프에게 달려가 따졌다. 그리고 스태프는 내게 두세 시간 뒤에 다시 오라는 말이었다며 ‘영어 못 알아듣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절대 잘못 들은 게 아니라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나와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부아가 치밀어 네 시간짜리 줄 맨 뒤에 꼿꼿이 섰다. 또 다른 액티비전 스태프는 내게 와서 이제부터 줄을 서는 사람은 월드 워 2 시연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꾸벅꾸벅 졸아가며 세 시간 사십오 분을 기다려 부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부스 안에 감춰진 세트 속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한 쪽 벽면을 장식한 원형 아날로그 시계들이 보였고, 시계들은 각각 세계 각지의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트 한쪽에는 지우개 달린 노란색 연필과 병사 지원서가 놓인 책상, 세트 한쪽 중앙에는 단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디서 봤던 곳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화 캡틴 아메리카 1편에서 스티브 로저스가 번번이 퇴짜를 맞던 병사 모집소였다.

신기하게 주변을 바라보던 시연 참가자들 사이에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군복을 그대로 입은 병사 한 명이 단상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매우 진지한 모습으로 참가자들에게 입대를 장려하는 말을 전했다. 그 병사의 불타는 연기혼 덕분에 일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 댔지만, 연설이 끝났을 때는 모두 손뼉을 쳐줬다.




▲ 그가 보여준 진지한 연기는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두 번째 세트로 넘어갔다. 한쪽 벽면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했던 실제 무기들이, 한쪽 벽면에는 역시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했던 군복과 삽, 수통, 철모, 탄약통 등이 놓여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보급소다.

보급소 왼편에 설치된 LED TV에서는 참가자들이 인게임에서 사용할 총기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미국 보병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M1 개런드(여덟 발을 쏘면 클립이 팅~ 하고 튕겨 나가는 그 총이다), 저격용으로 사용된 M1903 스프링 필드, 톰슨 기관단총 등이 영상에 비춰졌다. 실제 보급소에서 한 일은 대기하는 것뿐이었지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세트, 브리핑 룸에서는 다시 한번 군복을 입은 병사가 등장해 시연자들이 인게임에서 해야 되는 미션에 관해 설명해줬다. 시연자들은 12명씩 각각 알파와 베타, 찰리와 도그, 네 개조로 나뉘었고, 실제로는 12명이 반을 갈라 6:6 PvP를 벌인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모니터 앞에 조이스틱을 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네 시간 십 오분가량이었다. 이제 고난은 끝이고 즐기는 일만 남았느냐며 안심을 했지만, 그 착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문제는 내가 조이스틱으로 FPS 게임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키보드와 마우스로만 FPS를 즐겼던 나에게, 이제 조이스틱으로 걸음마 좀 떼어 볼까 하는데, 내 앞에서 4시간을 함께 기다리고 병사로 함께 지원했던 전우가 갑자기 10년 동안 콜 오브 듀티만 즐긴 베테랑 적군이 되어 무자비하게 나에게 총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초급 AI만도 못한 존재가 됐고, 0킬 12데스로 1라운드를 마무리했다. 2라운드가 로딩되는 동안 화면 중앙에 커다랗게 전적이 표시 됐다. 나는 ‘우리가 왜 졌지?’라며 전적표와 팀원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대조시켜보던 내 옆자리 전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책상에 대가리를 박았다. 아마 내가 노르망디 해변에 설치된 방파제보다 총알을 더 많이 맞은 듯싶다.

2라운드는 시가전, 상대팀은 건물 안에서 방어를 하는 우리를 몰아내고 부서진 다리로 진격해 탱크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를 수비해야 한다. 시가전은 노르망디 해변의 참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통해 봤던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고, 건물을 향해 은폐-엄폐를 하며 달려드는 적군을 막기 위해 부질없는 노력을 했다.

한 라운드 만에 사격은 익숙해졌는지 처음으로 1킬을 기록했고, 환호성을 지를 틈도 없이 철모가 뚫려 죽었다. 리스폰이 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전장으로 달려갔지만(실제로는 시연이 끝날 때까지 달리기 버튼을 못 찾았다) 화염 방사기에 죽고, 수류탄에 죽고, 심지어는 총검에도 죽었다. 다리를 고치는 무방비 상태의 병사라도 잡아볼까 했지만, 상대 베테랑 저격병의 엄호에 땜빵만 늘었다. 그렇게 우리 알파팀은 마지막 4라운드까지 상대 탱크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전투에서 패배했다.

비록, 게임은 졌지만, 진심으로 만족스러운 시연이었다. 해변을 덮었던 군함과 하늘을 수놓던 전투기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통해 영상으로만 봤던 참호전과 시가전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시가전의 건물과 포격으로 무너진 잔해 등은 드라마를 통해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체험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M1 게런드의 클립 튕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이미 닳고 닳은 소재를 다시 다뤘음에도 미국인들이 월드 워 2에 열광하는 이유는 2차 세계 대전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 혹은 자신의 할아버지, 나아가 자신의 국가가 직접 치른 전쟁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월드 워 2를 통해 자신의 가족이 치렀던 전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고, 그 안에 펼쳐진 드라마를 통해 감동 받을 것이다.

시연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문득 나의 나라, 대한민국의 전쟁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약 국내 게임사가 한국 전쟁이라는 소재로 월드 워 2 만큼의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게임 안에서 실제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동족상잔의 비극과 아픔을 잘 전할 수 있다면, 우리가 게임으로 즐기는 전쟁이 얼마나 아프고 비극적인 이야기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전쟁을 하면 안되는 지를 잘 알려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는 체험기라는 말을 붙이기엔 많이 부족하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비롯한 콘솔 게임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기에 전작과의 비교나 콘솔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서술하지 못했다. 글을 읽은 독자에겐 미안하지만, 월드 워 2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직접 한 번 플레이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전장에서 적군이 아닌 아군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