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OS + 매니지먼트?! 조금 다른 도전의 결과 '리터너즈'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49개 |



작년 말, 넥슨은 20여 년 간 이어진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플레이'를 출간했다.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이었지만, 그 안에 적혀 있었던 '인큐베이터'에 대한 언급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제한 없이 원하는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볼 기회. 그 당시엔 '그렇구나'정도로 넘어갔지만, 그 결과물이 이제 조금씩 보이고 있다. 넥슨의 올해 지스타 라인업은 유달리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모바일 게임 '리터너즈'는 그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정식 프로젝트가 된 작품이다. AOS와 매니지먼트 게임의 만남.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게임의 핵심이 그렇다. 영웅을 단순히 키워 RPG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쿼드를 짜고, 한타를 설계하고, 리그를 돌린다. 솔직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재미있을까? 없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새삼 드는 생각이 있다. 근래에 나온 게임 치고 재미있을지 없을지 예상을 못 할 게임이 있었나?

쉬운 길이야 많다. 검증된 시스템, 검증된 장르. 게이머의 반응이 썩 좋진 않겠지만, 그래도 안전한 길이다. 새로운 시도는 꽃잎 날리는 가시밭길이다. 겉보기에는 멋지고, 낭만적이지만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피투성이를 면치 못한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넥슨 안에 있는 인터뷰실에서 '리터너즈'의 함선우 개발 디렉터와 정병대 테크니컬 디렉터 두 사람을 마주했다. 간밤에 내린 비로 하늘은 아직 어둡다. 창문이 있었으나 큰 도움은 안 됐다. 별수 없이 인공조명 아래서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다지 긴장한 기색이 없다. 자신들의 작품에 자신감이 있는 걸 테다. 오는 길에도 수없이 생각했지만, 또 궁금해졌다. 게임 개발에만 햇수로만 15년 이상을 매진해온 이들이다. 무엇이 이들에게 또 도전하게 만든 것일까?



▲ 넥슨 함선우 기획 디렉터(중앙)와 정병대 개발 디렉터(우)



■ 매니지먼트와 AOS의 만남

처음 그들이 기획한 구도는 비교적 단순했다. 영웅을 직접 컨트롤하는게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잘 키워 리그에 내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AOS보다는 매니지먼트 게임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원래 매니지먼트 게임이 그렇다. 선수보다는 감독이 되는 느낌. 답답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게 매니지먼트 게임의 재미다. 내가 만들어둔 팀이 활약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묘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게임을 완성할 수는 없다. 게임은 이제 단순한 한 판 짜리 전자오락이 아니다. 짧은 게임일지라 해도 시작과 끝이 있다. '리터너즈' 또한 기승전결이 있다. 핵심 콘텐츠인 '리그'는 기승전결 네 단계 중 '결'에 가깝다. '기승전'이라는 앞선 단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게임의 핵심 콘텐츠는 '리그'

"AOS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게임에 익숙해지는 단계가 있어요. 처음에는 게임을 잘 모르니 주어진 캐릭터를 갖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부터 시작하죠. 그러다 보면 팀원들과 함께 한타 싸움도 하게 되고, 나름 활약하게 돼요. 자신만의 플레이를 만들게 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상위권 유저들의 플레이를 관람하게 되죠. 그러면서 플레이 색깔이 만들어져요. 게임을 즐기고, 알아가는 과정에 일종의 흐름이 있다는 거죠."

함선우 디렉터는 '리터너즈'라는 게임에 이런 흐름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주어진 선수들로 게임을 진행하게 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새로운 영웅을 얻게 되고, 이 과정에서 게이머 개개인의 팀 색깔이 생기게 된다. 누구는 단단한 탱커를 전면에 배치해 묵직한 장기전을 보여줄 거고, 또 어떤 이는 강력한 대미지 딜러 위주로 팀을 구성해 적보다 우월한 화력을 노릴 테다.

실제로 '리터너즈'의 캐릭터들은 게임 플레이 중에 자연스럽게 모두 얻을 수 있다. 나중에야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빌드상으로 과금이 필요한 영웅은 없다. 30 - 40여 종의 영웅 중 내가 생각한 팀 색깔에 맞는 다섯 캐릭터를 고르고 나면, 그다음엔 '아이템'이 끼어든다.

"AOS 게임은 처음부터 너무 많은 수의 캐릭터를 만들지 않아요. 다양한 캐릭터가 준비되어 있으면 게임의 깊이는 늘어나지만, 심리적 장벽이 생겨요. 캐릭터의 수가 적당하면 도전해볼 생각이 들지만, 너무 알아야 할 게 많다고 생각되면 무의식중에 겁을 먹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1차 CBT 이후 받은 피드백은 어째서 캐릭터의 수가 이렇게 적냐는 것이었어요. 알고 보니 그분들은 야구나 축구 같은 매니지먼트 게임을 생각하신 것이더군요."




▲ 첫 인상이 너무 복잡한 것도 좋지 않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게임과는 같을 수 없다. AOS 게임의 캐릭터 한 명은 축구나 야구 게임의 선수 한 명보다 훨씬 더 다양한 잠재적 변수 인자를 갖고 있다. 5-6종류의 능력치와 OVR로 나타낼 수 없다. 해당 캐릭터가 가진 스킬, 그리고 상대 캐릭터와의 상성 관계, 그리고 아군 캐릭터와의 시너지 효과까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테스터의 피드백은 틀릴 수 없다. 더 다양한 변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앞서 말한 '아이템'이다. 개발팀은 캐릭터의 수를 무리하게 늘리기보다는 다양한 아이템을 통해 캐릭터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다변화했다. 같은 캐릭터라고 해도 어떤 아이템을 착용했느냐에 따라 다른 전략적 쓰임새를 갖는 것. 아이템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팀을 꾸리게 되면 다양한 콘텐츠 안에서 전투를 치르게 된다. 리그와 토너먼트에서 경기하고, 레이드나 탐험 모드 등에서 경기 외적인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물론 그냥 넋 놓고 맡겨두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말이다.

"처음의 전투 모습은 보다 매니지먼트 게임에 더 가까웠어요. 하지만 반응이 썩 좋지 않더군요. 많은 분이 왜 직접 영웅을 컨트롤할 수 없는지 답답해하셨죠. 그래서 이를 보완할 절충안이 필요했어요."

캐릭터 하나하나를 다 실시간으로 조종할 수 있게 바꿀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캐릭터가 다섯으로 늘어난 다른 게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테니 말이다.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이 희석되어 버린다. 개발팀은 고민 끝에 더욱 디테일한 '지시'를 구현했다.



▲ 전술 지시는 게임 진행을 잠시 멈추고 내릴 수도 있다.

가령 A~E라는 캐릭터가 팀을 이루고 있다면, "A는 전면에 서서 방패 역할을 하고 B는 후방으로 돌진해 상대편 주력 딜러를 견제하며, C, D는 원거리에서 적 탱커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E는 팀을 지원해라."라는 식으로 보다 섬세한 명령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캐릭터를 실제로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은 게이머의 지시를 온 힘을 다해 수행한다. 이 전투 과정을 볼륨감 있게 만드는 건 AI의 몫이다. 초당 30번의 판단을 내리는 AI는 상황에 따라 몸을 사리기도 하고, 우직한 돌격을 할 때도 있으며, 원거리 딜러는 적의 접근을 피해 자동으로 '카이팅'을 해가며 싸운다.

이 AI가 결국 다른 게임과 '리터너즈'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게이머의 지시에 1차원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전투를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리터너즈'의 핵심이다.

다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최근 게이머들이 모바일 게임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을 말하자면 큰 고민 없이도 '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급으로 구분되는 캐릭터는 대부분 게임에서 양날의 검과 같다. 얻는 순간의 기쁨은 크지만, 그 존재 때문에 최종 등급 밑의 모든 캐릭터를 결국 한 번쯤 스쳐 가는 쓰레기로 만들어버린다. 다소 노골적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경우든, 5성까지 있는 게임에서 4성 캐릭터를 최종 단계로 생각하는 게이머는 없다. 얼핏 본 '리터너즈'에도 별이 있었다. 조심스럽지만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계급보다는 레벨에 가까워요. 모든 캐릭터는 전부 최고 등급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그전에 성장이 멈춘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죠. 처음 캐릭터를 얻었을 때 모든 캐릭터가 초기 레벨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종착점은 모두 똑같아요."



▲ 등급은 전략으로 넘어설 수 있는 부분

함선우 디렉터가 말했다. 나아가 여기에 '전략'이라는 요소가 섞이면 게임에서 '별'이 미치는 영향이 더 줄어든다. 가령 이런 식이다. 1성 캐릭터와 4성 캐릭터를 놓고 비교해 보면 범용적으로 볼 때 4성 캐릭터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더 강한 광역기술을 갖추고 있고, 기본적인 능력치도 높다. 하지만 싸움에서 언제나 4성 캐릭터가 많은 쪽이 우세한 것은 아니다. 성급이 낮은 캐릭터는 그만큼 스킬 쿨다운이 짧으므로 CC기라도 갖추고 있으면 아이템 선택에 따라 4성급 캐릭터를 완전히 봉쇄해 버릴 수도 있다.

물론 '별'이라는 좋지 않은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게임이 출시된 이후로도 검증을 통해 게이머 층의 인정을 받아야겠지만, 일단 카스트 제도와 같던 기존의 '별'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도전은 당연한 것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췄다. 더욱 근본적인 궁금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왜?'다. 서문에서 말했다시피, '리터너즈'는 다른 게임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저 용기가 멋지다고 감탄하고 말기엔 궁금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 길로 이끈 것일까?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 같아요"

왜 새로운 게임을 만들게 되었냐고 묻는 질문에 함선우 디렉터가 말했다. 정병대 디렉터와 함선우 디렉터 모두, 타 개발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조금은 다른 게임들을 만들어 왔다. 함선우 디렉터는 유행을 따라 게임을 만드는 건 조금 재미가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재미보다는 용기와 현실에 결부된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이를 재미라는 관점에서 논하는 것도 꽤 설득력있는 말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기존의 게임들과 비슷한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은 두 사람의 머릿속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새로운 게임'은 말 그대로 당연한 것이었다.



▲ 어찌 보면 그저 지켜봐야 하는 게임이지만...

그들은 늘 조금은 다른 선상에 있는 게임을 생각해왔다. 다른 게임과는 다르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의식하며 일 하냐는 내 물음에 함선우 디렉터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 인류사에서 회자되는 혁신의 시작점은 항상 그 생각이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결과가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누구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영 좋지 못한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잦다. 꽤 많은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여기서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넥슨의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이 굉장히 도움되었어요.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 회사의 그 어느 분도 저희가 만드는 게임을 가지고 돈이나 성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저 '되는 만큼 만들어 봐라.'였죠.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만큼 순수하게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어요."

이 '순수한 생각'은 다름 아닌 개발팀 내부에서 나왔다. 게임을 기획하기 전, 함선우 디렉터는 개발팀원 개개인에게 물었다. 게이머로서 어떤 게임을 하고 싶은지, 어떤 요소가 들어가야 게임이 재미있을 것 같은지. 수많은 의견이 나왔다. 함선우 디렉터는 이를 하나로 모았다. 주무르고 다듬고, 조율하고. 그러면서 '리터너즈'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 출발은 가장 가까운 게이머에서부터

개발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기획 단계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지만(CBT 테스터들의 피드백 등) 프로그래밍에서도 난관이 속출했다. '리터너즈'의 리그는 등록만 되어 있다면 게이머가 접속해있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뤄진다. 하루 8번의 경기. 유저 수가 천 명이라면 500번의 경기가 하루 8번, 총 4천 경기가 서버상에서 진행되는 격이다. 그때마다 서버에 부하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 여기에 CBT 피드백으로 추가된 세밀한 지시까지 곁들여지자 작업량은 더욱 늘어나 버렸다.

"그래도 지금은 무리 없이 서버가 견뎌낼 수 있어요. 이렇게 한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나면 앞으로 다른 매니지먼트 게임에서도 응용할 수 있겠죠?"

정병대 디렉터가 말했다. 인터뷰 현장에서야 웃으며 말했지만, 실제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기분 좋은 미소였다. 문득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저 사람들이 새로운 게임에 도전하는 이유가 저 미소가 아닐까 싶었다. 무언가를 이룬 후에 보일 수 있는 웃음. 글로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끝내주는 기분일 거다.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 다른 인터뷰였으면 이미 마무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 늘 인터뷰의 마무리는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게이머들에게 한마디만 해주시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다지 좋은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개발자는 게임으로 대답한다. 그 외에 무슨 대답이 더 필요할까. 아무리 좋은 말을 해 봐도, 게임이 별로라면 게이머들은 외면하기 마련이다.



▲ 개발팀의 한 마디는 게임으로 충분할 테다.

그래서 조금 다른 질문을 했다. '리터너즈'는 앞으로도 더 다듬어질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방향이길 바라지만 어떻게든 변화할 것이다. 정병대 디렉터에게 먼저 물었다. 앞으로 이 게임을 어떻게 다듬어갈 생각인지 궁금했다.

"계속 재미있는 게임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구체적으로 게임을 어떻게 바꾸자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요. 저희는 준비한 것을 내놓았고, 이제 게이머 분들의 몫이죠.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이 어떤 의견을 주시든 능동적으로 대응하려고 해요."

정병대 디렉터의 말은 길지 않았다. 이어 내 시선을 따라 함선우 디렉터가 말을 받았다. 인터뷰의 끝에서 그가 말했다.

"게임을 만드는 것이 처음이 아니에요. 하지만 늘 만들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게임 개발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지만, 게임을 완성하는 것은 게이머 분들이라는 생각이죠.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처럼 지속적인 개발이 이뤄지는 게임에서 개발자가 게이머에게 가치관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저희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 어떤 의견을 내 주실지 궁금하고, 아마 다음 개발 방향은 그 의견을 들은 후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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