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2년차 베테랑 개발자 '정성환'의 2막 도전기 'TS 프로젝트'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18개 |



게임업계에서만 22년. 머문 기간으로만 따지만 1세대 개발자 중 한 명이라 봐도 무방한 시간이다. 1990년대는 마법과 같은 시대였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고, 새로운 게임이 탄생했다. 2000년대가 들어서도 그 흐름은 꺾이지 않았지만, 1990년대는 더 특별했다. 그때는 어떤 게임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게임테일즈'의 정성환 대표는 그 시절부터 게임을 개발해온 개발자다. 부끄럽게도, 만나 보기 전에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는 한 번도 스스로 양지로 나오지 않았다. 기획, 시나리오, 사운드, 프로그래밍. 게임 개발의 모든 영역에 손을 대보았고, 적지 않은 게임에 참여했음에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이제 좀 자신을 알릴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말이죠"

낮에는 컴퓨터를 조립하고, 밤에는 게임을 개발하며, 틈틈이 글을 쓰던 90년대의 청년이 지금은 10권 가까운 소설을 써내고, 여러 게임 개발에 참여한 끝에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위치에 이르렀다. 그리고 끝내, 게임계의 거목인 '소니'와 글로벌 퍼블리싱 계약까지 성사시켰다.

22년 만에 그는 게임업계라는 세계에서 2막을 맞이했다. 상암 한복판에 위치한 '게임테일즈'의 사무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 '게임테일즈' 정성환 대표


Q. 먼저 간단하게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떻게 게임업계에 투신하게 된 것인가?

22년 차 개발자이자 소설가로도 활동했던 정성환이다. 지금은 '게임테일즈'의 대표로 있다. 그리고 당연히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너무 좋아했다. 이 업계에 게임을 싫어하는 분이 있겠냐만 말이다.(웃음) 83년? 86년? 그쯤부터 게임을 계속해 왔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게 된 것은 잠실에 있던 친구와 어울리면서부터였다. 어릴 적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 다니곤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PC를 보게 되었다. 4인치 모니터가 붙어 있는 애플 컴퓨터였는데, 당시 그 정도 PC 가격이 천만 원도 넘었다. 컴퓨터라는 기계를 처음 봤다.

89년에는 처음으로 PC 통신을 접했고, 여러 가지 게임 관련 동호회에서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고, 때로는 운영자로 있기도 했다. '별바람'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현재는 청강대에서 교수로 계시는 광삼 교수님과도 그즈음 처음 뵙게 되었다. 91년도였나...

당연히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게임 개발에 시도하는 것부터가 힘든 시기였다. 당시 대구에서 처음으로 게임을 만들어 보려 했는데, 그때도 낮에는 컴퓨터를 조립해서 팔고, 저녁에야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텍스트 머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시간이 남으면 글도 쓰곤 했다. 의외로 글쓰기가 잘 풀려서 지금까지 10권 정도 책을 냈고, 등단도 하게 되었다.

게임 개발 시장이 안정된 후에는 기회가 점점 늘어났다. 때로는 BGM과 사운드 작업의 외주를 하고, 또 다른 게임에서는 시나리오와 인물 설정에 참여했다. 2008년 정도부터는 나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PD라는 이름표를 달고 활동해왔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 당시 만든 게임 중엔 텍스트 머드 게임도 있었다.(사진은 MUD 게임 중 하나인 '단군의 땅')


Q. 게임 개발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온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개발 분야는 어떤 건가?

컨셉 기획 쪽이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직접 쓰다 보니 그쪽에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하다 못해 단순한 퍼즐 게임이라도 캐릭터와 배경 컨셉을 잡고, 게임 플레이에 당위성을 부여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다.


Q. '게임테일즈'라는 사명은 어떻게 정하게 된 것인가?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창업에 대한 열망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그냥 게임 개발사에 다니면서, 유명한 PD가 되는 정도가 내가 생각한 꿈이었던 듯 싶다. 하지만 언제나 '만약'은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나만의 게임 스튜디오를 차리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럴 때면 스튜디오 이름을 '게임테일즈'로 하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테일즈'라는 단어나 '스토리'라는 단어나 사실 이야기라는 같은 뜻을 나타내지만, 어감이 다르다. '테일즈'는 '스토리'보다 더 깊이가 느껴지는 단어다. 깊이가 더해진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이야기가 강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철이 들고 난 후 하던 게임들. 그중에는 내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가진 게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가 만드는 게임이 게임을 즐기는 이들에게 그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늘 꿈꾸고 있다.



▲ 유저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게임


Q. 최근 등장하는 게임 중에는 시나리오 비중이 높지 않은 게임이 많은데, 보다 보면 마음에 차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만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이야기가 없는 게임은 없지만, 유저가 즐길만한 이야기를 넣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온라인 게임이라 그렇다는 주장도 있지만, 월드오브워크래프트만 봐도 그건 핑계일 뿐이다. 우리가 만든 모바일 게임 '히어로즈 리그'는 소위 말하는 '도탑류('도탑전기'와 비슷한)' 게임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다른 게임과는 다른 이야기를 넣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 뚜렷한 스토리라인만 구축하고 있다면, 그 이야기를 담는 그릇은 게임의 장르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 '히어로즈리그'가 '도탑류' 게임이라 했는데, 사실 최근 분위기에서 '도탑류'라는 것이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지 않나?

현실적으로 그렇긴 하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액션 게임이나 도탑류 게임이나 모두 게임의 한 장르일 뿐이다. 사실 이런 장르는 성인 남성을 대상으론 다소 심심하다는 인식이 있고,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만, 하드코어 RPG를 버거워하는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다가가기 쉬운 장르다. SNG와 가깝다고 해야 할까? 성장 요소를 이루는 시스템 자체가 흔히 보이는 '팜류' 게임들과 비슷한 편이다.

여기에 우리만의 개발 철학인 '시나리오'로 개성을 더했다. 에피소드마다 독립되고 간단한 스토리가 아닌,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 게임 중간중간 할 수 있는 미니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미니게임의 형태는 우리가 기존에 개발했던 게임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여기에도 우리만의 시나리오를 양념으로 더했다.



▲ 스토리를 통해 플레이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Q. 게임을 개발하다 보면 넣고자 하는 이 이야기를 다 담기 힘들 때도 많을 텐데, 아쉽지는 않나?

당연히 만족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올해로 내가 게임업계에 입문한지 22년째인데, 내 지난 22년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만 같다. 게임에 이야기를 담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그 이야기를 게이머에게 공감하게 하고, 게이머가 그 이야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 마음 같아서는 고급 영상 기법이나 비주얼 등으로 내가 생각한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어드벤쳐 게임을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고, 아마 'TS 프로젝트'가 그 꿈에 근접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Q. 'TS 프로젝트'에 대해 더 설명해줄 수 있나?

'테일즈 앤 스토리'의 약자다. 앞서 말했듯 작가 활동을 겸하면서 여러 작품을 냈는데, 그 작품들 모두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중 정통 판타지라 할 수 있는 '황금의 나르시소스'를 중심으로 다른 세계관들이 얽히며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게임으로 만든 것이 TS 프로젝트다. 아직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기획 준비 단계는 끝난 상황이며, 여러 방향으로 펀딩을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PS VR을 사용하는 기능도 간단히 넣었다. VR 모드를 온, 오프하는 정도지만 말이다.



▲ 그의 인생 2막이 될 'TS 프로젝트'


Q. 소니와 계약해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 'TS프로젝트'인 건가?

맞다. 운이 따라 주다 보니 한국 지부인 'SIEK'를 통해, 본부인 'SIE'와 계약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얼떨떨하긴 하다. 두 번 다시 안 올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아마 게임 자체는 일본 개발사들이 만드는 콘솔 RPG와 비슷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콘솔 게임은 온라인 게임에 비해 게임을 더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플레이 전에 게임 자체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기 때문에 게임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콘솔 보급량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다. 다른 개발사들이 모바일에 집중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다. 아마 국내에서 콘솔 RPG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Q. '게임테일즈'라는 스튜디오만의 매력이나 장점이라 할 만한 점이 있는가?

유저들과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게임을 서비스하는 시점부터 유저들과의 소통에 신경 써왔고, 그분들이 우리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지 않기를 바랐다. 유저들은 게임에서 하지 못하는 것, 게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왜 그런지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어째서 이런 기능이 들어가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우린 그냥 솔직하게 '개발팀이 6명밖에 없어서 개발이 좀 오래 걸린다.'라고 답했다. 솔직한 모습을 보이면 대부분 유저들도 이해해준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웃음)

지금이야 그 당시보다는 사람이 늘었지만, 유저들과 벽을 두지 않는 기조 자체는 유지하고 있다. 우리 또한 게이머이니까. 항상 그 마음가짐을 유지하려고 한다.



▲ '히어로즈 리그'의 카페 자유게시판에는 개발사도 직접 글을 쓴다


Q. 2013년에 게임테일즈가 만들어졌으니 햇수로 5년째다. 앞으로도 계속 게임을 개발해 나갈 텐데, 그 과정에서 지키고자 하는 철학이 있나?

앞서 말했듯, 유저들과의 공감대를 계속 유지해가고 싶다. 유저들의 목소리를 듣지만, 그 목소리에 침잠되어 우리만의 게임성을 잃어버리지는 않는 개발사. 그런 스튜디오가 되고 싶다. 기회가 되면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수준의 게임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웃음) 물론 어려울 것이고, 불가능에 가까울 거란 걸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생각을 품고 있어야 언젠가는 시도라도 해볼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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