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디씬에서 발견한 2D 셀 애니메이션 RPG, '탭탭 데빌북' 이야기

인터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226개 |




칼도 없이 방패로 몬스터 두들겨 패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찰기가 느껴지는 셀 애니메이션, 요즘은 잘 안 쓰는 탭 방식 UI도 눈에 들어왔고요.

고작 5명 남짓의 스타트업 개발사 '스타터(Starter)'(회사 이름이 스타터예요)가 만든 '탭탭 데빌북'의 플레이 영상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소박해 보이는 외형이었지만,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개발팀의 의지가 보였다고 할까요.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이런, 회사가 대구에 있다고 합니다. 이거 서면 인터뷰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때마침 희소식이 들렸습니다. 퍼블리셔 미팅 목적으로 스타터의 홍장배 이사가 서울로 올라온다는 이야기. 어렵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 스타터 홍장배 이사





안정적인 게임사를 박차고 나와서 인디 게임을 개발 중인데, 일단 동기부터 들어보고 싶다.

거창한 목표를 둔 건 아니다. 그냥 '우리가 해도 재밌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래도 생계까지 무시하고 개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소규모라곤 하지만, 의기투합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권상구 대표이사가 구심점이 됐다. 예전부터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했다. 사실 우리 회사의 창립 계기가 이전 회사 내 스터디 그룹이었다. 이런 일 저런 일 해보자고 논의가 오가던 중, 다들 모바일 게임 개발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현재 '스타터'의 구성원은 몇 명인가.

나까지 포함해서 5명이다. 프로그래머 2명, 아트가 2명이고 기획은 다 같이 한다. 나는 개발에 발만 걸치고 사업, PM, 회계 등 개발 외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회사가 지금 대구에 있다.

멤버들의 전 직장이 대구 게임사였고, 사는 곳도 다 대구다. 서울 올라가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사무실 임대료나 집 값이 세니, 우리같은 인디 게임사에겐 좀 부담스럽다.


요즘 각 지자체에서 중소 게임사 육성을 위해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구는 어떤가.

정말 잘 해준다. 대구의 게임지원사업은 규모가 큰 편이다. 우리 '스타터'도 한국콘텐츠진흥원 소속 대구 DIP에서 국가지원금을 받고 있다.



▲ '스타터' 사무실 전경.


게임 이야기를 해 보자. SNS에 올린 영상을 봤는데, 2D 셀 애니메이션 방식이라 눈에 띄더라.

처음에는 그냥 '연필로 그린듯 한 느낌의 액션 게임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실제 프로토타입도 그렇게 잡았고, 전체적인 UI나 색채도 그런 분위기였다. 동화적인 느낌을 강조하려다보니 지금은 색감이 좀 진해졌지만, 이펙트에서 나오는 터치 등에서는 아직 예전 분위기가 그대로 난다.


개발에 사용한 엔진이...

유니티. 그리고 개발 툴은 다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다.


가칭이 '탭탭 데빌북'인데 흔한 이름은 아니다. 탭은 조작 방식을 말하는 거고... 데빌북은 어떤 의미인가.

스토리에서 따왔다. 현세계에 우연히 나타난 마왕의 책을 통해 이세계로 넘어간 주인공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처음 만들 때와 비교해 콘셉트가 많이 바뀌어서... 좀 있으면 제목이 바뀔 것 같다(웃음).


캐릭터 모션에서 '찰지다'는 느낌이 든다. 개발하면서 참고한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트 스타일의 시작은 오래된 그룹 'Aha'의 1985년작 뮤직비디오 'Take On Me'였다. 현실 캐릭터가 만화 속 세계로 이동하는 콘셉트이며, 거친 선이 매력적인 영상이다. 모션과 이펙트 등은 '킹오브파이터'나 '메탈슬러그'를 참고했다. 과장되면서도 매력적인 모션이 마음에 들었다.



▲ aha의 'Take on me'에서 영감을 얻었다.



▲ 이펙트와 모션에서 '선'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2D 셀 애니메이션 방식은 상당한 작업 시간을 요구한다. 아직 작은 개발사인 만큼, 이후 업데이트 속도가 늦어지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초기엔 아트 리소스가 나오는 데 시간 많이 들었다. 연구와 시행착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는 훌륭하신 AD님이 완벽하게 작업을 해 주시고, 또 작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운 좋게도 우리와 호흡이 잘 맞는 외주 업체까지 만났다. 리소스 업데이트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제작 방식은 아니다. 또, 소규모 게임사이다보니 개발하면서 겪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하나 하나가 고생이다(웃음). 우리뿐 만 아니라 인디 게임사라면 아마 다 그렇지 않을까. 작게는 '오늘 저녁엔 남은 돈으로 뭘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크게는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게임이 이 시장에서 잘 통할지 걱정도 되고, 불안하니 구성원들끼리 여러가지 의견 교환도 하고, 또 많이 부딪힌다. 잘 알다시피 스타트업 게임사는 멤버가 적다. 그래서 의견 공유는 활발한데, 오히려 이 때문에 개발이 늘어질 때도 있다.


개발 초기에 '이건 꼭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가 엎어진 게 있나.

사실 '탭탭 데빌북'은 드래곤 플라이트의 모작에서 시작됐다. 제대로 된 2D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일단 모작을 하면서 우리 실력을 확인해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별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 '세로로 떨어지는 총알을 왔다갔다 피해야 하는데... 왜 그것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각도에서 총알이 쏟아지고 이를 피해야 하는 게임으로 발전시켰다.

그러고 나니 '난 주인공인데 왜 피하기만 해야 돼?' 라는 생각이 들더라. 기왕 변한 콘셉트였으니 더 적극적인 전투를 벌이는 스타일로 개조했다. 거기까지 만든 버전을 보니 더이상 '드래곤 플라이트' 스타일이 아니었다(웃음). 이후 벨트 스크롤 액션, 근접전도 넣었다. 근접전 넣으니 RPG 같아서 캐릭터 성장 요소도 넣었고.

사람들이 가끔 프로토 타입이 뭐였냐고 묻는다. "드래곤 플라이트였어요"라고 대답하면 다들 웃더라. 지금하고 전혀 다르니까.

▲ '탭탭 데빌북' 게임플레이 영상


일반적인 가상 패드 조작법이 아닌, 탭 방식을 채용한 이유가 있나.

우리가 인상 깊게 한 게임 중 하나가 '탭 타이탄'이다. 이게 참 외형은 단순해 보여도 생각보다 하드 한 게임이다. 이런 하드한 게임도 유저들에게 먹히는 걸 보니 뭔가 스치는 게 있었다. 탭 방식의 게임이 시장에 별로 없으니까 우리가 한 번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렇게 계속 만들면서 보니 제법 유니크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탭탭 데빌북'이 라이트 유저들의 접근조차 허용 안 할만큼 심각하게 어렵고 피곤한 게임은 아니다. 기본 구조는 심플하다. 내가 원하는 위치로 탭을 해 이동하고, 적을 누르면 그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은 스와이프로 피하면 된다.

사실, 처음에는 자동 공격도 없었다. 때리는 횟수만큼 꾹꾹 눌러줘야 했다. 그런데 게임을 오래 조작하면 피곤하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그래서 한 번만 누르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알아서 때리도록 수정했다. 물론, 이건 맞아가면서 잡을 수 있는 일반 몬스터 사냥할 때 이야기다. 보스전에서는 컨트롤을 좀 해줘야 한다.


탭 방식 외 다른 조작법을 채용할 계획은?

외국 게임쇼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현지 퍼블리셔들이 '버추얼 스틱이 요즘 유저들에겐 오히려 더 익숙한 조작체계'라고 하더라. 사실, 탭 방식이 우리 게임에 최적화된 조작 방식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의견을 묵살할 생각은 없다. 개발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수용해야지. 옵션 설정으로 조작 방식을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스테이지 구성 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들어보고 싶다.

'디아블로'같이 쪼개진 오픈 필드 방식이다. 액트 안에 스테이지가 여러 개 있고 최종 스테이지를 깨면 다음 액트로 넘어간다. 정식 출시 버전까지는 4개의 액트를 만들 계획이다. 물론, 하드코어 유저들을 위한 어려움 난이도도 개발 중이고.

또, 스테이지와 스테이지 사이에 전환점을 둬서 지루한 느낌을 최대한 없애고자 했다. '액트 1'이 숲 배경이라면, 1-3을 용암 지대로, 1-5를 스테이지를 사막 지대로.





영상을 보니 캐릭터가 꽤 다양해보였다.

현재 게임 내 5종이 구현됐고, 아트만 완성된 것까지 합치면 10종이다. 정식 출시 땐 15종까지 선보일 생각이다.


칼도 아니고 그냥 방패로 직접 두들겨 패는 직업도 보였다.

독특한 캐릭터를 많이 넣으려고 한다. 야성미 넘치는 하프 오크, 유령 기사단을 쏘는 언데드나이트, 불과 얼음 등 특별한 능력을 지닌 캐릭터도 개발 중이다.

사실 캐릭터 만들면서 고민도 많이 한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 자체도 어렵고, 이렇게 만든 캐릭터를 유저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일단, 정석적인 캐릭터를 충실히 마련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스타일의 캐릭터를 선보일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힐 하는 치어리더. 춤 추는 게 너무 귀엽다(웃음).



▲ 뚜렷한 개성을 지닌 '탭탭 데빌북'의 캐릭터



▲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그냥 방패로 때려도 되잖아."


각 캐릭터마다 역할이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파티플레이 게임인건가.

처음에는 역할 분담이 확실한 RPG를 생각했다. 한데, 이렇게 만들면 일부 RPG 매니아들에게만 통하는 게임이 된다. 그래서 모든 캐릭터가 기본적인 공격 능력을 갖되, 서브 스킬로 각 캐릭터의 특색에 맞는 기술을 쓰도록 변경했다.


멀티로 하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지원할 생각이다. 아마 방 만들어서 즐기는 MORPG 방식이 될 거다. '캐슬크러셔'의 코옵플레이 느낌이 나지 않을까 예상한다. 친구랑 보스전도 같이 하고.


현재 개발 상황을 몇 %라고 생각하나.

사실, 오늘 인터뷰하기 전에 퍼블리셔를 만나고 왔다. 거기서 좀 따끔한 충고를 들어서... 개발 진행도를 수정했다. 미팅 전에는 한 70% 정도 완성됐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30% 정도 완성된 것 같다. 얘기를 듣고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다.


어떤 지적을 받았나.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같은 개발 문제는 아니다. 엔드콘텐츠 구성, BM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재미를 어떤 방식으로 유저들에게 전달할지, 좀 더 심도있는 고찰을 하라고 했다. 부족한 것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집어주는, 우리같은 인디 게임사에게는 매우 현실적이고 고마운 조언이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대만, 중국, 일본 퍼블리셔가 관심을 보였다. 애니메이션 느낌 나는 2D 그래픽이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디게임 하면 '대형 게임사의 게임과는 다르게 과금방식도 좀 착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아직 BM을 확정한 건 아니라고 들었지만, 대략적으로나마 구상은 했을 것 같은데.

프리 투 플레이로 갈 생각이다. 많은 분들이 우리 게임을 보고 '이런 스타일이면 스토리와 콘텐츠 좀 더 채워서 스팀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PC 패키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예산이 훨씬 많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같이 작은 게임사에겐 좀 어려운 문제다. 나중에 게임이 잘 된다면 고려해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BM 모델 방식은 기존 모바일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캐릭터 자체의 성장같은 건 게임 내 재화로 하고, 재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과금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생각 중이다. 다만, 캐릭터 외적인 성장 아이템의 경우, 사냥 시 드랍으로 제공할지, 한 아이템을 고정으로 두고 꾸준히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할지 고민 중이다. 유저 편의성으로 보면 꾸준히 강화하는 방식이 좋고, 수익 모델로 따지자면 장비 드랍 방식이 더 좋은 것 같다.

다만, 성장에서 오는 부정적 경험을 주고 싶지는 않다. '도탑전기'가 좋은 예다. 도탑전기는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실패가 없다. 노력하는 유저는 결국 보상을 받는다. '도탑전기'도 과금 유도 심하다고 보는 유저들이 있지만, PvP 상위 랭킹까지 무과금으로 올라가 본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심한 것 같지는 않다. 과금을 안 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인디 개발사는 게임의 성공 여부에 생계가 걸려 있는데.

맞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도 되나.


괜찮다.

욕심대로 한다면, 우리도 센 과금을 넣고 싶다. '탭탭 데빌북'에 우리 미래가 걸렸고, 돈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있지 않나.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욕심만 챙겨서는 좋을 게 없다. BM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한다. 유저에게 부담이 덜 가면서, 또 돈을 쓴 만큼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찾아볼 생각이다.


솔직한 것 같다. 국내 대형 게임사의 BM도 물어본 적 있었는데, 답변의 온도가 다르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이 '매출은 신경 안 쓰고... 그냥 유저가 엄청 재미있어할 게임 만들거야!'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회사에게 '진짜로?'라고 되물었을 때, '응!'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건 정말 굉장한 거다.

우리같이 작은 규모의 회사가 생계 무시하고 꿈만 그릴 순 없다. BM으로 거짓말할 필요는 없다. 게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매출을 생각하고 싶다. 일단, 다행스럽게도 첫 작품치고는 느낌이 좋게 나온 것 같다. 인지도만 확보된다면 IP 사업으로 이어가고 싶고.


이후 스타터의 꿈을 들어보고 싶다. 유저들에게 어떤 게임사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최근에 '우린 어떤 회사인가, 뭘 만들고 싶은가'에 대해 팀원들끼리 회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나온 이야기가 '최소한, 우리가 해도 재미없는 게임은 만들지 말자'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매출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게임이 재미없게 변하더라. 물론, 대중성과 매출을 다 잡는 게임사도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정도 역량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후로 마음을 다잡게 됐지.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결국 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고.

좀 더 현실적인 목표로 말하자면 '재미있거나', '색다르거나', '놀라운'. 적어도 이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하는 게임을 쭉 만들고 싶다. 사실, 이건 최근 생각한 건데 오늘 사무실 들어가면 팀원들에게 꼭 공유할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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