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승, 그리고 미래... 삼성 갤럭시 '크라운' 이민호의 속마음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80개 |



삼성 갤럭시의 미드 라이너 '크라운' 이민호와 약속을 잡은 날은 꽤 추운 날이었다. 이미 휴가철이 끝나 선수들은 모두 숙소로 복귀한 상황, 마침 최우범 감독과의 만남도 함께 예정되어 있었기에 시간에 맞춰 공덕역으로 향했다. 음료를 미리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늦지 않게 그가 도착했다.

원래는 월드 챔피언십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간단히 질문과 답변을 이어갈 생각이었지만, 뭔가 편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니 욕심이 조금 더 생겼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속마음을 들어 볼까. 딱히 인터뷰의 컨셉이나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물론 끝나고 나서 내용을 정리하려면 고생깨나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번 인터뷰가 정리되었다. 빛이 나기 시작한 경력과는 사뭇 다르게, 그는 꽤 소탈했으며, 동시에 불안을 느끼는 평범한 젊은이였다. 진짜 '어른'이 되어가기 시작하는 나이의 딱 그런 사람이라 해야 할까? 월드 챔피언십부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그리고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미래까지. '크라운' 이민호와 한 시간가량 나눈 대화를 가감 없이 그대로 글로 옮겼다.

※ 인터뷰는 상호 경어를 사용하며 진행했지만, 편집 편의상 평어체로 기술합니다.



▲ 삼성 갤럭시 '크라운' 이민호



케스파컵이 끝난 후 꽤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 어떻게 지냈나?

1년 중 유일한 휴식기다 보니 머리도 비우고 생각도 정리할 겸 혼자 제주도에 갔다 왔다. 사실은 잘 움직이지도 않았고 그냥 바다 근처 펜션에서 시간을 보냈다.(웃음) 그렇게 생각 정리 정돈하고 다시 돌아왔다. 근데 겨울이라 그런지 딱히 뭐 볼 수 있는 게 없더라. 일단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만족했다.

휴식기가 아닐 땐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쉽지 않겠다.

아무래도 대구까지 내려가기가 힘들다 보니…. 게다가 내가 고향을 자주 가는 편도 아니다 보니 자주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 것 같다. 보통은 긴 휴식기가 아니면 숙소에서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숙소에서 쉬면 보통 뭐하고 쉬나?

작년까지는 쉴 때도 계속 연습을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에 들어서는 조금 바뀌었다. 쇼핑을 가기도 하고, 혼자 술을 마시러도 가고…. 이번에 처음 혼자서 술을 먹으러 가 봤다. 다른 팀원들은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처음으로 바에 가서 바텐더분하고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셨는데, 심심할 때 혼자 가기엔 좋은 것 같다.

다른 게임 같은 건 안 하나? 큐베 선수는 여러 종류 게임을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LoL 말고는 게임 자체를 안 한다. 모바일 게임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게임에는 아예 관심이 가질 않더라.

그러고보니 팀에 유부남 팀원이 있다. 사실 프로팀에서는 꽤 드문 일이지 않나. 같이 생활하면 다른 팀원들과 좀 다른가? 뭐 보면 부럽다거나 그런 거.

늘 같이 지내다 보니 딱히 별생각이 없다. 유부남이라는 인지도 가끔 못할 때가 많다. 그보다도 TV에서 나오는 부부 이야기 나오고 가족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부럽다거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한다. 찬용이 형(앰비션)을 보고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진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

유튜브를 보면 크라운 선수와 관련된 영상들이 꽤 나온다. 방송을 틀고 당당하게 사나이의 영상을 본다거나 거침없이 멘트를 날려 '상남자' 이미지가 만들어졌는데, 다 진짜 모습인가?

방송을 하지 않을 때도 유튜브는 자주 보는 편이다. 사실 어떤 분야를 노리고 본다기보다는 여러 영상을 보면서 '이런 것도 있구나'하는 정도다. 그렇게 보다 보니 재미있는 게 많아서 더 보게 되고 음…. 보다 보니까 또 재밌고…. 그게 재밌더라.

따로 이미지관리를 하는 편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보여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물론 '적당히' 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웃음) 이게 또 남자라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난 이게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최근 근황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월드 챔피언십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처음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날 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나?

처음에는 슬럼프를 이겨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스스로 슬럼프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도 지금 겪는 슬럼프를 떨쳐내고 싶었다. 그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대회 시작 전에도 높은 성적을 거둘 거라고 예상하였나? 우승까지는 몰랐을 것 같은데, 결승 정도는 생각해봄 직하지 않나.

자신감은 대회를 진행할수록 더 높아진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열심히 하자', '잘 하자' 이런 마음밖에 없었고, 첫 경기를 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근데 두 번째 경기에서 RNG에게 졌을 때 멘탈이 꽤 많이 흔들렸다. 열심히 해보자 했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졌다. 그게 다음 경기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게 꽤 큰 위기였는데, 그 이후로 마인드를 아예 그냥 즐기자 하는 마인드로 바꿨다. 또 그러고 나니 경기가 잘 풀리더라.

본인만의 비법 같은게 있나? 멘탈이 흔들렸을 때 마음을 가다듬는 방법이라든지.

딱히 뭐 특별한 방법은 없다. 주변에서 잘 잡아주고, 나 또한 그냥 혼자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엔 어떻게 해야지. 하면서 다짐을 한다던가.

스스로 생각할 때, 팀에서 가장 멘탈이 약한 선수는 누군가?

아마 나 빼고 네 명에게 물어본다면 전부 다 나라고 말할 거다.(웃음) 날 뺀다면 '룰러' 박재혁 선수가 가장 약할 거다. 아무래도 주력 딜러진이 좀 그런 것 같다. 근데 또 그렇다고 정신력이 강한 선수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멘탈이 나가면 다들 보고 서로 잡아주는 편이다.

보통 게이머들은 '앰비션' 선수가 군기와 함께 멘탈을 잡아준다고 생각하지 않나.(웃음) 진짜로 같은 팀원으로서는 어떤가?

찬용이 형도 약간 소심한 성격이라서 그렇게 막 멘탈을 잡아주거나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국제전과 대회 경험이 있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딱히 흔들리는 성격이 아니다. 실제로 무대에서 내가 멘탈이 깨져 있으면 찬용이 형이 와서 어깨를 툭툭 쳐주고 간다. 매우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막 나서서 분위기를 잡고, 멘탈을 챙겨주고 그런 건 아니지만 힘들 땐 늘 챙겨준다고 해야 하나?

앰비션 선수 본인은 본인을 다루는 밈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가?

처음에는 많이 신경 쓰더니 지금은 그냥 즐기는 것 같더라. 딱히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지도 않고, 크게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

다시 월드 챔피언십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결승전에서 SKT T1을 3:0으로 꺾어버렸다. 얄궂게도, 작년에 2:3으로 패배를 안겨준 팀이었다. 작년 생각이 꽤 났을 것 같은데 어땠나?

신기하게 작년 생각은 하나도 안 나더라.(웃음)

팀 내부의 분위기도 좋은 편인가?

지금은 꽤 좋은 편이다. 시즌 중에는 뭐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 분위기 안 좋을 땐 조용하다. 서로 말 한마디도 안 하고(웃음).

그럼 팀원 중에 다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멀쩡한 선수는 없나? 자극을 덜 받는다고 해야 할까? 왜 큐베 선수 같은 경우 화도 잘 안 낼 것 같은 이미지 아닌가.

그런 선수는 없는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안 보여도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아도 화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큐베 선수도 겉으로는 잘 티를 안 내도 속으로 좀 담아두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이 터지면 무섭다고 하는데 터지는 건 본 적이 없지만, 가끔 혼자 기분 상해있는걸 볼 때도 있다.

작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만족을 못 해서 아쉬웠다고 하지 않았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면 사실상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데, 이제는 좀 만족이 되나?

사실 우승을 하고 나서도 만족을 하지 못해서 은퇴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우승하긴 했는데 뭐랄까 실감이 안 났다고 해야 하나. 내 실력으로 우승한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이기고도 패배자가 된 느낌이더라. 뭐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1:1로 하는 게임이 아니라 그런지 내가 우승한 게 아니라 팀이 우승한 것 같았다.

나도 이게 내 욕심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우승했던 장면을 다시 보면 그 장면이 내가 잘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아직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다 보니 그냥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렇게 고민을 반복하다가 일단은 1년을 더 해보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머리를 비우면서 다짐했다. 1년을 더 해본 후에도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땐 깔끔하게 은퇴하기로 말이다. 이렇게 조건을 건 이유는 다음 시즌에 부진을 겪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 스스로 조건을 걸어버린 거다.




본인에게 좀 과하게 빡빡한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월드 챔피언십에서 크라운 선수가 보여준 실력을 인정하지 않나.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 주변에서도 날 보고 스스로 너무 가혹하게 채찍질을 한다고 하더라. 근데 잘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는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다. 주변에서 실질적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이라 해도 해줄 수 있는 조언은 결과적으로 '열심히 해라'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길을 알려줄 수도 없고, 나도 알 수 없다 보니 계속 채찍질만 해왔다.

그런데 그 채찍질만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휴식도 취해 보았고, 이게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쉬어야 할 타이밍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 이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다 보니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e스포츠 업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상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 활동하던 시절의 e스포츠 씬은 지금과 너무 달랐고, 주류 게임마저 달랐다. 그보다 더 윗세대는 e스포츠 자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니까…. 얼마 전에 '쏭' 김상수 코치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선수, 감독에서 은퇴하게 되면 e스포츠 선수들을 위한 멘토링을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아마 크라운 선수가 겪는 이 과정은 e스포츠 씬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초반부의 성장통이 아닐까 싶다. 그건 그렇고, 케스파컵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나?

사실 큰 의미를 둘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좀 과격한 표현인가? 근데 어쩔 수가 없다. 월드 챔피언십에서 너무 큰 힘을 쓰다 보니 케스파컵까지 집중할 겨를이 없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대회 타이밍이 힘을 주기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다.

근데 저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인터뷰하면서 느끼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걱정하게 된다. 괜히 말했다가 상대가 오해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내 일이 그런 것을 막는 거다. 평소에 커뮤니티는 자주 보는 편인가?

가끔 보는 편인데, 좋은 점도 있고 반대인 점도 있는 것 같다. 올해부터 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이 다 다르다 보니까 내 플레이에 대해 말할 때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해석한 내용이 많이 보이더라. 사실 평소엔 이런 거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다. 다 무시하는 편인데, 이게 내가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무시할 수가 없더라.

정확히 말하면 그 말들에 매몰되더라. 가령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크라운 이제 한물갔다'. '퇴물이다' 하는 거. 평소 같으면 무시하고 넘길 말도 슬럼프를 겪는 와중에 보면 마치 진짜 그런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게 진짜 위험한 것 같더라. 지금에 와서는 괜찮아지긴 했지만 뭐... 아무튼, 그랬다.

그럼 지금 와서 본인의 지난 1년을 회상해보면 어땠다고 말할 수 있나? 지난 1년간 어떻게 노력했는지 말이다.

매년 그렇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나면 스스로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끔은 내가 기준을 너무 높이 잡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냥 만족을 못하는 게 내 천성인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항상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연습을 한다기보단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많은 프로게이머가 비슷하긴 하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노력하게 되는 것이 프로게이머의 기본 소양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다시 월드 챔피언십으로 돌아와서, 경기를 치르면서 인상 깊었던 선수나 팀은 있나? 깜짝 놀랐다거나.

글쎄…. 그렇게 정확히 기억에 남거나 인상 깊었던 선수나 상대는 없었던 것 같다. 이번 대회는 매 경기가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에 대해 크게 인식하진 않은 것 같다.

참 대단한 것 같다. 보통 마음가짐으론 힘들 텐데, 그럼 지금은 휴식 끝나고 다른 선수들도 다 숙소에 와 있는 상태인가?

그렇다. 올스타에 출전한 선수들을 제외하면 모두 돌아와서 다시 연습하고 있는 상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미드 라이너로 활동하면 올스타에 뽑히기가 힘들지 않나.(Faker 선수의 인기 때문에) 서운하거나 그런 건 없나?

솔직히 말하면 정말 가기 싫었다.(웃음) 월드 챔피언십 때문에 중국에 갈 때부터 너무 힘들어서 진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생각 끝에 마음먹은 게 휴식기가 되면 꼭 여행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하와이나 유럽같이 먼 곳을 훌쩍 떠나 생각도 정리하고 힐링도 좀 하고 싶었는데, 막상 돌아오고 나니 일정이 너무 바빠서 떠날 시간이 하나도 없더라.




하긴 올스타까지 갔다면 정말 쉬는 시간이 없었겠다.

뭐. 아마 음…. 내가 올스타 갔으면…. 계약 안 했을 수도...(웃음) 농담이다. 농담. 내년에는 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올해는 너무 힘들었다.

보면 LCK팀들이 휴식 기간이 정말 짧긴 한 것 같다. LCS만 해도 시즌 중엔 바짝 바쁘지만, 그 외엔 꽤 여유로운 편인데, LCK 선수들은 가족 얼굴 보는 것도 꽤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어떤 스포츠라도 비슷하겠지만, 성적이 잘 나올수록 더 바빠진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때론 힘들기도 하다.

은퇴를 고민한 이유가 본인에게 만족을 못 해서라고 했는데, 사실 그뿐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도 있는 건가?

너무 지쳐서? 일단 지친 게 제일 큰 것 같다. 이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이젠 해도 안 되는 것 같기도 했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더라.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는 건가? 프로게이머에게 재능파와 노력파가 있다면 본인은 어떤 쪽인 것 같나?

음…. 둘 다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거다. 사람마다 다 다르지 않나. 누군가는 처음부터 100의 능력치를 가지지만 그게 한계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0으로 시작하지만, 노력에 따라 200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도 다 다를 수 있다. 일단 내 생각으로는 난 재능도 어느 정도 있지만, 노력도 한다고 생각한다.

크라운 선수 본인은 실력이 꽤 빨리 늘었다고 생각하나?

음…. 모르겠다.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활동할 때는 1년 만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고 빨리빨리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팀에 들어가고 나니 실력이 잘 늘지 않더라. LoL의 경우 시즌2부터 시작해서 처음엔 골드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시즌3에선 다이아1 99점까지 닿았다.

그럼 말도 안 되게 빨리 올라간 선수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느린 편은 아니지 않나. 조금 흐름이랑 다른 주제이긴 한데, 혹시 해외 리그에서 뛰고 싶은 생각은 없나?

최근에 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 시즌에 내가 만족할 정도로 내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NA나 EU로 가서 영어도 배우고 또 한 번 동기부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아직은 내가 스스로 만족한 해가 없었지만, 올해는 또 모르는 거니까. 그저 '가보고 싶다'라는 호기심 정도이다.

기존의 LoL 프로 선수 중에서 선수 생활에의 '동기 부여'가 되어준 선수가 있는가? 이 선수를 보고 자극을 받는다거나, 롤모델이 된다거나 하는 선수 말이다.

LoL 프로 중엔 없다. 난 스타크래프트로 게임을 시작했고, 그 선수들을 보면서 프로게이머에 대한 로망을 품었다. LoL 선수들의 경우 경쟁 상대로서는 여겨지지만 롤모델이나 우상으로서 느껴지진 않는다.

스타크래프트 프로 선수 중에서는 누굴 보고 그런 생각을 했나?

이제동(JD) 선수다. 너무 멋있었다. 이제동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반해 게임을 진짜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최고의 선수를 롤모델로 삼다 보니까 다른 선수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말해보자. 어린 시절부터 프로게이머가 꿈이었나?

아니 전혀 아니다. 내가 완전 어릴 때는 프로게이머란 직업 자체가 불분명하기도 했고, 당시엔 그냥 게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당시 하던 게임도 웬만하면 혼자서 즐기는 게임이었지, 경쟁적인 게임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놀 것 다 놀고, 공부는 안 하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가 친구와 당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꽤 자신이 있었는데도 반 친구한테 그냥 져버렸다. 그때 '어? 졌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이 친구를 이기고 싶어 빌드를 찾아보고 게임을 '공부'했다. 그렇게 1주일을 연습하고 나니 이길 수 있었다. 그 친구를 이기던 순간의 희열이 참 달콤했다. 그 승부가 너무 재미있었고, 승리를 이뤘다는 성취감이 머리를 채웠다.




그럼 그때 크라운 선수를 이겨준 반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프로게이머 크라운은 없을 수도 있었던 건가?(웃음)

그렇다.(웃음) 이후 스타크래프트에 빠졌고, 게임 방송을 보던 중 이제동 선수의 우승 장면을 보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지금 아무것도 없고, 그저 재미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나도 저 사람처럼 게임으로 저런 자리에 설 수 있을까?' 그래서 그때부터 게이머에 대해 꿈을 키웠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물론 처음에는 엄청나게 반대하셨고, 부모님과 말다툼까지 했다. 지금 와서는 부모님께 그렇게 한 걸 후회하곤 하지만, 당시엔 그게 참을 수가 없었다. 뭐 지금은 부모님도 다 인정해 주시니 괜찮지만 말이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가 되는 길은 '커리지 매치'를 뛰는 거다. 여기서 부모님이 말씀하시더라. 커리지 매치에서 실력을 검증받는다면 허락해주고, 아니면 그냥 게임 접으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고 연습생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막상 팀에 들어가고 나니 스타크래프트2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였다. 그리고 나한텐 스타크래프트2는 딱히 잘 안 맞는 게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의욕을 잃고, 내가 여기서 뭘 하나 싶어서 방황하느라 맨날 깡소주 사 먹고 그랬다. 아 생각해보니 그때 18살이었는데.(웃음)

그래도 되는 건가?(웃음)

개인방송에서 같은 팀원들이었던 형들이 다 말하더라. '민호 깡소주 마실 때가 그립다. 생각난다'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일인데 그냥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그만두게 되고, 함께 그만둔 94~96년생의 어린 게이머 지망생들과 세월을 보내며 놀았다. 새벽에 같이 게임도 하고, SNS에서 놀기도 하고, 인터넷 노래방도하고 놀면서 말이다. 그때가 2011년? 그쯤이었던 것 같다.

LoL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처음엔 LoL이 재미가 없어서 이걸 왜 하나 해서 삭제했다가 너무 할 게임이 없어서 다시 시작했다. 당시 NC소프트의 블레이드&소울을 플레이했었는데, 컴퓨터가 영 좋지 않았다. 한 20시간? 쯤 한 것 같은데 갑자기 컴퓨터에서 연기가 나더니 펑 하고 터져버리더라. (웃음)

그 컴퓨터 안 터졌으면 지금의 크라운 선수는 또 없는 건가?(웃음)

아마 안 터졌으면 또 블레이드&소울이나 하고 있지 않았겠나? (웃음) 레이드도 잘 뛰고 있었는데 갑자기 터져버려서 '에이씨' 한 번하고 다시 할 수 있는 게임을 찾은 게 LoL이었다. 처음엔 재미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공략 보고 게임을 차근차근 알아 가니까 재미있더라.


지금 보니 계기가 꽤 많다. 승부욕을 느끼게 한 반 친구도 있었고, 적당히 터진 컴퓨터도 있었고. 그러면 지금 본인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만족하는가?

물론이다. 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만족하고, 자부심도 품고 있다.




그럼 언제가 되었든, 프로게이머를 은퇴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지금 당장은…. 포장마차?(웃음) 며칠 전에 갑자기 생각나더라. 그만두면 뭐 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포장마차가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어릴 때 길에서 사 먹는 꼬치를 굉장히 좋아했다. 닭꼬치나 어묵이나 떡볶이 같은 거. 국물 막 떠먹고 그런 게 생각나더라. 그래서 생각해 봤다. 그만두면 장사나 한 번 해볼까?

지금까지 이 질문을 꽤 많은 프로게이머에게 했는데, 이런 대답은 처음 들어본 것 같다.

밑천도 많이 안 들 것 같고, 재미있을 것 같다. 뭐 물론 지금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시간이 좀 지나면 또 달라질 수도 있다. 원래는 아예 뭘 할지 생각조차 안 했다. 갑자기 생각난 거다.

보통 20대 초반의 선수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딱히 하지 않더라. 20대 중반 넘어가면서 본인의 한계가 느껴지면 그때부터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큐베 선수랑 같이하면 되겠다.(웃음)

아…. 나는 혼자 하는 게 좋다. 혼자 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웃음) 그렇게 자유롭게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하면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부터 LoL까지 프로 생활을 5년 정도 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사실 쉽지 않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는가? 그리고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지망생들에게 남겨줄 팁 같은거도 말해줄 수 있나?

항상 힘들다. 항상.(웃음) 프로게이머를 하고 나서 안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친구들에게 할 말이라면 음…. 때려치우라고 하고 싶다.

(웃음)

내가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만난 분 중 지금은 30대 중반 정도 된 큰 형님이 한분 계신다. 내가 그분에게 스타크래프트를 배웠다. 당시 스타크래프트씬엔 약간 도제 형태라고 해야 하나? 스승과 제자 관계로 게임을 배우거나 클랜을 통해 게임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그 형님이 내가 프로를 한다니 하루가 멀다고 때려치우라고 하더라. 그러면 나는 또 싫다고 박박 우기면서 게임을 배웠다.

그때 때려치웠어야 하는데…. 너무 이 길은 어두워서….

나중에 감독님한테 혼나는 거 아닌가?(웃음)

에이 괜찮다. 난 뭐 어차피 이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근데 나도 그렇지만, 때려치우라고 아무리 말해도 할 사람은 계속한다. 그렇게 해서 이겨내고 끝까지 가면 좋은 거다. 나도 아직 가는 중이고. 문제는 끝이 안 보인다. 끝을 보고 싶어서 내년에 만족할 때까지 하겠다는 조건을 걸고 게임을 하는 건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각자가 끝을 설정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설정한 '끝'은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혹시 프로씬의 다른 팀 선수 중에 친한 선수가 있는가?

예전에 'Duke' 이호성 선수와 친했는데, 중국에 진출하고 난 후엔 연락이 드문 편이다. 아무래도 다른 팀 선수들과는 좀 데면데면하다. 다 같이 모여서 소주 마시고, 미드 라이너는 또 미드 라이너끼리 만나서 마시고 그런 자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또 막상 모여있으면 아무 말도 없을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예를 들어서 솔로 랭크를 뛰다가 '프레이' 선수라도 만나면 게임 중에는 진짜 재미있게 한다. 휘장 띄우고, 채팅하고 춤도 추고 뭐 재밌게 노는데, 막상 촬영장에서 보면 '아….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간다.(웃음) 인터뷰나 행사를 떠나서 프로 선수들끼리 격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다. 프로게이머 마음 알아주는 게 또 프로게이머 아니겠나. 스타크래프트때는 아마추어 때부터 같이 올라오고, 같이 연습하고, 하나둘 프로가 되는 그런 유대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LoL은 팀 게임이다 보니 그런 자리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성격이 굉장히 외향적인 편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심각하게 스스로 채찍질하고 덤벼들어서 이런 여유도 없었는데, 요즘 즐기자는 마인드가 된 이후로 이런 면이 오히려 되살아난 것 같다.

팀에 술을 마시는 선수는 없나?

팀에는…. 마신다면 '코어장전' 조용인 선수 정도? 나도 뭐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다.

깡소주 뭔가?

그때는 한창 좋아했는데 다들 어릴 때 그럴 때 있지 않나? 그래도 나쁜 짓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정직하게 평범하게 살았다.

최우범 감독님은 요즘 어떤가? 옆에서 바라볼 때 좋아 보이나?

사실 잘 모르겠다. 감독님은 항상 나처럼 생각이 많으시다.

감독님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사람인가?

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어렵다. 한 마디로는 힘들고, 혼을 내거나 내가 멘탈이 깨질 때는 '진짜 싫다'.(웃음) 근데 또 그걸 이겨내고 나면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이 분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없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떤 때는 또 같이 있으면 너무 재미있고. 종합적으로는 어려운 분이다.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마냥 편하지도 않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벌써 1시간을 넘게 대화를 나눴다. 뭔가 맥락 없이 대화한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올해의 목표, 월드 챔피언십,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 꽤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나? 아! 제주도는 좀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 같다.

하와이를 가야 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가지 못했다. 좋다고 하던데 가본 적이 없으니 뭐.

나도 안 가봤다.

(웃음) 좋다고 하더라. 가봐야지 했는데, 못 가게 되어서 내년을 한번 노려보아야겠다. 그래도 올해는 목표를 다시 잡았으니, 좋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럼 마무리는 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적당히 알아서 마무리 짓겠다. 식상한 마무리는 재미없지 않나.

어휴. 마지막에 어려운 질문 나오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한시름 놓았다. 오늘 즐겁게 이야기 나누어서 좋았다.

우리도 즐거웠다. 숙소 들어가면 다른 선수들에게 인터뷰 추천 한 번씩 부탁한다.

(웃음) 알겠다. 근데 다들 귀찮아해서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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