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음악은 가슴 속에 남아 게임과의 연을 만든다, 작곡가 '로라 시기하라'

인터뷰 | 원동현 기자 | 댓글: 23개 |


이 세상이 끝나가면(When this world is no more)
저 달만이 남겠죠(The moon is all we'll see)
그럼 나 그대에게 날아가자 할래요(I'll ask you to fly away with me)
저 별들이 모두 져(Until the stars all fall down)
사라져버린다 해도(They empty from the sky)
난 괜찮아요(But I don't mind)
그대와 함께라면 다 괜찮으니까(If you're with me, everything's alright)


음악은 게임에서 참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모니터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그래픽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게임 내 시스템과 레벨 디자인처럼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항상 곁에 있죠. 저희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사운드는 귀를 간질이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해가며 자연스런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분은 음악으로 숱한 게이머들을 울고 웃게 만든 분입니다. '투더문'의 명곡 중 하나인 'Everything's Alright'를 직접 작곡하고 불렀으며, '식물 vs 좀비'의 사운드 트랙 전반을 담당하기도 했죠.

게임이 끝난 뒤에도 플레이어의 가슴 속에 남아 연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는 '로라 시기하라', 그녀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인벤에서 서면 인터뷰로 담아봤습니다.






▲ 게임 개발자 겸 싱어송라이터 '로라 시기하라(Laura Shigihara)'

원동현 기자(이하 원동현) : 안녕하세요! 한국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인사 및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로라 시기하라(이하 로라) : 안녕하세요, 저는 비디오 게임 개발자이자 작곡가 겸 싱어송라이터인 로라 시기하라입니다. '식물 vs 좀비(Plants vs Zombie)'의 사운드 트랙을 제작했고, '라쿠엔(Rakuen)'이라는 게임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 '투더문', '파인딩 파라다이스(Finding Paradise)', '슈퍼미트보이(Super Meat Boy)' 등 30여개 게임의 일부 음원을 제작했기도 했죠.

그리고 '마인크래프트' 다큐멘터리의 엔딩 테마를 직접 부르기도 했고, '크로노 트리거/크로노 크로스'의 20주년 공식 앨범 작업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취미 생활로는 등산을 하거나, 카페에서 친구들과 게임 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 최근 출시된 '파인딩 파라다이스' - Wish My Life Away(로라 시기하라)


원동현 : 클래식 음악에 상당히 정통한 것으로 유명한데, 게임 음악에 몸 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할만한 '인생 게임'과 '게임 음악'이 있었나요?

로라 : 어렸을 적, 저는 비디오 게임 '음악'을 비디오 '게임' 만큼 좋아했습니다. 초창기 비디오 게임의 경우, 작곡가들이 수많은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곤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굉장히 중독성 있고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만한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음악들을 말이죠. 저는 '비디오 게임 음악'의 이런 매력을 깨달은 뒤 그만 반해버렸어요. 실제로 어릴 적 집에서 숙제를 할 때 '메가맨' 게임 음악을 종종 틀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정적인 느낌의 곡을 가진 게임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크로노 트리거', '파이널판타지6'처럼 스토리가 인상 깊은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러한 스토리와 감정에 맞춰진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런 끌림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원동현 : 음악은 게임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로라 : 저는 음악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의 감정의 형태를 잡아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면서 기쁨과 슬픔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는 필수적인 요소죠. 그리고 게임이 끝난 뒤에도 플레이어의 가슴 속에 남아 게임과의 연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원동현 : 게임 음악이 기타 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은 무엇일까요?

로라 : 게임 음악은 게임 플레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작곡에 임해야 합니다. 실제로 전 작곡을 할 때, 백그라운드에 게임을 켜두고 작업을 합니다. 실제 게임 플레이와 음악이 서로 잘 맞는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니까요. 만약 음악이 지나치게 강렬하면, 플레이어들은 몇몇 구간에서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음악이 감정적으로 뭔가 부족하면, 컷신에 담긴 의미가 사라져버리겠죠. 이렇듯 게임 음악은 해당 게임의 기능과 흐름에 대한 이해 없이는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 내가 비디오 게임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 로라 시기하라


원동현 : 작곡을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로라 : 저는 항상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에 어우러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게임 전반의 분위기를 상상하고, 그에 따른 플레이어의 감정을 깊게 이해해보는 거죠. 저는 제 음악을 통해 그들과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동현 : 작곡뿐만 아니라 직접 부른 보컬 역시 아주 청아하고 매력적입니다. 본격적인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로라 : 고마워요! 실제로 저는 게임 음악 작곡가 되기 전에 일본에서 가수로 음반을 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업을 마저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기타 개인적인 문제도 겹쳐서 거절하게 됐죠.


원동현 : 유독 애착이 가는 곡이 있으신가요?

로라 : 제가 작곡한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라쿠엔'에 삽입된 'Build a Little World With Me'입니다. 게임 내 굉장히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는 곡이기도 하고, 제 가장 소중한 친구를 떠올리며 가사를 썼던 곡이기에 제게 있어 아주 특별한 곡이에요.



원동현 : 혹시 한국 게임 음악 중 인상 깊은 곡이나 작곡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로라 : 예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굉장히 다양하고 아름다운 영화와 게임 음악들을 소개받았어요. 다만 아쉽게도 그 음악들을 소개해준 친구가 작곡가분들의 이름까지는 몰랐습니다.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게임 작곡가분들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어요!


원동현 : 과거 '식물 vs 좀비'에서 사운드 디렉터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이후, 'WOW'에서 노래하는 해바라기 펫의 성우를 맡기도 했는데 많은 러브콜과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로라 : 말씀해주신 프로젝트를 마친 뒤, 저는 아주 다양한 게임 음악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EA에서 오디오 디렉터를 맡아 '마인크래프트' 다큐멘터리의 엔딩 테마를 부르기도 했죠.



원동현 : '투더문'의 'Everything's alright'는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곡입니다.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명곡으로 꼽히는 음악인데 어떤 감정과 해석을 담아내고자 하셨나요?

로라 : 저는 두 사람이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감정적인 장벽을 갖게 된 그 관계성과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 둘은 서로에게 접점이 생기길 갈망했지만, 어떻게 해야 그 접점을 만들 수 있는지를 몰랐죠. 저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고, 동시에 아련하기까지 한 그 감정을 가사에 담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원동현 : 작년에 직접 개발에 참여한 '라쿠엔'이 출시됐습니다. 어떤 게임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로라 : 라쿠엔은 병원에서 살아가는 작은 소년에 관한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인 소년은 엄마한테 자신을 환상 세계로 데려가달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책에 나온 숲의 수호자에게 소원을 부탁하기 위해서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소년은 환상 세계 속에서 병원 환자들의 또 다른 자아를 만나 도움을 줘야 하는 시련을 맞이하고,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 아름답고 애잔했던 '라쿠엔'


원동현 : 전 세계에서 상당히 호평받는 중인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로라 :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쿠엔'이 워낙 무거운 주제를 다뤘기 때문에 이렇게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아주 소수의 분들이라도 이 게임을 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면, 저는 정말 기쁠 거 같습니다.

실제로 '라쿠엔'을 플레이하신 분들께 많은 메세지를 받았어요. '라쿠엔'이 자신이 힘들었던 기간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줬다던가,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새삼스럽지만 전할 수 있었다든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죠. 이런 일화들 덕분에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원동현 : 음악이 아니라 본격적인 개발로 참여하게 되면서 느낀 차이점이 있을까요?

로라 : 자신의 게임을 만들 때는 아무래도 자유롭고 흥분되는 게 있죠. 어떠한 제약도 없이 아주 순수하게 자신의 비전을 표현해낼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느 순간 스토리를 가슴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이후 스토리에 어우러지는 음악을 만드는 게 한결 쉬워졌죠.


원동현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로라 : 앨범도 낼 생각이고, 노래를 더욱 자주 들려드릴 계획이에요! 그리고 아직 형태를 잡는 단계이긴 하지만 새로운 게임도 준비 중입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