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 개발자의 '고백',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인터뷰 | 원동현 기자 | 댓글: 6개 |



게임은 오락이기 이전에 하나의 미디어다. 오락이라는 틀 안에 가려 언뜻 무시하기 쉽지만, 그 속에는 정보 전달의 창구로서의 가치가 숨어있다. 그 어떤 미디어보다도 강력한 상호작용성을 갖추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접근성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과거 '더 듀'와 '투생' 등으로 주목을 받았던 팀 찌콘의 윤성배 개발자는 최근 독특한 신작을 출시했다. '고백'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말 그대로 개발자의 인생이 담긴 '고백문'이었다. 그림보단 텍스트가 많고, 전체적인 구성도 불친절해 게임으로 바라봐야 할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 게임을 바라보자면, 이는 인생이 담긴 편지와 같았다. 다른 사람과의 인생과 대결해 패배하고, 드래그&클릭으로 열등감을 재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강렬했다.

개발자와 유저간의 관계는 이상적이라고 강조한 윤성배 개발자, 그는 어떤 시선으로 게임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 찌콘 윤성배 개발자

Q. ‘투생’ 이후 오랜만이다. 그동안 뭐 하고 지냈나?

얼마 전에 출시한 ‘고백' 작업하고, 개인적으로 부족하다 생각한 부분들을 공부했다. 다른 프로젝트도 하나 개발 중인데, 올해 말에 출시할 예정이라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Q. 개인적으로 부족하다 느꼈던 건 어떤 부분인가?

처음엔 기획을 중심으로 생각해왔다. 스스로도 기획자라 생각해왔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프로그래밍까지 담당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래밍의 기초가 부족해 게임 개발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최근 몇 달간 틈나는 대로 프로그래밍 공부만 했던 거 같다.


Q. 이번에 출시한 ‘고백’, 정말 특이했다. 본인의 열등감을 아주 강렬한 색채로 그려냈다.

말 그대로 내 ‘고백’을 담은 게임이다. ’투생’도 그랬지만, 그냥 텍스트를 전달하기보단 몇몇 추상적인 상징을 활용해 색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실 특별할 건 없는 게임이다. 그냥 여타 게임들처럼 특별해 보이고 싶고, 나를 더 알리고 싶었던 욕심이 들어갔을 뿐이다. 다른 친구들은 석사과정을 밟거나,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데 나는 방구석에서 뭐 하는 걸까 회의감이 들었다. 왜 난 게임을 만들까? 이게 운명이라도 될까? 이런저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런데,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더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열등감을 품고 살고 있다. 젊은 시절 간직했던 창창한 꿈들을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포기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더러 봤다. 나의 고백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Q. 어떻게 만들게 된 게임인가?

앞서 말했듯 별 의도는 없었다. 일기를 쓰듯 만들어간 게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꼭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Q. 예전부터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하다. 예전 작품인 ‘눈과 눈과 눈’, ‘투생’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게임을 오락이라기보단 하나의 미디어로서 접근하는 거 같다.

저도 메이저한 게임 참 좋아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도 친구들과 자주 즐기지만, 그냥 제가 인디게임의 특징을 담아낼려고 의식해서 그런 거 같다.

인디게임은 개인적인 내용을 자주 담는다. 그러다 보니 메이저한 게임에 비해 스토리텔링의 폭이 넓은 편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제작자의 의도 등을 유저가 파악하는 순간이 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순간을 좋아한다. 인디게임이 갖출 수 있는 장점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 강렬한 개성이 돋보였던 '투생'

Q. 고백을 플레이하는 중에 인상 깊은 문구를 발견했다. ‘개발자와 유저 사이의 관계는 이상적이다’라고 적혀있었는데, 어떤 의미인가?

음, 유저들은 개발자인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내 게임을 주변 지인에게 보여주면, 솔직히 쓴소리 잘 못 한다. 고생해서 만든 걸 아니까. 하지만 유저들은 거침없이 한다.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성격이 어떤지 그런 걸 유저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할 말은 하는 관계, 난 이게 마음이 편하다.

솔직히 예전엔 안 좋은 리뷰를 보면 기분이 안 좋기도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장 솔직한 게 유저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 솔직한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게 유저 덕분이다. 가장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주니까. 그래서 그런 문구를 썼다.


Q. 그렇다면, 그 이상적인 관계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는 무엇이었나?

고귀한 뜻은 없다. 본인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사람 모두 저마다의 열등감을 갖고 있으니 특별하게 생각할 것 없다는 뜻 정도.


Q. 뭔가 현대미술 같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메세지를 정하고 만든 게임이 아니다. 그저 나의 고백일 뿐이고, 유저들에겐 각기 다른 의미로 와닿을 거라 생각한다.




Q. 열등감, 사실 누구나 갖고 있을 감정이라 생각한다. 나에겐 없지만, 남에겐 있는 건 너무나 많으니까. 윤성배 씨 같은 1인 개발자라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질 거 같다.

성공이 꼭 열등감 해소의 열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게임회사에 들어갔어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다른 인디게임 개발자분들 작품 보면서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다. 현실적으로 방황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착실히 길을 걸어간다는 불안감이 있다.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말이다. 인디 개발자로서의 열등감은 그런 거였다.


Q. 게임 속에서는 본인의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뤘었다. 어떤 열등감을 겪었나?

그런 공동체에는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기곤 했다. 난 그 사람들을 못 잡아서 안달이었던 거 같다. 억지로 있어 보이는 척, 특별한 척 해보려고 용을 썼다. 책을 정말 안 좋아했는데, 뭔가 달라질까 해서 책도 엄청 읽었다. 예술대로 진학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공부로는 1등을 해본 적이 없기에, 예술대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Q. 게임도 마찬가지인가?

솔직히 그런 점도 있는 거 같다. 대학에 들어와서 게임 만들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으니까. 친구들은 글을 쓰고, 영화를 찍고 있는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나의 차별화 전략으로 시작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Q.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는데, 굉장히 솔직한 거 같다.

그냥 말주변이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고백이란 게임으로 이미 나를 다 드러냈는데, 인터뷰로 따로 포장할 건 없을 거 같다.


Q. 게임 속 이야기는 전부 실화인가?

맞다. 내가 듣거나 이야기했던 걸 그대로 담아냈다. 그림이나 사진은 친구들한테 얻어서 인게임에 적용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약간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려 노력했다.




Q. 자신의 터부를 드러내는 내용인데, 두려움은 없었나?

소위 ‘꼴값’이라고 볼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던가, 이걸 내가 왜 해야 되냐고 유저들이 반문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은 분명 있었다. 워낙 개인적인 일화로 이루어진 게임이니까.


Q.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하지만 꼭 해야 될 의미가 있는 게임이란 게 있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유저분들이 게임 속에서 각자만의 의미를 찾아가셨으면 좋겠다.


Q. 항상 강렬한 색깔을 게임에 담아내지만, 상업성과는 참 거리가 먼 것 같다. 다가갈 생각은 없나?

상업성 띄는 작품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잘 만들 자신이 없을 뿐이다. 그나마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기존 작품과 분위기는 비슷하면서도 ‘가장 상업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Q. 어떤 작품인가?

‘잠’을 소재로 썼다. 사람은 보통 8시간을 자고, 16시간을 활동한다. 그런데 만약 23시간을 자고, 1시간 동안만 깨어있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1시간 동안 밥도 먹어야 하고, 햇빛도 쬐어야 할 거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 시설 관리나 보급도 해야 될 거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생존 전략을 만들어내는 시뮬레이션 게임이고, 프로젝트명은 ‘원아워’로 부르고 있다. 올해 말에 스팀 플랫폼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Q. 소설 같은 느낌의 소재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과거 팀원이 잠이 정말 없던 친구였다. 그에 반해 나는 잠이 정말 많아서 항상 우스개소리로 ‘너가 내 잠을 대신 자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만약 다른 사람이 내 잠을 대신 자줄 수 있다면 부자는 잠을 안 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하루에 1시간만 깨어있을 수 있다면 어떻게 살게 될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게임 개발까지 진행하게 됐다.

스토리텔링이나 세계관은 아직 정확하게 정하진 않은 상태지만, 아마 이 아이디어를 따라갈 거 같다. 시간을 팔아버린 탓에 1시간밖에 깨어있을 수 없는 주인공을 생존하게 만드는 것이 1차 목표고, 조금씩 돈을 모아 다시 정상적인 활동시간을 갖게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가 될 거 같다.


Q. 앞서 말한 열등감들, 이 게임으로 끝낼 수 있을까?

분명 끝내려고 노력은 할 거다. 과거 작품들은 돈을 생각하고 만든 적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프로페셔널하게 바뀌고 싶고, 하나의 스튜디오로 독립도 하고 싶다. 그리고 훗날엔 IGF에서 우승까지 하는 게 지금의 바람이다. 욕심일 수 있지만, 이 프로젝트로 열등감의 고리를 끊고 싶다. 못난 사람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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