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퇴합니다" 6년을 달려온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시간여행 -1

인터뷰 | 박범, 남기백, 유희은 기자 | 댓글: 60개 |



모두에겐 마음속 1순위 프로게이머가 있다. LoL e스포츠 전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누구나 다 이름은 들어봤을 '페이커' 이상혁처럼 거창하진 않더라도 '내 마음속 1등'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내 친구라서, LoL을 정말 잘해서, 내가 좋아하는 팀 소속 프로게이머라서. 이유도 다양할 것이다.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어떨까. 이미 많은 서포터 프로게이머들이 마음 한 쪽에 깊이 동경하는 프로게이머임에 틀림없다. 그는 소위 '와드 박는 기계'였던 서포터 포지션으로도 캐리가 가능하다는 걸 세계 최초로 알린 프로게이머다. 모두가 그의 블리츠크랭크나 쓰레쉬 슈퍼 플레이를 기억하고 있다. 그의 플레이를 보고 서포터로 LoL을 시작한 사람들도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에겐 '매드라이프'가 마음속 1위 프로게이머일 것이다.

그런 그가 은퇴를 선언했다. 오랫동안 이어온 프로게이머 생활의 끝을 알렸다. 골드코인 유나이티드에서 나온 뒤로 좀처럼 이적 관련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기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은퇴에 대한 결심을 전하고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자 했다.

건대입구역 근처에서 오랜만에 만난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여전했다. 단정한 머리에 특유의 안경을 끼고 나타났다. 살짝 수줍은 듯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약간 울리는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인사를 한 뒤에 쭈뼛쭈뼛 약속 장소였던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 하지만 그는 이제 곧 프로게이머가 아닌 일반인이 된다. 그래서 평소와 같은 모습에도 '매드라이프' 홍민기가 어딘지 달라 보였다.

프로게이머 인생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그동안 '매드라이프' 홍민기가 걸어왔던 길을 시간의 순서대로 되짚어보기로 했다. MiG로 시작해서 아주부와 CJ 엔투스를 거쳐 골드코인 유나이티드까지. 중요한 시기에 맞이한 일종의 시간여행인 셈이었다.




"작년에 미국에서 두 번 연속으로 승격강등전에서 실패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또 좌절인가'라는 생각. 팀을 나오고 나서 스프링 스플릿 동안 휴식을 취하고 섬머 스플릿에 다시 힘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내가 과연 팀에 들어가서 거기에 잘 녹아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죠."

"아무래도 프로게이머는 직전 스플릿의 성적이 다음 스플릿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요. 근데 제 마지막 성적은 좋지 않았죠. 승격하지 못했잖아요.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성적이 잘 나올 수 있는 팀, 미래가 보장되는 팀 쪽으로 많이 알아봤어요. 좋은 팀에서 제의가 온 적도 있었지만, 제 기준에는 살짝 미치지 않아서 방황하는 시기가 길어졌죠. 욕심이 조금 많았어요.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스프링 스플릿 도중에는 쉬면서 개인방송을 했어요."


무엇보다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질문했다. 은퇴를 결정하게 된 계기, 그리고 지금의 솔직한 심정.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담담하게 답변해줬다. 그러면서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섬머 스플릿 때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서 나오는 진심 어린 사과였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프로게이머로 보냈던 '매드라이프' 홍민기가 은퇴를 선언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을 터. 그런 고민은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조언을 구하면서 어느 정도 무게감을 덜게 마련이다. 하지만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그러지 않았다. 오직 딱 한 사람, RNG의 총감독으로 활동 중인 손대영에게만 은퇴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많이 바쁘실 텐데도 제 고민 상담을 많이 해주셨어요. 스프링 스플릿이 끝나고 휴식기를 가지실 때 실제로 한 번 만나기도 했고요. 고민을 털어놨더니 '기로에 서 있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선수에 대한 생각보다는 미래 설계 같은 부분에 더욱 집중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아무래도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짧다 보니까."

"(손)대영이 형이 '너는 코치나 방송을 해도 잘 될 것 같으니 딱 하나에만 집중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봐'라고 해주셨어요. 그리고 객원 해설을 하는 걸 보니 해설위원으로 나가도 잘할 것 같다고 해주셨고요. 사실 많이 두려웠는데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어주셔서 고마웠죠."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사실 그때까지 프로게이머에 대한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고 했다. 계속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손대영 총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었고, 다른 쪽 길을 물색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전했다.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나누고 본격적으로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은퇴를 발표하는 인터뷰에서,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활동했던 팀의 유니폼을 입고 당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하고 있는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모습에서 많은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MiG와 아주부 시절 유니폼이 없어서 챙겨오지 못했다며 어색하게 발현되는 그의 미소와 함께 우리는 타임머신에 발을 들였다.

"저는 처음에 LoL에서 '랜선 친구'들과 함께 일반 게임만 즐겼어요. 일반 게임 1,000승을 찍으면 그때부터 랭크 게임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알게 됐는데 거기서 (장)건웅이 형의 눈에 들게 됐어요. 당시에 형이 '대회를 나가고 싶은데 한자리가 남았으니 함께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원래 제가 '아싸'거든요. '아싸'는 그런 집단생활의 경험이 없어요(웃음). 고민을 많이 했고,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팀에 합류했어요. 그게 잘 풀려서 WCG 예선전이라는 오프라인 대회에 출전하게 됐죠. 그게 제 오프라인 대회 데뷔전이네요. 당시 대회 현장에 모자를 쓰고 가는 '돌연변이'는 저 밖에 없었어요(웃음)."




"예선전이 끝나고 결승까지 한 달 가량 쉬는 기간이 있었고, 그때 MiG가 생겼어요. 강현종 감독님도 합류하시면서 팀에 체계가 생겼죠. '아싸'였던 저도 합숙 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게임을 했고 인생을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어요. 단칸방에 모여서 게임하는 등 환경이 지금에 비하면 턱없이 열악했는데 그런 경험들 덕분에 2012년에 잘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 번 힘든 환경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어딜 가더라도 '꼰대'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하면서."

파란만장했던 그의 프로게이머 생활의 시작을 알렸던 순간을 기억해내는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유독 인터뷰 내내 본인을 '아싸'라고 표현했다. 게임만 좋아하는, 주변에 친구도 많지 않아 인간관계도 그리 넓지 않았던 청년이 LoL e스포츠에 첫 발을 내딛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함께 탄 타임머신은 MiG 시절을 거쳐 아주부 시절에 도착했다. 어찌 보면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프로게이머 인생 중에 가장 빛났던 순간이었다. 모두가 '매드라이프'를 보면서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웠고,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서포터를 선택했다. 블리츠크랭크로 상대 챔피언을 잘 끌어오면 서로 '님 매드라이프임?'이라고 칭찬했던 그런 시기였다.

그때 당시를 추억하던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자신이 프로게이머의 첫걸음을 잘 뗀 것 같냐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그렇다고 했다.

"저는 운이 굉장히 좋았어요. 누군가 흘러가는 강에 손을 뻗었는데 제가 운 좋게 건져 올려진 느낌? 제가 처음 팀에 들어갔을 때 잘하는 팀원들만 있었고, '로코도코' 최윤섭의 도움으로 해외 팀과 스크림도 할 수 있었죠. 건웅이 형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단칸방이었지만 다 같이 모여서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강현종 감독님에게 다양한 지도를 받을 수도 있었어요."

"물론, 정말 힘들었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확실치 않았어요. 열정 만으로 뭉친 거였는데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잘 풀렸죠. 그러면서 아주부의 도움도 받게 됐고요. 처음으로 월급이라는 것도 받아보고, 연습실도 이전보다 몇 배로 커졌어요. 그래도 MiG 시절에 힘들었던 경험이 아주부 시절에 거뒀던 좋은 성적의 밑거름이 됐다는 건 확실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프로게이머로 첫 발을 잘 디딘 셈이죠."


MiG를 거쳐 아주부 시절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는 아직도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개인방송에서 함께 게임을 즐기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고, '얼불저스'와 같은 기획 프로그램에서도 여전한 우정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힘든 시기를 같이 보냈던 게 크지 않을까요? 그리고 당시 멤버들이 지금은 개인방송을 각자 하다 보니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있어요(웃음). 백수 아닌 백수 느낌이죠. 그러다 보니 전보다 더 가까워졌어요. 현역으로 아직 활동하는 선수들은 워낙 바빠서 연락을 하기 쉽지 않지만, 여전히 친하고요. 그 사람들이랑 서로 과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추억을 되짚으면서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어요."

프로게이머로 살아왔던 인생 중에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추억하는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뒤로 한 채 이번 단락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매드라이프'라는 사람에게 MiG와 아주부 시절은 어떤 의미였는지 한 단어로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깊게 고민하던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복권이라고 답했다.

"1등에 당첨된 복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아마 그때 인생의 운을 다 썼기 때문에 앞으로 복권에 당첨되진 않을 거예요. 어쩐지 그 뒤로는 복권 당첨이랑 인연이 없더라고요."

MiG와 아주부 유니폼이 없어서 인터뷰 시작부터 계속 입고 있긴 했지만, CJ 엔투스 시절의 이야기를 질문하려니 그 유니폼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예전에는 TV나 현장에서 자주 봤던 유니폼이었는데. 잠깐 감상에 젖어있다 보니 '매드라이프' 홍민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입고 경기하러 가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편한 것 같아요. 경기할 땐 긴장을 해서 어쩐지 이 유니폼이 전투복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트레이닝 복 느낌? 감회가 새롭네요. 그리 반갑진 않아요(웃음)."

유니폼에 대한 감상으로 한 말이었지만, 사실 CJ 엔투스 시절 역시 '매드라이프' 홍민기에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시절일 거라는 예상을 했다. 찬란했던 아주부 시절이 CJ 엔투스 쪽으로 넘어갔고, 사실 그때부터 조금씩 삐걱거렸다. 함께 했던 멤버들이 하나둘씩 이탈했고, 그럴수록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조금씩 어른이 됐다.

"일단, 성적이 점점 하락해서 정말 아쉬웠어요. MiG부터 시작해서 아주부, CJ 엔투스로 넘어왔는데, CJ가 대기업이잖아요. 대우가 정말 좋았어요.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계속 냈다면 명성과 부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전 많이 어렸어요.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감독님과 코치님의 말을 더 잘 들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머리가 조금씩 커지다 보니 말을 잘 듣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후회가 많이 돼요. 잘하는 신인들도 대거 등장해서 힘들기도 했고요. 고난의 시즌이라고 해야 할까요?"

"2016년 전까지는 저 말고도 팀에 베테랑 선수들이 많았죠. 저는 '샤이' (박)상면이 형의 오른팔 같은 느낌으로 지냈어요. 그러다가 상면이 형이 휴식을 취했고 신인 선수들이 대거 영입됐죠.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넘어지면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래서 성적을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점점 힘에 부쳤어요. 노력에 비해 성적이 너무 안 나왔고, 성난 민심의 '어그로'도 저한테 많이 쏠렸죠(웃음). 그런 시즌이 반복되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왼쪽 어깨에는 탑-정글이 올라가있고, 오른쪽에는 미드-원딜이 올라탄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잘 버티려 했고 나름 해냈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무게감에 짓눌렸던 것 같아요."


가라앉을 수 있는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이에도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했다. 동료이자 어린 동생들 같았던 팀원들도 다 좋았고, 덕분에 스스로에게 동생들을 챙길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걸 발견해서 좋았다고도 했다. 그 친구들 만큼 이상한 친구들을 인생 동안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며 웃기도 했다.




"10살 차이 나는 동생도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초등학생 때 저는 MiG에서 우승을 했더라고요. 팀원들이 실제로 평소에 '메멘' 거리면서 달라붙었어요. 나중에는 너무 그래서 조금 짜증도 났지만(웃음). 당시 경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많이 챙겨주려고 노력했어요. 제 스스로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매드라이프'라는 네임밸류에 팀원들이 많이 의지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게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단점도 있었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저에게 할 말을 못 하는 것을 느껴졌어요. 아무리 신인 선수라도 제가 못하면 그걸 본인도 알 것이고, 제가 못했을 때 너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같은 선수끼리 나이나 이런 것들을 다 빼고 피드백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쪽에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동생들의 입장도 이해돼요. 제가 그 입장이었다고 해도 똑같았을 것 같아요."


'매드라이프'는 이때 처음으로 은퇴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때는 막연한 상상이었지만, 최근 은퇴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면서 그때의 경험은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됐다고 했다. 자의건 타의건 '꼰대'가 되어가는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CJ 엔투스 시절에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팀 내에서도 점점 어른이 되어갔지만, 밖으로도 점점 성숙해졌다. 그는 팬들의 투표로 올스타전에 단골손님처럼 출전하면서 인간 홍민기라는 면에서 봤을 때 역시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2013년에 처음 올스타전에 나갈 때는 국가대표 느낌이었어요. 그때 올스타전 자체가 국가대항전 느낌이었죠. '두뇌 풀가동'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때 마침 쓰레쉬 메타였기에 저도 나름 잘했던 거 같아요. 그 이후로는 이벤트 대회 느낌이 많이 강해졌고, 놀러 간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해외 선수들과 이야기도 많이 해보고 그 나라의 랜드마크도 관광하고요."

"일단 제가 본성이 '아싸'라...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못했고 겁도 많았아요. '클템' (이)현우 형이 옆에서 대화하는 걸 보고 해외 선수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게 됐을 정도였죠. 2015년부터는 저도 영어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어요. 그래서 번역기도 써보고, 뒤풀이 행사에 가서 이야기도 나눠봤죠. '레클레스'나 '더블리프트'랑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해외 매체 기자분들과도 어떻게 해서라도 대화를 해봤고요. '더블리프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장난도 저한테 먼저 걸어주고 편하게 대해줬죠. 그런데 같이 게임할 땐 베인만 고르더라고요(웃음)."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그 경험들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의 본래 성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고, 그래서 만들어진 성격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런 일에 마음을 먹고 실제로 행동했다는 것 자체에 뿌듯한 마음이 든단다. 이처럼 홍민기라는 사람은 '매드라이프'라는 프로게이머와 함께 점점 어른이 됐다.

그래서인지 그 역시 모든 사람이 어른이 되면서 겪는 슬픈 일을 겪었다. 오래도록 함께 했던 팀원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났고, 강현종 감독과 손대영 당시 코치, 정제승 코치도 CJ 엔투스, 그리고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곁을 떠났다. 잇따른 이별에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어요.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계속 남아주실 줄 알았는데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로 하셨을 때 많이 슬펐죠. 공식 발표까지 났을 때 '다음 시즌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나마 안심이 됐던 건, 아니죠... 안심이라기보다는 슬펐던 건 그 이별에 대한 적응이 빨랐다는 점이었어요. 워낙 팀 동료들과의 이별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쯤인가 이별에 적응했던 것 같아요. 아쉽지만, 최대한 빨리 현실에 적응해야 했어요. 저는 프로게이머였으니까."

CJ 엔투스의 터줏대감이었던 만큼 참 많은 일이 '매드라이프' 홍민기에게 찾아왔다.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친분을 유지하려고 했던 변화와 함께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잦은 이별, 아쉬운 성적으로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인간적으로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드라이프' 홍민기 본인은 CJ 엔투스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일반적인 의미랑 조금 다른 의미로 그래요. 제가 산을 하나 넘었는데 다음 산은 방금 것보다는 낮아요. 그런데 제가 산을 하나 넘느라 체력이 너무 빠져서 너무 높아 보이는 느낌이었죠."


- 2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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