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옥배 PD, 아버지로서 게임을 담다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16개 |
20년째 같은 말을 하는 엄마가 있다. 아들이 게임을 하면, "지금 뭐 하냐?"라고 묻는다. 1999년에도, 2009년에도, 2019년에도 그러신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게임합니다"라고 답했다. 어릴 때는 무서워하며 답했고, 학생 때는 반항하듯 답했다. 당연히 엄마는 아들이 게임하는 걸 몰라서 뭐 하냐고 물으신 게 아니다. 이 아까운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왜 게임을 하냐는 게 진짜 의미다. 아들은 이제 게임을 한다 답하지 않고, "취재 중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기자의 얘기다.

부모 관점에서 게임은 자식의 공부 시간을 빼앗는 원흉으로 비친다. 게임을 취재하는 기자로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에게는 슬슬 게임에 맛 들인 조카 둘이 있다. 조카들은 매일 게임을 접하는 삼촌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게임을 시켜주지 않는 엄마를 둔 조카들은 삼촌을 만날 때마다 게임을 시켜달라고 조른다. 그때마다 '포켓몬스터'를 시켜주는 삼촌이 누나는 못마땅하다.

첫째 조카는 이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도 첫 번째 관장을 이길 만큼 '포켓몬스터' 실력이 늘었다. '포켓몬스터'를 좋아하는 거 같아 서점에서 '포켓몬스터' 도감을 사주니 몇 시간 동안 붙잡고 읽어 내려간다. 그런데, 삼촌 입장에서도 조카가 '포켓몬스터' 게임을 하는 모습보다 '마법천자문' 책을 보는 모습이 더 예뻐 보인다. 그토록 게임중독 질병 등록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취재해온 기자이지만, 조카가 게임에 너무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조카가 책을 읽었을 때는 하지 않았던 고민이 게임을 할 때에는 든다.

전옥배 PD 역시 세 아이를 둔 아버지의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봤다. 사실, 그가 게임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게임 관련 다큐멘터리 공모를 냈고, 그는 외주를 따내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에 관심을 뒀다. 처음 한콘진이 그에게 바란 것은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었다.



▲ 전옥배 PD

하지만, 전 PD는 무작정 게임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에 의문을 가졌다. TV에 게임의 긍정적인 모습을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4차 산업의 주역이 게임이라고 띄우면 된다. 또는, 자녀가 '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져서 고민을 갖는 부모에게 '페이커'의 연봉을 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커'와 같은 존재는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극소수다.
"누구나 성공한 사람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정말 소수에요. 예술고등학교에 가서 '너도 아이유나 방탄소년단처럼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 게임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섣부른 환상 심어주기를 지양했어요"
게임 중독과 과몰입 사이에서 무슨 단어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도 그가 원하는 대중 다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과몰입'보다 '중독'을 같이 언급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전옥배 PD는 게임 과몰입이 옳은 단어라고 주장하기보다, 게임 중독이 틀린 논리란 것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다큐 촬영을 시작하면서 전옥배 PD는 게임 때문에 불화를 겪는 가정을 찾아다녔다. 그는 만났던 부모들이 하나같이 "아이가 게임에 중독돼서 걱정이에요"라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가 관찰해본 아이는 게임에 중독되어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었다.




예로, 김서진 어린이는 전옥배 PD가 보기에 부모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오후 3시부터 부모가 오는 오후 7시까지 서진이는 집에 혼자 있었다. 혼자만 있던 서진이는 그 시간에 게임을 했다. 어쩌면 부모는 그 시간에 서진이가 혼자 공부를 하길 바랐었을 수 있다. 한다는 게 공부에서 게임으로 바뀐 서진이를 보고 부모는 불만을 느꼈다.

두 번째 아이 준민(가명) 어린이는 서진이와 반대로 개인 시간이 없어서 게임에 빠져든 경우였다. 학교를 마친 뒤 학원에 가는 준민이는 친구랑 놀 시간도 없었다. 모든 학업 스케쥴을 마친 밤 10시가 넘고서야 준민이는 겨우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셧다운제 논리에서 밤 10시 이후는 어린이가 게임을 하기에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준민이는 그 시간이 처음으로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이다. 준민이가 밤늦게 게임을 하자 부모는 차라리 그 시간에 쉬기를 바랐다. 부모 눈에는 게임이 준민이의 쉬는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많은 학자가 이미 말한 거처럼 가정불화의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였어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모와 아이가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건데, 잘 지켜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게임이 원인으로 꼽혔을까요? 그냥 쉬운 적을 만드는 거라고 느꼈습니다. 어떤 논란 거리가 생길 때 공공의 적을 만들면 문제 해결이 쉬워져요. 많은 부모가 아이와의 사이가 안 좋을 때, 모든 문제를 게임에 돌려버리면, 모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거죠"

"아이와 수영장에 갔을 때 부모의 역할은 뭘까요? 깊은 물에는 들어가지 말라 가르치고 감시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에요. 수영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얕은 물에서 수영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게임도 그렇습니다"

"기성세대가 게임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는 건 오락실 때문 같아요. 요즘 게임을 아느냐고 물으면 '몰라요,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게 싫어요'라 답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자신들의 감정을 애들에게 대입시키는 거예요. 이건 잘못됐죠"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부모 입장에서 절대선은 교육이다. 교육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적으로 치부된다. 이 관계에서 게임은 장점과 단점을 말하기도 전에 공부의 적이 된다. 공부의 적이 되어버린 게임은 발언권이 사라져버린다.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이 부모일 때 효과적인 방법은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제야 부모들이 관심을 두고 게임을 바라본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교육에 게임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일 거라고 전옥배 PD는 생각했다. 그는 걸포초등학교의 나상호 선생님을 예로 들었다. 나상호 선생님은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예로 아이들에게 '인권'과 '도시'를 주제로 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떤 도시 디자인이 인권을 살릴 수 있는지 모여서 토론을 한다. 토론 결과를 보면, 아이들은 노인과 장애인들이 도시에서 겪을 불편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시를 디자인한다. 토론의 결과는 곧장 컴퓨터실에 설치된 '마인크래프트' 세상에 만들어본다.

학교에서 게임의 쓰임새는 '재미'다. 도시와 인권, 노인과 장애인을 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교과서로만 읽지 않고, 게임을 통해 재밌게 생각하는 게 수업의 본질이다. 학생들은 게임을 통해 '직접' 도시를 만들면서, 기존 교과서에선 나오지 않았던 아이디어들을 스스로 생각해낸다. 다음은 전옥배 PD가 관찰한 예시다.
('게임으로 공부하는 아이들' 115p 발췌) 게임에 접속한 학생들은 곧바로 설계 도면에 따라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블록으로 건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새롭고 신선한 아이들이 튀어나온다.
"이건 바다 랜턴인데 이것도 괜찮아"
"엄청 예쁘다. 이대로 하자. 그런데 아래가 너무 어두워서 위에다가 설치하는 게 괜찮지 않을까?"
"너무 많이 하면 촌스러우니까 사이사이에만 해주면 괜찮을 것 같아"
"여기 유리를 채워서 위에서도 볼 수 있게 하는 거 어때?"
"낚시터만 있으면 좀 그러니까 따뜻한 것도 넣자"
학교 사례를 취재하면서 게임 교육의 한계도 느꼈다고 전옥배 PD는 전했다. 먼저 게임 교육은 선생님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또, 선생님이 게임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면 수업은 이루어질 수 없다. 아직 게임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도 없어 선생님이 사비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체계적인 지원이 없으니 게임 교육은 이벤트성에 그친다. 이런 아쉬운 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교육과학기술부와 잘 협의해 해결되기를 전옥배 PD는 바랐다.

그는 심도있는 취재를 위해 김상균 교수(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로부터 많은 자문을 구했다. 김 교수는 게이미피케이션 방법을 연구하고 실제 교실에 적용하는 학자다. 전옥배 PD는 처음 김 교수에게 자문하러 갔을 때, "게임을 어떻게 담고자 하나?"라는 반문을 받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동안 많은 매체가 자문해왔으나, 단편적으로 나오는 모습에 실망했었다. 전 PD의 깊이 있는 계획을 듣자 김 교수는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김상균 교수로부터 얻은 게이미피케이션의 노하우는 '굳이 교사가 아이들보다 게임을 잘할 필요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다. 게임과 수업의 큰 차이는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잘했는지, 못했는지 결과가 바로 나오지만, 수업은 성적을 통해서나 가능하다. 꼭 수업을 '마인크래프트'로 하라는 게 아니다. 기존 수업에 게임과 같은 재미를 어떻게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다. 마치 게임처럼 학생들이 빠르게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교사들이 게임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 내 아이, 조카에게 권할 수 있는 게임은?

그런데, 전옥배 PD가 말하려는 게임과 실제 대중이 하는 게임이 같은 건지 궁금했다. 이를테면 문화체육관광부가 말하는 게임과 여성가족부가 말하는 게임에서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지금 당장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만 봐도 그렇다. 가장 인기 있다고 할만한 매출 상위권 게임들부터 조카에게 시켜줘도 될지 의문이었다.

전 PD는 싱가포르 취재 경험을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플레이웨어 스튜디오스'는 싱가포르 내에서 괜찮은 성공을 거둔 게임사다. 그런데 플레이웨어 스튜디오스는 상업적인 성공을 뒤로 한 채, 모두 접고서 교육적 게임 개발로 방향을 바꾼다. 게임이 가진 교육적 기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나라 대형 게임사에 아쉬움을 표한 것도 이 맥락이다. 전옥배 PD는 '3N'이 게임의 교육적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게임업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 플레이웨어 스튜디오스를 취재하는 전옥배 PD팀

플레이웨어 스튜디오의 사례를 살펴보면, 최근 학생들에게 말레이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의뢰가 있었다. 특히 접두사와 접미사, 그 용법을 잘 가르치는 게 목표였다. 게임사는 이 의도에 맞춰 싱가포르 역사에 근거한 게임을 만들었다. 1940~50년대 말레이 마을과 공동체를 게임 안에서 재현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당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게이머이자 학습자는 당시 말레이 어린이가 되어 게임 속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때 대화는 구체적인 맥락이 나타나기 때문에 학생은 말레이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직접 말을 해볼 기회도 얻는다. 종종 난관도 있다. 퍼즐 게임을 풀듯 접미사와 접두사에 관한 퀴즈가 중간에 나타난다.

전옥배 PD는 학습용 앱이 게임처럼 다양한 부분들이 고려된다고 강조한다. 커리큘럼에 초점을 맞춘 교육, 가치 기반 학습, 그리고 실제 삶에 대한 경험적 학습 등이 모두 게임 속에 융합되는 것이다.




최근 전옥배 PD는 책 '게임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상상박물관)'을 출간했다. 지난 2018년 KBS에서 방영된 '엄마는 전쟁 중, 게임의 해법을 찾아라'와 '게임, 공부의 적일까요?'를 책으로 엮었다. 다큐멘터리 제작 때 자문을 맡았던 김상균 교수는 "현실 세계에만 머무는 당신(부모), 게임 속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자녀, 그사이에 존재하는 두꺼운 벽을 허무는 열쇠가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만약 세 번째 다큐를 만들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학생들이 게임으로 수업을 받는 모습을 1년간 촬영하며 그들에게서 나오는 진정한 게임을 통한 교육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답했다. 지난 다큐에서 '과정'을 담지 못해 아쉬웠던 전 PD는 다음 다큐에서 이를 해내고자 한다. 이어 전 PD는 "어느샌가 게임 그 자체에 애정이 쌓인 거 같다"라고 전했다.









▲ 그도 처음부터 게임에 호의적이었던 부모는 아니었다

그의 영상과 책은 게임을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나 이론가가 만든 게 아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직접 겪은 한 방송 PD가 정리한 일종의 '공감 보고서'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고, 노력한 끝에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게임을 몰랐던 시절에는 아이의 스마트폰을 '박살'내는 방법을 썼던 전옥배 PD가 이제 아이와 함께 오락실에 간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옥배 PD는 "게임이 쓴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고 싶다"고 전했다. 게임은 참 억울한 신세다. 그가 쓴 책의 제목 '게임으로 공부하는 아이들'만 보더라도 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가 한 단어씩 얽혀있다. 앞서 말했듯, 게임이 스스로 장단점을 보이기도 전에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다.

전옥배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게임의 가치를 알아본 PD다. 그러면 많은 학부모의 고민과 함께 게임을 가장 게입답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다음 다큐멘터리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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