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돌아온 흑염룡, '벵 The 전역한 갓 기' 배성웅

인터뷰 | 김병호 기자 | 댓글: 103개 |
군대는 피할 수도 없고, 꼭 가야만 하는 곳이기에 많은 고민을 가지게 되는 장소입니다. 특히,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본업을 하지 못하는 채로 자신이 알지 못하던 새로운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스포츠 선수에게는 더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군입대를 고민하게 되죠.

하지만, 이별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법이죠. 군입대로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나 있었던 반가운 얼굴이 한 명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불러 보네요. The 정글이자 협곡 그 자체, 봉인 풀린 흑염룡처럼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온 SKT의 레전드 선수 '벵기' 배성웅. 그가 지난 9월 4일,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을 하고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수, 코치로 활동하던 시절과 비교해 살도 많이 빠지고,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벵기'. 아직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진 못했지만, 자신을 기다려 준 팬들에게 인사를 드리고자 온라인으로라도 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군대에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벵기가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고민들, 자기와 함께 했던 올드 프로게이머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함께 들어볼까요?




Q. 오랜만에 팬분들께 인사드리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조기 전역을 해서 원래 전역일보다 2주 정도 먼저 나왔어요. 코로나로 인해 밖에는 자주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게임을 많이 했어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해보니 내 실력이 많이 죽었더라고요. 게임도 많이 어려워지고. 롤을 안한 지 1년 반 정도 됐으니... 컴퓨터를 오랜만에 만졌더니 이질감이 많이 들었어요. ‘이 느낌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Q. ‘벵기’의 군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디서 군생활을 했고, 어떤 보직을 맡았었나요? 또, 군생활을 돌아보면 ‘벵기’는 어떤 스타일의 군인이었을까요?

51사단 168연대 1대대에서 박격포 병으로 군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예초병(풀을 깎는 병사)일을 정말 많이 했어요. 풀이란 풀은 다 잘라본 거 같아요. 정글러라서 예초병을 맡겼냐는 말이 있는데, 그런 건 아니고요. 저희 부대가 예비군 부대였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게 되면 고달픈 일이 많을 것 같아 최대한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지 않는 일을 시켰던 거로 알고 있어요.

자랑할만한 건 아닌데, 이제 풀 깎는 거는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훈련장에 있는 풀이란 풀들은 다 깎고 살았거든요. 전역하기 전에 부대에 풀 자란 거 보면서 ‘아, 라떼는 풀 저렇게 자라는 거 못봤는데’라는 말을 많이 했네요.



▲ '벵기'의 흑염룡은 풀 깎는데 재능이 있었다.

Q. 군생활을 하게 되면 평소에는 선임, 후임이라는 독특한 인간관계가 생기잖아요. 선임으로서 혹은 후임으로서 ‘벵기’는 어떤 군인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군생활을 잘했던 거 같진 않아요. 그래도 나쁜 선임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병사들에게 욕은 안먹을 정도로 잘해줬던 거 같아요. 군생활을 잘하면 선, 후임들과 연락이 계속 닿는다고 하던데, 연락 오는지 한 번 봐야겠어요.


Q.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의 프로 선수였으니, 분명 군대에서 선, 후임들과 롤을 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 같아요. 정말 롤을 많이 했나요?

외출이나 외박 나가면 접대롤을 정말 많이 했어요. 선임들이 저보고 ‘나는 프로게이머랑 게임을 하러 왔는데, 생각보다 잘하지가 않네’라고 하더라고요. 게임을 지면 제 탓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솔직히 같이 했던 사람들 게임을 잘 못하는데, 많이 억울하더라고요.

선임들과 게임할 때는 무조건 재미있는 챔피언만 했어요. 접대까지 하러 왔는데, 이기려고 아득바득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챔피언 하면서 즐겼던 거 같아요. 솔로랭크는 제가 플래티넘으로 떨어졌었는데도 점수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못하고, 자유랭크랑 노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 접대롤의 추억을 떠올리는 흑염룡

Q. 군생활을 하면서도 LCK를 봤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LCK 경기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작년 롤드컵까지는 정말 많이 봤어요. 올해 들어서는 큰 경기들만 챙겨봤고요. 제가 현역으로 뛰었을 때랑 지금 뛰는 선수들이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체감했던 거 같아요. 제가 알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뉴페이스들이 정말 많거든요.

지금까지 뛰고 있는 ‘페이커’, ‘플라이’, ‘고릴라’, ’스멥’ 같은 선수들 보면 잘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오래 한 선수들이 잘하는 걸 보고 싶은 게 은퇴한 프로게이머의 마음인 거 같아요.


Q. ‘벵기’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 SKT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이름도 T1으로 바뀌었고, 많은 선수들이 떠나고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왔네요.

T1이 지금 살짝 삐끗했어도 모두들 정말 잘해주고 있어서 보기 좋아요. ‘페이커’가 지금 ‘클로저’ 선수와 교대로 경기를 뛰고 있는데, 저도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빨리 폼을 올려서 확실히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 영혼의 듀오로 불리던 '페이커'와 '벵기'

Q.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과도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나요? 스트리머로 활동하는 ‘울프’ 이재완이나 LCS에서 활동하는 ‘뱅’ 배준식 등이 떠오르네요.

전에 전역을 축하한다고 ‘뱅’이 연락을 줬었어요. 제가 먼저 전역을 했으니, 나중에 고생 좀 해보라고 답변해줬네요. 입대하고 초창기 휴가 때, ‘울프’를 만나서 같이 밥을 먹은 기억도 있어요. 솔직히 제가 연락을 먼저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선수가 많지는 않아요.


Q. 제대를 했으니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씬에 복귀할 생각이 있나요? 혹은 유튜버나 개인 방송을 할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전역하면서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직 답을 정하진 못했어요. 좀 더 고민하면서 지내보려고요.


Q. 오늘 보니 전역하고 나서 SNS 방송을 통해 팬들과 인사를 하던데요. 방송을 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방송을 해보니 굉장히 기운히 빠지는 일이에요. 끝나고 나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요. 말도 쉼 없이 해야 해요. 도와주시는 분이 있어서 오디오는 많이 안 비었는데, 혼자 하면 몇 배는 힘들 테니 개인 방송을 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방송하시는 분들 대단한 거 같아요. ‘울프’도 대단한 거 같고… 저는 그렇게 못할 거 같아요.



▲ 패패승승승, 기억하시나요?

Q. 선수나 코치진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씬에 복귀하는 건 얼마나 생각해 봤나요?

고려하고 있지 않아요. 코치나 이런 쪽으로도 욕심이 없어요. 리그 오브 레전드 씬 자체가 많이 힘들어서 복귀를 할지 말지, 하게 되면 어떤 일을 할지도 많이 고민해보지 않았어요.


Q. 학교를 돌아가는 방법도 있겠네요. 대학생활을 해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요?

프로게이머 시절에는 스물셋까지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게 되면 대학을 가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나이가 지난 후로는 선택지에서 지웠던 거로 기억해요. 제가 생각할 때, 군대를 가고 대학까지 다닐 수 있는 나이는 스물셋이 마지막이라 생각했거든요.


Q. 사업 쪽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프로게이머이니 피시방을 열더라도 많이 오지 않을까요? 카운터에 ‘벵기’가 앉아있다면? 흑염룡이 음료수를 건네준다면?

사업은…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프로게이머 이름으로 피시방을 차리더라고요. 제가 프로게이머다 보니 피시방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요즘 시국에 피시방을 여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이제 전역 1일 차이니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고민할 것 같아요. 코로나가 심한 상황이라 생각을 비우고 일단은 집에만 있으려고요. 생각해보면 군대가 많이 안전한 거 같아요.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곳으로 나온 느낌이에요.



▲ SKT와 이별을 하던 '벵기'의 모습

Q. 앞으로도 ‘벵기’를 계속 만나고 싶은 팬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분들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할 예정이신가요?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개인 SNS를 통해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제 친구들이 SNS 계정을 만들었어요.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소통할 일이 생기면 그 경로를 통해서 할 것 같아요.


Q. 친구들이라고 하면 예전 그 고등학교 친구들인가요?

네. 동네 친구들이라서 프로게이머를 할 때는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그만두고 나서 연락을 자주 하고 많이 만나고 있어요.


Q. 여전히 '벵기'의 소식을 기다렸고, 궁금해하는 팬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군대를 간 지 1년 7개월이 됐고 프로게이머 은퇴한지도 3~4년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저를 잊지 않고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아직 제가 어떤 모습으로 인사드릴지 정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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