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퍼거슨 교수 "게임 장애는 멍청한 실수, WHO가 짊어지게 될 것"

인터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55개 |


▲스테트슨 대학교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장애'가 포함된 국제질병분류 개정안(ICD-11)을 최종 승인했다. 확정된 ICD-11은 2022년부터 적용되고, 한국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 이후 적용될 전망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26일 게임이용장애 대응 민관협의체를 구성한다고 밝혔으나, 국내 도입은 물론 WHO의 결정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인벤은 미국 스테트슨 대학 심리학과의 크리스토퍼 퍼거슨(Christopher J. Ferguson)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 이번 이슈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과 국외 상황을 물어보았다. 퍼거슨 교수는 폭력성과 미디어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게임과 폭력성은 관계가 없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퍼거슨 교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게임 질병 코드화를 비판하고, 지금까지 진행된 게임 장애와 관련된 연구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짚었다. 그는 이번 논란을 그동안 부족했던 게임 분야에 대한 연구를 촉진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지금까지의 연구와 ICD, DSM과 같은 진단 매뉴얼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있는지 진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Q. WHO가 게임 장애를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한국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거의 대부분 복합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심리학회의 기술 및 예술 본부와 아일랜드 심리학회는 WHO의 진단 결정에 대해서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심지어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세대별로 의견이 다르고, 사실 어떤 의견을 낼지 예상 가능하다. 20~30년 후에는 이 결정이 엄청난 실수로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WHO의 이번 결정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았을뿐더러 게임을 지목하는 것 또한 임상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Q.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가 '게임 이용장애' 국내 도입 절차를 위한 협의체를 추진한다고 밝혔는데. 한국을 제외하고 해외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없다. 대부분 ICD-11의 채택 여부에 대해서 먼저 논의를 텐데, 이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관습적으로, 정신과 진단에 대해 ICD를 사용하지 않는 미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채택할 것이라 예상한다. 아직 WHO의 결정에 대해서 당장 나서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곳은 없다.


Q. 게임업계에서는 WHO에게 결정을 재고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제 최종적으로 ICD-11가 의결되면서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번복될 가능성이 있을까?

사실상 이쯤 되면 WHO 입장에서는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우스워질 뿐이다.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고, 언젠가 이를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실수를 인정하면 커리어에 타격을 입을 거고. 결론적으로,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디에나 있는 관료주의처럼, 그들은 그들만의 봉건주의의 산물을 만들고 은퇴할 때까지 지키려고 애쓴다.

따라서 우리는 한 세대, 혹은 그 이상까지 이 문제(게임장애)에 붙잡혀있을 거다. 물론 게임 장애 이슈는 계속 비난 폭격을 받겠지만. 문제는 이번 이슈가 전반적인 정신건강 진단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느냐가 될 것이다. 이성적인 세상이라면 WHO는 이 결정을 철회해야 하지만, 우리는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나.


Q. 게임 질병 코드화의 문제점으로 모럴 패닉과 잠재적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우리 모두 기본적으로 WHO의 결정을 무시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번 문제는 좋은 교훈을 줄 수 있다. 건강이나 과학을 내세우는 많은 조직이 사실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니까. 과학의 일부만을 사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관료주의적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WHO는 게임 질병 코드화와 관련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압박을 받았다고 인정하지 않았나.

둘째로, 계속해서 비판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WHO를 압박해야 한다. 관료주의는 밑에서부터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번 논란을 게임 분야에 매우 부족했던 질 높고 정립된 과학 연구를 마련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Q. 게임 장애와 관련한 많은 연구들이 시대에 어긋난 지표들을 기반으로 한다는 문제도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맞는 말이다. WHO의 '게임 장애'는 모호하게 정의되어있다. 따라서 많은 연구자들은 아직도 미국심리학회의 '인터넷 게임 장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인터넷 게임 장애'는 공식적인 진단이 아니고 증상 대부분이 물질 중독 증상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게임의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연구도 정말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 기반해 게임의 문제를 제대로 개념화하고, 정립되어있고 임상적으로 검증된 설계와 도구들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개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연구 자료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Q. 이와 관련해 개선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 분야와 관련해 좋은 연구 성과를 보이는 곳은 정말 적다. 앤드류 프시빌스키(Andrew Przybylski), 애런 드럼몬드(Aaron Drummond), 데이비드 젠들(David Zendle), 미셸 카라스(Michelle Carras)와 같은 연구자들이 정립된 설계를 가지고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의 명확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Q. 게임의 질병 코드화를 반대하는 이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부분이 부족한 연구 기반일 텐데.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기반은 어떻게 연구되어야 할까.

가장 먼저 '게임 장애'가 실제로 독립적인 정신 질환이 될 수 있는지부터 명확히 해야한다. 질병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지, 다른 정신 질환을 유발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볼 때, 게임은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연구를 더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이전 심포지움에서 게임에 대해서 병적인 수준을 보이는 유저 비율이 1~3% 정도에 그친다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수치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희귀하다고 하더라도 질병으로 분류될 수 있다. 유저 비율을 언급한 이유는 사람들이 게임 장애를 아이들 사이에서 전염성이 있는 질병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믿음들이 과학적으로 틀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Q. 사실 만화도 그랬듯, 어떤 미디어가 사회를 망친다거나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이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게임은 유독 질병과 연관되어 언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단 게임이 사회적으로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거의 사장됐다. 과학적으로. 사람들이 과하게 향유하는 다른 모든 것에 비해 게임이 유독 관심사로 떠오른 까닭은 아무래도 게임은 새로운 기술이고 기성세대는 줄곧 신기술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WHO는 게임 질병 코드화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모럴 패닉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알고 있음에도 상관하지 않고 진행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회적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되었던 신기술은 어느 세대에나 존재해왔다. 하지만 한 번도 사회적 붕괴를 가져온 적은 없었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바보 같아 보인다. WHO는 20~30년 후 이 명백하게 멍청했던 짓을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다.


Q. 게임의 문제성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게임의 몰입성이다. 게임 외에 몰입성이 강한 미디어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고. 몰입성이 강하기 때문에 질병이 되는 경우가 있나.

없다. 게임이 다른 활동에 비해 몰입성이 강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휴, 잘 쓴 책보다 몰입성이 강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Q. WHO의 게임 장애가 규정하는 '게임'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데. 계속되어왔던 지적인 만큼 명확한 정의를 위한 논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게임 질병의 모든 것이 명확성이 부족하다. 환자가 게임 장애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데 대부분을 의사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다. 임상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로 잘못된 진단, 게이머에 대한 낙인, 질 낮은, 때때로 위험할 수도 있는 치료와 같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Q. 게임 질병 코드화가 가져다줄 이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Q.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번 이슈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다.

게임장애 논란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의료과학에 있어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문제들을 드러냈다. 데이터를 원하는 대로 골라 써서 나온 연구 결과나 낮은 품질의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가 어떻게 정책 결정을 인도하는지 보여줬다. WHO나 미국 심리학회의 관료들은 과학 자체를 애초에 신경 쓰지 않아 왔는지도 모른다. 통상적인 도덕이나 정치적, 재정적 결정에 과학이 뒷받침하는 것처럼 설명할 때만 사용하고. 미국 심리학회는 종종 미국의 제약 산업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곤 했다.

WHO와 같은 기관에서 '게임 장애'와같은 말도 안 되고 우스운 장애가 '공식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을 보는 것. 더 큰 관점에서 이 이슈는 정신의학이 일상생활에 완전히 침투해있고, 정신 질병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화가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진짜, 과학에 기반한 정신 질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ICD나 DSM과 같은 질병진단 매뉴얼들이 실제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혹시 제약 회사들의 판타지는 아닌지 재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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