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토리상을 수상한 "헤븐 번즈 레드"의 현지화

인터뷰 | 문용왕 기자 | 댓글: 5개 |
'스토리 게임'이라고 하면 어떤 게임이 떠오르나요?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그중에서는 역시 '인생' 클라나드로 대표되는 회사인 Key의 게임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Key와 Wright Flyer Studios(이하 WFS)가 합작하여 만든 게임이 바로 '헤븐 번즈 레드'라는 게임입니다. '카논', 'AIR', '클라나드', 'Angel Beats!' 등의 작품에 참여한 Key의 대표적인 시나리오 라이터 '마에다 준'이 메인 시나리오 담당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게임은 딱 1년 전쯤 국내에 런칭되었습니다.

국가별 서버를 별도로 두지 않는 글로벌 원빌드라는 드문 정책으로 국내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스토리 명가 Key의 이름에 걸맞게 초기부터 훌륭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입소문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 작년에는 '구글플레이 올해를 빛낸 수상작 2023'에서 '올해를 빛낸 스토리 게임'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이러한 평가를 받게 된 바탕에는 높은 퀄리티의 스토리를 아쉬움 없이 즐길 수 있게 해준 높은 퀄리티의 한국어화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헤븐 번즈 레드의 한국어화 작업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을까요? 인벤에서는 WFS의 헤븐 번즈 레드 현지화 디렉터와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Q. 인터뷰에 앞서 먼저 국내 헤븐 번즈 레드 유저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라이트 플라이어 스튜디오(WFS)에서 헤븐 번즈 레드 현지화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는 최주연입니다. 반갑습니다.

Q. 이번에 헤븐 번즈 레드(이하 헤번레드)가 유저 투표를 통해 '구글플레이 올해를 빛낸 수상작 2023'에서 '올해를 빛낸 스토리 게임'으로 선정되었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먼저 헤번레드를 사랑해 주신 유저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저 여러분께서 헤번레드를 빛내주신 덕분에 수상작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내에도 업데이트 때마다 빨리 다음 스토리를 가져오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올 만큼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번 수상은 유저 여러분께서도 저희가 즐겼던 만큼이나 재미있게 즐겨주셨다는 증표처럼 느껴져서 뿌듯했고, 앞으로도 여러분이 만족하실 수 있도록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헤번레드를 편안하게 즐기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구글에서 보내온 '올해를 빛낸 스토리 게임' 상패


Q. 스토리 부문에서 수상할 만큼 헤번레드의 스토리가 높게 평가받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Key의 마에다 준이라는 걸출한 시나리오 라이터가 써 내려가는 특색 있는 스토리와 대사들, 그리고 그 속에 녹아 있는 유머와 감동이 헤번레드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잘 어우러지면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현지화 팀에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어떻게 전달해야 최대한 유저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신경 쓰고 있습니다.

Q. 말씀하신 대로 퀄리티 높은 현지화도 좋은 평가를 받는 데 한몫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헤번레드의 한국어 번역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어떤 식으로 검수 되나요?

= 번역 작업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제작사인 비주얼 아츠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부분이나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추려 질문을 준비합니다.

그다음 Key 개발팀과 협업을 진행하는 게임 디자이너와 함께 "일본어 소재 설명회"에 참가합니다. 설명회에서 시나리오 배경 및 번역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서로 교환하며 조율한 다음에야 비로소 번역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후 번역이 끝나면 리뷰 담당자가 교정을 하는데요. 교정에는 1차 번역 리뷰 및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과거 번역에 대한 피드백 반영 등이 포함됩니다. 이어서 저를 비롯한 사내 현지화 디렉터의 최종 검수 및 교정을 거쳐 번역이 완성되는 흐름입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완성된 번역을 게임에 반영하면 LQA(로컬라이징 QA) 팀에서 다시 한번 검수를 진행합니다. LQA 팀의 검수가 끝나면, 피드백을 확인한 다음 오역 및 오탈자 수정 등을 포함해 교정을 한 번 더 진행합니다. 이처럼 거듭해서 확인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번역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 많은 공정을 거치는군요. 개발팀이나 시나리오 담당과 연계하면서 진행했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 앞서 말씀드렸듯이 신규 스토리 번역을 시작하기 전, "일본어 소재 설명회"를 통해 개발팀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설명회에서는 일본 고유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하고, 대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성되었는지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2023년 8월, 하프 애니버서리 기념으로 "너는 이 여름의 Fairy, 나는 그 모습을 눈동자 속에 Rec."라는 이벤트가 개최되었는데요. 루카와 유이나가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루카의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 원문: 一瞬だからさ、一度だけ津へ!とお願いしたことがある。


이 대사를 처음 원문으로 봤을 땐 뜬금없이 "항구(津 - 쓰 - 항구, 나루터라는 뜻도 있음)"가 왜 나오나 했었죠. 알고 보니 '항구'가 아니라 일본 미에현에 위치한 지역인 쓰 시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일본어 소재 설명회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또, "쓰(津)"가 일본에서 짧은 말의 대명사 격으로 쓰이고 있는 단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요.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소원을 비는 것보다 뭐든 좋으니 재빠르게 말하려고 한 루카의 엉뚱한 매력을 나타내는 대사였죠. 일본어 소재 설명회가 아니었으면 아마 숨겨진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거예요.


Q. 게임에서 타마가 주로 쓰는 일본의 유행어처럼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은데, 번역에 특별히 신경을 쓴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 헤번레드에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캐릭터마다 시그니처 대사도 많아요. 그런 데다가 일본 고유문화에 관한 요소나 패러디 요소도 많이 등장하고요.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서 전달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에 특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 직역: 아, 네... 니카이도 씨가 상승무패. 미즈하라 씨는 농어네요.


이 장면은 캐릭터(다테 아카리)의 등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고 무슨 글자를 썼는지 아카리가 알아 맞추는 내용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일본에서 鱸(농어)라는 글자는 획수가 가장 많은 한자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걸 그대로 '농어'로 번역해 버리면 원문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죠. 등에 손가락으로 가장 복잡한 한자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단번에 한자를 알아맞혀서 놀라움을 사는 장면이니까요. 그래서 원문에 사용된 글자 대신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물고기인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로 번역하여 원문의 의도를 살렸습니다.



▲ 직역: 자주 성의 해자에서 만나는구나 입을 뻐끔뻐끔 언제나 뻐끔뻐끔 미안 먹이는 안가지고 있어 잉어들아


이 장면은 '사랑'이라는 말을 가지고 가사를 지어서 부르는 장면인데요. 일본어에서는 사랑(恋 - 코이)과 동음이의어인 잉어(鯉 - 코이)를 테마로 가사를 적은 코믹한 장면이죠. 우리말에는 사랑과 동음이의어가 없기 때문에 비슷한 발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말장난임을 알 수 있도록 현지화했습니다.



▲ 원문: ほんとにやるっての?私カエルの合唱ぐらいしか弾けないわよ?
(정말 하려고? 나 개구리의 합창 정도밖에 연주할 줄 모르는데?)


カエルの合唱(개구리 합창)은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단순한 멜로디의 국민 동요인데요. 원문 대신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동요인 '학교 종'으로 바꾼 다음 원문의 뉘앙스가 더욱 잘 전달되도록 '학교 종이 땡땡땡'으로 표현하여 느낌을 살렸습니다.



▲ 원문: いやぁ、わんぱくだなぁと思ってた。
(이야, 개구쟁이구나 싶더라)


원문에 사용된 わんぱく(말 안 듣는 개구쟁이)라는 단어를, 최근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인 '금쪽이'로 의역하여 말이 안 통하는 상대임이 더욱 잘 와닿도록 번역하였습니다.



▲ 역전재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만한 '이의 있음!'


'이의 있음!'이라는 번역은 직역 느낌이 강하여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대사는 어떤 게임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 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패러디라는 걸 눈치챌 수 있도록 해당 게임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는 식으로 번역이 진행되었지요.


Q. 공개 이후에도 지속해서 한국어 번역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 몇 가지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 출시할 때부터 높은 퀄리티의 번역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스토리가 공개되고 나서도 번역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저 여러분께서 게임을 플레이하신 뒤 번역에 대해 의견을 보내주시기 때문이죠. 보통 이런 경우에는 다음에 추가되는 내용에 유저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미 출시된 스토리도 유저 여러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며 조정해 나가는 방침으로, 기존 번역을 수정하는 작업을 신규 번역과 함께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변경되지 않은 부분도 여러분의 의견을 경청하여 차차 수정해 나갈 계획이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헤번레드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인 '스토리'를 여러분께 제대로 전달해 드리기 위해, 유저 여러분의 의견과 저희가 아쉽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계속해서 번역에 반영하여 더 좋은 퀄리티로 보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미 플레이하셨던 스토리라도 다시 플레이해 보시면 신선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으실 거예요.



▲ 초창기에는 '드루와~'라고 번역되었고 아직 남아있는 부분도 있다


초기 번역 작업 당시에는 유행어와 엉뚱한 말을 잘하는 타마의 캐릭터성을 고려해, 타마의 대사 중 'キター!'를 '드루와~!'로 번역했었는데요. 이 번역이 다소 올드하게 느껴져 캐릭터성을 해친다는 유저 여러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수정하게 된 번역 중 하나입니다.



▲ 이전 번역: 내가 간사이에서 천재 초능력자로 통한다 아이가… 비스무리한 천재 냉미녀 아가 전국적으로 히트쳐가꼬…


이 대사도 유저 여러분의 의견이 반영되어 번역이 변경되었는데요. 변경하기 전의 '냉미녀'라는 말도 없는 말은 아니지만 너무 흘러간 말처럼 느껴진다는 의견과, 원문의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유저 여러분의 의견에 맞춰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Q. 한국어 번역에 대한 유저들의 피드백은 어떤 식으로 수집하고 계시나요?

= 공식 라운지 및 유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의견들을 확인하고 있고, 고객지원을 통해 보내주신 의견도 참고하고 있습니다. 항상 애정 어린 의견과 피드백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Q. 이름 등은 서브컬쳐 통용 표기(첫 글자에도 거센소리를 사용함), 지명 등은 표준 표기(첫 글자에는 거센소리를 사용하지 않음)를 따르는 등 표기가 혼용되어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이 부분은 작업 당시 저희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헤번레드는 풀 보이스를 지원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이름을 표준 표기로 번역하면 귀에 들리는 소리와 맞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캐릭터의 이름은 들리는 대로(서브컬쳐 통용 표기) 옮기게 되었으나, 지명 등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표준 표기로 번역했습니다.

Q. 한국어 번역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 많은 분들이 잘 된 번역으로 꼽아 주시는 헤번레드의 15번째 이벤트 '고고하고 덧없는 존재들'에는 유독 일본 밴드와 노래 제목이 들어간 개그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대로 옮기는 게 좋을지, 아니면 현지화하는 게 좋을지 번역 초기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존재하는 아티스트와 노래인 만큼 조심스러웠던 것도 있고요. Mr. Children, 사잔 올 스타즈 같은 아티스트는 워낙 유명하기에 한국에서도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아서 그대로 옮길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유저분들이 즐기기 위해서는 한국 아티스트로 현지화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버즈나 YB 같은 국내 아티스트로 변경하게 되었는데요. 아티스트 이름뿐만 아니라 노래 제목까지 함께 활용하는 개그 장면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대한 비슷한 느낌의 노래를 찾는 게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발매 전까지만 해도 반응이 안 좋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많은 분이 호평해 주신 덕분에 번역의 방향성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 직역: 이제 돌아가는 것만 남은 거야? 끝없는 여행인 줄로만 알았어. Mr. Children이야. 무슨 뜻인지는 모르니까 그냥 넘어가 줘.




▲ 직역: 드디어 Bye By My Love네. 사잔 올 스타즈 기분이야


Q. 마지막으로 한국 헤번레드 유저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항상 헤번레드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즐겁게 플레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헤번레드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덕분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현지화 팀에서는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들을 참고하여 지속적으로 검수를 진행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헤번레드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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