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마일게이트 노조 "중이 절을 떠나면, 절은 변하지 않는다"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41개 |
게임업계에 노조 결성의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일 넥슨이 처음으로 노조를 만든 데 이어 스마일게이트도 노조를 결성한 것. 이에 따라 세번째로 노조를 발표할 게임사는 어디일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남은 2N인 넷마블, 엔씨소프트에서 노조 설립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알린 것은 스마일게이트였다. 지난 2017년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스마일게이트 그룹의 대표인 권혁빈 의장의 재산은 김정주, 방준혁, 김택진 대표보다 많지만, 회사 자체는 비교적 비밀스러운 이미지가 있었다.

스마일게이트 노조 'SG길드'는 설립 선언문에서 "회사는 매년 엄청난 매출을 내고 있으나 우리는 포괄임금제 속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라며 "무리한 일정을 지켜야만 했기에 유연근무제는 전혀 유연하지 않았다"라고 꼬집고 있다. 넥슨노조와 마찬가지로 포괄임금제와 유연근무제가 노조 결성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스마일게이트 노조 'SG길드'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차상준 지회장을 만났다.





▲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스마일게이트지회 차상준 지회장

이두현 기자 : 먼저 간략하게 소개 부탁한다.

차상준 지회장 :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 웹 스튜디오에서 기획팀 파트장을 맡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에는 지난 2011년 7월에 입사했다.


현재 스마일게이트 노조, 'SG길드'에는 몇 명이 노조원으로 가입했나.

발표를 하고서 오전 동안에 100명을 넘어섰다. 노조원 가입 문의는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노조 설립 1일 차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

정말 미친 듯이 전화가 온다. 살면서 이 정도의 전화는 처음 받아 본다. 메일로 설립문을 보내자마자 수많은 메시지가 한꺼번에 온다. 감당하기 힘들더라.

'용기 있는 한 명의 행동' 같은 말이 있다. 그런데 노조 활동은 절대 혼자서 하지 마라. SG길드에도 새로 노조원을 받고, 정리하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는 일들을 많은 사람이 복합적으로 한다. 뒤가 든든해야 한다. 나는 '탱커' 역할이다.

그리고 노조는 노조다. 평소대로 회사 일을 하려니 더 힘들더라. 어쨌든 게임 개발은 개발이고, 노조는 노조다. 둘 다 소홀하지 않게 하려니 힘들다.


넥슨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발표했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처음 계획은 넥슨과 같은 날(월요일)에 발표하는 거였다. 그러나 SG길드 내부의 상황으로 인해 일정을 늦춰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 결국 내가 이틀 뒤(5일)에 발표하자고 결정했다. 우리 역시 '최초'라는 타이틀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아마 넥슨과 같이 발표했다면, 넥슨의 이름값이 있기때문에 우리 스마일게이트가 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연쇄효과'로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제3의 게임 노조가 나타나길 바란다.


노조 준비는 넥슨과 같이 한 것인가?

'다른 게임사도 노조를 준비하고 있다' 정도만 알았다. 그게 넥슨인지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노조를 준비할 정도로 큰 게임사는 많지 않아서 넥슨일 거라 짐작은 했었다. 민주노총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서로가 누구인지 알면 각자 회사로부터 꼬리가 밟힐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노하우인 거 같다.

SG길드의 노조 설립 전략은 넥슨노조와 조금 다르다. 전원 실명 공개한 넥슨노조와 달리, 우리는 나만 실명을 공개했다. 우리의 인원수와 구성원에 따라 사측에서 대응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 끝나고서 넥슨노조 분들을 직접 만나러 갈 계획이다. 양측 다 처음 보는 거라 기대된다.



▲ SG길드는 넥슨노조와 연대한다

경영진의 반응은 어떤가?

반응이 전혀 없다. 대응조차 없다. 내부에서는 권혁빈 의장이 출장을 가서 반응이 없다는 얘기도 돈다.


우선 스마일게이트로부터 노조로 인정받는 게 먼저인가?

그렇다. 회사로부터 노조 활동을 위한 사무실도 받아야 한다. 첫 협상은 장소와 활동에 대해 보장받으려 한다.


지회장으로서 바라본 스마일게이트의 문제는 무엇인가?

많은 문제가 있고, 그걸 선언문에 녹이기 위해 노력했다. 노조를 준비하면서 익명의 채팅방을 이용했는데 거기서 스마일게이트 법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공유됐다. 사람마다 인식하는 문제가 달랐고 대하는 온도의 차이도 있었다. 이걸 선언문으로 대변하고자 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게임사이니 다양한 신작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이때, 프로젝트가 잘됐든 못됐든 사람을 내보내는 방식이 법인마다 다르다. 그리고 관리자의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처우도 달라지고, 시기도 이상하다. 회사는 큰데 정해진 절차가 없다.

참, 할 말이 많은데...머리 속에서 필터링이 된다. 어쨌든 스마일게이트는 '우리가 다니는 회사'다. 문제를 고쳐야지 무작정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제 3자에 대한 피해도 걱정이 되고.


고용 문제 외에 다른 문제가 있다면?

관리자와 중간관리자, 일반 노동자 사이의 정보 전달이 투명하지 않다. 나는 '크로스파이어1' 팀에 오래 있었다. 고용 계약에 있어서 보상이 서로 다르고,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노노갈등(일반 근무자들끼리의 갈등)이 빈번하다. 문제는 사측이 이걸 알고도 방치한다는 것이다. 연봉 테이블과 인센티브 기준이 원직에 따라 모든 구성원에게 공개된다면, 반목을 줄어들 것이다.


넥슨과 마찬가지로 '52시간'을 노조 설립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52시간 근무제도에서 노동자는 보통 40시간 근무, 추가로 최대 12시간 근무할 수 있다. 이 12시간이 문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40시간 근무를 원하고, 회사 측은 추가로 12시간 더 근무하길 바란다. 회사에서 바라는 '좋은 중간 관리자'란 일반 노동자들에게 12시간 더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인사평가 시스템에서는 일을 더 시키는 관리자가 능력 있는 관리자가 된다. 중간 관리자 입장에서는 일을 시키면 욕먹을 게 뻔히 보인다. 이것 역시 회사가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방관하고 있다. 방관한 채 시간만 흐르니 노노갈등이 일어나고, 회사와 충돌이 계속 일어난다.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일어나니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삶만 갉아진다.


52시간, 유연근무제 외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있나?

'평가'의 투명함이다. 게임은 잘 만들었다고 성공하는 사업이 아니다. 잘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팀이 실패했다고 무조건 날리는 건 회사 입장에서 손해라고 생각한다. 실패의 노하우가 사라지니까. 이 팀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경력이 있고 인맥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잘 가겠지만... 그저 일만 열심히 한 노동자는 밖으로 내쫓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쫓기는 사람을 실제로 봤나?

많이 봤다. 이건 넥슨도 같은 상황으로 알고 있다. 노조의 역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얘기하고 싶다.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 성공으로 큰돈을 번 회사이다. 돈이 많으니 게임은 여러 프로젝트를 시도는 한다.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사람도 같이 사라진다.


고용안정 이후에 얘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장기적으론 '임금'이다. 게임업계의 일반 노동자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낮다. 우리 회사의 재무제표를 민주노총이 분석하더니 놀라더라. 게임업계는 다른 산업에 비해 이익률이 높은데, 노동자의 임금 비중이 낮다고. 결국 돈은 위로 간다는 것이다.



▲ 2017년 포브스 선정 우리나라 부자 순위, 4위에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의장

일부 시각의 질문이다. 게임노조가 개발과 업데이트를 무기로 삼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피해자는 유저가 될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게임 노동자가 스스로 즐겁지 않은 상황, 고용 불안정에 떠는 상황에서 좋은 게임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게임사는 성공과 실패로만 보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만 한다. 양산형 게임들이 이래서 나온다.

게임 개발자들 대부분이 하드코어 게이머다. 우리 역시 '젤다의 전설', '앤썸'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 왜 이런 게임을 우린 못 만드는 걸까? 실패가 주는 노하우가 쌓이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 선택만 하고, 하던 것만 하니 발전이 없다.

게이머들이 개발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만든 게임 하냐고. 생각해 보니 머리에 총을 맞지 않고서야 이런 게임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왜 만드냐? 위에서 시키니까 만드는 거다. 우리는 반론할 수 없다. 시키는 걸 어기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만들다 실패하면, 그 책임은 우리가 지니까.

노조가 없던 과거 그대로의 상태. 그 상태가 계속된다면, 최후의 피해자는 재미없는 게임만 만나게 되는 유저가 된다. 궁극적으로 게임 노조의 최대 수혜자는 유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만들고 싶은 게임을 위해 회사를 떠나는 개발자도 있다.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다양하니 섣불리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절이 싫으니 중이 떠난다'는 경우 다시 되묻고 싶다. 그렇게 해서 바뀐 게 있냐고.



▲ "중이 절을 떠나면, 절은 변하지 않는다"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나.

같이 일하는 분들의 답변이기도 하다. 자식이 회사에 왔을 때 괜찮은 회사라고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게임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부정적인 게 많다. 사회악이라거나 마약이라거나... 우리도 이런 평가를 원치 않는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유저에게는 다양한 게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게임 회사의 문화와 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노조가 필요하다.


이제 시작이다. 두렵지 않나.

노조를 좋게 보는 시각도 있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가입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도 많다. 다만, 언제든 찾아와주셨으면 한다. 알려드리고 싶은 것도 많고, 다양한 게 준비되어 있다. 이제 회사와 협상할 예정이니 많이 가입해주시길 바란다.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때 부모님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겠냐"라고 물었다. 그게 오랫동안 기억에 맴돌더라. 이제 그걸 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회사와 싸우려는 사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회사가 있어야 우리도 있다. 우리는 정당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거다. 이제까지 노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화염병을 들고 극단적인 방법만 언론에 나왔기에 곱게 보지 않는 분들도 있다. 우리는 개발자니까 키보드로 표현하고자 한다.


노조 활동에 우려하는 일반 유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저희가 게이머에게 불쾌한 경험을 주려고 노조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하드코어 게이머로서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 게임은 우리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산업이 됐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과거 '아타리 쇼크'처럼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만 같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걸 우리가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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