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끝나지 않은 워크래프트3 전설, '어른'이 된 프로게이머 장재호의 이야기

인터뷰 | 장민영, 석준규 기자 | 댓글: 41개 |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합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재능있는 것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으니까요. 프로게이머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도 게임이 단순히 즐거운 것만은 아닌 업(業)으로 다가오곤 하죠.

그렇게 새롭고, 재미있는 게임이 등장해도 예전처럼 한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워크래프트3만 15년 넘게 해온 ‘문’ 장재호가 그 주인공 중 한 명인데요. 지금까지도 대회에서 우승을 이어가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죠. 여전히 좋은 성적을 내는 모습은 팬들에게도 익숙할 겁니다.

다만, 장재호는 우승의 기쁨만 바라는 프로게이머는 아니었습니다. 우승 상금을 기부하고 자신의 종족을 너프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발 더 나아갔죠. 더 많은 우승과 상금을 바라는 게 프로라지만, 장재호는 그보다 먼저 헤아릴 것이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단순히 ‘나’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있게 해준 것들을 잊지 않는 프로게이머. 전역 이후 워크래프트3를 업으로 삼고 있는 장재호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Q. 군대 전역 이후 오랜만에 다시 인터뷰하게 됐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합니다.

전역하고도 계속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로 활동해왔습니다. 작년 말까지 워크래프트3의 대회에 참가했고요. 올해 1월 중순에도 팀 대회가 있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상위권 선수들이 예선을 거쳐서 올라온 팀원을 뽑아 프로리그처럼 팀전을 하는 방식인데요.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가 나오면 팀 리그가 본격적으로 열릴 거 같은데, 그 전에 진행하는 대회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Q. 2018년에 중국에서 열린 마지막 대회(BREC)까지 우승했는데, 한 해를 우승으로 마무리했을 때 기분은 어떤가요?

패치 덕분에 나이트엘프 종족이 상향을 받아서 제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우승할 수 있어서 정말 기분은 좋았어요. 그렇게 한 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죠.




▲ 출처 : 장재호 개인 웨이보 계정

Q. BREC 우승한 뒤, 상금 전액을 기부했어요. 웨이보에 팬들의 응원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말했는데,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12월 14일이 제 생일인데요. 제 팬클럽 분들이 생일 선물로 중국의 한 초등학교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기회가 되면, 우승해서 상금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죠. 지금까지 중국 팬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 워크래프트3 리그가 계속 열릴 수 있었고, 저도 선수 활동을 지금까지 할 수 있었잖아요. 나아가, 팬들의 멋진 활동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저도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Q. 올해 중국 워크래프트3 대회를 대표하는 골드리그를 비롯해 BREC까지 우승했어요. 확실히 2018년은 다른 해였나요.

12월에 오프라인 대회를 몰아서 우승해서 대단히 기쁩니다. 특히, 중국 워크래프트3 리그를 대표하는 골드리그에서 한국인으로 제가 처음 우승해서 더 특별하고요. 나이트엘프 종족도 골드리그에서 우승 경력이 없는데, 이번에 제 기록을 추가하게 됐네요.

이전에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실전에서 긴장해서 그런지 집중이 안 되고 제 실력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2018년에는 좋은 성적을 낼 때는 조별리그부터 자신감을 얻으면서 올라갔죠. 물론, 나이트엘프가 상향돼서 마음이 편안해진 것도 있지만요.


Q. 작년 블리즈컨에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발표를 한 뒤로 프로게이머나 대회에 변화가 생겼을까요.

확실히 유저들, 팬들, 프로게이머들 모두 워크래프트3에 대해 이전보다 관심이 높아지긴 했어요. 올해 리포지드가 나오는 시점부터 중국에서 팀 리그를 개최하기로 했었어요. 2019년에는 4팀으로 진행하고 총상금은 약 8억 원 정도 예상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워크래프트3 프로 생활을 은퇴했던 선수들도 다시 복귀하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생겼죠. 트위치를 비롯해 스트리밍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아직 한국에서는 못 봤지만, 중국에는 신예들이 대회에 계속 등장해요. 저보다 10살, 11살 어린 친구들 중에도 잘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120'이라는 언데드 선수는 골드리그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냈고, '라이프'라는 나이트엘프 선수도 있습니다. 온라인 강자로 유명한데, 오프라인에서는 본인의 S급 실력이 안 나오더라고요. 저도 워크래프트3 초창기에 오프라인 대회에서 성적이 잘 안나왔는데, 당시 저를 보는 것 같아요.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죠.





Q. 워크래프트3가 중국에서 인기 있는데, 현 인기 정도와 어느 정도 투자하는지 역시 궁금합니다.

워크래프트3는 확실히 오래된 게임이니 예전 만큼 인기가 있진 않죠. 그래도 아직도 저를 찾아오는 팬들이 있어요. 팬들도 저와 함께 나이를 먹더라고요(웃음). 어린 친구들보다 30대 중후반 팬들이 많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기 정도는 중국 도유TV에서 활동하는 '인피', 'TH000' 등 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작년보다 올해 확실히 시청자 수가 늘 긴했습니다. 보통 연습할 때 시청자 수가 10만 가까이 기록하다가 대회를 하거나 많을 때 20만까지 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꾸준히 방송해온 선수들이다 보니 시청자가 많은 거 같아요.


Q. 한국에도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들이나 리그에도 변화가 있을까요.

아직까지 큰 변화는 없지만, 그래도 리포지드가 나오면 시청자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리밍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저도 19년 계획까지만 들어서 리포지드 이후의 변화는 조금 더 지켜봐야할 거 같습니다.


Q. 거의 15년 가까이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 분야를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사실, 군대에 있을 때 '다른 분야에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고민이 길게 가진 않았죠. 전역하고도 팬들이 저에게 계속 관심을 가져줬고, "앞으로도 워크래프트3에서 활동해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고, 지금의 저를 많이 알려준 게 워크래프트3 잖아요. 주춤하다가도 다시 대회가 많이 생길 때가 있는데, 제가 전역하는 시기에 다시 활성화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워크래프트3로 복귀했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군대 가기전에는 일이라는 생각보다 재미로 게임을 한다는 생각이 컸죠. 그래도 오랫동안 해온 게임이다 보니 이전처럼 재미를 느끼긴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저의 일이 됐죠. 팬들의 기대가 있는 만큼 저도 더 연구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고요.





Q.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잖아요. 웨이보에 중국어로 글이 올라오기도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중국어 공부는 계속하고 있어요. 나중에 중국에서 방송할지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웨이보에 있는 글까지 쓸 정도는 아니고, 지금은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있습니다.


Q. 확실히 워크래프트3의 중국팬이 많은 거 같아요. 중국에 워크래프트3 팬이 많은 이유가 있을까요.

중국에서는 워크래프트3가 한국의 스타크래프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예전처럼 큰 규모는 아니더라도 고정 팬이 남아있고, 대회 규모가 크진 않지만 꾸준히 열리고 있거든요. 관심 갖고 워크래프트3를 사랑해주는 분들이 남아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Q. 중국에서 장재호 선수처럼 지금까지 활동하는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들이 있는데, 다른 분들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먼저, (박)준이는 지금도 대회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크 플레이어 중에 가장 잘한다고 보면 됩니다.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팀은 중국의 '뉴비' 팀에 속했는데, 중국분과 결혼하면서 중국에 자리를 잡았죠. 한국에는 자주 못 오는데, 저와는 대회 때 보고 같이 밥도 먹고 그러죠.

그리고 중국에는 좋은 실력을 가진 휴먼 선수들이 많아요. 본인들끼리도 굉장히 친하더라고요. '인피'와 'TH000'가 친한 걸로 알고 있고, 전략-전술도 많이 공유한다고 합니다.


Q. 앞서 말한 선수들과 거의 10년 넘게 대결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 않나요.

워크래프트3가 오래된 게임이라 새로운 전략-전술이 더 안 나올 것 같잖아요. 그런데, 지금도 계속 선수들이 새로운 빌드를 짜고 발견해내더라고요. 사냥 속도를 높인다던지, 컨트롤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요. 컨트롤도 예전 10년 전보다 더 매끄러워 보여요. 실력도 더 좋아진 느낌이죠.





Q. 나이가 들면 프로게이머를 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아요. 장재호 선수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거 같은데, 프로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단, 워크래프트3라는 게임이 스타크래프트 같은 다른 RTS 장르의 게임보다 피지컬을 많이 필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화면 전환이 상대적으로 적고, APM이 그리 높지 않아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새로운 전략을 많이 발견해내는 게 중요하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면 그게 실력이 되는 것 같아요.


Q. 리포지드 나오고 관심이 생길 법한 새로운 유저들에게 워크래프트3의 재미를 설명해보자면?

저는 RTS 게임 중에 가장 잘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웅의 레벨과 아이템 같은 RPG의 요소까지 들어간 RTS 게임이잖아요. 그런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워크래프트3 유즈맵으로 도타/카오스가 나올 수 있었죠. 그리고 LoL이 나온거잖아요. 유즈맵도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유즈맵만 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 면에서 게임 자체는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리포지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그래픽과 캠페인이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다른 즐길 요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2는 협동전이랑 스킨까지 나왔잖아요. 그런 요소들이 워크래프트3에도 반영이 된다면, 좀 더 흥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밀리' 게임에는 중립 영웅이 추가되면, 더 재미있는 양상이 나올 것 같습니다.


Q. 리포지드 발표 이후 패치가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블리자드의 패치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리포지드 이전 패치로 나이트엘프가 많은 혜택을 받긴 했어요. 그래서 다른 종족이 피해를 본 것 같아서 "나이트엘프도 하향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가 다른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거든요. 모든 종족의 밸런스 격차가 크지 않았으면 합니다.

밸런스를 맞추기 쉽진 않겠지만, 다양한 빌드를 쓸 수 있으면 더 좋죠. 예를 들어, 지금 언데드는 거의 핀드 빌드만 구사하는데, 구울도 활용할 수 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나이트엘프만 전략적인 플레이가 많이 나오잖아요. 다른 종족도 그랬으면 합니다. 선수들이 같은 전략만 계속 쓰면 지겨울 수 있거든요. 보는 사람들도 이번에는 어떤 전략이 나올지 기대하면서 경기를 보면 더 재미있을 테니까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하게 해주세요.

지금까지 워크래프트3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준 팬들에게 먼저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전처럼 시장이 크진 않지만, 선수들이 해외 나가서 활발히 활동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올해 대회가 더 많을텐데,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리포지드가 나오고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한국에서도 워크래프트3 대회가 열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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