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암과 장애를 극복한 미해군 출신의 64세 배틀그라운드 스트리머, GrndPaGaming

인터뷰 | 이현수 기자 | 댓글: 147개 |



서부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세인트루이스 도심에서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찾으려는 것은 어쩌면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꼭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찾아보았으나. 추수감사절을 앞둔 거리에는 닭 대신 칠면조만 가득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차로 약 20여 분을 달리면 조용한 교외 도시 St. Peters가 나온다.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부인과 은퇴 후 생활을 즐기고 있는 64세 할아버지 게이머 이자 요즘 핫한 배틀그라운드 스트리머가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다. 요즘 세상에 64세 게이머가 뭐 그리 특별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20년간 미 해군에서 복무했고, 장애를 극복했으며 암과 싸워서 이긴 64세의 배틀그라운드 스트리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GrndPaGaming, 그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배틀그라운드 스트리머이자 게이머다. 컴퓨터 회사 ‘델’의 미국 TV 광고를 찍었으며 트위치콘에 초대받아 쟁쟁한 스트리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미 해군 다이버, 장애, 암 그리고 게임. 극적인 인생 태그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GrndPaGaming. 그와의 이야기는 ‘Winner winner chicken dinner’로 향하는 여정만큼 길었다.

[이런 할아버지 스트리머다.]



미(美) 해군에서의 20년 4개월
I am a United States Sailor. I am committed to excellence and the fair treatment of all.

GrndPaGaming은 20여 년간 미 해군에서 다이버로 복무했다. 한국과 베트남을 비롯하여 일본, 괌, 팔렘방 등 전 세계 곳곳을 누볐다. 나 역시 해군출신이라는 말에 “국가를 위해 봉사한 너의 모습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20년 간의 군 복무 영향일까? GrndPaGaming는 ‘월드 오브 워쉽’, ‘월드 오브 탱크’, ‘배틀필드’ 프랜차이즈, ‘스나이퍼앨리트’ 프랜차이즈 등 밀리터리 FPS를 유난히 즐기는 편이다. 배틀필드3에서는 27:1 KDA를 기록했다며 어린아이처럼 자랑했다.




▲ GrndPaGaming


Q. 어느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있었으니 엄청난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그 때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 군 생활이 내 인생의 1/3을 차지했으니,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내 아내 역시 군대에서 만났다. 복무 중 왼쪽 발목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는데 그때 군무원이었던 그녀가 나를 돌봐줬다. 그 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임에 있어서도 군 시절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군 경력이 FPS게임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으니까. 지금도 '글록35'로 25야드 안에 있는 모든 목표물을 맞힐 수 있을 정도고, 이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일리노이에 있는 NAVSTA Great Lakes에서 군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훈련을 마치고 7함대 기함인 USS오클라호마시티에 승함했다. USS오클라호마시티에 있을 때 베트남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수영 구조요원으로도 활동했다. 정말 좋은 승조원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첫 배에서의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아내 그리고 반려견 두마리와 함게 지내고 있다. 코코는 위기에서 구조하여 입양했다고 한다.

그 후 잠수함 지원함인(submarine tender) USS딕슨AX37을 탔고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당시 배에는 마스터 다이버인 콜빈이 타고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좋은 다이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침, 마스터 다이버 칼 브래시어(Carl Brashear)가 함정 투어 중이었고, 그를 통해서 다이버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의 보직은 다이버이긴 했지만, 많은 시간을 헌병으로 지냈다. 필리핀과 일본에서 헌병으로 근무했고, 발보아 해군 병원에서 보안을 책임지기도 했다. 은퇴 전 마지막 5년간은 괌에서 무장 안전 감독관을 지냈다.


Q. 오! 그럼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건가?

=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지는 않았다. 우리 배는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서 해역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해역에서 필요한 해군 업무를 지원했는데, 베트남에 상륙한 병사들은 7함대 기함인 우리 배를 '양키 스테이션'이라고 부르곤 했다. 아무튼, 난 상륙해서 전투해본 적도, 사격지역에 있어본 적도 없다. 언제나 해변 바깥에 있었다.

해군에 복무한 덕에 나는 전 세계를 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일본,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호주 등 많은 문화를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었다. 모든 나라에서 우리를 환영해 줄 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복무 경험은 아시아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디딤돌이 된 것 같다. 바깥에서 보던 문화와 직접 접했을 때의 문화는 달랐지만, 사람들은 모두 같았다. 보편적인 인간이었으니까. 일본에서 근무한 4년간의 경험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일종의 통찰력을 얻게 되는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종, 문화 차별인데 해군에서의 경험이 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아, 한국에서도 6개월간 있었다. 그 때 배 위에서 바라본 한국의 모습은 농경에 기반한 시골 모습만 볼 수 있었다. 아마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들은 것 같다.



▲ 직접 잠수해서 모은 조가비를 자랑하고 있다.


Q. 지금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농사 흔적도 못 찾을 만큼.

= 하하. 그렇구먼. 지금 내 손이 보이나? 군 생활 때 얻은 상처 때문에 정상이 아니다. 총알이 손목을 뚫고 들어가 손바닥을 관통해 신경을 잘라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세 손가락에는 감각이 없다. 나머지 두 손가락은 작업 중 사고로 뼈가 어긋나 버리는 바람에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목에 들어있는 플레이트 때문에 오래 앉아있으면 어깨부터 손가락까지 감각이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도 손이 떨리고 경련이 일어나곤 한다. 게임을 할 때 손이 아프면 컨트롤 할 수 없다. 키보드에서 손이 밀려도 감각이 없어서 잘 느끼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직면하는 문제라 손가락이 밀리지 않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세팅해 놓고 있다.



▲ 손가락은 관통상과 부상으로 인해 불편함을 가져다줬다.



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 비디오 게임
두 시간 이상 편히 잘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괴롭혀 오는 고통과 떨어지는 손의 기능을 바로 잡아 준 취미

손가락 전체가 온전치 않은 가운데서 GrndPaGaming는 전립선암과 싸워야 했다. 암뿐만이 아니었다. 발목과 아킬레스건은 그의 거동을 불편하게 했으며 색전증은 목숨을 위협했다. 보통 장애를 얻거나 암에 걸렸다고 하면 희망보다는 절망을, 극복보다는 포기를 선택한다.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의들은 투병의 전제조건으로 '건강한 생각'을 꼽고는 한다. GrndPaGaming은 투병 후 찾아온 부작용과 후유증을 가족의 응원과 게임을 통해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Q. 암과 싸워 이겼다. '생존자'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힘든 일을 해냈는데, 처음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 2010년이었다. 통신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업무상의 이유인지 항상 피곤했다. 어느 날부터 등 아랫부분에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혈중 전립선 특이 항원(PSA)검사로 전립선암을 발견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했고 5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받기로 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내 테이블에 누워있어만 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5주간의 방사선 치료 후, 2주 뒤 Seed implant 수술을 받았다. 목에 삽입하여 영구적으로 초음파를 내보내는 방사선 치료의 일종인 이 플레이트는 내 목에 8개가 박혀있다.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매번 혈뇨를 보고 있다. 스트리밍 중에도 30분마다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이유다.





Q. 전립선 암을 치료하기 위한 5주간의 고통을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어떻게 버텼나.

= 투병 생활 중 게임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암으로 말미암은 고통과 내 목에 있는 플레이트가 일으키는, 지속적으로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게임을 할 때는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므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고통을 해결하는데 게임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근처 호수에서 낚시를 즐겼다. 아마 그 호수에서만 2000번 이상의 채비를 던졌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장애가 있는 내 손과 손목의 힘과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낚시할 때는 고통에서부터 내 정신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2년 반 전에 발목과 아킬레스건을 수술받아 장애인 등록을 했다. 그리고 6개월 전에는 색전증을 앓았다. 아침에 반려견 코코를 방에서 내보내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깨어났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아 병원에 갔더니 색전증 판정을 받았다. 심장의, 호흡기내과의, 비뇨기과의 모두가 나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내 폐의 98%가 막혀있기 때문이었다. 기관지 확장 수술 후 7일간 집중치료장치에 몸을 의탁해야만 했었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호흡기내과의는 수술 후에 나에게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일어났다. 그 후 게임을 통해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색전증은 참 무서운 병이라 웃는 것도, 걷는 것도, 빨리 일어나는 것도 모두 조심해야 한다. 덕분에 보트를 타고 낚시를 할 수 없으니 게임이 내 고통을 잊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내 경험에 빗대어 스트리밍 할 때 종종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30~40대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검사는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해준다. 암이 뼈까지 진출할 때까지 알지 못하면 정말로 죽을 수 있다.



▲ 전립선 암의 후유증과 신경절제 등으로 손에 제약이 있다.


Q. 세상에, 그런 가운데서도 나보다 게임을 더 잘하는 것 같은데...

= 게임이 내 손의 기능을 유지해주고 있다. 암 후유증 때문에 평소 2시간 이상 자면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고는 하는데, 게임을 통해서 내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게임을 하면서 눈을 움직이고 판단하고, 손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운동도 감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내 나이쯤 되면 손을 꾸준히 이용해야 하는데 실생활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게임이 노년층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게임을 하다 보면 조금 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암 걸리기 전보다도 더 플레이를 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니까. 배틀필드3에서는 27:1 KDA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하하. 만약 내가 장애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지도 모르겠는데, 나름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당신 보다 잘 할지도 모른다!



▲ 손을 꾸준히 사용하는 게 손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Winner winner chicken dinner!
혼자 게임하는 할아버지에서 배틀그라운드의 유명 스트리머가 되기까지

투병 생활 중 갑자기 게임을 시작한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게임을 즐겨온 GrndpaGaming이다. 64세. 게임을 예전부터 접하기 쉽지 않았을 세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클라이언트를 옮기면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고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델과 트위치콘에서 '초청'하는 유명 스트리머로 자리 잡았다.


Q. 게임을 어떻게 하다가 시작하게 됐나. 그 옛날에 게임을 접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처음 게임을 시작했던 게 아마 1976년이었을 거다. 당시 나는 풋볼과 소프트볼에서 제법 촉망받는 선수였다. 대학에서도 스포츠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였다. 어느 날 우연히 차를 타고 가다가 가게에 들렸는데 점원이 “야 이거 반드시 확인해야 해”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건 컴퓨터 게임이었다. 정말 대단해 보였다.

당시 컴퓨터는 도서관에만 있는 기계였는데, 나는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B-1폭격기(B-1 Nuclear Bomber)’를 플레이했다. 진짜 뛰어난 게임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군대에서도 언제나 운동만 해왔던 나에게 컴퓨터 게임은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당시만 해도 가정에서 접할 수 있는 게임은 아타리 정도였다. 그 외에는 아케이드 센터 정도가 전부였는데 DOS 기반으로 돌아가는 PC 게임은 정말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이후로 계속 게임을 즐겨왔다. 시중에 나온 모든 FPS를 다 플레이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때를 시작으로 컴퓨터와 연을 맺은 것 같다. 지금 델에서 지원해주는 컴퓨터를 제외한 모든 컴퓨터는 내가 직접 조립하고 설치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Q. 와, 지금까지 해온 게임들을 다 기억하는 건가?

= 아무렴. 가장 재미있게 한 게임은 프라이버티어(Privateer)라는 게임이다. 요즘 같이 함께 즐기는 게임은 아니고 혼자서 즐기는 게임인데, 우주공간에서 퀘스트를 진행하는 샌드박스류 게임이었다. 우주를 누비면서 모험을 하거나 해적을 잡거나, 혹은 해적이 될 수도 있다. 정말 광대한 세계를 가진 게임이었다. 행성과 행성을 이동하고 은하계를 돌아다니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예술 작품이라는 말을 붙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은 윙커맨더를 더 좋은 게임으로 꼽았지만, 나에게 최고의 게임은 프라이버티어였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

요즘 친구들에겐 프라이버티어를 리부트한 ‘프리랜서’가 더 친근할 것이다. 프리랜서 역시 시대를 앞선 게임이었지만, 게임 중간에 삽입된 비디오 컷에 버그가 많아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EVE 온라인 역시 프라이버티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EVE 온라인 역시 상당히 재미있게 즐겼다.

MMOFPS는 ‘메달 오브 아너’를 처음으로 즐겼고 이후 두 개의 확장팩까지 재미있게 즐겼다. 그리고 나서 ‘콜 오브 듀티’가 나왔는데 정말 재미있게 했다. 사람들이 처음엔 세계 2차대전을 기반으로 한 이 게임을 잘 몰랐다. 그러다 2편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후에 시대가 미래로 가버려서 계속 내림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FPS말고는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 이나 ‘에버퀘스트’도 즐겼다. 개인적으로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은 현재까지 나온 판타지 MMORPG 중에서 최고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레이드와 PvP 그리고 아케이드가 아주 뛰어나다. 파티 플레이에서 이보다 나은 게임을 아직 본적이 없다.


Q. 난 당신이 밀리터리 게임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상당히 많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웬만한 유명한 게임은 다 하려고 한다. 배틀그라운드, 리그 오브 레전드, 하스스톤, 디아블로3, 오버워치, 아키에이지, 디비전, 스나이퍼엘리트, 배틀필드 등등. 난 경쟁이 있는 게임을 좋아한다. 비록 내가 핸디캡을 가지고 있어도 충분히 이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고. 심지어 그들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있다!




Q. 그럼 스트리밍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 아키에이지라는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 이 역시 한국 게임이었다. 사실 이 게임은 딸이 같이하자고 해서 시작했던 게임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클랜에 들어갔다. 클랜원 중에 하와이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채팅을 하다가 컴퓨터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만든 커스텀 사양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하와이 친구는 매우 놀라면서 “그 정도 사양이면 스트리밍을 해야지!”라고 말해줬는데, 그때는 내가 스트리밍이 뭔지도 모를 때였다.

그러자 그 친구가 나에게 트위치를 추천해줬고, 원격에서 세팅도 해줬다. 카메라를 갖추고 게임을 시작한 건 배틀필드4를 할 때였던 것 같다. 평소 컴퓨터도 만들고 해서 카메라 설치 및 세팅은 어렵지 않았는데,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정말 문외한이라 힘들었다.

이럴 때는 내 방송 관리자들이 많이 노력해 준다. 이상한 게 있으면 그들이 원격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정말 좋은 스태프들인 것 같다. 심지어 그들은 돈도 안 받고 나를 도와주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노르웨이인 킴과 로그 XD 그리고 호주의 토니, 버몬트의 28G 커티스, 페이스리스소울, 아레스79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Q. 배틀그라운드를 어떤 경로로 처음 접하게 됐나. 스팀 라이브러리를 보니까 스팀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하는 사용자는 아닌 것 같은데.

= 난 아키에이지에서 꽤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당시 어떤 지역에서 옵시디언 기어(obsidian gear)를 만들기 위해 파밍 중이었는데, NACL 여성 클랜원이 나를 죽인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 방송을 보는 사람 중에 NACL 클랜원이 있었고, 그 사람이 나를 죽인 여성 클랜원에게 ‘저 사람 할아버지야’라고 전해줬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Bloodthirsty라는 클랜이 나를 죽였는데 갑자기 NACL 클랜이 나타나서 나를 보호해주기 시작했다. 며칠 전 있었던 일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라고 그랬다. 이런 재미있는 일들이 아키에이지 세상에서 일어나고는 했다. 6개월간 미국 내 아키에이지 스트리머 중 1등을 차지했을 때도 이 무렵이었다.

아키에이지를 그만둔 건 특정 프로그램을 쓰는 사람들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게임을 안 했더니 점점 뷰어 숫자가 낮아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35명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당시 배틀필드를 하고 있었는데 노르웨이 뷰어가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추천해줬고, 실제로 해보니까 정말 완벽하게 나와 맞는 게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구미를 완전히 당겼다.





Q. 배틀그라운드를 하면서 팔로워가 많이 늘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2만 8천 명에서 6만 6천 명으로 늘었다. 대부분 멕시코나 브라질에서 유입된 사람들이다. 사실 운이 좋았다. 스트리머 Shroud가 내 영상을 트윗하면서 일주일 만에 5만 8천 명까지 팔로워가 늘었다. 그리고 이를 Dr. Disrespect가 리트윗했고. 내 핸드폰은 팔로워 추가를 알리는 알림으로 종일 울려댔다. U.A.E에서 15,000달러의 도네이션이 들어오기도 했다.

사실 난 저명한(famous) 사람은 아니다. 단지 조금 유명한(Popular) 사람일 뿐이다. Dr. Disrespect나 Shroud 정도는 돼야 저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과 비교하면 나는 조금 알려진 정도? 그래도 한국에서 이렇게 사람이 찾아온 걸 보니 기쁘다. 지금보다 더 많은 뷰어를 보유하고 싶다.

사실 아까 말했듯 내 손가락은 온전치 못하다. 감각이 없는 손가락 말고도 뼈가 부러져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도 있다. 그래서 가끔 내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는데, 어떤 이들은 내 캐릭터를 보면서 화를 내기도 한다. 장애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키보드, 마우스 카메라를 준비하는 날도 있다.

또한 가끔은 내 손 장애에 대해 설명해도 믿지 않을 때가 있다. 잘하는 날, 레딧에 가보면 ‘저 할배, 분명 얼굴만 카메라에 보여주고 플레이는 다른 사람이 하는 걸 거야’라는 글을 보고는 한다. 가끔 이들을 속이기 위해서 정말로 남이 하는 듯한 연기를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사람들과 장난치면서 주고받는 걸 좋아한다.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트리머라면 반드시 팬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 팬들을 웃기게 만들어야 하고, 재미를 주어야 하고 그들이 다시 방송을 보고 싶게 만들어야만 한다. 나는 항상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이게 내가 팔로워를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Q. 배틀그라운드 하이라이트 클립이 돌아다닐 정도로 상당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100명이 있으면 101개의 행동 양식이 나오는 게임인데, GrndPaGaming의 플레이 전략은 어떤 방향인가?

= 내 플레이스타일은 실제 전장의 전략과 유사하다. 나는 멍청하게 돌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손이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 않아서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자리를 찾아서 최대한 유리하게 싸우는 것을 선호한다.

내 플레이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참을성’ 정도가 되겠다. 절대 밖에서 킬을 올리기 위해 사람을 찾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대신 지형을 많이 이용하면서 플레이하려고 노력한다. 참을성 있게 위치를 고수하면서 상대가 등장했을 때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발사하지 않는다. 내 위치를 노출 시킬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Kar98K가 있다면 적극 교전하려고 한다. 600야드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죽일 자신이 있다. 상대는 총알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게 죽는다. 물론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다. 아마 군대에서부터 몸에 배어온 원칙 ‘절대 위험한 곳에 나를 놓지 말자’가 체득된 덕인지도 모르겠다.



▲ 참고 있다가, 빵!


Q. 당신이 에임이 좋다는, 심지어 젊은 우리보다 더 잘한다는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죽었을 때 불평불만이 심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디싱크(Desync)에 대한 불만을 자주 말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Shroud나 Dr. Disrespect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보는 것과 실제 플레이어의 위치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다. 헤드 샷을 세 번 맞춰도, 피가 튀고 타격음을 확인했어도 죽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다.

배틀그라운드가 12월이면 정식 출시를 하는데, 아직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 또한, 치팅 프로그램에 대한 준비도 전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건 정말 큰 문제다.

ESP 멀티핵이 큰 문제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사용자의 이름과 위치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 심지어는 적의 시선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비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낙하 후 풀장비를 맞추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이는 게임 밸런스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또한, 에임핵, 반동핵 등이 있는데 정말 최악이다. 심지어 자동으로 조준하고 반동 없이 똑같은 속도로 속사를 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불만을 풀어놓기 때문에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게임을 하는 사용자들이 언제나 정직했으면 좋겠다. 치팅을 전혀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치팅 프로그램은 사용자를 다치게 하는 효과밖에 없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콜 오브 듀티를 플레이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wall Hack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벽 뒤에 있는 사용자를 추적하다가 문 밖으로 나오니까 바로 죽이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 두 번은 요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됐다. 해당 사용자 클랜장에게 문의했고, 클랜 내 조사를 해보니 그는 진짜 치터였다. 결국, 게임에서 밴 돼서 두번 다시 게임을 할 수 없게 됐다.



▲ "차라리 모니터에 점을 찍어서 에임을 잡으라고!"


Q. 치터를 잡아낼 만큼 열정이 남다른 것 같다. 배틀그라운드 스트리머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

난 summit, glitter explosion의 방송도 보고 Dr. Disrespect의 방송도 많이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16, 17세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의 리그 오브 레전드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잘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e스포츠 경기도 보고 있기도 하고. 최근에는 배틀그라운드가 재미있어 계속 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다시 플레이할 예정이다.

내 목표는 ‘올해의 스트리머’에 오르는 것이다. Dr. Disrespect 처럼 되고 싶다. 델이 나에게 접근한 것이 허투루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길리슈트를 입고 방송하는 모습에서 나의 영향력을 판단했을 것이다. 방송 중 나보다 40살은 어린 친구들이 나에게 존경심을 보내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음을 느낀다.




[Dell TV 광고]



GrndPaGaming
암과 장애를 극복하고 있는 64세 할아버지 게이머

그가 지금 이토록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헌신적인 가족의 보살핌과 응원 덕이었을테다. 20년 넘게 단련해온 육체도 한 몫했을 것이고.

다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즐거움을 충족시켜주고, 은퇴 후 젊은 층과 소통해올 수 있게 한 게임의 역할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아온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게임과 함께한 할아버지. 그는 게임을 매개로 젊은 사람과의 소통이 어렵지 않음을 깨달았으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게임을 즐기고 싶어했다.





Q. 40년에 가까운 시간을 게임과 같이 보냈는데, 지금까지 가장 재미있게 한 게임을 골라 달라.

= 최근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리그 오브 레전드', '디아블로3',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을 꼽고 싶다. 인생 전체로 넓혀보자면 ‘맥 워리어’, '프라이버티어’,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 등이 있겠다.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은 정말이지 리메이크가 됐으면 좋겠다.


Q. 게임을 매개로 젊은 층과 소통을 많이 한다. 그들과 가치관 차이를 느낀 적은 없나. 세대 간 갈등이 심한 세상인데.

= 없다. 다만 다름을 깨달은 적은 있다. 젊은 층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며 새로운 게임을 접하려고 한다. 그래서 새 게임을 접했을 때 쉬운 답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 같은 늙은 게이머는 아주 초창기 FPS부터 경험을 해온 덕에 그들이 조언을 요청하면 조언에 대답해줄 수가 있다.

보통은 어떻게 해야 게임을 잘하느냐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게임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의 문제는 사용자 플레이스타일에 따라서 달라진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돌격 취향인 사람이 존재하면 헌터, 스토커 등의 취향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모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정답은 없다. 사용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스타일에 따라 플레이하면 된다.

이렇듯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나는 언제나 젊은 층과 함께하고 있으며, 재미있게 소통하며 노는 방법을 안다. 가끔 손자와 ‘위자드101(wizard101)'을 하는데,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어떤 나이층에 관계없이 플레이할 수 있다. 14살짜리 조카와 '월드 오브 탱크'를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며 플레이하는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고, 소통하는 모습이다.

다만, 조카가 가끔 내 방송을 보면서 새벽 한 시까지 자지 않고 있을 때는 “당장 엉덩이를 침대에 붙여 넣어!”라고 소리 지를 때도 있기는 하지만… 하하하,



▲ GrndPaGaming의 캐리커쳐 케이스.


Q. 한국 부모들도 미국 부모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다만, 엉덩이를 침대에 붙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책상 앞 의자에 붙이라고 하지.

= 난 절대 GTA5같은 게임을 스트리밍 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추천하지도 않을 것이고.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아이들은 규제를 뚫고 게임을 즐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난 절대 조카에게 이런 게임은 추천하지 않는다. 설령 히트맨이나 울펜슈타인을 내가 하고 있을지언정 스트리밍 하지 않는 이유와 상통한다.

난 다섯 가지의 방송 원칙을 세웠다. 인종차별 금지,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차별 금지, 패드립 금지, 동성애 등 차별 금지, 종교, 정치 관련 이야기 금지 등이다. 만약 이걸 어긴다면 규칙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여 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다시 GTA5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게임은 모든 나쁜 것들을 다 담고 있다. GTA는 어떻게 하면 나쁜 남자가, 진짜 나쁜 남자가 되는지 너무나 가볍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이 게임이 싫다.

대신, 판타지게임이라든가, 좋은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배틀그라운드나 월드오브탱크를 선호한다. 이 게임들은 총탄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좋은 게임 성향과 나쁜 게임 성향 사이에서 플레이어가 이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





Q. 슈팅 게임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주장이 일부 있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일부 정치인들이 법제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20년간 군 복무를 했으며 슈팅 게임을 좋아하는 견해에서 이러한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게임의 문제가 아닌 가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GTA같은 게임이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폭력성은 아이의 가정환경에서 기인하는데, 안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면 어떤 FPS 게임이든 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환경에서 적절한 교육과 혜택을 받으면서 자란다면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내 조카를 보면 많은 슈팅게임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다만,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첨언하자면, 방송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16세 미만 아이들과는 게임 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만약 부모 된 입장에서 자녀가 나 같은 늙은 사람과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 늙은 자식이 도대체 내 자식에게 뭘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그들을 보호하고 부모를 보호하고,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과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가정 환경에 맡겨야 한다.


Q. 혹시 동네 사람들도 당신이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스트리머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 몇몇을 제외하고는 잘 모른다. 언젠가 숙모가 내 유투브를 보고서 엄청 놀랐다고 했다. 내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을 죽이고 욕하는 걸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난 단 한 번도 네가 욕한 적을 본적이 없는데 영상에서 욕을 해서 무척 놀랐다"고...




Q. 아직 게임을 접하지 않은 대부분의 동년배들에게 게임을 권한다면 해줄 조언이 있을까?

= 만약 내 나이인 사람이 게임을 할 거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절대로 게임을 하다가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화를 내면 안 된다. 키보드, 마우스를 부수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는 혈압 등의 문제도 있다. 하하하. 참 어려운 부분이기는 한데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Q. 혹시 비슷한 연령대의 팀을 구성할 생각이 있는가? 혹은 최고령 e스포츠 선수를 노려본다거나.

= 사실, 이러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기는 하다. 일리노이 주에 있는 그룹에서 중년층으로 이루어진 팀을 짤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그룹에 포함하고 싶어했고 스폰서 제안도 하기도 했다. 일단 아직은 그런 상태다.

내가 몸이 안 좋기는 하지만 난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있다. 브라질, 멕시코, 한국, 일본, 독일, 노르웨이 등등 나를 원한다면 난 언제든 그곳으로 갈 것이다. 내 여행 가방은 언제나 준비된 상태다. 물론 슈트케이스와 네 벌의 신발과 함께.


GrndPaGaming와의 만남을 사진으로 담았다.




▲ 이동 시간을 보고 취재를 포기할까도 잠깐 생각했다.



▲ 그래서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오렌지카운티의 존 웨인 공항에서 출발,



▲ AA의 허브 공항인 댈러스-포트워스에서 환승해,



▲ 세인트루이스-램버트 공항에 겨우 도착했다.



▲ "세인트 피터스 어떻게 가요?", "뭐? 어디??"



▲ 다행히 GrndPaGaming이 마중 나와줬다.



▲ 뒷 좌석에는 무시무시한 표적지가 있었다. 이젠 총 쏠 일이 없는 민방위가 되서 다행이다.



▲ "한국에서 온 다니까 아무도 안 믿더라고!"















▲ 지하실에는 스튜디오와 함께 안락한 홈시어터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 무려 1080이 두 개가 들어간 커스텀 PC.



▲ 방송을 시작해 봅시다.






▲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위해 예정에 없던 방송을 시작했다.



▲ 집중 집중,



▲ 봤지?






▲ 이 요상하게 생긴 버튼을 누르면,



▲ 각종 효과음이 출력된다.



▲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30분에 한 번씩은 화장실에 가야한다.



▲ "건강하세요!"


* GrndPaGaming의 방송은 트위치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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