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잘 만든 내 게임, 해외 진출을 생각한다면? 게임 전문 번역 에이전시를 만나다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3개 |
“도움!!”

오역 사례로 인터넷에서 많이 회자되는 말입니다. 여배우가 드라마에서 “help!!”라고 외치는 장면을 누군가 “도움!!”이라고 써둔 거죠. 유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처럼 번역은 외국 작품의 몰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게임성을 가졌지만 때때로 어색한 한국어로 유저들의 몰입을 깨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게임사의 경우 국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면 해외 진출을 생각하게 됩니다. 게임사 내에 전문 번역팀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다양한 국가의 많은 언어를 처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약 17억 인구의 영어권 유저와 약 13억 인구의 중국을 포기하고 싶은 게임사는 없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게임에 들어가는 많은 양의 스크립트를 번역하기란 쉽지 않죠.

‘지스타 2017’ B2B 관에서 게임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이초이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초이스의 배승주 과장을 만나 게임 번역 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왼쪽부터) 이초이스 배승주 과장, 노경숙 실장

인터뷰에는 배승주 과장만 참여했습니다.

이초이스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8년 정도 된 번역 전문 에이전시입니다. 회사 초기에는 삼성이나 LG의 매뉴얼, 내비게이션 번역 작업을 주로 했었고요. 10년 전부터는 PC, 모바일, 콘솔 게임의 다국어 현지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게임의 해외 진출 외에도 외국 게임의 한국어화 작업도 하시나요?

최근 몇 년간,영어권 국가나 일본, 중국의 게임사에서도 많은 요청이 오고 있습니다. 해외 게임사에서 직접 미팅을 진행하고 자기네 게임을 가장 잘 이해하는 번역사를 찾아 작업을 맡깁니다. 중국의 경우 게임사가 국내 퍼블리싱을 맡기지 않고 직접 서비스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번역 에이전시를 찾는 일이 잦습니다.


번역은 몇 개 언어까지 가능하신지 궁금해요.

현재 70여 개 언어의 번역이 가능합니다. 힌디어와 아랍어도 게임 전문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국가로 따지면… 쉽게 설명하면 스마트폰이 보급된 나라의 번역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요즘에는 동아시아 국가의 수요가 늘어나는 편이고 중동 아시아, 북유럽 언어 번역 요청이 오고 있습니다.

만약 글로벌 출시를 생각하는 게임이라면 18개 언어 번역이 동시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게임 번역의 경우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저가 직접 보는 인게임 번역과 게임 사업자나 기획자가 이해할 때 쓰는 기술 문서 번역입니다.

인게임 번역의 경우 게임팩이라고 하는데 게임에 특화된 번역사가 작업을 맡아야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기술 번역은 과금이랑 이어지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한, 민감한 정보의 문서를 직접 보고 작업하기 때문에 보안 역시 중요합니다.


게임 전문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게임 업계의 공통된 사항이지만, 게임을 좋아해야 합니다. 단순히 게임을 재밌게 하는 게 아니라 이해도가 좋아야 실력 있는 번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게임을 구성하는 세계관에 대한 이해, 인터페이스에 대한 이해, 왜 이 콘텐츠를 넣었고 이벤트를 진행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언어 센스도 있다면 최고입니다.

외적으로는 문서 디자인이나 소프트웨어 감각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모든 번역툴도 있어서 프로그램 사용에 능숙하다면 좋은 게임 전문 번역가가 될 것입니다.


혹시, 번역 에이전시가 아닌 직접 게임사 번역팀에 참가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때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막상 게임사에 취업하고서 자기 생각과 다른 환경에 퇴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이전시를 통해 게임 전문 번역가의 경력을 쌓는 분들이 많죠.


게임사가 해외 진출할 경우,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려요.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닌 문화를 바꾸는 작업입니다. 단순히 한국어를 영어로 쓰는 게 아니죠. 한국어 사투리의 경우 그 나라의 어울리는 지역어로 바꿔야 합니다. 잘못된 번역은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집중,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게임 자체가 잘 만들어졌어도요.

PC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의 경우 북유럽 신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리니지 시리즈의 경우 게임 내 스토리가 탄탄하죠. 신화, 세계관 번역은 유저의 흥미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때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가 직접 참가해 번역된 언어를 다시 다듬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야 유저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 많은 게임의 해외 진출을 도운 이초이스의 포트폴리오

이상적인 게임 번역 과정은 어떤 걸까요?

인하우스 번역이 가장 이상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게임사는 번역 외에 다른 업무가 매우 많으니 쉽지 않습니다. 언어의 현지화는 런칭 프로젝트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번역 일정이 굉장히 빡빡하죠. 빡빡한 일정에서 작업할 경우 언어의 현지화에서 가져오는 리스크가 큽니다.

이런 이유로 게임 개발사는 게임에 집중하고, 현지화는 전문 번역사에 맡기는 게 좋습니다.


번역 작업을 맡으면서 생겼던 일화가 듣고 싶어요.

도저히 3개월 만에 끝낼 수 없던 프로젝트를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어렵다고 얘기했지만, 게임사는 무조건 3개월 이내에 끝내달라고 요구했었죠. 결국, 7명의 번역가가 참여해 3개월 이내에 끝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말투가 번역가마다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게임사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프로젝트 일정을 1년으로 변경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의도와 저희의 생각이 달라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쳇말로 엎는다고 하죠. 만약 3개월 프로젝트가 2개월째에 엎어지게 되면, 남은 한 달 동안 3개월 치의 작업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잘된 번역으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다면요.

인디 게임 개발사였는데 좋은 번역으로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끈 케이스가 있습니다. 성공을 바탕으로 후속작이 쭉 나오기도 했죠. 중국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케이스도 있었는데,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 영미권으로 진출한 게임도 있습니다. 이후 일본과 동남아권으로 게임을 런칭했죠. 많은 분이 한국어가 원작인 게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 게임이었습니다.


번역 작업의 과정이 궁금한데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게임사가 번역을 의뢰하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게임을 분석하는 일입니다. ‘엔터메이트’의 경우 퍼블리싱 전문 회사인데 저희와 같이 성장한 회사입니다. 현재까지 110번 이상의 업데이트를 작업했는데 서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팀을 세팅합니다. 게임을 사전에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번역가를 선별합니다. 이후 스크립터 관리자와 PM, 엔지니어로 팀을 꾸리죠.

스크립터 관리자는 번역가의 오역과 오탈자를 체크하고 현지화에 대한 검수를 담당합니다. PM은 전체적인 스케줄을 조율하고 게임사의 요구와 피드백을 중간에서 총괄하죠. 엔지니어는 번역가의 결과를 데이터화하고 QA를 수행합니다.



▲ "번역은 문화를 녹여내는 작업입니다"

번역하면서 특히 조심하는 게 있을까요?

번역사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분들은 일본 게임을 일본어로 즐기는 유저입니다. 그래서 일본 게임의 경우 특히 조심해서 작업하게 되죠.

조심해서 잘 된 케이스가 ‘갓 오브 하이스쿨’의 일본어화입니다. ‘갓오하’의 경우 각 지역의 친구들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투리를 일본어와 어울리는 지역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 경우 오사카에 사는 사람이 쓴 글을 찾아 적용하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게임 번역은 단순히 말을 바꾸는 게 아닌 문화를 녹여내는 작업이니까요.


그렇다면 게임 전문 번역가를 희망하는 분들이 무엇을 참고하면 좋을까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사례를 추천합니다. 방대한 콘텐츠와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번역했어요. 게임 외에는 마블 시리즈를 참고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제는 지구의 콘텐츠가 아닌 우주 스케일의 트렌드를 참고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이제 번역 시장은 어떻게 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태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국가의 현지화 요청이 매우 많습니다. 스마트폰 보급이 되는 중동도 블루 오션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특화된 전문 번역사는 거의 없을 겁니다. 만일 동남아국가 전문 번역사를 희망하신다면 영어를 기본하고 동남아시아 언어를 배우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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