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헉, 이 도트를 대학생 혼자 찍었다고요?" HP스워드

인터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109개 |


"교수님, 저거 뭐예요? 학생이 만든 거 맞아요?"

게임과 3학년 학생들의 중간평가 시간. 유독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고전적인 도트 그래픽이었어요. 허, 벌써부터 도트를 찍다니, 시간 대비 효율이 높은 제작 방식은 아닙니다. 어설픈 실력으로는 제대로 된 감성도 우려낼 수 없죠. 뭐랄까, 초창기 콘솔 게임부터 해온 유저라던가 혹은 일부 마니아의 입맛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라 해야 할까요.

그런데도 계속 눈이 갔어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학생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퀄리티가 '심하게' 좋았기 때문입니다. "지독하게도 찍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섬세한 그래픽, 화려하면서도 난잡하지 않은 연출. 프로급에서도 보기 어려운 감각적인 도트였어요. 와, 이거 아트 담당한 친구가 실력이 엄청나네 생각했죠.

"아, 저거요. 'HP 스워드'라는 게임인데, 학생 세 명이서 만들었거든요.
도트는 기획 맡은 친구가 혼자 거의 다 찍었어요. 아트를 해 본 적도 없는 친군데."


'우리 학생이 이정도입니다'라는 정종필 교수의 대답에 입이 떡 벌어졌어요.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해봐야겠다 싶었는데,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작업 중이라는 정종필 교수의 귀띔에 바로 노트북을 챙겼습니다. 국내 인디씬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김다찬 학생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 청강대 게임과 3학년 김다찬 학생





박태학 기자(이하 박태학) - 팀명이 독특하다. '팀 글로벌 버블'이라니.

김다찬 학생(이하 김다찬) - 교수님께서 지어주셨다(웃음). 농담조로 말씀하신건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재미있기도 하고.

박태학 - 중간발표 보는데 깜짝 놀랐다. 대학생 졸업작품이라는 것도 신기한데, 아트를 배워본 적도 없는 학생이라고 해서.

김다찬 - 사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시간이 촉박해서 보스전 퀄리티도 좀 낮고, 자세히 보면 대화창에서도 시간을 많이 못들인 티가 난다. 그런데 지금은 콘텐츠를 더 많이 쌓아놔야 할 때라, 신경을 못쓰고 있다.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더 멋지게 보이는 것과 내실을 다지는 것 사이에서 조율하는 게.

박태학 - 시간 못 들인 티 별로 안 난다. 액션만 보고 입이 벌어졌다.

김다찬 - 그렇게 봐 주면 영광이다(웃음).

박태학 - 팀이 몇 명인가?

김다찬 - 총 3명이다. 한 명은 프로그래밍, 다른 한 명은 배경과 캐릭터, 그리고 몬스터 디자인을 한다. 난 기획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HP스워드'의 도트도 찍고 있다.

박태학 - 직접 도트를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다찬 - 기획하다보니 도트 그래픽이 더 어울릴 것 같더라.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도트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콘솔 게임을 접해서 그런지 도트가 편했고, 이런 류의 게임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졸업 작품으로 도트 게임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다. 취업에 불리하기도 하고... 아무도 안 하려 해서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직접 찍는 수 밖에.


▲ 독학으로 배운 학생의 결과물이라기엔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다.


박태학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처음 찍었는데 왜 이렇게 잘 찍나.

김다찬 - 정말 과찬이다. 다만, 다른 팀에 비해 개발 시작이 좀 빨랐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2학기 말부터 팀을 꾸렸고, 방학 동안 시행착오도 충분히 겪었다. 처음 도트 찍으면서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했고. 유명한 도트 게임들 보면서 많이 참고했다. 예쁘다 싶은 게임들은 거의 다 봤고, 할 수 있는건 다 해보고자 했다.

박태학 - 도트 찍을 때 어떤 프로그램을 쓰는지 들어보고 싶다.

김다찬 - 에이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 기능이 엄청 강력하다. 원래 포토샵으로 작업하려고 했는데, 이 부분이 좀 떨어지더라. 에이스프라이트가 포토샵이랑 단축키가 비슷해서 배우기도 쉽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도 많이 받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박태학 - 도트라는 게 하나 하나 다 그리는 수작업 아닌가. 더군다나 혼자서 작업하니, 일찍 개발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개발 속도가 뒤쳐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김다찬 - 전부 수작업이라는 특성이 오히려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 난 기초가 부족하다. 3D 이펙트의 기능이나 단축키 외우고 제대로 적용하는 거 배우려면 한 1~2년 걸릴 거다. 그보다는 수작업으로 도트 하나하나 찍으면서 그렸다 지웠다 무식하게 하는 게 내겐 오히려 유리하다. 그렇게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정 시간이 부족하다면, 지금처럼 방학이라던가 개인 시간 남는 걸 이용해 작업하면 된다. 퇴근 좀 미루면 된다.

박태학 - 대학생이 '퇴근'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어색하다(웃음).

김다찬 - 우리 학교에서는 다 그렇게 부른다(웃음).

박태학 - 청강대의 지원 수준이나 개발 환경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김다찬 - 전체적으로 만족한다. 'HP스워드' 개발하는 데 사양 높은 컴퓨터가 필요한 건 아니라서 정확한 참고사항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최신 컴퓨터 40대 가량 배치된 강의실이 두 군데가 넘고, 참고할 자료도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교수진이 강력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청강대 게임과의 첫 선에 꼽을 장점이라면 교수진이다. 별바람 교수님, 정종필 교수님 모두 업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추신 분들이다. 배울게 엄청 많다.

또, 우리 학교는 세부 전공을 옮기는 게 자유롭다. 그래픽 전공인데 프로그래밍 수업 들어갈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오히려 학교에서도 이런 걸 권장한다. 덕분에 다른 팀원과 협업할 때, 게임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가 빨리 오른다.




▲ 개발 환경은 일반 게임사 못지 않다.


박태학 - 다시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HP스워드'는 그래픽 못지 않게 시스템도 매력적이다. 캐릭터의 체력바 길이가 곧 무기의 길이라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나.

김다찬 - 2학년 2학기 때 졸업작품 만드는 거 대비해서 프로토타이핑 해보는 수업이 있다. 재밌는 기획이 나올 때까지 계속 프로토타입 만들고 지우고 하는 수업이다. 당시 유니티가 그렇게 쉽다고 해서 '한 번 도전해볼까'하고 프로그래밍을 시도했다. 기초가 없다 보니 버그가 막 생기더라. 주인공 체력을 코드로 짜야 하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버그들이 쏟아졌다. 체력바가 쭉쭉 늘어나질 않나, 어디로 슉 날아가기도 하고(웃음).

거기서 영감을 받았다. '이게 주인공의 무기라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대로 시작하게 됐다.


박태학 - 처음 도트를 찍는 만큼,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김다찬 - 이펙트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게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보통 후처리라고 하는, 뭐가 뻥 터지면 그 뒤에 사르르 하고 사라지는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길게 표현할수록 예쁘다고 생각한다. 이게 어렵다면, 짧게 표현하되 센스있는 연출이 필요한데 이게 쉽지가 않더라. 너무 질질 끌면 시원한 맛이 안 나고, 짧게 만들면 뭔가 맥빠지는 느낌이고... 한 프레임 넘어가는 데 몇 시간 쓰기도 했다(웃음).

이펙트라는 게 곧 움직임이다. 이 본질을 꿰뚫는 게 어려웠다. 번개가 치고 난 후 잔가지라던지, 조금씩 흔들리면서 사라지는 불씨라던지.


박태학 - 도트 그래픽이라도 다 같은 게 아니다. 3D 프레임 위에 도트를 씌우는 방식이 있고, 말 그대로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다 찍는 2D 도트 방식이 있다. 'HP스워드'는 100% 수작업 방식의 도트로 보인다.

김다찬 - 맞다. 다 그렸다. 개인적으로 타협하는 걸 싫어한다. 팔레트 스왑으로 찍어냈다던가, 몇몇 움직임만 변형시켜 만든 캐릭터는 최대한 넣지 않으려 했다. 수작업에서 오는 감동을 주고 싶었다. '와, 얘네는 이렇게까지 해서 게임을 만들었네'라는 감탄사랄까.

▲ "수작업에서 나오는 감동을 전해주고 싶다."


박태학 - 대형 게임사 작품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직 완성된 게임도 아닌데... 벌써 SNS에 팬아트가 떴다.

김다찬 - 정말 예상 못했던 반응이다. 우리 팀 파티션 뒤쪽으로 친한 팀이 있다. 그 팀 작품 주인공하고 서로 역할 바꿔서 카메오로 넣어보자고 농담하듯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어느날 그쪽 아트 담당하는 친구가 'HP스워드'의 팬아트를 그려서 올렸다. 거기서 시작해서 점점 팬아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탄생했다. 도트 작업을 맨 처음 시작할 때 참고했던 '제임스 티(James T)'님도 팬아트를 그려주셨다. 이런 것들이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성원에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할지 고민도 된다. 결국은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게 답이라고 본다.


박태학 - 'HP스워드'의 이후 작업 일정을 들어보고 싶다.

김다찬 - 아마 내년 말까지는 계속 만들 것 같다. 중간평가 때 보여준 건 정말 극히 일부다. 앞으로 개발 계속 하면서 볼륨도 훨씬 커질 거다. 길면 내년 말까지, 짧으면 내년 중순까지는 계속 작업할 생각이다. 아무리 짧아도 내년까진 한다. 계획대로 가려면.

박태학 -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고, 외부 반응도 좋다. 이쯤 되면 출시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김다찬 - 무사히 완성만 된다면 스팀에 출시하고 싶다. 설령 출시할 퀄리티까지 못 간다 하더라도 클라이언트는 어떻게든 공개하고 싶다. 내 스스로 만족할 수준까지만 간다면, 무료로라도 선보일 생각이다.

박태학 - 스팀에 출시된 도트 게임 중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면?

김다찬 - 모모도라 시리즈. 도트 그래픽으로 손꼽히는 게임이라, 처음에 작업 시작할 때 많이 참고했다. 액션 장르인데도 전투 외 사소한 상호작용에 매우 많은 작업을 해서 놀랐다. 하품이라던가. 그런 애니메이션이 모여서 캐릭터성을 만드는 거다. 그 외 열심히 한 게임이라면 '핫라인 마이애미'가 있고... 아, '엔터 더 건전'도 150시간 넘게 했다.

박태학 - 완성된 'HP스워드'의 플레이타임이 대략 어느 정도일까.

김다찬 - 사실, 플레이타임을 의식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다. 'HP스워드'는 애초에 로그라이크 게임으로 시작했다. 던전 깨면서 칼에 여러 능력이 붙고, 체력 다 떨어지면 다시 시작하는 그런 게임이었다. 개발 진행하면서 스토리형 액션으로 선회한거라, 플레이타임이 아주 길지는 않을 것 같다.

그냥 즐기면서 개발하는 편이라서 'HP스워드'가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목표로 하는 플레이타임은 약 10시간 내외다.


박태학 - 액션 자체가 매력적인 게임이라, 무한 보스레이드 같은 콘텐츠도 기대해보고 싶다.

김다찬 - 아마 여유가 생기면 만들 것 같은데... 그건 부가 콘텐츠이기에 일단 본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려 한다.

박태학 - 앞으로도 인디 게임 개발을 쭉 할 거라고 들었다. 게임사에서도 연락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김다찬 - 어찌 보면 배짱이다. 그리고 이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게 지금밖에 없다고 본다. 대학생 신분인 내가 월 몇 백만 원 번다고 크게 피부로 와 닿을 것 같지도 않고... 일단 지금은 배고픔이 뭔지도 모를 때 아닌가.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알바해서 돈 벌고 하는데, 난 그런 것도 잘 안 했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쪽에 오기가 생기더라. 묵묵히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들어서 인정받고 싶고.



▲ "앞으로도 쭉 인디 게임을 개발하고자 한다."


박태학 - 그렇다면, 현역 인디 게임 개발자들과도 교류하고 있나.

김다찬 - 별바람 교수님 따라서 최근에 열린 서울 인디즈에 갔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HP스워드' 만들기 전에도 난 정말 인디 좋아하는 게이머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가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손톱만큼도 안 되더라. 정말 넓은 세계였고, 엄청 멋진 게임들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 처음 본 게임들이었다는 데 충격을 먹었다. 아, 열심히 해야겠구나.

그리고 당시 한 외국인 개발자가 내게 오더니, 도트 찍는 법 좀 가르쳐달라고 하더라. 놀랍기도 했고, 무엇보다 우리 게임을 알아봐주신 것이 너무 고마웠다.

또, 'HP스워드'는 올해 9월에 열리는 BIC 페스티벌에도 출품한 상태다. 기회만 닿으면 계속 노출하고 싶은데, 이게 또 양날의 검이다. 첫인상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 다듬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더라. 게임을 2년 간 개발한다면, 1년은 다듬기만 해야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업인데, 이걸 하냐 안 하냐에 따라 첫 인상이 확 차이난다. 사실 이번 BIC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영상도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다.


박태학 - '이후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나' 같은 질문이 꼭 필요해 보인다.

김다찬 - 만들고 싶은 게임은 그때 그때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항상 액션을 선호했다. 특유의 착 감기는 조작감을 좋아한다. 이후 모바일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은데, 만들더라도 가상 패드는 절대 안 쓸 것 같다. 디바이스에 맞는 조작법이 있다고 본다. 예전에 기타 치는 리듬 게임의 컨트롤러를 보고 엄청 감명 받았던 적이 있다. '개념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식의 플레이 감각을 깨워주는 작품이 내 개인적인 도전 과제다.

'HP스워드'를 보고 사람들이 많이 칭찬해주셨는데, 근본은 정석에 가까운 액션 게임이다. 구조 자체도 매트로베니아 스타일 던전 탐색형 게임 아닌가. 액션 연출을 강조한 게임일 뿐, 새로운 시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더 실험적인 게임을 만들 생각이다. 물론, 액션 기반으로.


박태학 - 열정이 느껴진다.

김다찬 - '어려운 국내 인디 개발자가 만드는 거니, 선심써서 한 번 사준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것에다 인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건 반칙 아닌가. 게이머가 대형 게임사에 쓸 지갑 따로, 인디 게임사에 쓸 지갑 따로 두는 건 아니다. 그들은 더 재미있는 게임을 살 뿐이고, 이게 맞는 거다. 그들이 돈 내고 사고 싶은, 정말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 "게이머들이 정말 사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

▲ HP스워드 플레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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