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녀에게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세요, '투생'

인터뷰 | 원동현 기자 | 댓글: 10개 |

































































Q. 안녕하세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인디게임 팀 찌콘(zzicon)의 윤성배라고 합니다. 프로그래밍과 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아트워크 담당 분은 따로 없으신가요?

이전에 만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던 친구에게 아트워크를 부탁했었습니다. 참 실력이 좋은 친구였는데, 현재는 팀에서 나간 상태입니다. 안 좋게 헤어진 건 아니고, 서로의 갈 길을 응원해주기로 했죠. 그래서 현재 그래픽 작업은 외주로 알아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외주를 맡기거나 소스를 구입해 작업을 하게 되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어서, 일단 기획을 완벽하게 해놓고 팀원을 구하던가 할 생각입니다.

Q. '눈과 눈과 눈'이 첫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데, 무려 비주얼 노벨 장르더라고요. 남자 대학생 2명이 첫 개발작으로 비주얼 노벨을 선택했다는 게 상당히 의외에요.

하하, 이게 사실 비주얼 노벨을 만들고 싶었다기보다는 비주얼 노벨 '밖에' 만들 수 없었습니다. 일단 당장 게임을 만들고 싶어 친구와 의기 투합해 모이긴 했지만, 서로 게임 제작에 아는 게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엄청 고민했죠. 대체 저희 둘이 뭘 만들 수 있을지. 그러다 번뜩 떠오른 게 '비주얼 노벨'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스토리 텔링 전공이었고, 그 친구는 그림을 좀 그릴 줄 알았습니다. 프로그래밍 부분은 제가 약간 지식이 있어서 어떻게든 밀고 나갔구요. 당연히 미숙한 점이 많았지만, 저희는 다른 완성도 면에서 부족한 만큼 스토리에 굉장한 공을 들였습니다. 모바일 게임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상당히 무거운 주제의 비주얼 노벨이었죠.



▲ 상당히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룬 '눈과 눈과 눈'

Q. 혹시 어떤 작품인지도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눈과 눈과 눈'이라는 제목처럼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거짓말이 겹치고 겹쳐 발생하는 사건들과 인간 군상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로맨틱한 비주얼 노벨을 기대하시면 안돼요(웃음).

Q. 아, 일본의 문학 작품 중 라쇼몽(나생문)이란 작품이 생각나네요!

어, 맞습니다. 저희 교수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는데 저 역시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이거든요. 여러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게 있습니다.

Q. 어떻게 보자면, 모바일 게임이라기엔 굉장히 특이하고 이질적인 작품이에요. '눈과 눈과 눈'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마켓에 올린 뒤 정말 말 그대로 '방치'를 했습니다. 홍보의 중요성이나 타이밍 같은 거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상태였거든요. 처음엔 그냥 지인들과 가족들한테 알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르는 분들이 다운 받기 시작하시면서 1~2천 다운로드가 금새 넘어섰습니다.

"그림이나 문체가 익숙해지긴 어렵지만, 독특한 느낌이 있어서 하기 좋았다.", "메세지가 모바일 비주얼 노벨에서는 찾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라 좋았다." 등의 호평이 있었습니다. 안 좋은 평을 해주신 분들은 대체적으로 기술적, 미술적으로 미숙한 부분을 집어주셨어요.

Q. 그 다음 작품인 '더 듀(The Dew)'는 굉장히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15년 11월에 '눈과 눈과 눈'을 출시한 이후 약 1년 반 후에 '더 듀'를 출시하셨는데,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처음 '눈과 눈과 눈'을 사람들한테 선보인 뒤 게임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당장 관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게임 엔진을 보다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엄청 공부했어요. 그리고 같이 제작에 참여했던 친구도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해서 게임 그래픽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당시 저희 둘이 정말 죽어라 공부만 했습니다.



▲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 '더 듀'

Q. 퍼즐 장르는 인디게임사가 상대적으로 많이 도전하는 장르이지만, 고유의 퍼즐 구조를 디자인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더 듀'는 많은 업계인으로부터 작품성에 대해 호평을 받았는데, 개발 과정이 궁금합니다.

퍼즐의 규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간단하면서도 응용이 무궁무진한 걸 추구했죠. 그러다 나온 아이디어가 '색'을 사용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색을 통해 각 오브젝트 고유의 역할이 도출되면 소스도 덜 들어가면서 유저 경험도 직관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리고 무슨 색을 넣을까 고민을 하다가, 사람들한테 가장 친근한 색이 흑백이라 생각해서 컨셉을 모노톤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도 흑과 백을 사용하는 게 퍼즐 게임으로서 보다 좋은 '깊이'를 전달해드릴 수 있을 거 같았어요.



▲ 순서와 배치를 철저하게 고려해야 한다

Q. '더 듀'는 상당히 호평을 많이 받으신 걸로 아는데, 수상 경력도 있으신가요?

개발을 하는 중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모전을 계속 도전했습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좋은 결과가 연달아 나와서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일단, 16년도에 갈라랩에서 주최한 '게임 콘텐츠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고, 같은 해에 게임인재단 '미래형 게임인 발굴 공모전'에서도 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유니티가 주최한 '유나이트 서울17 베스트 학생 상'도 받았어요.

Q. 그 정도로 좋은 성적을 내셨으면 업계에서 관심도 많이 받고, 이런저런 제의도 들어오셨을 거 같아요.

인디 게임 퍼블리셔인 사이코플럭스 측에서 '더 듀'의 스팀 출시를 제의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도 좋은 기회라 생각해 수락했고, 현재 스팀에 영문판과 중문판으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출시하신 '투생'은 개인적으로 한눈에 사로잡히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시각적으로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묘한 이끌림 같은 게 있더라고요. 얼핏 봐서는 정말 알 수가 없는 게임이었는데 간단한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많은 분이 '투생'을 플레이하시면서 싸울 투에 목숨 생을 쓴 '鬪生'이라고 알고 계세요. 하지만, 저희는 싸울 투가 아닌 구차하다는 뜻을 내포한 훔칠 투를 사용했습니다. 죽었어야 할 운명이 구차하게 생을 갈구한다는 뜻이죠.




Q. 상당히 살벌한데요?

네. 게임 자체는 게임의 주인공인 소녀를 살리기 위해 각종 스트레스 요소를 탭으로 지워 없애는 게 전부지만, 메세지만큼은 강렬하게 담아내고 싶었어요.

Q. 이런 게임을 개발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세요. 병상 생활이라고 하는 게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분들에게는 일상이자 일생입니다. 그 분들이 겪는 힘겨운 시간, 무겁긴 해도 한 번쯤 생각볼 만하다고 여겨져서 게임을 통해 비유적으로 다뤄봤습니다.

Q. '투생'의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가요?

음, 구체적인 신상 정보는 없습니다. 그저 10대 여성 캐릭터로 한 이유는 사람들이 조금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았고, 동시에 앳된 모습을 통해 안타까움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플레이어들에게 '살려야 한다'는 동기를 심어주고 싶었죠.

Q. 전반적인 디자인이 독특합니다. 픽셀 아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단 아트워크를 담당한 친구가 픽셀 아트를 정말 잘합니다. 그리고 느낌상 배경이나 인물이 엄청 현실적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병상 생활을 너무 실사 느낌으로 하면 불편하고 불쾌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래픽은 기본적으로 게임이란 느낌을 주되 동시에 진중한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흑색, 백색, 적색을 차용했습니다. 적색은 생명에 관한 오브젝트에만 덧칠해져 있죠.

Q. 처음 게임에 들어가서 가장 놀란 게 수류탄 모양의 심장 UI였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주인공은 심장병을 앓고 있는 소녀입니다.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류탄과 같은 심장을 갖고 있죠. 그리고 사실 저희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요? 심장이 뛴다는 게 너무나 당연해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저는 아주 가끔 "이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해요.

Q.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느낀 게 소녀를 살리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게임 자체가 정말 어려워요.

맞습니다. 기획자로서 하드코어 아케이드 게임을 개발하는 게 목표였어요. 아케이드 모바일 게임 대부분이 하나의 규칙을 주고 점수를 높이거나 속도가 빨라지면서 생존을 겨루는 캐주얼한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세계관과 스토리에 깊이 연관된 규칙을 플레이어에게 계속 주면서 게임이 점점 심화되어가는 그런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죠.



▲ 소녀를 살리는 길은 험난하다.

Q. 투생은 성적이 어떤 편인가요?

지난 10월에 다운로드 수가 3,500을 기록했습니다. 사실 첫 달 성적이 사실상 '끝'이라고 들어서 아쉬웠는데, 현재 다운로드 수가 9,500을 넘어섰더라고요. 조만간 제 게임 개발 인생 처음으로 1만 다운로드를 돌파할 거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Q. 현재 준비 중인 신작이 있으신가요?

앞서 말씀드렸듯, 그래픽 팀원과 헤어지고 나서 그래픽 작업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핸드폰에서 사진을 보다가, "실제로 찍은 사진으로 게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서 뭐라 말씀드릴 게 없네요. 그냥 브레인스토밍 단계입니다.

Q. 찌콘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사실 처음엔 좀 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특이하고 기괴한 걸 만들려고 집착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그게 저희의 색이 되어있더라고요. 앞으로도 좋은 스토리 텔링과 독특한 느낌의 게임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앞으로도 계속 인디 게임을 만들어가실 건가요?

네, 그러고 싶어요.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 저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주위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면 다시 고민해봐야 할 거 같아요. 어찌 됐든 지금 당장은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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