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타2 선수, LoL 감독, 이제는 오버워치 코치! '바이올렛' 김동환을 만나다

인터뷰 | 이시훈, 서지운 기자 | 댓글: 54개 |
온실 속의 화초보다 들판에서 비바람을 견디어낸 잡초의 생명력이 더 질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좌절하지 않고 시련을 이겨낸 사람이 더욱 성숙해지고 강해진다. 여기, 낯선 이국땅에서 어려운 시절을 거쳐 자기만의 독보적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 워크래프트3 선수에서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전향, 선수 은퇴 이후 북미 엔비어스 팀에서 LoL 감독을 거쳐 오버워치 코치로 변신한 '바이올렛' 김동환이 그 주인공이다.

김동환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했다. 대부분 김동환을 미국에서 활동한 평범한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둘러싼 어려운 환경들을 극복하며 지금껏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선수가 아닌 스태프로서 제2의 게임 인생을 살고 있다. 북미 명문 엔비어스에서 오버워치 코치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바이올렛' 김동환과 나눈 진솔한 대화를 지금부터 전해드린다.





Q. 인벤과 오랜만에 나누는 인터뷰다. 잘 모를 수도 있는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한다.

전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김동환이다. 90년생이고 저그를 주종족으로 플레이했다. 선수 은퇴 이후에 엔비어스 LoL 팀에서 헤드 코치로 활동했다. 이번에 엔비어스 오버워치 팀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하게 됐다.


Q. 미국 생활에 많이 적응한 것 같은데?

미국에 온 지 이제 6년이 됐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바이올렛'은 이제 미국인이잖아"라는 농담을 할 정도다. 이곳 환경이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고향이 제주도인데, 가끔 집에 간다. 집에 가려면 인천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가야 한다.


Q. 미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선수들이 비자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는데, 비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무비자로는 미국에서 계속 활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발급되는 학생 비자를 신청했다. 6개월 동안 학생 비자를 세 번 신청했는데, 모두 떨어졌다. 당시 성적도 좋았고, 스폰서 계약이 완료돼서 비자만 받고 미국에 가면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돼서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매니저가 운동선수 비자를 신청해보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청했는데, 6개월 이후에 운동선수 비자인 P1 비자가 발급됐다. 1년 동안 비자 문제 때문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Q. 미국에서 6년 동안 활동했는데, 한국과 미국의 e스포츠 문화 차이를 많이 느꼈나?

미국으로 가기 전, 한국에서 1년 동안 선수로 활동했다. 그때는 내 성격 탓도 있지만, 관중들이 그냥 심심해서 구경하러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관중들이 경기를 보면서 마치 자기의 일처럼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덩치가 큰 사람이 게임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좋아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신기했다. 내가 져서 시무룩해 있어도 팬들이 먼저 다가와서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래서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한국에서 쉽게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다. 이런 이야기를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했었는데, 다들 공감하더라.


Q. 스타2 선수에서 엔비어스 LoL 팀의 감독으로 전향했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

미국에서 대회를 치를 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경기를 구경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때마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먼저 다가가 게임을 가르쳐주곤 했다. 게임을 누구에게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프로 선수들에게 게임을 가르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코치의 위치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스타크래프트2에 대한 의욕이 많이 줄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은퇴 이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원래 소속 팀이었던 엔비어스에서 나의 선수 경력과 커리어를 인정해주며 "선수들도 너를 좋아하고 미국 생활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데, 엔비어스 LoL 팀의 코치를 맡아보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나 또한 해보고 싶었던 도전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제안을 승낙했다.


Q.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서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하는 등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은퇴가 아쉬웠을 것 같다.

너무 아쉬웠다. 내가 늦게 은퇴한 편인데, 다른 선수들이 은퇴하는 것을 봤을 때는 크게 와닿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은퇴를 하니까 내 시간이 너무 많아지더라. 허전함과 함께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Q. 스타크래프트2 선수에서 LoL로 넘어갔는데,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

스타크래프트2 선수 시절에도 LoL은 많이 했다. 마스터가 나오기 전, 다이아를 찍었던 경험도 있다. 내가 아주부 소속이었을 때, 아주부 블레이즈&프로스트 선수들과 교류하면서 LoL에 대한 이해도를 많이 쌓았다. LoL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감독직을 수락한 것도 있다. 종목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이라고 해서 게임 내적으로 선수들을 깊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나도 프로게이머 출신이기 때문에, 게임은 선수가 더 잘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게임 외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상대 팀에 대한 분석에 신경 썼다. 선수들이 게임 외적으로 힘들어하는 부분은 내가 해외에서 활동하며 먼저 겪었던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Q. 엔비어스 LoL 팀이 내년 NA LCS 잔류에 실패했는데, 엔비어스 LoL 팀은 현재 해체한 상황인가?

NA LCS에 프랜차이징이 도입되면서 대형 스폰서를 가진 구단들이 들어왔다. 그래서 규모가 작은 구단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엔비어스 팀이 오버워치와 CS:GO에서는 쟁쟁한 팀이지만, LoL에서는 그렇지 않다 보니 결국 잔류하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어떻게 보면 본선에 진출해 있고, 스팟도 있는데, 다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버린 거다. 처음에 팀에서는 "그래도 조금의 희망이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결국 LoL 팀의 해체를 피할 수 없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각자 갈 곳을 찾아 나간 것이 아니고, 기다리고 있다가 이름표가 사라지게 돼서 허탈했고 많이 아쉬웠다.


Q. 규모가 작은 팀 입장에서 프렌차이징 도입은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e스포츠 판의 규모 커진다는 점은 e스포츠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찬성인데, 우리가 그것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아쉽다. 난 아직도 LoL을 좋아하고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재밌게 활동하며 성과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끝나게 돼서 많이 아쉽다. 이제야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는데, 끝나버렸다.





Q. 엔비어스 LoL 팀의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감독이 엄격한 포지션이긴 하지만, 리더로서 팀원들을 이끌 수 있는 친화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믿음을 쌓을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그리고, 선수에서 코칭스태프로 간 입장에서 다른 감독들과 교류를 쌓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성적의 경우에는 내가 부임하기 전에 팀이 최하위였는데, 부임한 뒤로 5, 6위에 머물렀다. 물론 나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자부심은 있다. 성적 측면에서는 박수칠 때 떠난 느낌이다.


Q. 현재, 엔비어스 LoL 팀을 나온 선수들의 거취는 모두 정해졌나?

선수들 모두 팀을 구했다. 다들 좋은 자리에서 내년에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리라' 남태유는 휴스턴 로켓즈 소속의 Clutch Gaming에 들어갔다. 태유가 한국으로 가기 전에 만나서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와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Q. 앞서 엔비어스 오버워치 팀 코치로 합류했다고 말했는데, 자세한 배경을 말해달라.

내가 한국에 잠시 왔을 때, 엔비어스 오버워치 선수들도 OGN의 APEX 리그 참가 때문에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때마침 엔비어스 오버워치 팀의 매니저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내가 오버워치 선수들을 이틀 동안 맡게 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원래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어색함이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선수들과 헤어진 뒤로도 SNS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았다.

이후 엔비어스 LoL 팀이 해체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엔비어스 오버워치 팀의 헤드 코치로부터 오버워치 어시스턴트 코치를 해보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오버워치 선수들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고마웠다.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이 선수들과 앞으로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기대가 많이 된다.


Q. 엔비어스 팀에게 큰 신뢰를 얻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엔비어스 구단주가 나의 프로게이머 인생 스토리를 좋아한다. 나는 어렸을 때, 제주도에 살았기 때문에 e스포츠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부모님이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다. 첫 데뷔전이었던 워크래프트3 WCG 국대선발전은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해서 비행기 표 값을 벌어서 출전했다. 이후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고 겨우 프로게이머가 됐는데, 집에 불이 나면서 게임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당시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다.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선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워크래프트3가 침체되면서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전향하게 됐다. 그런데, 좁은 숙소에서 여러 명의 선수와 생활하다 보니 건강이 심하게 안 좋아졌다. 제주도로 내려와서 쉬고 있었는데, 해외 팀에서 연락이 왔다. 모든 경비를 지원할 테니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일이 잘 풀리자 앞서 말했던 비자 문제가 생겼다. 돌이켜보면 나의 프로게이머 인생에 중간은 없었던 것 같다.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다.

엔비어스 오너도 프로게이머 출신이라서 내가 이런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적을 낸 것에 대해서 존중을 표현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팀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오너가 장난식으로 나중에 우리 회사가 커져서 한국 지사가 생기면 나에게 주겠다고 말할 정도다(웃음). 미국에 와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돼서 기쁘다. 축복받은 것 같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Q. 이제 오버워치 씬에서 활동하게 됐는데, 앞으로의 각오를 말해달라.

감독이 앞에서 팀을 이끈다면 나는 어시스턴트 코치 입장에서 뒤에서 팀을 밀어주는 역할을 할 생각이다. 엔비어스 오버워치 팀에 한국인 선수 '이펙트'가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선수다. 내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땐, 게임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프로게이머도 다양한 부분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좋더라. 그래서 나도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운동을 열심히 하며 외적인 부분도 신경 썼다. '이펙트'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아서 앞으로 많이 도와줄 생각이다.

성적의 경우에는 선수들이 워낙 열정적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선수들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면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엔비어스 팀이 누구나 부러워할 팀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Q. 오버워치 e스포츠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버워치 리그의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오버워치 리그가 프랜차이징 되면서 규모가 커졌다. 오버워치 리그가 이미 시작됐는데, 대회 퀄리티가 상당히 높았고, 팬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전망이 충분히 좋아 보인다. 오버워치는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아레나도 있고, 기반이 탄탄하게 세워졌다는 느낌이다.

지난 블리즈컨에서 펼쳐진 오버워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굉장히 많은 관중이 경기를 지켜봤다. 그런 것을 보고 오버워치 e스포츠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버워치 리그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오버워치 아레나의 경우에도 평일에 관중석의 80% 이상이 찰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온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팬들과의 소통도 원활한 게임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워크래프트3와 스타크래프트2가 비교적 매니아 층에게 인기가 많은 게임이라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의 인터뷰 기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지 모르겠다(웃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한국 e스포츠가 발전하고 한국 선수들이 세계로 진출해서 이름을 날리는 것은 선수들의 열정도 있지만, 언제나 쓴소리를 해주며 선수들을 응원하는 한국의 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해주는 모든 e스포츠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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