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니어스' 홍진호, 그가 다시 마우스를 잡는 이유

인터뷰 | 김지영,김홍제 기자 | 댓글: 689개 |
홍진호. 황제로 불렸던 임요환의 호적수이자, 그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기록된 비운의 라이벌.

"게임이 밥 먹여 주느냐?"란 부모님의 핀잔은 흔한 레퍼토리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죠. 그러나 많은 선구자가 e스포츠란 개념을 정립해 나갔고, 그 결과 어린 선수들이 연봉 계약을 통해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실력 있는 선수들은 밤새 연습에 매진하며 무대에 올라 팬들을 마주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죠. 여기까지 오는데 만인의 적지 않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고, 그 선두에는 임요환과 홍진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판이 커지고 시스템이 정착될수록 신예의 거센 도전은 올드로 불리는 그들에게는 점차 버거워졌습니다. 홍진호도 예외가 될 수 없었죠. 동료들이 한둘씩 사라져가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홍진호, 결국 공군 에이스 시절 당대 최강자였던 김택용을 잡아내는 기적을 거두기도 하면서 숨겨진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지난 3년은 e스포츠계에서 다시 없을 격랑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홍진호 역시 다른 사람이 되었죠. 더 지니어스 출연을 기점으로 방송인을 향해 가고 있는 홍진호,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맹활약 덕분에 게임은 잘 몰라도 홍진호는 아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누가 봐도 방송인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죠. 연예인 홍진호에게 있어 게이머 시절은 마치 '젊은 시절에 잠깐 거쳐 가는 좋은 경험' 정도로 보입니다. 적어도 얼마 전 까지요.

하지만 홍진호는 다시 마우스를 잡기로 선언했습니다.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몬스터짐 스타 파이널포 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한 주체가 홍진호라는 것은 아는 사람이면 다 압니다. 심지어 곰TV 클래식 시즌4에 출전하기로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그를 지켜본 모두가 궁금해할 것입니다. 홍진호는 왜 지금 와서 다시 마우스를 잡기로 결심했을까요?



■ 방송인 홍진호, '더 지니어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다

사실 홍진호를 '개인적으로' 지켜본 지는 꽤 됐습니다. 2005년부터 e스포츠 업계에서 일했으니, 홍진호 본인은 기자를 모르겠지만 기자는 홍진호를 오랫동안 봐 왔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홍진호와 지금의 홍진호는 너무나도 달라졌죠. 이번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문득 '내가 홍진호를 만나볼 수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만난 홍진호, 바쁜 스케쥴 탓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눈빛에서만큼은 예전의 홍진호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더 지니어스'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방송인의 길을 걷는 홍진호


Q. 요즘 정말 바쁘시죠? 이제는 완전히 방송인이 되셨네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최근에는 많은 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방송일을 시작하고 있고요. 모든 일을 계획하면서 움직인 건 아닌데 더 지니어스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이슈가 됐고, 그 덕분에 본격적으로 방송일을 시작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방송일에 올인한다기 보다는 이것저것을 다 해보고 싶고 경험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임하고 있어요.


Q. '더 지니어스'가 '홍진호'란 남자의 인생을 바꾼 것 같습니다. 어떻게 출연할 수 있었나요?

더 지니어스 출연 제의가 처음 왔을 때 당시 저는 제닉스 스톰 감독이었어요. 그때는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죠. 제작진을 만나고 설명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이런 프로그램이 전혀 없던 거예요. 기본적인 컨셉은 예능이지만 서바이벌의 요소도 있고, 게임을 주제로 경쟁이 펼쳐지고 우승자와 상금도 있는 포맷이 흥미로워서 '아, 재미있겠구나'란 생각에 출연을 수락하고 준비하게 된 거죠.


Q. '더 지니어스'를 보면 홍진호를 모르는 사람들도 '콩빠'로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청자분들이 저를 좋게 바라봐주시니 감사하죠.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게임과 프로게이머의 인식이 아직도 좋지는 않잖아요. 제가 살아왔던 인생의 절반은 프로게이머의 삶이었거든요. 제가 프로그램 안에서 프로게이머를 대표하게 된 상황에서 많은 분께 좋은 이미지로 알려진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 좋은 모습을 더 보여드려서 프로게이머의 위상을 더욱 높여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여러모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Q. '예능'과 '게임'이 접목된 더 지니어스와 같은 프로그램이 프로게이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시나요?

도움이 된다고 보고요. 실제로 이미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지상파 라디오에 저랑 강민이랑 박정석, 서경종 이렇게 넷이 모여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게임업계 종사자라지만 올드 프로게이머들이 지상파 라디오에서 게임 관련 주제로 토론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거든요.

이런 일이 가능한 게 '더 지니어스'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봅니다. 더욱 많은 분에게 게임이 좋은 의미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이번에 스타 파이널포를 기획한 것도 평소에는 게임 팬들만 알고 지내다가 더 지니어스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이 저를 알게 됐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도 게임이 친숙하고 좋다는 점을 알려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고요. 전체적으로 흐름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홍진호의 '천재성'은 본인이 입증… 높아진 관심만큼 부담도 늘어나

'더 지니어스'에서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지금의 상황은 홍진호 본인이 만들었습니다. 시즌1 '오픈 패스'게임에서 보여준 문제 해결능력은 가히 압도적이었죠. 시즌1에서 홍진호가 우승한 이후 이어진 시즌2에서는 더욱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프로그램을 주도했습니다. 높아진 시청자들의 관심만큼, 프로그램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팬들의 목소리도 커졌죠. 출연진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죠.



▲ 홍진호는 주어진 과제를 압도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Q. 더 지니어스 시즌2 초반 연합과 관련해 큰 이슈가 있었습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큰 논란이 일었죠. 본인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논란이 대단히 많았죠(웃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언급하기도 어렵고 애매한 부분이긴 합니다. 팬들이 더 지니어스란 프로그램을 열렬히 봐주시는 것에 출연진으로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걱정하는 점은 당사자들이 느끼는 상처보다 시청자들이 과하게 몰입하다 보니 시청자 본인이 더 상처를 받으시는 것 같아요. 지니어스도 하나의 게임이잖아요? 예능이긴 하지만 100% 예능이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죠.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이기 때문에 출연진은 진정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게임 중에 화를 내고 배신도 하지만 룰을 위반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배신을 당하면 순간적으로 화는 나도 털어 넘기면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는 게 당사자들입니다. 헌데 시청자분들이 과몰입하셔서 룰과 상관 없이 배신이 나오면 아주 악당으로 만들어버리니까 정말 아쉬운 부분이죠.

조금만 여유를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도 상대적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성인군자처럼 행동한 것도 아닌데 너무 절대자처럼 되어버린 것도 부담이고요. 시청자분들이 좀 더 너그럽게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 6화 '독점 게임'에서는 이두희가 신분증을 잃어버려 데스매치로 향했고, 여기서 보여준 '쿨'한 모습이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저는 두희가 절 데스매치에 지목한 것에 대해서 큰 생각은 없었어요. 두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데스매치에 가면 절 찍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절대적인 내 편은 없어요. 저는 시즌1 우승자로서 밸런스를 파괴할 정도로 많은 유리함을 갖고 나왔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데스매치에는 언제든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데스매치에 지목되었을 때 보여드렸던 제 행동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평소의 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그 점을 좋게 평가해주시면 감사할 뿐이지만, 나쁘게 평가하신다면 그것도 제 모습일 뿐이죠. 평가해주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 '보이는 대로 평가 받을 뿐' 홍진호는 팬들의 평가에 대해 무덤덤했다


Q. '신의 판결'에서 정황상 6만 나오는 주사위를 2개 만들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이 내용이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는 설이 사실인가요?

아니요. 그러지는 않았어요. 6만 나오는 주사위는 하나만 만들었어요. '신의 판결'의 핵심은 주사위를 가르는걸 알아내는 게 핵심이 아니에요. 주사위를 가르는 것은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알아낼 수 있어요. 주사위를 갈라냈을 때 어떻게 조합하는지 알아내는 게 핵심이었는데 제가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주사위가 쪼개진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생각외로 오래 걸렸죠.

결국, 시간이 촉박해서 주사위를 조합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고, 지원이 형도 주사위를 갈라놔서 배열해놨더라고요. 제 거랑 맞는 게 있나 보려고 같이 보다가 서로 같이 섞인 것 같아요. 그렇게 되서 지원이 형 주사위도 엉키게 되었죠.



■ '게임'과 '예능'의 접목, 프로게이머 인식 변화 계기 될까?

현재 더 지니어스 시즌2에는 임요환과 홍진호, 두 프로게이머 출신의 출연자가 있습니다. 모두 왕년에 '전설'로 불렸던 선수들이죠. 방송을 보면 이 두 출연자의 게임 이해도는 높은 편입니다. 지난 시즌 우승자는 말할 것도 없고, 처음 걱정되는 모습을 보여줬던 임요환 전 감독 역시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지니어스에서 메인매치는 풀어내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게임의 본질에 접근해 '필승공식'을 찾아내는 정공법이 있는 반면, 플레이어끼리 '연합'을 통해 승리를 거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주어진 '룰'에 대해 자세히 탐구하고 분석하는 모습은 두 프로게이머 출신 출연자들이 보여줬던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많은 시청자는 이런 플레이 방식에 열띤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승부 근성에 시청자들이 주목한 것입니다.




▲ 홍진호와 함께 프로게이머 출신 출연자로 활약중인 임요환


Q. 두 프로게이머 출신 출연자가 게임을 제일 충실하게 이해하려고 한다는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감사드리죠. 상대와 승부를 보는 일을 직업 삼아 살아오다가 한동안 쉬면서 그런 투지나 열정 같은 게 많이 사라졌거든요. 허전하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그런 느낌을 받아보자는 목표가 강했고, 그 의지대로 방송에서 한 번 불살라본 것이거든요.

이런 제 모습에 시청자분들이 호응을 잘 해주시니까 저도 "아, 팬들이 내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하시는구나."라고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됐고,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잘 해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Q. 더 지니어스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이유가 프로게이머인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본인의 생각은?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게임 스타일'의 차이 아닐까 생각해요. 임요환 전 감독도 프로게이머지만 허당스러운 모습이 보이잖아요. 임 전 감독의 경우 게이머 시절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어떤 선수를 만나든 준비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요환 형은) 준비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타입이죠.

저는 게이머 시절부터 연습량이 많은 편이 아니었어요. 상대의 스타일을 연구하고 맵을 분석하고 전투의 상황을 보는 타입이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방식인데 더 지니어스는 과제를 그 날에 주잖아요. 게임을 준비하라고 며칠씩 시간을 주는 게 아니니까요. 그 날 숙제를 받고 그 날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제가 더 지니어스에 특화되지 않았나란 생각이에요.


Q. 같은 프로게이머 출신인 임요환은 인벤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홍진호를 꺾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사실 별 생각 없어요(웃음). 요환이 형은 충분히 그런 말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요환이 형한테는 지지 말아야지"란 생각을 했죠.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다른 게임에서 다시 맞붙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못해서 아쉽긴 해요.

지금 요환이 형이 허당스러운 모습으로 꾸역꾸역 살아남고 있긴 하지만 이것도 '요환이 형답다'고 생각해요. 저는 승리를 못 하더라도 제 스타일이나 실력을 지키려고 하는데 요환이 형은 그런거 다 버리고 묵묵히 승리를 향해 가는 모습이 요환이 형 답죠. 요환이 형은 저와 맞붙지는 않았지만 제가 떨어졌고 본인은 살아남았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요환이 형도 정말 강한 상대다,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어요.




▲ "요환 형과의 대결, 꼭 해보고 싶었는데"


Q. 그렇다면 임요환과 1:1로 붙게 되면 피하고 싶겠네요?

아니요. 저야 당연히 붙겠죠. 초반부터 임요환 선수와 편이 아닌 상태에서도 암묵적으로 조금씩 도와줬어요. 떨어지지 말라고. 한번 붙고 싶어서요. 하지만 제가 위험할 때 스스로 버티고 일어섰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그 기회를 날려버렸죠. 정말 아쉽고,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곳에서 한번 겨뤄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더 지니어스는 내가 더 잘하는 게임"이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에 정말 한번 싸워보고 싶었죠. 그러지 못해서 아쉽게 됐지만요.


Q. 지니어스 시즌3가 만약 계획된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글쎄요. 많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시즌2만 해도 거리낌 없이 나갔겠지만, 지금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더 지니어스란 프로그램은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이긴 하지만요. 정말 많이 나왔어요. 여론도 그래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시즌 1, 2, 3 다 나가면 특별한 부분에서 지나치게 유리할 것 같기도 해요. 또 식상하지도 않을까요? 시즌3 출연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 첫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열린 지 15년, 그중 11년을 선수로 살아온 홍진호 이야기

밀레니엄 신드롬이 일기도 했던 2000년, 21세기가 처음 시작되던 해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임요환과 홍진호가 스타크래프트1에서 자웅을 겨루던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가 이제 많지 않습니다.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어린 팬들은 임요환과 홍진호의 활약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강산이 한번 반은 바뀔 세월입니다. 지금은 추억을 곱씹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세대와 새로 e스포츠의 팬층으로 자리 잡은 세대의 간극은 지나간 시간만큼 큽니다. e스포츠가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30대가 되어버린 팬들은 떠나간 세월이 그립기만 합니다. 현재 스타크래프트1 이야기가 계속 화자 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대를 주름잡았던 홍진호의 생각은 어떨까요?




▲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옛 동료들과 홍진호. 오랜만에 스타 파이널포에서 만났다



Q. 최근 스타1 리그가 곳곳에서 열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분위기죠.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나요?

제가 이런 현상을 심도 있게 전망까지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전 일개 전직 프로게이머일 뿐이니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올드게이머들이 오랜만에 모습을 비추고 팬들이 추억에 잠기면서 좋아해 주는 부분, 그 자체가 정말 즐거워서 몬스터짐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고요.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팬들이 좋아해 주시는 모습 자체가 보기 좋은 것 같아요.


Q. 지금 e스포츠 주 연령층도 바뀌어 홍진호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프로게이머로 데뷔하던 그때의 시절이 기억나나요?

초등학생 중학생 친구들에게 제 소개를 하자니 부끄럽긴 하네요(웃음). 저 역시도 한때 프로게이머로서 11년을 활동했기 때문에 자부심이 있고 공식적인 우승은 없지만,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이 결승에 간 선수 중 한 명이 아니겠느냐는 자랑거리도 있고요. 생각해보니 자랑할만한 게 없네요(웃음). 명경기를 소개해주고 싶어도 다 진 거라(웃음).


Q. 과거 임요환과의 스타리그 4강전에서 3번 연속 벙커링을 당하고 진 것은 유명한 일화죠. 당시 심정은?

그 날은 많은 분이 명경기라서 기억한다기보다는 경기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기억하는 거잖아요. 저도 충격적이었죠. 지금은 많이 상쇄되긴 했지만요. 당시 준비를 참 많이 했어요. 4강 두 번째 경기였거든요. 지난 첫 번째 경기에서 명경기가 많이 나왔죠. 그러다 보니 대중의 기대가 한층 더 올라간 경기였고,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더라도 멋있는 경기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요.

하지만 그렇게 일찍 끝나버리니 너무 허탈했고, 요환이 형이 원망스럽다기 보다는 임 선수가 승리에 목숨을 걸고 임할 것이라는 건 프로로서 당연한 건데, 저도 그걸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너무 배제한 게 아닌가란 생각에 자괴감에 빠진 것 같아요. 슬럼프도 찾아오고 정말 힘들었죠.


Q. 우승과는 인연이 없어서 숫자 2와 연관이 깊은 '2인자'캐릭터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은 없나요?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죠. 저는 항상 우승하려고 달려가는데 남들이 내 한계를 2인자로 만들어버리니까 참 속상했어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기도 했지만, 중요한 점은 제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남들이 2인자라고 하더라도 굳이 2인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2로도 이슈가 되고 마스코트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받아들이는 방식의 문제였던 거에요. 남들이 2인자라 하더라도 제가 생각하기에 "나 자신한테 있어서는 언제나 1등이다."라고 생각하면 되는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방법을 배우다 보니까 이런 부분도 팬들한테 웃으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더군요. 이러다 보니까 팬들도 더 좋아해 주시고, 이런 연계성이 있는 것 같아요.


Q. 이 밖에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사실 매우 많죠.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예요. 20대를 다 게이머로 보냈는걸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결승전에서 임요환을 꺾고 우승한 적이 있어요. 비록 이벤트 전이었지만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경기 외적인 부분은 게이머 시절 초창기에 너무 힘들었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정말 어렵게 게이머 생활을 했는데 판이 커지면서 제가 KT에 입단하게 된 거예요. 처음에 억대연봉을 받으면서 계약할 때, 그 때가 정말 기억이 남아요. '이렇게 인정받는구나'란 생각에 가슴이 정말 벅찼고요.




▲ 홍진호는 후배들에게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낭비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Q. 프로게이머 대선배로서 어렵게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실 조언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다 편할 것 같은데(웃음). 예전에 비하면야 지금은 굉장히 편하죠. 예전에는 힘들었던 만큼 누가 주질 않아도 동기부여가 알아서 되거든요.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꼭 성공해서 더 좋은 팀에 가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요즘은 연습생이어도 기본급을 주는 곳도 있고, 기본급이 없어도 최소한 세끼 숙식에 청소를 전담하는 직원도 있고, 개인 컴퓨터와 장비도 제공되지요. 예전과는 대우가 차원이 다르죠.

그러다 보니 게이머는 동기부여가 중요한데 이 부분이 많이 약해졌어요. 게임을 좋아해서 많이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 것은 힘듭니다. 많은 어린 친구들이 착각하는 게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다곤 하지만 프로라서 게임을 이기기 위해 집중해서 연습을 하는건지 단지 게임을 즐기는 것인지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 숙소 생활이 자기도 모르게 편하고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보니까 숙소 생활 자체가 재밌는 거에요. 그러면 본인은 처음에 각오하고 숙소에 들어왔겠지만, 그 결의를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 거죠. 자기도 모르게 숙소생활의 재미에 빠져들어서 대회에 올라가지 못해도 마냥 좋고,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무력감에 동화되는 거예요. 게이머가 된 동기가 실종되는 거죠. 그렇게 이름만 유지만 하는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에게 자극을 주고 이런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죠. 프로게이머들은 아직 너무 어려요. 주전들이 이제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이잖아요. 이 시기는 나중에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정하게 되는 중요한 시기에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를 아직 젊다는 이유로, 막연히 경험해보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게이머를 하겠다는 생각은 절대 안 했으면 좋겠어요.

게이머를 할 생각이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확실히 올인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이 세상에서 게임을 잘하는 친구들은 워낙 많으니까요.



■ 곰TV 클래식 시즌4에 출전하는 홍진호, '소외된 선수들과 팬들의 추억 떠올리게 할 것'

대회를 기획하는 것과 선수로 출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입니다. 홍진호는 올해로 만 32세, 예전처럼 부스에서 경기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내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앳된 선수들의 강력한 패기를 버틸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기에 '방송인'으로 입지를 다져가는 홍진호의 곰TV 클래식 시즌4 출전은 더욱 의아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홍진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니 이해가 갑니다. 감독직을 수행할 때도, 방송 활동의 비중을 높여갈 때도 그의 심장 한쪽에는 스타크래프트1이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지금이야말로 게임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기 위한 적기"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은 그가 프로게이머의 경험을 밑천으로 방송인의 새 삶을 살기 위한 길을 걷는다고 보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방송일을 통해 쌓은 명성으로 자신을 주목하게 하고, 스타1 관련 행보를 선보이면서 '잊혀진 리그'를 돌아볼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 홍진호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따로 있었습니다.




▲ 지난 곰TV 클래식에 출전했던 홍진호의 모습 (사진출처 : GOM eXP 캡쳐)


Q. 잠깐 제닉스 스톰 감독으로 지내기도 하면서 다른 종목에도 도전하기도 했었는데 다시 스타1으로 마우스를 잡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LoL이나 스타1이나 장르로 보면 다르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똑같은 게임이거든요. 굳이 스타1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타1이 좋아서 하는 거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을 받지 않아요.

단지 스타1을 한 번쯤 재조명을 시켜보고 싶었던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은퇴한 이후 남들에게 잊혀가는 시점에서 제가 뭘 한다고 해도 시청자들이 보겠어요? 저는 이미 죽어있는데요? 그때는 마음은 있지만 하지 못하는 입장, 할 수가 없었던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제가 이슈도 많이 되고 있어서 지금이라면 많은 분을 스타1 향수에 젖게 하고, 스타1을 모르는 분들에게도 게임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타이밍이라 스타 파이널포도 기획하고 곰TV 클래식에도 출전하게 됐죠. 스타1에만 애정이 있고 LoL에는 애정이 없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Q. 홍진호에게 있어 곰TV 클래식 시즌4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번 곰TV 클래식은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스타1의 열기와 추억의 향수 등을 다시 한 번 크게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시발점이 될 것 같고, 그러길 기원하고 있어요.

앞서 밝힌 대로 제게는 이번 출전의 의미가 남다르죠. 그래서 조금 부족한 실력이지만 출전을 결정했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생각도 물론 있지만 그것보다는 제 출전 자체가 스타1에 조금이라도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서 나가는 부분이 훨씬 큰 것 같아요.


Q. 출전하는 선수 중 경계해야 하거나 붙고 싶은 후배가 있나요?

이번에 공개된 대진표를 보니 구성훈 선수와 맞붙게 됐어요. 사실 누구와 붙느냐, 이런 건 의미가 없어요. 다 잘하는 선수들이니까요. 아직 직접 '벽'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느끼겠죠. 그런 수준 차이를 느끼면 제가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않을까요?(웃음) 직접 겪어봐야죠.


Q. 스타크래프트1과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생각인가요?

생각은 항상 있었죠. 항상 희망 사항으로요. 하지만 지금은 이상적으로만 꿈꿔오다가 현실로 실현하게 할 기회가 온 겁니다. 저 같은 경우 항상 남들에게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지 말만으로 약속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아직은 미숙해요. 스타 파이널포를 기획할 때도 불안한 부분이 많았어요. 지인들도 제일 편한 사람 위주로만 초대하고, 뭔가 좀 지명도 있는 선수들은 초대를 못했죠. 불러놓고 너무 어설프면 미안할까봐(웃음). 근데 지난 행사가 상당히 잘 되서 이제 자신감도 얻었구요.

한마디 하자면 스타1이라는 종목이 '망해서' 사라진게 아니잖아요. 스타2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대체하게 된 거지 스타1 인기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단 말이에요. 하지만 스타1 선수들은 순간 직장을 잃었어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선수들도 많아요. 이런 선수들을 다시 기회를 주고 싶고, 팬들도 잘 아는 부분이니까요. 지금은 추억을 밑천 삼아 경기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제가 경기를 하는 모습은 많이 보여주기 힘들 거예요. 실력이 형편없이 낮은 점은 사실이니까요. 여러번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순 없겠죠. 대중의 수준이 워낙 높아져 있으니까요.


Q. 마지막으로 이 세상 모든 '콩빠'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거창해 보이네요(웃음). 프로게이머를 했었고, 최근에는 방송 쪽 일을 하면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지만 역시 많이 부족하고 미숙하다는 점을 느껴요. 이런 부분들조차 좋게 바라봐주시고 응원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끼고, 일단 가볍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방송일을 하지만 준비가 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실수가 잦아도 가볍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방송일을 하더라도 프로게이머 홍진호였기 때문에, 반평생을 쏟아온 프로게이머의 인생은 제 반쪽 심장으로서 항상 가져갈 테니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곰TV 클래식 시즌4에서의 활약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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