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타2-LOL 우승 이끈 강도경-이지훈, 한잔 술에 녹여낸 두 감독 이야기

인터뷰 | e스포츠팀 기자 | 댓글: 126개 |
KT 롤스터가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4(이하 프로리그)와 핫식스 롤챔스 섬머 2014시즌(이하 롤챔스)을 동시에 석권했습니다. KT 롤스터 선수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죠. 그동안 몸고생, 마음고생을 치른 대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선수들이 무대 위에서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기뻐할 때, 무대 뒤에서 조용히 기쁨을 누렸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KT 롤스터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 게임단의 이지훈 감독과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 게임단의 강도경 감독입니다. 비록 무대에 함께 올라 선수들과 팬들의 환호를 함께 나누진 못했지만, 두 감독 역시 박수받아 마땅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비시즌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팀을 위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KT 롤스터의 이지훈 감독과 강도경 감독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애당초 의례적인 인터뷰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은 즐기고, 아픈 일에도 솔직해야 할 시간! 커피가 아닌 술을 곁들이는 인터뷰를 위해 이동한 장소는 작지만 알차 보이는 동네 주꾸미 집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서른에 가까운 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KT 롤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답니다.



■ 양대 리그를 석권한 KT 롤스터, 그리고 두 감독

KT 롤스터가 스타2-LOL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을 때, 두 감독의 동반 인터뷰는 어쩌면 예정되었던 스케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획하는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주제였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지훈과 강도경, 두 남자를 한 자리에 모셔놓고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야 옳은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갔고, 결국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약속 장소에 네 명의 기자가 출동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여느 남자들이 만나면 늘 그렇듯 스포츠 관련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긴장된 분위기는 차차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기자와 감독이라는 '공식적인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아직까지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왔고,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두 남자와의 진솔한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 만나면 반갑다고 짠~

Q. KT 롤스터가 스타2-롤에서 전부 우승을 차지할 줄은 몰랐어요. 감독님들은 예상했던 일인가요?

강도경 감독 : 우리는 우리가 우승할 것을 확신했었어요.

이지훈 감독 : 제가 프로리그 1라운드까지 하고 롤 팀으로 옮겼어요. 우승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승 진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죠. 결승전은 워낙 당일 컨디션과 환경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승까지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Q. 프로리그 우승은 SK텔레콤 T1이 차지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요. KT 롤스터가 이를 뒤집고 '반전우승'을 차지했죠?

이지훈 감독 : 사실 SK텔레콤이 우승했어야 좋은 그림이 나오는 거였죠. 프로리그 메인 스폰서도 SK텔레콤이었고, 선수 영입에 많은 투자를 했었으니까요.

강도경 감독 :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SK텔레콤 단장님께서 우리 선수들에게 우승 트로피를 주실 때 정말 기뻤어요(웃음).





Q. KT 롤스터와 SK텔레콤 T1 간의 라이벌 구도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요. 이런 구도가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으시나요?

강도경 감독 : 현재 성적이 좋아도 SKT한테 지면 분위기가 다운되고, 성적이 안 좋았어도 SKT한테 이기면 정말 잘했다는 칭찬이 쏟아져요. 일종의 '한일전'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요? 실제로 SKT를 상대로 이기면 승리 수당도 두 배를 받아요.

이지훈 감독 : SKT와의 경기에서 지면 당연히 인터넷에 SKT의 승리 관련 기사가 도배돼요. 이걸 좋아할 라이벌이 어디 있겠어요? KT 애로우즈를 구성한 일차적인 목표도 SKT T1 K를 잡기 위해서였어요. 목표를 바로 달성했지만, 다음 라운드에서 귀신같이 탈락했었죠. 마치 '슬램덩크' 만화의 북산 같은 느낌이었어요.


Q. '북산'같다던 KT 애로우즈가 이번 시즌 우승을 차지했어요. 솔직히 예상하셨던 일인가요?

강도경 감독 : 오창종 코치와 친해서 결승 당일에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은지 물어봤었어요. 그 전날까지는 확신이 없었는데 결승 당일에는 무조건 이길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우승할 것 같았어요.

이지훈 감독 : KT 애로우즈의 스크림 승률이 워낙 높았어요. 30전 29승 1패를 기록했었으니까요. 사실 스크림의 최강자는 삼성 화이트인데, 그런 삼성 화이트에게도 자주 이겼어요. 그래서 이번 롤드컵 진출전도 기대했었는데, 나진 실드에게 초반부터 너무 많이 말렸던 것 같아요.

사실 선수들이 많이 어리다 보니 이번 시즌에서 큰 부담을 느끼게 하긴 싫었어요. 사무국에서도 큰 욕심을 부리지는 말자는 말이 나왔었고요. 하지만 선수들이 시즌을 거치면서 점점 각성했어요. 그 결과 롤챔스 우승을 차지했고요.



▲ 맛있었던 주꾸미


Q. KT 애로우즈의 선수들이 각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강도경 감독 : 코치진의 채찍! 당근은 없고 오로지 채찍!(웃음)

이지훈 감독 : 모두가 노력했지만, 특히 오창종 코치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얼마 전 아내분이 임신해서 정신 없었을 텐데 팀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줬거든요. 집에 3주 정도 안 들어갔던 것 같아요.

또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겠지만 선수들의 멘탈이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계속해서 블라인드 픽을 통해 승리를 했던 만큼, 멘탈이 좋아진 것 같았어요. 왠지 우승하면 3:2로 우승할 것 같았죠.


Q. 말씀하신대로 KT 애로우즈 선수들이 매우 어리죠. 멘탈 관리에 어려움은 없나요?

이지훈 감독 : 선수들이 롤 프로 게임단 중에 가장 어려요. 하지만 '카카오' 이병권 선수와 '썸데이' 김찬호 선수처럼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분위기를 잘 이끌어줘요. 특히, 이병권 선수가 이미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성격이거든요. 연습 때 지각 한번 하지 않아요. 마치 스타2 팀의 이영호 선수 같은 존재예요.


Q. 스타2 선수들은 감독님의 지시를 잘 따르나요?

강도경 감독 : 말을 정말 잘 들어요. 게임단 중에서 선수들 간의 우애가 가장 깊은 팀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자율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불만 사항 등이 있으면 서로 거리낌 없이 말하는 편이에요. 그 대신 저도 선수들에게 원하는 것을 때마다 자주 말하죠. "너희가 나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나도 너희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말을 항상 해요.

이지훈 감독 : 중요한 것은 이영호 선수가 워낙 잘해요. 팀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중심을 잡고 자기 관리를 잘 하다 보니 다른 선수들도 잘 따라오는 것 같아요.


Q. 이영호 선수의 존재가 롤 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나요?

이지훈 감독 : 물론이죠! 이번에 모 매체에서 이영호 선수와 '카카오' 이병권 선수에게 동반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롤 팀 선수들 반응이 하나같이 "제가 감히 신이랑 인터뷰를 같이 나가도 되나요?"였어요. 그만큼 대단한 존재인 것 같아요. 이번 IEM 우승으로 이영호 선수가 더욱 커진 것 같고요.



▲ KT 롤스터 이영호 선수의 사인



■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 e스포츠 감독

이지훈과 강도경은 같은 KT 롤스터 게임단의 감독직을 맡고 있지만, 두 감독이 전담하는 종목은 전혀 다릅니다. 두 종목의 간극 만큼이나 팀을 운영하는 스타일, 선수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도 분명한 차이를 두어야 합니다. 이지훈 감독은 스타2와 롤을 모두 경험한 감독이니, 이 부분에 대한 가치관은 분명하겠지요.

반면 강도경 감독의 경우 선수부터 코치, 그리고 감독까지 올라선 RTS 외길 인생의 대표주자입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선수의 입장, 코치의 역할, 그리고 감독이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KT 롤스터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Q. 일부 팬들은 'e스포츠 감독은 하는 일이 없다.'라는 질타를 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이지훈 감독 : 그 말이 가장 듣기 싫어요. 사실 그런 감독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요즘은 그랬다간 난리 나죠.

강도경 감독 : 열심히 하는 감독들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봐요. 선수 관리나 팀 운영 등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요. 물론, 그만큼 책임도 많이 따르죠.

이지훈 감독 : 만약에 감독이 팀원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건 감독직을 걸고 실행하는 거라고 보면 돼요. 여느 스포츠가 다 그렇겠지만, 사무국을 설득하기란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일이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감독을 비난하곤 해요. 예를 들어 내가 강도경의 팬인데, 감독이 팀을 위해 강도경의 출전 기회를 줄이거나 하면 곧바로 감독을 비난하게 마련이죠.


Q. 그런 상황이라면, 솔직히 말해서 대충 얼버무려서 회피하는 방법도 가능은 하지 않나요?

이지훈 감독 : 강도경 감독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생각에 감독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차라리 허세를 부리면 부렸지, 거짓말을 했다간 선수들에게 신뢰도 잃고 팬들에게도 신뢰를 잃게 되잖아요? 그 순간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강도경 감독님의 경우 기존 운영되던 스타2 팀을 인수인계 받게 되었잖아요.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요?

이지훈 감독 : 강도경 감독이 감독 자리에 오르자마자 스케줄을 빨리 바꿨어요. 아침 9시에 일과를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게을러서 오전 11시가 넘어서 일과를 시작해요. 저한테 아침 9시에 연습을 시작하라고 하면 감독직을 그만 둘 작정이에요(웃음).

강도경 감독 : 스타2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습을 진행해요. 사실 이런 스케줄을 선수들이 먼저 원했어요. 애매하게 중간에 쉬고 길게 연습하면 개인 시간이 없어서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일정을 일찍 시작해보고 연습과 경기에 지장이 없으면 계속 그렇게 해보자고 했어요. 선수들도 동의했고요.

선수들이 스스로 정해서인지 약속한 것을 잘 지키더라고요. 연습할 땐 열심히 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딱 연습을 마치죠. 시간을 마음대로 정하되 하루 총 연습 시간은 줄일 수 없다고 말해줬어요. 그 대신 쉬는 시간에 어느 선수가 뭘 하건 크게 관여하지 않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선수들의 프라이버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율적으로 하게 놔두고 묵묵히 지켜보는 게 효율이 더 높은 것 같아요.


Q. 이지훈 감독님은 종목이 전혀 다른 롤팀으로 옮기게 되었는데요. 초반 적응은 어떠셨나요?

이지훈 감독 : 스타 팀을 관리하다가 롤 팀을 맡게 되니 솔직히 힘들어요. 롤 선수들을 나쁘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 선수들은 어느 정도 프로 의식이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스타 선수들은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프로가 되기 위해 많은 단계를 거치고 그 과정에서 프로 의식을 갖게 되거든요.

하지만 롤 선수들은 아마추어 계에서 잘하는 선수를 데려와 바로 실전에 투입하다 보니 프로 의식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 싶어요. 제가 처음부터 롤 감독을 했으면 이런 것을 못 느꼈겠지만, 스타 팀 감독을 하다가 롤 팀으로 옮겨와서 그런지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죠.

선수들이 어리고 프로 의식이 약간 부족하다 보니 단체 생활 자체에 적응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지만, 막상 숙소에 들어오면 적응을 못 하고 스스로 나가는 선수들이 많아요.


강도경 감독 : 스타 프로 게이머가 돼서 숙소에 들어오면 이미 선배들이 갈고 닦아 놓은 기틀이 있었죠. 하지만 롤은 선수들이 대부분 처음 시작하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 잡혀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하나하나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해요. 단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친구들이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지훈 감독 : 스타는 팀 게임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한두 선수가 문제를 일으키면 그 선수만 팀을 나가거나 해도 되지만, 롤은 선수가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팀 전체가 흔들려요. 그래서 팀 운영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죠.



▲ 그게 참 쉽지가 않더이다~



■ KT 애로우즈, 강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었습니다. '언제 익나?' 애만 태우던 주꾸미들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빈 술병도 한 두 개씩 늘어나면서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 느껴졌던 어색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죠.

빈 술병이 빠르게 늘어갈 수록 두 감독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번져나갔습니다. 이렇게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두 사람인데, 지금까지 입이 간지러워서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요? 롤챔스 우승을 차지했던 애로우즈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나오자 이지훈 감독의 얼굴은 소년과도 같아집니다.





Q. KT 애로우즈 우승으로 드디어 이지훈 감독님 이력에 롤챔스 우승 타이틀이 생겼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이지훈 감독 : 마음을 비웠던 사무국에서도 결승에 올라가자 이번에는 우승할 때가 됐다는 말을 할 정도였어요. 저도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을 너무 주기 싫어서 내색은 안했지만, 막상 결승에 진출하니 욕심이 났었거든요.


Q. 최근 흐름을 보면 삼성 형제팀의 기세가 워낙 좋죠. 이런 기조를 뚫고 우승을 차지한 것인데요. 소감은 어떤가요?

이지훈 감독 : 일단 삼성 화이트가 정말 심하게 잘해요. 그러다 보니 삼성 블루가 삼성 화이트와의 연습 경기를 통해서 이기는 법을 깨달은 것 같아요. 이번에 KT 애로우즈가 우승하게 된 것도 삼성 화이트와 많이 연습 게임을 하다 보니 실력이 향상된 것이 컸죠. 삼성 형제팀이 우리를 도와줬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롤드컵 대비 연습을 많이 해줘야 할 것 같아요.


Q. 솔직히 이번 롤드컵 진출을 기대하지 않았나요? 많은 팬이 KT 애로우즈의 첫 롤드컵 진출을 기대했었는데요?

이지훈 감독 : 맞아요. 정말 기대 많이 했죠. 특히, '카카오' 이병권 선수가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기대가 높았던 만큼 허탈함을 많이 느끼더라고요.


Q. 최근 나진 실드의 경기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에요.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어떠신가요?

이지훈 감독 : 나진 실드가 이번 롤챔스 섬머 시즌에서 빨리 탈락한 이후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았어요. 달라진 경기력에 놀랐죠. 승부욕이 강해서 쉽게 남을 인정하지 않는 '카카오' 이병권 선수도 이번 패배 이후에는 실력 차이 때문에 졌다고 인정할 정도였으니까요. 우스갯소리로 우리도 다음에는 빨리 떨어지고 롤드컵 준비에 힘쓰자고 했어요(웃음).

강도경 감독 : 우리도 프로리그 4라운드 때 포스트시즌에 안 올라간 다음, 통합 우승을 했죠.

이지훈 감독 : '안 올라가고'가 아니고 '못 올라가고!'(웃음)

강도경 감독 : (큰 목소리로)'안 올라가고!'


Q. 이번 롤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 같은 팀을 꼽아보자면요?

이지훈 감독 : 역시 나진 실드죠. 나진 실드가 삼성 화이트와 비슷하게 이기는 운영을 할 줄 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번에 더욱 발전했으니 좋은 성적을 거둘 것 같아요. 하지만 우승은 삼성 화이트가 할 것 같아요. 그 팀은 진짜 그냥 잘해요.


Q. 이 말을 들으면 박정석 감독이 속상해하지 않을까요?

이지훈 감독 : 우리를 이기고 롤드컵에 진출했으면 됐죠!(웃음) 나진 실드의 승리 공식은 '상대를 말리게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삼성 화이트는 절대 상대에게 말려들지 않거든요. 둘이 붙게 된다면 삼성 화이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유일하게 삼성 화이트를 말리게 하는 팀이 삼성 블루예요. 아무래도 삼성 화이트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마타' 조세형 선수와 '댄디' 최인규 선수가 함께 초반을 풀어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조세형 선수가 삼성 블루와 붙으면 힘을 못 써요. '하트' 이관형 선수가 조세형 선수를 잘 묶어 두는 것 같아요.


Q. 예전부터 그랬듯이 내전은 붙어봐야 아는 것 같아요.

이지훈 감독 : 맞아요. 사실 이번에 리빌딩 된 KT 불리츠도 그 정도로 약한 팀은 절대 아니거든요. 스크림 승률이 워낙 높아요. 그래서 롤드컵 진출전에서 KT 롤스터 내전이 나오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죠. 물론, 결과적으로는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킨 게 됐지만 말이죠.



■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닌 법

술과 곁들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니 술기운이 몸에 돌아 기분이 좋아지고, 점차 분위기는 절정으로 향했습니다. 두 감독은 이번에 우승을 차지해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써 누군가는 반드시 실망할 어려운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술기운의 힘일까요? 평소라면 쉽게 듣기 어려울 KT 불리츠에 관한 사정도 두 감독은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SKT T1 K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던 팀인 만큼, 기존 맴버가 뿔뿔이 흩어진 지금의 상황에 대한 책임론을 이지훈 감독에게 묻는 팬이 나타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한 이지훈 감독의 진솔한 심경을 들어보았습니다.



Q. KT 불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말을 꺼내기 굉장히 어려운 주제인데 말이죠.

이지훈 감독 : 말 못할 사정이 정말 많았어요. 감독 입장에서 팀을 어떻게든 살려 보고 싶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더군요. 좀 더 잘할 수 있었던 멤버였는데 정말 아쉽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것 같아요. 리빌딩을 거친 후에는 불안하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문제는 없어요.

지금도 그때 선수들이랑 정말 친하게 지내요. 잦은 포지션 변경이 제 독단으로 진행된 결과란 루머는 납득할 수 없어요. 만약 정말로 감독이 강제로 바꾸라고 해서 이름값 높은 선수들이 순순히 수긍하겠어요? 처음에는 팬들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 써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려고 노력해요.

결국, 저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고 마지막까지 남는 건 우승 트로피를 포함한 경력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힘든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그걸 누가 알아주겠어요? 개인적으로 오직 결과만이 인정받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팬들의 마음과 좋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랜 감독 경력으로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 버렸죠.


Q.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이지훈 감독 : 롤챔스 섬머 2013시즌이 가장 힘들었어요. CJ 블레이즈와 KT 불리츠가 맞붙었던 8강전에서 블라인드 픽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었죠. 그전까지는 정말 힘들어서 감독직을 그만두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KT 불리츠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줘서 의욕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어요. 힘들었던 이유는 밝힐 수 없습니다.

강도경 감독 : 결승전 '승승패패패' 때문에 아닌가?

이지훈 감독 : 그건 아니야(웃음). 물론, '승승패패패' 때문에 많이 힘들긴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괜찮아요.



▲ 크.. 힘들구나


Q. 감독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는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이지훈 감독 : 맞아요. 하지만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이니만큼 팬들에게 칭찬받고, 경우에 따라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Q. 강도경 감독님은 스타2 팀의 감독이 된 이후로 힘든 적이 없었나요?

강도경 감독 : 당연히 있죠. 처음에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시 이지훈 감독이 스타 팀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이지훈 감독 : 프로리그 1라운드 우승을 하고 제가 그만뒀죠. 개인적으로는 좋았지만, 강도경 감독 입장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었을 걸요. 1라운드에 비해 다음 라운드들 성적이 떨어지니 반응이 당연히 안 좋았으니까요. 그래도 프로리그 통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힘든 것을 극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강도경 감독 : 말 그대로 1라운드 이후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취미가 자전거를 타는 것인데, 자전거를 타는 내내 고민했었죠. 이지훈 감독이 팀을 맡았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성적이 안 나오는지에 대해 생각했었어요.

불현듯 제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감독이 되면서 당연히 감독의 임무를 수행했었죠. 하지만 제가 그동안 해왔던 코치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없어진 거였어요. 정확히 말하면, 강도경 코치가 없어지고 강도경 감독만 남아 있었던 거죠. 그 이후로 감독의 역할인 총괄에만 신경 쓰지 말고 수석 코치였던 강도경 코치의 역할을 같이 해보자고 다짐했었어요. 그렇게 한 후로 성적이 좋아지더라고요.

이지훈 감독 : 확실히 감독이 총괄만 하면 성적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강도경 감독 : 선수가 연습하는 동안 감독도 바로 뒤에 앉아서 한순간도 빠짐없이 선수의 개인 화면을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스타2는 초반 전략이 거의 없어서 경기를 계속 보고 있으면 지루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지는 건 당연해요. 감독이 잘해야 선수들도 따라오는 법이죠.

이지훈 감독 : 롤도 마찬가지예요. 롤은 특히 조합 컨셉을 정해놓고 연습을 해서 초반이 더 지루해요. 예전에는 그 지루함을 못 견디고 연습하는 선수들에게 소홀했었죠.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야 선수가 뭔가 잘못했을 때 제가 할 말이 생기거든요



■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다양한 이슈들

커뮤니티는 늘 떠들석 합니다. 최근 화제의 중심인 롤은 당연하지만, 팬들의 반응이 화끈하기로는 스타2도 둘째가라면 서럽죠. 최근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성립된 최연성-강도경 감독의 라이벌 구도나 이영호-원이삭의 도발 구도 등은 결승전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재미요소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지요. 최근 이영호 선수는 원이삭의 연이은 도발에 대해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KT 롤스터의 근간을 이루는 이영호 선수다 보니 강도경 감독도 예민해질 수 있는 문제인데요. 그러나 본인 역시 도발을 즐겼던 선수인 만큼 다른 생각이 있지는 않을까요?



Q. 강도경 감독님과 최연성 감독님의 사이가 정말 안 좋은 것은 아니죠?

강도경 감독 : 정말 안 좋은 것 맞아요(웃음). 하지만 그 이유로 서로 도발을 주고받았던 것은 아니에요. 저는 최연성 감독을 어렸을 때부터 봤어요. 제가 살던 곳에 동양 오리온스 연습실이 들어서면서 이사를 가야 했어요. 그 이후 별다른 왕래 없이 지내다가 서로 코치가 되면서 도발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죠.

그러다가 최연성 감독이 악플러에게 심하게 시달리면서 도발을 그만뒀어요. 최연성 감독의 가족까지 모욕하는 심각한 악플이었다고 해요. 안타까운 사건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번 프로리그 결승 이후 있었던 감독들 간의 모임에서 서로 친하게 지내기로 했어요.


Q. 원이삭 선수가 이영호 선수에게 도발을 서슴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도경 감독 : 사실 재밌어요. 도발도 주고받아야 분위기가 살지 않겠어요? 이영호 선수 성격상 도발 당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오히려 경기를 지면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죠.

이지훈 감독 : 이영호 선수의 실력이 예전만 못해서 도발을 당하는 게 아닐까 해요. 그걸 또 이영호 선수가 프로리그 통합 결승전에서 극복했으니 그거면 됐다고 생각해요. 사실 예전에 이영호 선수가 도재욱 선수에게 계속 패배했었죠. 그러다가 결승에서 도재욱 선수를 잡아냈잖아요? 이번 프로리그 결승을 앞두고도 이영호 선수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어요.



▲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두 감독


Q. 이영호 선수 이야기를 하다보니 스타1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스타2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뭘까요?

강도경 감독 : 스타2는 연습을 조금 쉬어도 스타1보다 금방 폼을 되찾는 것 같아요. 결국, 좋은 성적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기 전에는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죠. 하지만 체계가 완벽하게 잡힌 이후에는 모두가 똑같이 노력하게 돼요.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남은 변수는 오직 재능뿐 아닌가요?


Q. 재능 하니까 갑자기 임재덕 선수가 떠오르네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활동하잖아요?

이지훈 감독 : 임재덕 선수는 재능이 정말 뛰어났죠.

강도경 감독 : 임재덕 선수는 남들보다 잘하는 법을 일찍 깨우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어요. 예전부터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금세 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한 게임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질려 하더라고요. 롤에는 '푸만두' 이정현 선수가 그런 것 같고요.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가 개인적으로는 이영호 선수라고 봐요. 그 선수는 노력뿐만 아니라 재능, 롱런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예요.

이지훈 감독 : 예전에는 송병구 선수가 그랬죠. 롤에서는 아직 그런 선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 잘한다는 '페이커' 이상혁 선수도 이제 데뷔한 지 1년 반밖에 안 됐으니까요. 롤이 아직 e스포츠 역사가 짧잖아요.

강도경 감독 :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롤은 스타1이 10년 동안 이룩한 것을 단 2년 만에 끝내버린 느낌이에요. 선수 은퇴와 선수 해설까지 나온 상황인데 아직 e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 다했죠.


Q. 그래서인지 일부 팬들은 악플로 선수들을 괴롭히곤 하죠. 이 문제는 심각하게 보고 계신가요?

이지훈 감독 : 경기에서 진 날은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말라고 해요.

강도경 감독 : 그게 진리예요. 이긴 날은 커뮤니티 들어가서 마음껏 즐기고, 진 날은 인터넷 자체를 들어가지 않는 게 멘탈 관리에 좋죠. 경기에서 진 날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건 스스로 욕먹으려고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혼나는 걸 즐기는 선수들도 경기에서 진 날은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니까요.

이지훈 감독 : 팬들의 반응이 너무 격렬한 것 같아요. 하다못해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 선수를 칭찬했다가도 금세 욕하는 모습으로 돌변하곤 하잖아요? 그런 반응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요. 대부분의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커뮤니티에서 욕먹고 있을까봐 불안해해요. 그럼 위축될 수밖에 없죠.


Q. 스타2에 대한 커뮤니티 반응은 크지 않죠? 예전에 스타1 땐 대단했는데 말이에요.

강도경 감독 : 다른 것보다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이제는 그냥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보는 스포츠'로 남아야 할 것 같아요. 그 외에 선수들 간의 스토리도 보는 재미 중에 하난데, 그게 너무 없죠.

이지훈 감독 : 이영호-원이삭의 관계밖에 없어요. 방태수-정명훈 스토리가 있었는데 정명훈 선수가 요즘 나오질 않죠. 강도경-최연성의 도발 배틀이 다시 불붙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Q. 롤 쪽은 워낙 유저들이 많아서 선수 발굴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요. 맞나요?

이지훈 감독 : 사실 롤도 신인 발굴이 정말 힘들어요.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것보다는 개인 스트리밍 방송을 더 선호하거든요. 중국에 롤 유저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아직 한국팀을 못 이기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중국은 개인 스트리밍으로 버는 돈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요. 누가 그 돈을 다 뿌리치고 프로 게이머가 되려고 하겠어요? 국내 선수들도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그쪽으로 진출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실제로 요즘 어느 팀이건 선수들이 경기에서 지면 해외 진출에 대해 농담조로 이야기를 자주 해요. 이게 현실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봐요. 해외에 나가서 성공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면 유혹에 흔들리는 선수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일반 스포츠 종목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반화됐죠. 이게 현실이 되면 걱정되는 건 국내 리그의 발전이 멈출 수도 있다는 거예요.


■ 이대로 헤어지긴 뭔가 아쉬워~!

원래 기획된 인터뷰는 여기까지였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을대로 익은 만큼,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마침 주문했던 안주도 모두 소진되었으니 자리를 옮겨 2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 갑시다! 2차의 나라로~

매콤한 주꾸미들을 뒤로 하고 2차 장소로 정한 곳은 깔끔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일본식 선술집이었습니다.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였죠. 이제는 기자도 감독들도 '인터뷰'는 잊어버렸습니다. 2차까지 와서야 '이지훈과 강도경도 역시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죠



Q. 이지훈 감독님이 아내에게 엄청나게 잘해준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강도경 감독 : 다시 태어난다면 이지훈의 아내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이지훈 감독 : 아내가 제가 하는 일을 잘 이해해줘요. 아시다시피 일반 직장인과 우리 업계 사람들은 일과 시간이 맞을 수가 없잖아요. 일반 직장인이 일과를 마칠 시간에 슬슬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죠.

그리고 한창 일이 마무리되어가면 일반 직장인들을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대고요. 이걸 이해해주지 못하면 절대 만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이걸 이해해주니 잘해줄 수 밖에 없죠. 항상 고마워요.


Q. 강도경 감독님은 이지훈 감독님이 부럽지 않으세요? 언제 결혼할 생각인가요?

강도경 감독 : 얼마 전에 소개팅했는데 망했어요. 여기까지만 하죠(웃음).



▲ 슬픈 이야기는 그만 하고 한 잔 합시다!


Q. 강도경 감독은 이지훈 감독 밑에서 코치로 있었던 적이 있었죠. 가끔 서로가 그립지 않은가요?

이지훈 감독 : 강도경 감독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외로웠어요. 그래서 시간이 맞을 때마다 술을 먹자고 해요. 물론, 지금 함께 하는 오창종 코치와도 정말 친하지만, 강도경 감독이 저와 함께 일할 때 쓴소리를 정말 많이 받아줬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해요.


Q. 두 분이 가끔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누나요?

강도경 감독 : 솔직히 선수 욕도 해요. 선수들도 뒤에서 우리 욕을 하니까 우리도 하는 거죠(웃음). 그 외에도 대회 성적 이야기나 게임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Q. 듣고 보니 감독이라는 직업이 외로운 자리인 것 같아요.

이지훈 감독 : 예전에 누구는 감독은 외로운 직업이니깐 선수들과 겸상도 하지 말라고 했었어요. 물론 거기에 동의하진 않았죠. 저는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팀을 관리하는 것이 편해요.

강도경 감독 : 저도 외롭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래서 맛집 투어나 자전거로 외로움을 달래는 편이죠. 주로 박정석 감독이나 이재균 감독님과 함께 맛집 투어를 다녀요. 다른 사람들 말로는 다들 숙맥인데 그중에 제가 제일 낫다고 하더라고요.

이지훈 감독 : 정확히 말하자면 그중에 가장 숙맥이 아닌 척해요.





Q. '카카오' 이병권 선수는 평소에 어떤가요?

이지훈 감독 : 은근히 어른스러워요. 승부욕도 강하고요. 연습을 위해서 가끔 컨셉이 강한 조합을 선택할 때가 있어요. 그런 조합은 질 게 뻔한 조합이거든요. 그런데도 그 연습 경기에서 지면 부들부들 떨어요. 한 마디로 승부욕 강한 연습 벌레예요. 오직 게임밖에 몰라요. 휴가 중에도 솔로랭크로 연습을 할 정도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팀의 중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Q. '카카오' 이병권 같은 선수가 있어서 뿌듯할 것 같아요.

이지훈 감독 : 사실 KT 애로우즈와 불리츠의 모든 선수가 다 고맙죠. 지금은 팀을 나갔지만,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많은 교류를 하는 '인섹' 최인석, '제로' 윤경섭, '류' 류상욱, '마파' 원상연 선수에게도 항상 고마워요. 정말 아꼈던 선수들이거든요. 특히, '카카오' 이병권 선수에게는 사실 많이 미안해요. 여러 번의 팀 이동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잘 버텨준 게 정말 고맙습니다.

롤챔스 섬머 2013시즌 때 이병권 선수의 아버지를 만났었는데 오히려 저를 응원해주시더라고요. 팀을 자주 옮기긴 했지만 코치진을 믿고 맡겼던 거라고 해주셨어요. 정말 고맙고 뿌듯했습니다.


Q. '카카오' 이병권 외에도 눈여겨보는 다른 선수가 있나요?

이지훈 감독 : '하차니' 하승찬 선수가 열정적이다 보니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에요. 잘 안 풀리면 '애로우' 노동현 선수에게 화를 잘 내요. 그런데도 봇 듀오의 실력이 좋은 이유는 노동현 선수의 털털한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노동현 선수가 연습 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약간 부족한 모습을 자주 보여줘요. 그렇다 보니 다른 선수들이 실수해서 져도 모든 화살이 노동현 선수에게 향하는 경우가 많죠. 보통 사람이면 멘탈이 흔들릴만한데도 노동현 선수는 전혀 흔들림이 없어요. 오히려 사과하고 분위기를 추스르는 편이에요. 기특하죠.

강도경 감독 : 노동현 선수는 숙소에 가질 않아요. 대부분 연습실에서 자더라고요. 제가 아침 9시에 출근하면 그 전날이랑 같은 옷을 입고 연습실에서 잠들어 있어요. 연습실에서 노동현 선수를 발견하고 숙소로 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그러다가 낮이 되면 조용히 일어나서 숙소로 슬그머니 돌아가더라고요.

이지훈 감독 : 다음 날 연습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새벽 3시 이후에는 어떤 게임도 못하게 하고 숙소로 돌아가게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잘 지켜졌는데 새로운 숙소로 오면서 잘 지켜지지 않네요. 그도 그럴 것이 숙소와 연습실의 거리가 꽤 멀거든요.

우리끼리 하는 말로 '인섹 걸음'으로 걸으면 정말 오래 걸려요(웃음). 숙소와 연습실이 850미터 정도 되는데 '인섹 걸음'으로 걸으면 15분(웃음)? 그러다 보니 새벽 3시쯤에 게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그것만 끝내고 숙소로 오라고 해도 잘 돌아오지 않죠.





Q. '카카오' 이병권 선수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네요. 확실히 좋은 선수들은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 같아요.

강도경 감독 : 프로리그 결승 때 현장을 찾은 이영호 선수의 부모님은 이영호 선수가 원이삭 선수를 상대로 승리하자마자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만큼 아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두신다는 뜻이죠.

이지훈 감독 :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원이삭 선수가 아들을 매번 이기는 것도 모자라 도발까지 하는데 말이죠. 저 같았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었을 거예요(웃음). 이영호 선수가 워낙 큰 선수인데 아직 스타 2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니 많이 속상하셨을 거예요.


Q. 확실히 이영호 선수가 명예 회복을 했죠. 이지훈 감독님도 KT 불리츠에 대한 명예 회복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이지훈 감독 : KT 불리츠에 대한 향수는 팬들뿐만 아니라 저도 강해요. 제가 다시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그때 그 멤버들이니까요. 사실 IEM 우승을 차지할 때 저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많이 지쳐있었어요. 다른 진로를 고민하는 선수들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최근 리빌딩된 KT 불리츠에는 예전의 향수를 일으킬만한 선수가 '스코어' 고동빈 선수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당연히 새로운 멤버와 고동빈 선수의 조화를 잘 맞춰서 명예회복을 노릴 생각이에요. 고동빈 선수가 참 착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예요. 그만큼 이번 KT 불리츠는 고동빈 선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운영할 생각이죠.


Q. KT 롤스터 스타2팀 선수들도 개성이 뚜렷할 것 같은데요? 감독님이 알려주세요.

강도경 감독 : 종족별로 선수들의 성격이 다 달라요. 저그 선수들은 대체로 '귀차니즘'에 빠져 있어요. 다른 선수들이 다 나가서 놀 때도 저그 선수들은 숙소에 누워만 있어요. 너무 그러길래 가끔 나가서 놀다 오라고 야단치면 자기들끼리 영화 한 편 보고 와서 또 누워버리더라고요.

프로토스 선수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요. 엄청나게 진지하고 점잖고 정말 착하지만, 눈치가 빠르고 똑똑해요. 나쁘게 말하면 영악하죠.

테란 선수들은 대체로 아무 생각이 없어요. 좋게 말하면 때 묻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 놓는다든지, 티셔츠를 거꾸로 입는다든지 하는 성격이에요. 단, 이영호 선수는 제외예요. 이영호 선수는 자기 관리에 워낙 특출난 선수거든요.






■ 정점을 찍은 두 감독,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진행했던 인터뷰도 이제는 마칠 시간입니다. 어느덧 2차 자리에서 주문했던 안주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찰나와도 같은 시간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두 감독이지만, 사실 그 성과만큼의 많은 고뇌가 있었음을 알았죠.

두 감독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들이 선택했던 결과에 대해 아직도 의문을 품는 팬들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차기 시즌, 차차기 시즌에는 더 어려운 결정을 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갈 길을 가겠지요. 두 감독이 업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Q. 다음 시즌 성적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강도경 감독 : 전혀 없어요. 어차피 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하던 대로 하면 무조건 우승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지훈 감독 :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강도경 감독은 승부, 모험을 즐기지만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신중하다고 하면 신중한 성격이고, 약간 우유부단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네요. 다음 시즌 성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다음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지금부터 하나하나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스타일입니다.


Q. 두 분이 생각하기에 코치와 감독의 역할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을 들 수 있을까요?

이지훈 감독 : 코치는 아무래도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어요. 감독은 그에 비해 착한 역할이죠. 선수들을 전체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강도경 감독은 워낙에 함께 즐기는 것을 좋아해서 선수들과 빨리 친해지는 편이었어요. 그에 비해 저는 아직 그런 면은 부족한 것 같아요.

강도경 감독 : 저는 제가 코치였다가 감독이 막 됐을 때는 잘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자식에게
'너도 부모가 돼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걸 얼마 전에 실감했어요. 제가 선수일 때는 코치의 입장을 이해 못 했었고, 코치일 때는 감독의 입장을 알 수 없었던 거죠.


Q. e스포츠 감독이라는 직업은 미래를 쉽게 장담할 수 없죠. 마지막으로 두 분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인터뷰를 마칠게요.

이지훈 감독 : 처음으로 e스포츠 감독을 시작할 때 5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감독직을 하고 있네요. 사무국에서는 저보고 '최장수 감독'이라고 해요. 주위를 둘러보면 몇 년 못 하고 그만두는 감독들이 많거든요.

아직도 e스포츠 감독이 평생직장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롤챔스 우승을 간절히 원했어요. 이번 우승으로 주요 종목을 한 번씩 우승해본 감독으로 남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개인적인 '포만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이번 우승을 발판삼아 다시 한번 힘내볼 생각입니다.

강도경 감독 : '인생은 피파훈(이지훈)처럼'이라는 말이 있죠. 사실 놀리려고 만든 말이지만 요즘 보면 칭찬으로 보여요. 인생에서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만한 경력을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 가지고 있다는 게 부럽네요. 저도 더 노력해서 꼭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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