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는 '버그'없는 e스포츠 리그를 보고 싶다

칼럼 | 윤홍만 기자 | 댓글: 49개 |



최고의 스포츠 경기에는 팬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런데 만약 경기 도중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와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맞붙는 그 순간! 갑자기 난입한 고양이로 인해 경기가 엉망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 방금 최고의 순간이었는데 고양이가 난입해서 망쳤어. 다시 하자"라고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뿐더러 설령 가능하더라도 똑같은 경기가 펼쳐지진 않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명장면이란, 팀워크에서부터 경기의 흐름까지 모든 것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단 스포츠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공식 스포츠로까지 인정받기 시작하는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의 프로게이머들이 모여,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e스포츠에서도 팬들을 휘어잡는 명장면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e스포츠 리그에서도 최고의 순간에 고양이가 난입하는 것처럼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개발자들도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 버그가 말이다.



e스포츠 태동기 e-Sports Bug Within

e스포츠와 버그의 악연은 오래됐다. 왜 아니겠는가. 게임인 이상 버그가 발생한다는 건 필연적인 것을. 더욱이 e스포츠 초창기, 아직 명확한 개념이 잡히지 않던 그 시기의 버그는 관계자들 모두의 골머리를 썩히게 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어떤 버그들이 그렇게 e스포츠 리그를 괴롭혀 왔을까.

e스포츠의 탄생과 함께했고 중흥기를 이끌었던 '스타크래프트'에서도 늘 버그가 따라다녔다. 물론 대부분의 버그는 불규칙적으로 발생하거나 금세 수정이 가능했지만, 그중에서도 악명 높았던 버그가 있었으니 바로 해처리 버그라 이름 붙은 버그였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 발생해 악명을 떨쳤던 해처리 버그는 발생하면 게임이 튕기는 사태가 일어나는 치명적인 버그였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해처리 버그를 유도한다고 해도 100% 발생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도 발생하곤 한다는 거였다.

▲ 해처리 버그 영상 (출처 : David Liang 유튜브 & MBC 게임)

이에 KeSPA에서는 해처리 버그가 발생할 경우 재경기를 하는 룰을 추가했고, 나중에는 의도적이었던 그렇지 않든 간에 해처리 버그를 발생시킨 선수를 몰수패하는 강수를 두기까지 했었다. 이후 1.14패치로 해처리 버그는 사라졌지만, 그동안 저그를 주종족으로 하던 선수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악몽으로 기억될 버그였다.

물론, '스타크래프트'에서만 버그가 발생한 건 아니었다. FPS 게임인 '스페셜포스'도 버그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는데 오래도록 리그를 괴롭힌 버그폭의 존재 때문이었다. 버그폭이란 폭탄을 특정 각도로 던질 시 땅이나 벽을 뚫거나 사정거리 밖에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버그로 '스페셜포스'를 비롯한 각종 FPS e스포츠 리그를 괴롭혀왔었다.

특히 문제시된 건 버그폭에 대한 규정이 너무나 모호했기 때문이었다. 버그폭을 발생할 경우 고의 여부와 함께 심판이 직접 확인해야 했는데 심판이 못 봤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버그폭을 당한 상대에게만 갔으니 마라도나의 '신의 손'과도 같은 버그라 할 수 있었다.



▲ 버그폭도 걸리면 반칙, 안 걸리면 장땡인 '신의 손'이 돼버렸다

결국, 계속되는 버그폭으로 인해 리그의 질은 저하됐고 팬들의 불만은 나날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개발사의 태도는 미온적일 뿐이었다. 개발사는 "버그폭을 해결하기 위해선 맵을 아예 새로 만드는 수준의 작업이 필요하다"며,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말로 당면한 문제를 수습하는 데만 급급했었다.

그런데 이게 '스페셜포스'만의 얘기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스타크래프트'로 e스포츠가 태동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e스포츠 리그를 여는 대부분 게임이 리그를 게임 콘텐츠의 하나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게임도 e스포츠 리그를 열 수 있다"이지, 이를 위한 준비 같은 건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황들뿐. 그렇기에 대부분의 대처는 미온적이었고, 이런 행보에 e스포츠 리그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e스포츠는 스포츠라는 범주가 아닌 구경하고 즐기지만, 여전히 고작해야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한 시기였다. 실제로 많은 게임이 e스포츠를 천명했지만, 결국 당시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던 건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 정도뿐이었으니 말이다.



e스포츠의 새바람, 리그 오브 레전드 버그로 멍들다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가 나란히 e스포츠계를 이끌었지만 안타깝게도 e스포츠는 점차 내리막길로 향하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새로운 게임이 나와도 e스포츠 리그에서는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만 보일 뿐이었으니 더 이상 신선함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e스포츠계에 새바람을 불어 넣을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RTS 일색이던 e스포츠에 MOBA라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종목이 새로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에 와서 'LoL'의 인기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도타2'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재 e스포츠를 이끄는 쌍두마차 그 자체! 하지만 'LoL'도 버그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게임보다도 선두에서 e스포츠를 이끌고 입는 입장이어서 그랬을까. 'LoL'은 유독 프로리그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의 'LoL' 대회라 할 수 있는 롤드컵에서 버그 발생이 빈번했다.

앞서 말했듯이 게임 내 버그는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고, 초창기 리그에서 버그가 발생한 점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LoL'은 리그가 진행될수록, 신규 챔피언이 등장할 때마다 버그가 빗발쳤다.

지난 롤드컵 시즌5에서는 SKT T1과 H2K의 경기에서 레넥톤 버그가 발생했다. H2K의 레넥톤이 SKT T1의 이블린에게 '무자비한 포식자' 스킬을 적중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스킬 효과인 스턴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 롤드컵 시즌5 논란의 레넥톤 버그 영상 (출처 : SK Wono 유튜브)

이에 H2K는 라이엇게임즈 측에 버그로 인한 경기 중지 요청을 내렸지만, 라이엇게임즈는 스턴이 걸렸더라도 해당 경기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해 경기를 재개했다. 그리고 해당 경기는 SKT T1의 승리로 끝이 났다. 분명 당시 상황은 그리 중요한 국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 H2K는 레넥톤으로 '벵기' 배성웅의 이블린은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최 측에서 "이런, 버그가 일어났네. 근데 별로 중요한 순간은 아니었어. 그대로 진행해"라고 하는 건 안일한 처사가 아닐까? 이 경기에서는 SKT T1이 결국 이기게 됐지만, 승자인 SKT T1도, 패자인 H2K도 여러모로 불만스러운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라이엇게임즈도 버그를 방관하진 않았다. 하지만 방식이 다소 안일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바로 글로벌 밴. 문제가 되는 챔피언의 사용을 아예 금지해 버리는 방안이었다. 사실 이해할 수는 있는 방법이다. 버그 가능성이 있는 챔피언의 사용을 허가했다가 문제가 생겨버리면 그때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롤드컵 시즌5 4강부터는 그라가스, 직스, 럭스의 글로벌 밴이 단행됐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 익숙한 챔피언의 밴은 팀 전략에도 영향을 끼쳤다

누구든 자신의 손에 익는 도구가 편하기 마련이고 그건 'LoL'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자신의 역할에 따라 가장 잘 쓸 수 있는 챔피언이 있었는데 글로벌 밴으로 인해 새로운 전략을 짤 필요성이 생긴 거였다. 더욱이 글로벌 밴은 안타깝게도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미봉책일 뿐.

그리고 걱정대로 롤드컵 버그의 행보는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성황리에 끝마친 롤드컵 시즌6에서도 버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롤드컵 시즌6의 첫 번째 버그를 알린 건 무려 1일 차 경기였다. 아우렐리온 솔의 주변을 도는 위성 3개가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한 것. 라이엇게임즈 측은 즉시 수정이나 대응할 수 없는 버그라고 판단, 해당 챔피언을 글로벌 밴하는 동시에 재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버그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3일 차에는 SKT T1과 I May의 4경기 도중 소환사 주문: 정화에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졌다. 정화로 인한 이동 불가 효과의 지속 시간 감소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버그에도 불구하고 SKT T1은 경기에서 승리했으나 연이은 버그에 팬들은 불만은 조금씩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지속 시간 감소 효과가 적용되지 않았던 소환사 주문: 정화

그리고 이런 팬들의 불만은 당연했다. 단순히 자신들이 즐기고 보기 때문만이 아닌, 리그의 규모로 봐도 더는 버그를 좌시할 수만은 없는 단계까지 성장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스포츠 대회의 결승전만큼 거대해진 'LoL'이기에 이제는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일 때가 온 것이다.



공식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버그 해결부터




게임인 이상 버그가 없을 순 없다. 아니, 실제 스포츠에서도 예상외의 상황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문제가 나오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처하진 않는다. 이런 예상외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규정을 마련하고 방비하곤 한다.

그동안 많은 e스포츠 관계자와 팬들은 언젠가 e스포츠가 게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정식 스포츠가 되기를 바라왔고, 이에 리그를 확장하고 상금을 더욱 키워왔다. 그리고 그 덕분에 e스포츠도 점차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으며, 유럽권에서는 e스포츠를 공식 스포츠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껏 양을 신경 써왔다면 이제는 질을 신경 쓸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질을 높이는 첫걸음이 바로 버그의 근절이다. 언제까지고 "게임이기에 버그는 당연하다"며 용납해선 안 된다는 거다.

그동안 끊이질 않았던 e스포츠 버그 논란들. 공식 스포츠화를 앞두는 지금, 달라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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