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VR에 맞는 또 하나의 '스타크래프트'가 필요한 시점

칼럼 | 정재훈 | 댓글: 64개 |




2016년 말에 이르러, HMD 개발 경쟁의 열기는 다소 사그라들었다.

현시점의 기술력으로 가능하면서도 구현할 수 있으면서도 개인화가 쉬운 수준의 HMD가 완성되었고, 개발 버전으로 나돌던 기기들이 정식 출시를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한층 가라앉았다. 물론 하드웨어 연구와 개량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첫 고개는 넘긴 셈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곧 VR 시대가 열렸다는 뜻은 아니다. 기기는 출시되었지만, 여전히 일반 이용자들에게 VR은 강 건너 이야기다. 개인 이용자에게는 너무 비싼 가격과 공간의 제약까지. VR을 직접 경험했던 이들조차도 섣불리 VR 기기를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기가 아무리 비싸도 돈값을 하면 살 이들은 분명 산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기계가 '돈값'을 할 수 있으리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개인 이용자에게는 다소 부담되는 액수

결국, 문제는 콘텐츠다. 비싼 돈을 들여 기기를 장만해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말로는 수백, 수천 가지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한 번 하고 나면 두 번 할만한 매력이 없는 일회용 휘발성 콘텐츠들이다. 초기, VR은 '놀라움'이라는 감정선을 건들며 대중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라움 또한 일회용일 뿐이다. 한 번 보고 놀란 콘텐츠에 두 번 놀라는 사람은 없다. 실질적인 재미가 필요하다.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가 아닌, "이렇게나 재미있다!"라고 말할 때가 된 것이다.


■ VR 시장은 '장소 기반 사업장'의 형태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콘텐츠의 필요성은 단순히 개인 이용자 풀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전 세계 모든 VR 업계인들의 바람은 규모 있는 시장의 형성이다. 상품을 내놓을 시장이 있어야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수익이 보장되어야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콘텐츠와 하드웨어의 개발로 이어지고, 결국 업계가 굴러가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개인 단위의 소비자들이 시장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의 VR 장비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살 이들은 산다고 말했지만, 그래 봐야 소수일 뿐, 아직 가치 검증조차 되지 않은 장비에 수백만 원의 돈을 투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결국, 초기. 결국 초기 VR 시장의 형태는 개인 이용자보다는 장소 기반의 사업장(PC방이나 게임센터 같은 형태)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남코'의 VR 존 조감도

이런 흐름은 실시간으로 관측되고 있다. 'VR 체험존', 혹은 'VR 방'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창업에 나선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실제로 상업적 목적을 띈 VR 체험존도 하나씩 생기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번 콘텐츠가 발목을 잡는다. VR 체험존이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수익을 거두려면 '명확한 목적을 지닌 꾸준한 이용자'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 '신기함'을 뛰어넘어 '재미'가 있는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

일반적인 게이머가 PC방을 갈 때는 보통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친구들과 함께 '오버워치'를 하러 간다거나, '롤'을 하러 가듯이 말이다. 이 게임들이 곧 이용자들이 PC방을 찾게 하는 목적이요, 동기가 된다. 가뜩이나 장시간 플레이가 힘든 VR이다. 사업장으로서 수익을 내려면 끊임없는 이용자의 순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끊임없는 이용자의 순환을 만들어줄 콘텐츠가 있냐는 거다.

지금 당장은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이 동기를 때울 수 있다. 체험존을 가보고 싶다는 이들에게 "왜?"라고 물었을 때 나온 대답 대부분은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아직 안 해봐서'였다. 한 번은 갈 이들이다. 하지만 두 번은 아니다. 그래서 동기가 필요하다. VR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VR로만 플레이 가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한 번 해도 또 하고 싶고, 계속 생각나는 콘텐츠 말이다.



▲ CCP의 '프로젝트 아레나'

나아가, 이런 콘텐츠가 처음 꿈꾸었던 이상인 VR 개인 보급의 열쇠가 된다. 초기 PC방이 생겨날 당시, 그러니까 96~97년 당시 PC 가격은 기본 150만 원 이상에 비싼 모델은 500만 원 가까이 할 정도로 비쌌다. 현재 VR 장비 가격과 비교해봐도 더 비싸면 비쌌지 싸지 않다. 하지만 PC방의 보급과 발맞춰 등장한 걸출한 콘텐츠 덕에 많은 이들이 PC 게임을 경험했고, 결국 PC 가격이 안정되면서 PC 보급률이 치솟았다.

VR 또한 머지않은 미래에 유의미한 가격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선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시장 논리의 기본이니 말이다. 바로 그 시점에, 소비자가 VR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콘텐츠가 필요한 거다. 어떤 장르가 될지, 어떤 미디어가 될지는 모른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건 경쟁 요소를 갖춘 FPS나 게임이지만, 이는 가능성에 불과하다. 어쩌면 게임이 아닐 수도 있고, 혹은 게임을 넘어선 무언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리고 다시 해도 질리지 않고 할 수 있는지


■ 시장 선도를 향한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위험천만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마치 안개가 짙게 낀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다리 뒤에 보물이 있을지, 황무지만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나 위험만큼 얻을 수 있는 가치도 크다. '스타크래프트'가 없었다면 PC방은 그렇게 전국적으로 퍼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꾸준히 새로운 게임이 등장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초창기 PC방은 스타크래프트를 위한 장소였고, PC방을 가자는 말은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가자는 말과 동일시되었다.



▲ 한때 PC방과 스타크래프트는 동의어에 가까웠다

이제 VR에 맞는 또 하나의 '스타크래프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VR을 체험할 이유이자, 시장을 선도할 콘텐츠. 이미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개발사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전진 중일 테다. 2017년. VR HMD 개발 경쟁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이는 본격적인 경기 전 몸을 만드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 VR 시장을 선도를 향한 2차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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