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게임과 심리학 (6) - 4차산업혁명과 게임

칼럼 | 강민우 기자 | 댓글: 14개 |



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4차산업혁명과 게임'입니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 한창인데요. 덕분에 4차산업혁명 이슈가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4차산업혁명과 게임은 어떤 관계일까요? 이번 칼럼을 통해 알려드립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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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 이미 있었다.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의 세련된 체스와 유사한 보드게임부터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주사위까지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산처럼 많다. 그뿐 아니다. 무형적으로 게임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는 사실은 그리스-로마신화에서부터 단군신화의 쑥 먹고 오래 버티기까지 어디서나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게임은 사람들이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냥 삶의 일부였을 뿐이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자는 것처럼 말이다. 왜 사랑하느냐 묻거나, 왜 먹고, 마시는가 질문은 하지 않는다. 뭐가 좋아서 일부러 사랑을 하거나 먹고 마시는거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수 없기 때문에 하는 거다. 게임도 똑같이 마찬가지다. 뭐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살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치료하기

트라우마는 괴로운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해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핵심증상이다. 왜 그럴까? 정신분석학자들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풀려고 반복적인 시도가 나타나기에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고 설명한다. 대신 치료법 중 하나는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그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고통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숙해져야 비로소 두려움은 약화되는 것이다.

인간이 두려움을 직면하고, 익숙하게 다룰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적응기제가 게임이다. 게임에 재미를 붙일 무렵의 나이인 5살 안팎 즘 아이들을 두렵게 만드는 가상의 존재가 있다. ‘망태할아버지’다. 이런 망태할아버지는 잠을 자지 않거나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들을 망태에 담아 무서운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망태할아버지의 두려움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규칙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흥미를 잃게 된다. 이때 무렵 게임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어린아이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인 망태할아버지


게임에서 ‘죽음’ 혹은 ‘패배’가 밥 먹는 일처럼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럴 수 있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사람의 가치와 의미를 일깨워주는 실존적 사건인 ‘죽음’은 매우 중요한 삶의 사건이기에 일생에 딱 한번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런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서 어떻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방식을 찾도록 해준다. 대결할 것인지, 피할 것인지 아니면 화해를 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항복을 하거나 포기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연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죽음을 조금 더 미룰 수 있는 사람들을 흔히 유능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런 유능감(competence)은 재미라 불리는 쾌감을 동반한다. 사는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흔히 몰입(flow)은 쉽지 않은 경험이라고들 하지만 누구나 몰입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최고경지의 몰입에 빠진다.

사나운 개에게 쫓기든 아니면 양아치 떼거리에게 둘러 쌓인 상황이든 죽음과 근접하다 느낄 때 머릿속은 맑아지고 목표는 명확해지기 마련이다. 단 하나의 목적, 살기 위해서 말이다. 후덜덜하면서도 짜릿했던 그 기억은 몇 날 몇일 혹은 평생을 울궈 먹을 잊지 못할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너무 안전하여 지루해질 무렵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모험을 떠난다.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게임 속으로 말이다. 이것도 시시해질 지위에 이르면 가상의 게임이 아니라 현실의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머니게임, 파워(정치)게임에 목숨을 건다.

재미는 있으면 좋은 정도의 가벼운 액세서리 경험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과 동급의 실존적 정서다. 그래서 삶에서 재미를 못 느끼면 죽은거나 마찬가지처럼 느끼게 된다. 칙센미하이같은 심리학자는 게임에서 느끼는 재미와 같은 경험을 자기목적적 경험(autotelic experience)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냥 풀어서 말하자면 ‘사는 맛’을 느끼는 거라는 뜻이다.

이것들의 시사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두려움이 많거나, 삶이 너무 지루하거나 할 때 게임을 하게 된다. 전자는 청소년들이 해당될 것이고, 후자는 성인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려움이나 지루함이 지속되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해진다. 게임은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인류문화유산인 것이다.

두 번째 두려움은 생존과 관련된 변연계라는 뇌 부위 작동 결과다. 변연계 위에 얹혀진 이성작용 중추인 대뇌피질의 작동이 아니다. 그러니 게임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들기 보다는 게임은 체험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한 접근이 된다. 예술이나 스포츠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 지루함이 지속되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낯선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법

두려움을 유발하는 다른 종류는 낯선 것들이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6개월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갖게 되는 두려움 중 하나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다. 흔히 이런 현상을 ‘낯가림’이라고 부른다. 자라면서 이런 낯가림은 성격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이방인 불안(Stranger Anxiety)’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지속된다. 이방인 불안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곳은 출퇴근 시간의 엘리베이터 안이다. 아는 사람끼리 탓을 때는 서로 떠들다가도 낯선 사람이 타면 조용해진다. 낯선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방어전략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떠들면 불쾌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독립한다는 의미는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때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게임이다. 이런 게임 중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언어게임인 ‘농담’이 전형적이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서로 친구가 될 의사가 있다는 점이다. 게임 도중 팽팽한 긴장과 이완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방어막은 옅어진다. 그러는 사이에 서로의 깊숙한 마음 곳곳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낯선 사람을 어렵지 않게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 것이다. 꼭 낯선 관계가 아니더라도 조금 더 친밀해지기 위한 전략으로 게임은 그만이다.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에게 어떤 종류가 되었든 게임을 함께 해보실 것을 강추한다.

낯선 물건이나 제도도 두려움을 유발하기는 마찬가지다. 특이 이런 두려움은 어른들일수록 심하다. 이런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에도 게임은 최고의 효과를 나타냈다. 역사상 최초의 비디오 게임으로 알려진 ‘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는 1958년 미국 원자력 연구시설인 브룩헤븐 국립 연구소 연구원 윌리엄 히긴보섬(William Higinbotham)이 개발하였다. 그는 연구소를 방문하던 방문객에게 첨단기술을 이용해 즐거움을 줄 요량으로 게임 개발을 궁리하게 된다. 그리고 신호 계측에 사용하던 5인치 아날로그 오실로스코프에 간단한 회로와 간이 조종기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무시무시한 원자력 기기가 게임을 통해 친숙한 기기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테니스 포 투 이미지 (출처: http://computingforever.com)

낯설음을 친숙함으로 바꾸는 게임의 역할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80년대 PC가 보급되면서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타자기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타자기에 익숙하던 직원들은 낯선 컴퓨터 자판에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때 컴퓨터를 철수하고 휴게실에만 배치해놨다. 그것도 게임용으로 말이다. 그렇게 게임용으로 2개월 쯤 사용 후, 사무실에 업무용으로 다시 배치를 했더니 거부감 없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게임이 컴퓨터에 대한 거부감을 지워주었던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윈도우게임인 지뢰찾기나 카드놀이도 사실은 마우스를 익숙하게 다루는 훈련용 게임이었다고 한다. 조금 더 빠르게 지뢰를 찾으려는 동안 마우스의 좌우클릭, 더블클릭은 물론 동시클릭까지 마스터했던 것이다.

게임의 이런 기능을 고려할 때 재미있는 게임은 그 자체로 적응에 도움을 주는 우수한 기능을 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기능성 게임(serious game)’이란 말은 ‘역전(驛前)앞’이나 ‘처갓(妻家)집’처럼 의미중복용어다. 이 주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어째든 ‘게임’이라는 카테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미라는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자.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기능성 게임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보다는 ‘마인크래프트’나 ‘배틀그라운드’같은 게임의 글로벌 서버에 접속하는 편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쓰고, 말하기에 익숙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학원을 한 번도 다녀 본 적 없는 초등학교 5학년 막내 아들녀석은 그런 방식으로 영어를 어렵지 않게 쓴다. 물론 콩글리시라는 것은 함정이지만.



▲ 글로벌 서버에 접속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도 있다.
(이미지는 블루홀의 '배틀그라운드')


4차 산업혁명과 게임

요즘 대선 후보들은 누구할 것없이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여기에 대한 부작용이나 실현가능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게임을 입혀야 한다. 로봇과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것처럼 빠르게 친구나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또한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주행차가 기존의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와 다른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제공하는데 게임 이상의 것이 없음은 역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게임의 진가는 4차산업혁명의 도입보다 유지 영역에서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알아서 가는 자동차, 필요한 것을 금방 찍어내는 프린터는 잠시 동안 황홀하겠지만 2주도 못 되어 익숙해지고 결국 지루해질 것이다. 애타게 원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가 그 장난감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이 사람들의 욕구를 알아서 해결해주는 황제가 된 쾌감을 잠시 제공하겠지만, 무료해진 황제를 달래주려는 그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지 못하면 무너져 내릴 운명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꾼 세헤라자드 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때 사람들은 게임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마치 배고픈 자가 밥을 찾듯,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이치로 말이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을 진정으로 추진할 요량이라면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회사들이 핵심에 반드시 포함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재미에 대한 노하우와 수십만 동접자들을 너끈하게 품어주는 기술, 그리고 수 많은 NPC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굴지의 게임메이커들과 세계 최고 수준의 경험과 열정을 가진 게임유저들이 있지 않던가? 20년전 IMF 위기가 온라인게임의 탄생을 알리는 산통(産痛)이었던 것처럼, 최근 온라인 게임의 위기가 게임을 넘어서 인류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흥미진진한 레벨테스트 과정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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