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 속에 들어 있는 평등의 가치 - e스포츠 인종차별에 대하여

칼럼 | 김병호 | 댓글: 171개 |
▲ EBS 지식채널e - 푸른 눈과 갈색 눈

왜 인종차별을 하면 안될까?

1968년, 미국 아이오와 라이스빌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인 엘리엇은 자신의 학급 학생들과 한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녀는 눈동자 색깔에 따라 파란 눈동자 학생들과 갈색 눈동자 학생들로 나누고, 파란 눈동자 학생들이 갈색 눈동자를 가진 학생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갈색 눈을 가진 학생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수건을 씌우고, 점심을 조금 주거나 쉬는 시간을 적게 주는 등 여러 가지 차별을 가했다.

효과는 쉽게 드러났다. 아이들은 금세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푸른 눈동자를 가진 학생들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학생들과 함께 놀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갈색 눈동자 학생들을 무시했다. '갈색 눈동자'는 어느새 욕설이 되어 있었다. 둘째 날, 제인 엘리엇은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며 갈색 눈동자를 가진 학생들이 더 우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푸른 눈동자의 학생들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학생들이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제인 엘리엇이 진행한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은 1968년 일어난 마틴 루터 킹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에게 편견과 차별이 얼마나 나쁜지 알려주기위한 교육의 일환이었다. 학생들은 이 실험을 통해 편견이 얼마나 쉽게 마음속에 자리 잡는지, 차별이 얼마나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몸소 알게 되었다. 실험 전까지 친구였던 학생들은 눈동자의 색, 단 하나의 이유로 둘로 나뉘었고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변했다.

자유와 더불어 인류사에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은 평등은 나와 함께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말하는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 선언문, 천하가 만물을 양육함은 평등하다고 말한 장자의 말, 인간들은 동등하게 자유롭기에 완전히 평등하기를 요구한다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처럼 평등은 동양과 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소중한 가치로 인정받아 왔다.



▲ 1977년 퓰리처 수상작 : 국기의 불명예(The Soiling of Old Glory)

차별은 나쁘다. 그중에서도 인종차별은 모든 차별 중에서 가장 나쁘다. 인종차별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하도록 만드는 실마리가 됐다. 인류사에 벌어진 학살은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사건이 많다. 유대인 말살 정책, 난징 대학살, 9.11 테러, 르완다 집단 학살, 다르푸르 분쟁 등은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나와 상대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 일으킨 비극이다.

사회적으로 인종차별과 관련된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으며, e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브라질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인 레드 캔디드 소속 e스포츠 선수 '요다' 펠리페 노론하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함께 리그에 출전하는 일본 선수들에 대해 닭에 비유하는 글을 개인 SNS에 남겼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펠리페 노론하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2,000달러의 벌금과 MSI 세 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e스포츠 업계에서 인종차별이 문제가 된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2014년 유럽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SK 게이밍의 정글러 '스벤슨케런' 데니스 욘센(현 TSM 소속)은 롤드컵이 대만에서 진행되던 당시 현지 서버에서 아시아인 전체를 경멸 또는 비하하는 단어인 '칭총'을 인용해 '타이페이칭총(TaipeiChingchong)'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 적이 있다. 데니스 욘센은 과거에도 유태인(jew)를 암에 비유하며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2016년 올스타전, 모든 지역 게이머들의 대화합의 장이 되었어야 할 대회에서는 한국의 프로게이머 '벵기' 배성웅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 리그 오브 레전드 올스타전 중계를 맡은 캐스터와 해설자가 배성웅에 대해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 유머를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 리그 측은 바로 사과문을 게재하고 물의를 일으킨 캐스터와 해설자를 교체했지만, 논란이 더욱 커지자 결국 그들을 해고했다.



▲ 드림핵 2016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TerreneceM' 터런스 밀러 (출처 : 로버트 폴)

인종차별과 관련된 이슈는 종목과 상관없이 일어났다. 토론토 e스포츠 소속 오버워치 종목 프로게이머 '델러' 맷 바운은 자신의 개인 방송 중, 인종 차별성 단어를 남용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토론토 e스포츠 회장 라이언 팔렛은 맷 바운과의 계약 파기, 방출 소식을 알리며 "토론토 e스포츠는 평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조직이고,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스스톤 종목에서는 미국 오스틴에서 진행된 대회인 드림핵 2016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결승전 경기가 중계된 스트리밍 방송 트위치TV의 채팅창에서, 경기에 출전한 'TerreneceM' 터런스 밀러에 대한 유저들의 인종차별, 흑인 비하 발언이 심각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이에 대해 블리자드 CEO 마이크 모하임은 "해당 대회를 보고 있던 일부 시청자들이 공격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것에 정말 실망했다. 블리자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공정한 경기, 멋진 승부'이며 거기에 게임 내외적으로 인종차별, 성차별을 비롯해 그 어떠한 형태의 차별 행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더 사려 깊고,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며 자사 게임 사용자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강하게 규탄했다.

한국 선수도 인종차별 문제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2016년 9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I MAY 소속 선수인 '로드' 윤한길은 북미 서버에서 인종과 관련한 발언을 해서 징계를 받았다. 라이엇은 관련 규정 9.2.4 '차별과 명예훼손 : 팀원은 인종, 피부색, 민족, 출신 국가 혹은 사회, 성별, 언어, 종교, 정치 및 기타 주제에 관한 견해, 재정 상태, 출신 혹은 기타 지위, 성적 성향 등을 이유로 경멸적, 차별적, 모욕적 언행을 통해 국가나 개인, 집단의 존엄성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들어 2,000달러의 벌금과 1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 e스포츠 선수 대상으로 실시된 소양교육

이러한 인종차별 발언을 유머 코드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했던 아시아 및 제3세계 국가에서는 이러한 농담에 대해 다소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러한 농담에 대해 관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인격이 성숙하는 과정의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글로벌 e스포츠의 프로 선수라면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더욱 근원적인 해결책도 요구된다. e스포츠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연령대가 어린 만큼, 인종차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지양할 수 있도록 소양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e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어린 나이에 선수생활을 시작해 상대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부족하기에 해당 교육이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더 나아가 자사의 종목뿐만 아니라 e스포츠 전체 종목 선수들을 아우르고 관리할 수 있는 단체도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한국 e스포츠 협회가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 e스포츠 협회는 라이엇 코리아와 함께 매해 두 번씩 소양 교육을 진행해왔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피파 온라인 3, 스타크래프트2, 하스스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 종목과 상관없이 약 100명에 가까운 현직 프로 선수들이 참여한다. 교육 내용에는 선수의 인성 교육 및 욕설 방지를 포함해 e스포츠 부정 방지, 은퇴 후 진로 탐색 등의 주제 등으로 진행됐다.

글로벌 e스포츠가 발전한 미국, 유럽, 중국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초기업, 초종목적인 e스포츠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종목별로 e스포츠 단체가 존재하나 권한이 미비하고, 미국에는 PEA(professional esports association)라는 단체가 지난해 창설되었으나 아무런 활동 없이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다. 라이엇은 지난 2014년 자사 종목 선수들을 대상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주제로 교육을 진행했지만, 이후로는 국제 대회를 앞두고 민감하게 받아들을 언행을 주의하는 문서를 전달할 뿐, 어떤 소양 교육도 진행됐다는 소식이 없었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1948년 12월 UN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 선언문 제 2조 항의 일부분이다.

게임에는 차별이 없다. 게임 속에서는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신분 따위로 계급이 나뉘어지지 않는다. 또한 게임은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그 어떤 태생적 제한 없이 게임을 즐길 기회를 누릴 수 있고, 게임을 통해 성취하고, 이를 통해 만족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진정 게임을 즐기고 사랑하는 게이머와 게임 문화 시장을 이끌어 갈 책임이 있는 자들이라면, 게임 속에 들어있는 평등의 가치에 대해 더욱 깊게 고민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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