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덕 칼럼] "응, 안 해" 가위바위보로 보는 '게임 디자인'

칼럼 | 남기덕 비평가 | 댓글: 37개 |



인벤에서는 게임 디자인과 관련해 남기덕 비평가의 기고를 소개해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국가, 문화 구분 없이 누구나 알고 있는 '가위바위보' 입니다. 가장 단순하고 공평한 게임으로 즐기는 가위바위보에 어떤 게임 디자인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이 공정한 룰을 비틀어 버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기고칼럼을 통해 가위바위보에 숨겨진 게임 디자인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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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기덕 비평가]는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게임 연구를 맡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에서 PD, 총괄 PM, 개발 팀장,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지내며 제네럴리스트로서 조직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 역할을 주로 하였고, 현재는 게임학 전공으로 게임 디자인과 프로젝트 매니징에 대한 연구, 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위바위보의 특징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익숙함’을 선택해왔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거부’해왔다([출처]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익숙함을 선택해왔다. | 작성자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남기덕). 따라서 인간은 게임을 선택할 때도 사냥감을 고르듯 본능적으로 익숙한 게임을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국가나 문화 구분없이 인간이 가장 익숙함을 느끼는 게임은 무엇일까?”

    이 게임에서 주는 익숙함과 특징을 연구한다면 게임 디자인의 기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로 연구하는 비디오게임을 비롯해서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 등의 디지털 게임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시야를 넓혀서 게임의 범위를 크게 보니 바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필자가 찾은 답은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가위바위보 게임은 국가나 문화 구분없이 전 세계 공통적으로 즐기는 게임이다. 국가나 문화별로 언어가 다르니, 외치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지 큰 차이는 없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에 가서도 가위바위보 모션을 한 번 보여주자. 나이와 성별을 떠나 누구든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이처럼 가위바위보 게임은 인류가 행하고 있는 게임 중 압도적으로 익숙한 게임이다. 아직 말을 못하는 유아기 아이들을 제외하고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가벼운 내기부터 시작하여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복잡한 게임을 위한 수단 등으로 가위바위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가위바위보를 기초로 하여 변형하거나 발전시킨 ‘묵찌빠’나 ‘하나 빼기’를 비롯하여 게임 디자인에서도 가위바위보 개념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가위바위보가 게임으로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가 정리한 ‘가위바위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간단한 룰
    2) 빠른 피드백
    3) 짧은 플레이 타임
    4) 별도의 도구 불필요
    5) 3가지가 물고 물리는 재미
    6) 공평함 (페어)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1)~5)는 형식적인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형을 해도 ‘가위바위보’ 게임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 3), 5)의 변형은 이미 가위바위보를 활용한 다양한 게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가위바위보 모양을 한 도구를 사용해도 좋고, 서로 눈을 가리고 해서 피드백 타이밍을 늦출 수도 있다. 반면 6)의 경우 인간의 심리와 관련된 특징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깨진다면 더 이상 가위바위보 게임의 본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가위바위보가 가지는 특징 중, 인간에게 익숙함을 느끼게 만드는 특징은 무엇일까?”


    형식적인 특징인 1)~5)는 게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한편 공평함과 익숙함은 모두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인 감정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위바위보의 특징 중 ‘공평함’이야 말로 인간에게 익숙함을 느끼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 볼 수 있다. 만약 가위바위보 게임이 불공평했다면, 이렇게 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 않았을 것이고 인류에게 익숙한 게임이 되지 못한 채 금세 역사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게임에 있어 ‘재미’‘공평함’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한다. 필자도 이 의견에 깊이 동감한다. 게임은 재미를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게임을 계속해야 하는 건 잔인한 고문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게임과 재미는 어떤 관계일까?

  •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 (TRUE)
  • 재미있으면 게임이다. (FALSE)

  • 첫 번째 문장을 보면 우선 게임 속에 재미라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재미라는 큰 개념 안의 여러가지 것 중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두 번째 문장이 틀린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재미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이 재미를 느끼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 때문에 필자는 “뭐든 재미만 있으면 된다”라는 표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경쟁에서 이기면 그 경쟁이 무엇이건 대부분의 승자는 재미를 느낀다. 심지어 누군가를 괴롭히면서 인간은 재미를 느낀다. 더 나아가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재미와 쾌감을 얻기도 한다. 재미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게임도 다르지 않다. 게임이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게임에서 일부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게임 시스템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게임에서는 재미를 추구하기 이전에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그것 중에 하나가 바로 ‘공평함’이다. 필자는 게임이라는 미디어에서 ‘재미’와 더불어 ‘공평함’이 가장 중요한 두 축이고 생각한다. 가위바위보 게임에 봤듯이 공평함은 인류가 가진 공통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게임에 있어 공평함이란 현실 세계의 계급, 권력, 돈, 직업, 나이, 성별 등에 상관없이 게임 안에서는 공평한 기회를 얻는 것이다.

    형제가 있는 사람은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고,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이들의 행동을 살펴보자. 오렌지 주스 하나를 따라줘도 분명 별차이도 없는데 똑같이 달라고 아우성이다. “왜 나만 적어! 빼애애액~” “왜 난 저 색깔 아니야? 빼애애액~”. 필자는 어렸을 때는 심지어 비커에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렇듯 아이들은 분명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공평함에 이상하리만큼 집착한다. 왜? 생존하기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형제 관계에 있어서도 한번 불공평한 위치에 처하면 머지않아 죽게 될 수도 있다는 공포와 생존에 대한 본능이 공격적인 반응으로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러한 행동을 억압하고 다그치는 것은 본능에 역행하라고 강제하는 것과 같아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게임과 공평함에 대한 깊은 관계는 다양한 언어에 녹아들어가 있을 정도다. 언어는 인간의 잠재의식 깊숙이 관여하여 생활방식, 사고방식, 성격 등을 바꾸어 놓는다. 인간이 태어난 이후 모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직면하면 그 언어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문화에 맞춰 많은 것이 변한다. 필자도 일본에 조금 길게 가 있으면 소극적이고 조심하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가끔 “내 성격이 변한 건가?”라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한국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다시 돌아온다.

    그만큼 언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다. 언어에서 게임과 공평함에 대한 관계가 드러난 예를 살펴보자.

    ■ Fair play

  • “넌 (나한테) 게임이 안 돼.”
  • “말도 안 돼. 게임이 안 되잖아. 나 안 해.”

  • 가장 대표적인 예가 페어 플레이다. 스포츠를 포함한 모든 게임에서 공평함을 깨면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공평함을 깰 경우 룰에 따라 페널티를 주기도 하지만 규칙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대신 관중들의 매서운 지탄이 쏟아지기도 한다. 영어에는 이러한 표현이 있기에 영어권 사람들은 모든 게임에서 공평함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공평한 게임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며, 불공평한 대상에 대해서 ‘Fair play!! Fair play!!’라고 외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공평한 게임을 서양에 판매 또는 출시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

    한국어에서는 게임과 공평함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표현을 찾지 못했다. 대신 “넌 게임이 안 돼”라는 표현이 있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또는 ‘게임이 성립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간단히 말해서 공평하지 않으니 상대하기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평함’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게임에 있어 중요한 특징이다.

    세상에는 게임도 많이 있지만, 재미없는 게임도 많이 있다. 흔히 똥겜이라고 하지만 재미가 없다고 해서 게임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선택을 하지않지만 거부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공평함이 깨지면 인간은 잠재의식적으로 ‘이건 게임이 아니다’라고 거부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재미’와 ‘공평함’을 통해, 필자는 “게임이란 공평함이라는 테두리(선) 안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재정의 내린다.



    '불공평한' 가위바위보를 디자인 해보자


    ’가위바위보’는 공평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위바위보 게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공평한 가위바위보에 대해서 사람들은 정말 게임이 아니라고 느낄까?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불공평한 가위바위보를 확장해서 다음과 같이 간단히 디자인해봤다.

    1) 기본 룰

    A. 플레이어는 고라니 캐릭터와 늑대 캐릭터로 구분되며, 고라니 캐릭터와 늑대 캐릭터에게는 각각 차별화된 기능을 제공한다.

    B. 1세트는 총 5판의 연속된 가위바위보로 이루어지며, 5판 중 이긴 회수가 많은 측이 최종적으로 승리한다. (늑대가 승리하면 고라니가 잡아 먹히는 엔딩, 고라니가 승리하면 도망가는 엔딩)

    C. 기본은 고라니 캐릭터이며, 코인을 구입해서 적당한 타이밍에 지불하면 늑대 캐릭터가 될 수 있다.


    2) 불공평한 가위바위보 PART1: 선택 기회의 차별화

    A. 고라니 캐릭터에게는 세트 시작 전에 가위바위보 중 2가지만 랜덤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이 걸리며(도망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 이는 같은 세트 동안 유지된다. 세트가 바뀌면 다시 랜덤으로 결정된다. 물론 늑대 캐릭터에게는 가위바위보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B. 세트 시작 전, 5개의 코인을 지불하면 해당 세트동안 늑대 캐릭터가 된다.


    3) 불공평한 가위바위보 PART2: 허용 시간의 차별화

    A. 가위바위보는 양측 동시에 내야만 인정된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지불하는 코인에 따라서 가위바위보를 낼 수 있는 허용 시간이 길어진다.

    B. 세트 시작 전, 추가로 10개의 코인을 지불할수록 0.1초씩 허용 시간이 늘어난다.

    ‘PART1: 선택 기회의 차별화’를 통해 디자인된 불공평한 가위바위보에서, 고라니 캐릭터는 첫 판에 가지고 있는 2개 중 하나는 무조건 들통난다. 그리고 다음부터 나머지 하나를 감출 것이냐 낼 것이냐를 고려한 심리싸움이 가능하므로 겨우겨우 진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점차 뒤로 갈수록 늑대 캐릭터가 유리해지는 불공평한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1세트에 5판이라면 가끔 운이 좋아 고라니 캐릭터가 도망갈 수도 있다. 그러나 1세트가 10판 등으로 점차 늘어나게 된다면 고라니는 늑대의 입안에 들어가 씹히기 직전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선택 기회의 차별화’가 고라니 캐릭터와 늑대 캐릭터 간의 대결에 유용했다면, ‘PART2: 허용 시간의 차별화’는 늑대 캐릭터끼리의 대결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10개의 코인을 지불해서 0.1초 더 늦게 내도 게임 승패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100~1000개의 코인을 지불해서 1~10초 더 늦게 내도 된다면, 늑대 싸움에 티라노사우루스가 난입한 것과 다름없다. 결국 이 불공평한 가위바위보는 누가 더 많은 코인을 지불하는가에 따라 승자가 결정된다. 즉, 실제 현실에서 누가 더 돈이 많은지에 따라 게임 안에서의 승자까지 결정되어 버린다.

    이처럼 불공평하게 디자인된 가위바위보 게임을 주변사람들과 한 번 해보자. 고라니 캐릭터나 늑대 캐릭터 대신에 실제 현실에서 직업, 직책의 상하관계, 나이, 성별 등을 대입해봐도 무방하다.

    유리한 입장에 취한 사람 대부분은 이것이 게임이건 말건 개의치 않고 상대방을 가지고 노는 듯한 우월감에 재미와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불리한 입장에 취한 사람 대부분은 불공평함을 느끼고 점차 불쾌하게 돼 결국 다음부터는 게임 하기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건 게임이 아니야!! XX” 라고 말할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이건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재미라는 감정 이전에 불공평함에서 오는 불쾌함과 분노가 머리 속을 지배할 것이다. 일부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불공평한 것을 게임이라고 부르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고라니 캐릭터를 플레이했던 사람들이 게임을 거부할 것이고, 늑대 캐릭터 중에서도 코인 살 돈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점차 이 게임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결국 머지않아 불공평한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고, 불공평한 가위바위보는 역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게임의 가장 기초적인 특징을 지키지 못하는 이 불공평한 가위바위보’를 게임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너랑 안 놀아! 저리가!'


    앞서 그 흔한 가위바위보 게임조차 불공평하게 디자인되면 게임이 아니게 됨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게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판매 또는 출시한 이상, 소비자들이 느끼기에 게임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 제한선은, 현실 세계와 상관없이 게임 안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조건과 상관없이 게임 안에서의 노력여부와 조금의 운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야 게임인 것이다.

    “그렇다면 불공평한 게임을 만들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먼저 모든 불공평한 게임은 태생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에 불공평함을 느낀 수많은 사람들은 수치심, 분노, 위협감을 느끼게 된다. 즉, 신뢰가 깨진 것이다. 인간은 신뢰가 있어야 같은 공동체로 인정하고 같이 생활하는 것을 허용한다. 게임도 신뢰가 있어야 같이 하는 것이다. 화투나 포커에서라면 ‘밑장빼기’를 자주하는 사람, 디지털 게임이라면 핵을 쓰는 사람과 같이 게임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런 게임을 제공하는 곳에도 더 이상 가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오랜 기간 불공평함으로 신뢰가 깨어지면 공동체에서 거부하고 심지어 추방해왔다. 선사시대부터 공평함과 신뢰는 인간의 잠재의식 깊숙이 생존의 기본 전제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뢰가지 않은 것, 불공평한 것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며 거부 및 추방해왔던 것이다. 오랜 기간 추방은 사형 또는 죽음과 동일한 의미를 가졌었다. 공동체에서 추방되면 생존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철저하고 강력하게 응징해야만 했던 것이다.



    ▲ 넌 게임 주인공이니까 추방당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걸 명심해!!

    다음으로 불공평한 게임이라 할지라도 재미를 느끼는 일부의 사람에게 단기간에 집중해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에서 신뢰는 기본이자 핵심이며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신뢰를 팔아먹는 비즈니스는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수많은 글로벌 회사들은 단지 회사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수백~수천억 달러를 이미지 마케팅에 쏟아 붓는다.

    단지 지금 세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 더 먼 미래의 자손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회사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더 신뢰 가는 이미지로 부여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수백~수천억 달러와는 비교되지 않을 수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게임에서 신뢰와 공평함을 되찾는 것이다. 이미 많은 게이머들이 불공평한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를 상대로 ‘너랑 안 놀아! 저리가!’를 시전하고 게임 공동체에서 밴시켜버렸다. 그리고 다른 공평한 게임을 찾아 나선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 놀아줄 사람이 일부 있다고 방심하다가 금세 주변에 아무도 없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 “이제 너랑 안 놀아!”의 표지 (출처: 이제 너랑 안 놀아, 키즈엠, 2014)

    거부 또는 추방은 단순히 재미없으니까 선택적으로 게임을 안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오랜 기간 생존해오면서 DNA 깊숙이 박혀 있던 본능인 신뢰와 공평함을 건드렸기 때문에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이상 영구 추방될 것이다. 인간의 수십 만년 된 본능과 싸우자고 덤비는 꼴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붉어진 “너랑 안 놀아! 저리가!”와 같은 맥락의 “응, 안 해.” 등의 사태가 몇 번이나 발생했다. 또한 게이머들의 과도할 정도의 적대적인 반응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본능에 기인된 행동인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현재가 아닌 미래다. 불공평함에 치를 떨던 수많은 게이머들이 다음 세대에게 지금의 이 분함을 어떻게 전할까?

    이전부터 이슈가 되었던 부분유료화 아이템 문제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 문제도 좋지만 근본이 되는 ‘공평한 게임 만들기’부터 공론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공평한 게임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나 부분유료화는 단지 디자인 형식 중에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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