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BIC의 유료 전환, 그리고 방향성

칼럼 | 이현수 | 댓글: 9개 |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지금까지 공짜로 누리던 걸 돈 달라 하면 괜스레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뉴욕타임스조차 2011년 온라인 유료 모델을 발표하자마자 사방에서 치솟는 우려의 목소리와 마주쳐야만 했다.

올해 3회째를 맞는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이하, BIC)은 인디 게임 개발자들과 관람객을 함께 어우르는 ‘글로벌 인디 게임 축제’다. 관람객에게 글로벌 흥행작과 신작, 개발 중인 다양한 인디 게임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게임으로 개발자와 관람객이 서로 소통하는 장을 제공한다.

이번 3회 행사를 앞두고 BIC는 유료화 정책을 발표했다. 일반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9월 16일과 17일 티켓을 팔았다. 성인 관람객 기준 온라인 예매는 양일권 8,000원 1일권 4,000원, 현장 판매는 각각 10,000원과 6,000원이었다.

성인 기준 1만 원. 요새 물가에서 1만 원이 돈이겠느냐마는 주최 측은 틀림없이 이 대단한 도전을 앞두고 수많은 고민과 타당성 평가를 반복했을 거다.



▲ 3살이 된 BIC는 유료로 전환됐다.



■ 방향성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BIC

BIC 유료화에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행사는 드물었다. 실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지침이나 기준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므로 이론적 측면에서 개발자를 포함한 방문객이 어떠한 경험을 하며, 그 경험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행사 존속 여부를 담보로 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BIC의 답은 방향성이었다. BIC는 인디 개발자를 위한 공간으로 시작했다. 개발자는 자신의 게임을 대중에 소개하는 한편, 게이머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게이머도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개발자를 만나 궁금한 점을 물어보거나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현장에서 자신이 평소 좋아했던 게임의 개발자를 만나 사인을 받거나 대화를 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개발자와 개발자끼리도 교류했다. 소싱관계자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었다. 이는 BIC의 정체성이자 경험이라 할 수 있는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 BIC라는 행사의 본질이 방향성을 설정했다.

주최 측은 BIC의 본질을 개발자가 중심이되어 지탱하는 행사로 인지하고 이에 집중해 방향성을 설정했다. 방향성은 행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4년 한국지역축제실태’에 따르면 전국에 총 1,214개의 축제가 존재하는데 그 중 20여 개의 축제만이 수익을 내고 5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먹고 마시는 똑같은 형태의 방향성 없는 축제는 존속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BIC는 방향성 확립을 위해 '인디 게임', '인디 개발자'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오는 것에서 탈피하여, 인디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행사를 다져나가려는 의도가 보였다. 개발자와 함께 게임을 즐기고 대화를 주고받는 게 3일간의 행사기간 중 첫날을 개발자의 날로 지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료화의 핵심은 ‘금액을 낼 만한 가치’의 존재 여부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BIC는 인디로 연결된 모든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주최 측은 32개국 378개의 게임 중 선별 작업을 통해 뽑힌 110개 게임을 초청했다. 다양성을 확보했고,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장을 만들었다.




이러한 다양성 덕분에 많은 개발자와 방문객들이 BIC를 지스타의 대안으로 꼽기도 했다. 장르 편중이 심각한 지스타에 실망한 이들이 BIC에서 신선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갔다는 방증이다. 실제로도 쿠폰이나 부스걸 같은 유인책이 없어도 즐거워하는 방문객을 다수 볼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유료 관람의 성패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고객의 평판'이다. 고객으로부터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원'이라는 평판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BIC는 이 점에서 매우 훌륭하다. 개발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겁게 여기며, 개발자 역시 이를 매우 즐겁게 받아들인다. 심도 있는 피드백이 오간다. 꿈이 개발자인 관람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 경험상, GDC를 제외하고 이토록 심도 있는 기술적이며 구조적인 대화가 나누는 곳은 BIC가 유일했다. 개발자 간의 대화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마냥 게임이 좋아 온 사람도 있고, 아이한테 축제를 보여주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게임에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개발자와 호흡하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간다. 게임을 할 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긍정적인 평판으로 이어지며 훌륭한 경험은 내년, 내후년 모객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훌륭한 경험은 방문객과 개발자 스스로가 영업사원이 될 정도로 충성스런 고객이 되게 한다.




실제로 비바람이 몰아치던 17일(일요일) 아침, 개장 전부터 대기하던 친구는 "어제 와 보니까 재미있어서 오늘은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가 쌓이다 보면 고객 정보가 쌓이고 고객의 컨텍스트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이때 고객의 정보는 서울숲에 거주하는 30대 남자와 같은 단순 프로파일 정보가 아니다. 행사의 방향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주최 측이 방향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 선순환이다.

만약, 예년과 같이 올해도 무료로 행사를 진행했다면, 방문객들이 지금처럼 심도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지, 지금보다 개발자들이 깊이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생긴다. BIC가 잡은 방향은 올바른 방향이었다.



■ 유료화가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길

흔히 프로모터들이 많이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한국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방향성을 처음부터 잘못 설정해 실패해 놓고, 나중에 가서는 방문객들이 공짜에 길들었다며 탓을 한다.

물론 방문객들은 무료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도 원하는 콘텐츠에는 얼마든지 돈을 낼 의향이 있다. 다만 사업자들이 제시하는 가격과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무료 티켓을 경험한 관중은 다시 무료 티켓이 생기지 않으면 관람 자체를 포기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가장 저렴한 가격이라 하더라도 구매 자체를 아깝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티켓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 많은 기업이 제품의 가격을 함부로 낮추지 않는 이유다. 고객의 욕구 없이 설정된 가격은 상품 본질의 가치와 달리 매겨진 가격의 가치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 태풍에 아랑곳하지 않는 대기열

정확한 관람객 집계는 내일(18일) 나온다. 그전까지 방문객이나 수익을 알 수 없다. 현장 판매분이 일요일에 급격히 늘었다는 귀뜸만 있었다.

그러므로 유료 방문객 결과가 어떻게 나올는지는 모른다. 얼마나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가능하다면 내년에도 BIC가 유료 행사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리고 싶다.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해외 게임쇼에 BIC 부스를 설치하여 대한민국에 이런 인디 축제가 있음을 알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양질의 게임이 전시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개발자가 찾아서 더 심도 있는 행사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방문객이 더 많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3일간 이곳에서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BIC는 플레이의 장이며, 마케팅의 장이고, 사업의 장이며, 친교의 장이었다는 점이다. 개발자를 만나서 사인을 받기 위해,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을 뚫고 아침 7시부터 대기한 이들의 모습. 이 장면이 유료화된 BIC의 방향성과 질적 성장을 대표하는 장면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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